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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삼국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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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인(탤런트) . . . . 26회 일치
         || 신체 ||<(> 177cm[* 야인시대 57화 에서 보면 알겠지만 175cm인 박헌영 역할을 맡은 [[임병기]]보다 조금 큰 것을 알 수 있다.] 73kg ||
         >- [[야인시대]] 64화 중
         >주인공 못 단 배우라고 다 불행한 게 아니듯, 인생 또한 주인공이 되어야만 행복해지는 건 아닙니다. 원하던 배우 일을 하다 [[심영(야인시대)|한 번은 유명해졌고]] 사업을 조그맣게나마 흔들림 없이 지켜왔고,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부끄러울 일을 하지 않았으니 이만하면 충분히 잘 살았다 생각합니다. 전 무대의 주역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우리들 마음 속의 영원한 [[심영(야인시대)|심영]] 동무.'''
         [[1952년]] [[9월 5일]][* [[음력]] 1952년 [[7월 16일]].]생. 한국의 [[배우]] 겸 [[기업인]]. 그리고 '''[[야인시대]]의 실질 최대 피해자이자 수혜자'''.[* 한 인터뷰에서 그때 받은 충격을 토로하였다.] [[KBS]] 소속이지만 [[SBS]] 드라마인 야인시대에 출연한 것으로 보아 전속은 아닌 듯하다. 데뷔년도가 꽤 늦은 편으로 본업인 건설에 종사하다가 평소 꿈이었던 배우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끝에 단역이나마 특채로 뽑힌 게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즉 원래는 건설업자가 본업이고 배우는 부업이었으나,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그의 혼이 실린 처절한 연기로 [[내가 고자라니]] 장면이 빅 히트를 친 덕분에 지금은 단역 전문 배우로도 잘 알려져 있다.
         출연작은 2002년작 '''[[야인시대]]''', 2005년작 [[남기남]] 감독의 '바리바리 짱'과 2006년 '[[연개소문(드라마)|연개소문]]', '자이언트'(이상 [[SBS]]), [[조선왕조 오백년]], [[영웅시대]](이상 [[MBC]]) 등이 있으나...
         '''그 중 [[SBS]] <[[야인시대]]>의 [[심영(야인시대)|심영]] 역이 [[내가 고자라니|가장 유명하다.]]'''[* 여담으로 저 침대에 누운 장면만 본 사람은 [[박철]]이 연기한 게 아니냐고 착각했다고 한다. 확실히 저 장면 만큼은 확실히 많이 닮았다.]
         배우 본인은 [[내가 고자라니|영 좋지 않은 배역]]이 [[디시인사이드|DC]] [[합필갤]]을 통해 유명해진 것을 전혀 몰랐다가 우연히 보험설계사를 통해(!) 알고 꽤 충격을 받은 듯. 혹시 누가 자신을 진짜 성불구자로 오인해 물어볼까 두렵다고 했다([[http://news.nate.com/view/20100326n07929|인터뷰 기사]]). 동영상이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 명예훼손 등의 법적인 저촉 사항이 되는지 법률 자문을 신청해 놓았다고 한다. 아마 본인보다는 부모님이나 아내, 외동딸이 (패드립을 당하고) 상처를 입을까봐 염려하는 모양이다. 인터뷰 이후 합필갤에선 [[심영(야인시대)|심영]] 합성 작품 일부가 삭제되는 등 심영의 합성물 관련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상당한 논란 끝에 일단 고자와 관련된 합성은 자제하기로 잠정 결정되었고, 얼마 후 DC에서 주최하는 인터뷰 결과에 따른 결정을 기다렸다.
         여담으로 야인시대를 찍은 '''2002~2003년 당시 49~51세'''였는데 심영 영상을 보면 그렇게 나이가 들어보이질 않는다.[* 2018년 기준 67세임에도 야인시대 촬영 당시보다 크게 늙지 않았다. 이는 김두한 역을 맡은 [[김영철(배우)|김영철]]도 마찬가지.]
         분명히 하자면, '''배우 김영인 씨는 절대로 고자가 아니다. 고자는 야인시대에서 각색된 심영이다.'''[* 실제 역사인물 심영도 하복부에 총상을 입었을 뿐 결코 고자가 되지 않았다.] 하필 남자들이 가장 수치스럽게 여기는 '고자'와 관련되어 유명해졌기 때문에, 드라마 야인시대의 실질적인 최대 피해자로 거론되곤 한다.
         허나 '내가 고자라니'처럼 일개 단역이 십수년간 인구에 회자되고, 세대 수준의 인지도[* 적어도 현 10~30대 중 심영과 김영인을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보다 많을 것이다.]를 가지는 경우가 전무후무한 것도 사실이다. 야인시대 합성물도 일종의 팬 메이드 [[UCC]]인데, 김영인과 같이 나와 합성되고 영상이 만들어지는 [[김영철(배우)|김영철]]을 제외하면, 한국 연예계의 톱스타들조차 김영인에게 상대가 안 된다. 당장 단역은 고사하고, 당신이 2002년에 브라운관에 나왔던, 더 쳐서 당시 커리어 하이를 달리던 연예인 중 몇명이나 기억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10년이나 지난 후에 [[푸른거탑]]에 섭외되었던 것을 생각해 보자. 현 30대가 섭외에 보다 더 힘을 낼 수 있게 되는 10여년 후까지 김영인이 연기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는다면, '야인시대의 최대 피해자'라는 평이 달라질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다.
         == 야인시대 이외의 출연 ==
         2002년 [[SBS]] [[드라마]] [[야인시대]] 출연 이후에 TV 드라마에서 별 다른 작품이 없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알고 보니 2005년에 방송된 [[MBC]] [[드라마]] [[영웅시대]] [[https://youtu.be/6_16CaCnU_g?t=4m52s|63부]]에서 천태산(정주영)과 일제시대부터 함께한 짬밥 많은 중장비 수리공 삼총사의 일원 배역으로 잠시 출연하기도 하였다.
         [[푸른거탑]] 2기 36화에서 부사단장[* 계급은 대령.]으로 특별출연했는데 여기서 철책을 순찰하다 오발사고를 당해 "내가 '''"또"''' 고자라니!"를 10년 만에 외쳤다. 목소리도 나이가 들어 10년 전 만한 연기는 보여주지 못했지만 처절한 연기는 야인시대 촬영 당시와 똑같았다. 여담으로 고자라니를 외칠 때 사용한 배경음이 야인시대 OST중 하나인 A Turbulent History 이다.
         그리고 부동산을 하는 [[인천광역시|인천]]에 [[당구]]장을 개업한 적이 있었다. [[http://www.albamon.com/list/gi/mon_corp_list.asp?kind=closing&C_ID=dltkdgus311|당구장의 이름은 야인시대 당구클럽]]이고 내부에 심영을 연기했을때 사진과 합필갤러들의 작품들이 붙어있다. 하지만 2014년 초 경에 소리소문없이 없어졌다고 한다.
         2017년 10월 30일 네이버 포스트에 실린 인터뷰에 따르면 건설회사를 운영하면서 배우를 겸하고 있다고 한다. [[http://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0287455&mainMenu=JOB|인터뷰]] 애초에 사회생활을 건설회사에서 시작했으며 공병으로 군복무를 하였고 70년대 후반 쿠웨이트 파견도 갔다왔다. 야인시대로 주목받기 전까지 가장 주연에 근접했던 게 영화 '떠도는 섬' 스태프 롤에서 4번째로 이름이 올라온 것이라고 한다.
  • 김영철(배우) . . . . 22회 일치
         >[[SBS]] 드라마 [[야인시대]](2002)의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
         '''우리들 마음 속의 영원한 [[궁예(태조 왕건)|궁예]]이자 [[김두한(야인시대)|의송 김두한]].'''
         [[대한민국]]의 배우. 얼굴, 목소리에서 카리스마를 내뿜는다. 거기서도 '''광기 넘치는 악역 보스, 리더'''[* [[태조 왕건]]의 [[궁예]], [[야인시대]]의 [[김두한]], [[서울 1945]]의 문정관, [[대왕 세종과 장영실]]의 [[태종(조선)|이방원]], [[공주의 남자]]의 [[세조(조선)|수양대군]] 등.] 연기는 최상급으로 평가받는다.[* 비슷한 연배이면서 보스나 리더 역할을 주로 맡는 배우는 [[서인석]], [[이덕화]], [[유동근]] 등이 있는데, 서인석은 노태우 역할 등 겉으로 무른 역할을 맡기도 한 적도 있었으나 서인석과도 포지션이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이덕화는 용모의 특성상 대부분 배역이 악역 보스이거나 안티 히어로이며, 서인석이 2000년대 들어 원톱 주인공을 맡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을 보면, 유동근과 포지션이 가장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유동근이 드라마나 현대극보다 사극에서 더 두각을 드러낸다는 것까지 고려하면 남성적이고 강건한 보스 역할에서는 김영철이 단연 최고다.] 주로 맡는 캐릭터들도 남성미가 돋보인다. 특히 '[[태조 왕건]]'에서는 [[궁예(태조 왕건)|궁예]] 역할을 맡아 타이틀롤인 [[왕건]]을 제치고 광기와 카리스마의 완벽한 조합이 이루어진 연기로 극을 압도적으로 이끌며, 주인공이 아닌 역할로 연기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대상 수상자가 드라마에서 주인공 역할이 아니라는 사실이 당시 관례에서 보면 꽤나 파격적인 것이었으나 드라마 스토리상 실제 드라마를 보면 [[궁예]]가 주인공급이었다. 당시 김영철의 궁예 연기가 2000년 한 해 내내 전국민의 이슈였을 정도로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에 예상외로 비난이나 논란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사실 2000년도 연기대상은 사람들 대부분 KBS는 김영철, MBC는 [[전광렬]]이 탈거라 예상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대상 줄 거야! 안 줄거야!--]당연히 젊었을때는 나이 때문에 이런 캐릭터를 할수는 없었고 그 외 다양한 역할을 맡으면서 성장해왔다. 중장년이 된 이후에도 카리스마 보스가 아닌 평범한 시민의 역을 연기하기도 한다. ~~남자 시리즈 전문 배우~~[* [[위기의 남자]], [[공주의 남자]], [[적도의 남자]],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 출연. 그 중 [[위기의 남자]]를 제외한 3편은 각각 2011년 하반기, 2012년 상반기, 2012년 하반기에 KBS에서 방송되었다.]
         [[야인시대]] 2부에서 중장년 김두한을 맡았는데, 당시에는 그저 1부의 히트에 힘입은 2부라는것 말고는 특별한 점은 없었으나 수 년 후 [[고자라니]]가 발굴되는 바람에 희한한 방향으로 주가가 상승한 배우이다. 또 예능에서 개그맨 장동민이 달콤한 인생의 대사를 재밌게 살려서 김영철까지 인지도가 더 많이 올라갔다.
         SBS 대하드라마 [[야인시대]]의 중년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 시절.
         2000년대에 들어서 맞이한 제2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역할은 [[태조 왕건]]의 [[궁예(태조 왕건)|궁예]]와 [[야인시대]]의 중년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 이 두 역할은 김영철의 대명사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연기에서 엄청난 포스를 뿜어냈다.[* 물론 최고시청률 견인차 역할을 했던 궁예와는 다르게 김두한 역을 맡았을때는 기존의 인기요소였던 격투, 활극에서 정치드라마로 바뀌는 바람에 1부보다 떨어지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였는데 몇년 후 [[고자라니]]가 발굴되어 현재는 이쪽 김두한이 안재모 김두한보다 더 인기가 좋다.]
         [[야인시대]]에서도 후반기에 명연기를 보였으나, 해방 당시의 김두한은 20대 후반이었는데 김영철은 당시 50에 근접한 나이라 [[미스캐스팅]] 논란도 있었고[* 광복을 기점으로 김두한 배역이 김영철로 교체되는데, 이 때 김두한의 나이는 28세지만 당시 김영철 배우의 나이는 만 50세, 연나이 51세였다. 김두한이 사망한 나이보다 겨우 3살 적었다. 그래서 김두한과 동년배 혹은 친구 역으로 나오는 김무옥-문영철이나 이정재 등은 훨씬 젊어보여서 이질감이 크게 느껴졌었다. 김영철 배우의 외모를 젊게 잡아 40세라고 쳤어도 김두한 역으로의 교체는 김두한이 약 40세 정도인 4대 총선 도전때 정도가 적절했을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FjDTs3S_44w|이 자가 바로 20대입니다 어머니! 뭐,뭐라고?]]-- 후반기 줄거리 자체의 논란과 더불어 방영 당시에는 [[안재모]]가 맡은 청년기 시절이 상대적으로 인기가 많아서 주목은 태조 왕건만 못했다. 야인시대의 후반기 방송분은 청년층보다는 장년층이 주 시청자였다. 하지만 종영후에는 청년기가 잊혀진반면 후반기는 [[심영물|명언도 더 발굴되고 넷상에서 언급도 더 많이된다.]] 방영된지 10년도 넘게 지났음에도 김영철의 인생 연기 중 하나로 여전히 기억되고 있다.
         >'''[[김두한(야인시대)|공산당 할 거야? 안 할 거야!]]'''
         하지만 김영철이 의도한 것은 아닌데 인터넷에서는 [[태조 왕건]], [[야인시대]], [[달콤한 인생(영화)|달콤한 인생]] 세 작품으로 개그용 패러디 제조기 배우가 되고 말았다.''' 상당한 내공의 배우였기때문에 연기력은 극찬을 받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김영철 주역의 작품중 가장 유명하면서 임팩트가 컸던 세 인물[* [[궁예(태조 왕건)]], [[김두한(야인시대)]],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로 유명한 강사장.]은 비정상인 성격에 행적도 심할 정도로 황당했기 때문에 현재 합성물 필수요소로 쓰이는 수준. 물론 김영철 입장에서는 연기에 충실한 것이지만 배역 자체가 문제.
         한편으로는 궁예 캐릭터에 애정도 있었는지 태조 왕건 이후 현대사인 [[서울 1945]]를 제외하면 한동안 사극에 출연하지 않는다. 그러다 2008년 [[대왕 세종]]에서 [[태종(조선)|태종 이방원]] 역을 맡았는데 그동안 사극 섭외를 정중히 거절한 이유는 바로 궁예 때문이라고 인터뷰했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8&aid=0000086918|#]] 일반적으로 대중들이 궁예와 김두한이라는 한 시대를 풍미한 캐릭터만으로 김영철이라는 배우를 논하는 경우가 있는데, 배우 본인이 그런 배역을 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음을 잊지 말아야 하며 존중해줘야 할 것이다.[* 비슷하게 [[서인석]]도 [[견훤(태조 왕건)|견훤]]으로 인해 이후 드라마에 출연할 때마다 견훤 이미지가 겹치는 일이 많았다. 자세한 건 문서 참조.]
         2016년 상반기에 방영하는 드라마 [[장영실(드라마)|장영실]]에 [[태종(조선)|태종]] 역으로 출연한다. [[대왕 세종]]에 이어 또다시 태종 이방원을 연기하게 되었다. 야인시대에서 연기한 배역인 김두한의 실제 외손자 [[송일국]]과 함께 출연하게 되었다. 거기에 비슷한 시기 그 앞 시대를 다룬 사극도 있어 [[유아인]]과 함께 찍은 사진도 있다. 자세한 내용은 [[유아인]] 문서 참조.
         그 후 2017년부터 2018년 현재까지 갑자기 김영철이 연기한 [[궁예(태조 왕건)|궁예]]의''' [[누가 기침소리를 내었는가|기침소리]] '''장면과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의 '''[[4달러|사딸라!]]''' 장면이 [[트위치]]를 비롯한 많은 편집영상에서 [[밈]]화 되었다. 그렇게 현재의 저연령층에도 다시한번 인지도를 터뜨린 배우...
         [[2013년]]부터 [[2016년]]까지 탤런트 [[이효정(남배우)|이효정]]에 이어 한국방송연기자[[협회]] '''[[이사장]]'''을 역임한 바 있다. 후임은 [[유동근]]. [* 참고로 [[이효정(남배우)|이효정]]은 [[야인시대]]에서 [[김두한]]의 정치적 후견인 같은 [[유진산]] 前 국회의원으로 나왔다. [[공주의 남자]]에서도 세조의 심복인 신숙주로 나온다. 세조도 김영철이 떠안은 배역이다.]
         || 2002년 || '''[[야인시대]]''' || SBS || '''중년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 역 ||
          * 1987년 영자의 전성 시대
  • 이연희(배우) . . . . 16회 일치
         후술하겠지만 [[소녀시대]]의 멤버로 "거의" 확정됐다는 일화는 지금까지도 유명한데, 지금의 [[윤아(소녀시대)|윤아]]처럼 센터에 세울 멤버로 기획되었던 엘리트 연습생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http://star.mk.co.kr/new/view.php?mc=ST&year=2017&no=670940|#]] 외모는 더 이상 말할 것도 없고, 타고난 목소리가 청아하고 예뻐서 노래 실력도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다.
         가끔씩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춤 실력은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지만, 아쉽게도 SM이 원하는 과격하고 파워풀한 춤을 따라갈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에 발목을 잡혔다는 것이 정설이다. 왜냐하면, 소녀시대는 걸그룹치고는 최고난도의 댄스와 정확한 군무를 요구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SPEXXd2qI9Q|사실 이래서 못 들어간 것이라고 하더라]]--
         또한, 당시 에덴의 동쪽 직후 인터뷰에서 연기력 논란에 대해 묻는 질문에 "에덴의 동쪽은 시대극이어서 시대 상황에 대한 배경 지식도 별로 없고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시대라 잘 몰라서 그랬던 것" 이라는 뉘앙스로 대답했는데, 이 답변이 제대로 된 해명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 논리대로라면 조선시대나 삼국시대, 고려시대, 일제 강점기 등을 배경으로 한 사극에 출연해서도 뛰어난 명품 연기를 보여준 다른 수많은 선배 배우들은 그 시대를 살아봤고 경험해봤기 때문에 잘 하는 것일까? '''선배 연기자들도 역시 살아보지 못한 먼 과거의 시대이지만 이 모든 것들을 좋은 연기력으로 커버하는 것'''이지 시대 문제가 아니다. 결국은 그녀의 연기 스펙트럼이 좁고 역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만 입증한 셈이다. 타고난 미모가 너무나도 아까울 지경의 연기력이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농담이 아니라, 이연희는 연기보다 오히려 가창력이 괜찮은 편이라서 [[소녀시대]]의 멤버로 데뷔를 했다면 [[임윤아|윤아]]나 [[태연]] 정도는 그냥 씹어먹을 정도로 높은 명성을 얻었을 것이고 자타가 공인하는 센터이자 에이스로 성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연희는 가수도 아닌데다 앨범을 낸 적이 없는 전업 배우이면서도 노래하는 영상이 이렇게 많은 것도 정말 이례적이다. 그래서, 이연희의 노래를 들어보면 청아한 목소리에 놀라게 된다.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 알 수는 없고, 역사에 만약이라는 것은 없겠지만... 솔로 가수로 데뷔를 했거나 소녀시대의 멤버로 데뷔를 했다면 어땠을지 여운이 남는다.
         조금 더 과장되게 말하자면, 정말로 [[소녀시대]]의 멤버로 데뷔했다면 윤아 급의 외모와 노래 실력을 더 갈고 닦는다면 태연 급의 능력을 갖춘 인재로 전후후무한 [[대한민국 아이돌]]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영원히 남았을지도 모르고, 명반도 여러 장을 남겼을지도 모를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의견이 있기도 하다.
          * 일각에서는 큰 키와 외모를 살려서 [[모델]]이 되었다면 지금처럼 까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또한, 앞서 서술한대로 괜찮은 노래 실력을 더 늘리고 춤을 제대로 잘 소화하도록 연습해서 같은 소속사의 걸그룹 [[소녀시대]]의 멤버로 데뷔했다면 분명히 자타가 공인하는 에이스이자 센터 자리를 맡길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 희빈 장씨 . . . . 14회 일치
         일부 역사학자들은 희빈 장씨가 아비의 사후에 몸을 의탁하고 있던 당백부 [[장현 (조선)|장현]]이 [[경신환국]]에 휘말린 후 가세가 기울자 서인들과 권력 투쟁을 벌이던 남인들의 입궁 제의를 받아 궁녀로 입궐하였다고 주장하여 현재까지 정설로 알려졌지만, [[경신환국]] 당시 그의 나이가 이미 22세였기에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ref group="주"> 궁녀의 통상 입궁 연령은 4세부터 16세이며, 조선시대 여성들의 법적 혼인 연령은 14세~20세이다. 부모가 50세를 넘긴 경우엔 관아의 특별 허가를 받고 12세 이상의 자녀를 혼인시킬 수 있는데 16세기 이후엔 수 차례에 거듭된 외란으로 남성의 숫자가 급감하였고 처녀를 차출하여 청으로 진상하거나 궁녀로 뽑는 분위기로 인해 법금을 어기고 조혼을 하는 경우가 많아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ref> 이러한 주장의 근원은 희빈 장씨가 [[경신환국]] 당시 정계에서 밀려난 [[남인]]의 사주를 받고 입궐하였다는 [[인현왕후]]의 주장으로 불거진 것인데, [[경신환국]]과 같은 해 말에 장씨가 강제 출궁이 되었다가 7년 후인 [[1686년]]에 다시 입궁했던 만큼 이미 궁녀인 신분으로 출궁을 당한 후에 [[남인]]과 연계하여 돌아왔다는 것이 오역되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또한 [[조선 효종|효종]] 때 이미 막대한 부를 쌓은 [[장현 (조선)|장현]]도 딸을 궁녀로 입궁시켰으며, [[조선 현종|현종]] 5년에 대왕대비전의 궁녀로 뽑혔다가 이미 사주가 오간 상대가 있으니 정혼을 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이유로 출궁된 역관 최우의 딸의 전례<ref>현종실록 5년(1664 갑진 / 청 강희(康熙) 3년) 12월 30일(정해) 2번째기사</ref> 도 있는 만큼 희빈 장씨의 가세가 빈궁하여 궁녀가 되었다는 가설은 억측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법은 여인은 얼굴을 공개하고 외출할 수 없다는 조선시대의 사정에 의해 오래전부터 지켜지지 않았고, 이에 서반(무관) 가문의 여인이나 당하관의 처첩은 물론 관직이 없는 양반가의 부녀자나 중인, 양인에 불과한 아속의 처는 물론 환관의 처부와 궁녀, 하물며 천민인 기녀와 침선비도 타고 다녔다. [[명성왕후]] 김씨의 친신 무당이었던 막례(莫禮)도 옥교를 타고 궁을 출입하며 굿을 했었던 만큼 사실은 아들을 생산한 소의 장씨에 대한 반감을 표면적으로 드러낸 것이었다.
         옥교 사건은 그때까지 장씨에 대한 [[서인]]의 공격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던 [[조선 숙종|숙종]]을 강하게 자극하였다. [[조선 숙종|숙종]]은 같은 당하관의 아내인 귀인 김씨의 어미도 옥교를 타고 수시로 궁에 드나들지만 문제 삼아진 적이 없으며, 장씨의 생모는 후궁이 해산할 때 교자를 타고 입궁할 수 있다는 왕실 규례에 따라 [[조선 숙종|숙종]]의 어명을 받고 입궁한 것이며, 어명을 상징하는 선소동패(宣召銅牌)를 보였음에도 입궁치 못하고 내쫓긴 것은 왕을 능멸하는 행위임을 선포하며 [[이익수]] 및 사헌부 관원을 체포하여 엄형을 내리고 사형할 것을 명하였고 그들을 옹호하는 이들에게도 벌을 내릴 것을 선포했다. 하지만 [[조선 숙종|숙종]]의 척신이자 최측근이기도 했던 우의정 [[조사석]]마저 윤씨가 탄 가마가 8인교<ref group="주">옥교에는 2인교, 4인교, 6인교, 8인교 등이 있는데 이후 사치풍조가 만연해져서 12인교도 생겨났다. 임금과 왕후가 타는 가마는 연으로 20명이 들었고, 세자의 연은 16명으로 규정되어 있다. 공주와 옹주가 타는 덩은 8명이 든다. [[조사석]]은 윤씨가 공주와 옹주의 덩보다는 못하지만 8명이 드는 8인교를 탄 것은 부당하다고 고발한 것이다.</ref><ref>《일상으로 본 조선시대 이야기 1》정연식 저</ref><ref group="주">사람이 드는 가마의 상급은 말이 끄는 가마인데 쌍교와 독교로 나뉜다. 말 두 마리가 앞뒤로 가마를 끄는 쌍교가 상급으로 2품 이상과 승지만이 탈 수 있지만 지켜지지 않았고, 영조시대엔 이미 예사로와진 일이 되어 여인들도 쌍교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 이는 숙종시대에도 비슷한 상황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신생왕자의 외조모이자 왕명을 받고 입궐하던 윤씨가 8인교를 탄 것은 분수에 맞지 않는 사치스러운 행위라고 비난할 수만은 없다. 이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윤씨가 옥교를 탄 흔적은 존재하지 않는다.</ref> 였음을 강조하며 [[영빈 김씨|귀인 김씨]]의 어미는 비교 대상이 아님<ref group="주">귀인 김씨의 어미는 당상관의 아내는 아니지만 판서였던 [[이정영]]의 딸이다. 또한 귀인 김씨의 종조부인 [[김수항]], [[김수흥]]이 정승이었기에 [[조사석]]은 귀인 김씨의 어미는 역관 가문 출신인 윤씨에 비해 옥교를 탈 자격이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ref> 을 주장함으로써 숙종은 서인 대신은 물론 윤씨를 모욕한 하리에게 내린 벌조차도 취소하고 그들을 위로해야 했다.
         [[1689년]] 1월 11일, [[조선 숙종|숙종]]은 아들 윤에게 원자(元子: 왕의 큰아들)<ref group="주">원자는 공식적인 왕의 장자(=장남)로서, 조선은 장자상속을 원칙으로 했다. 이에 후궁 소생이라 할 지라도 원자로 정해지면 왕비가 뒤이어 낳은 왕자는 엄연한 적장자임에도 불구하고 차자가 되어 왕위 계승에서 뒤로 밀려난다.</ref> 명호를 내릴 뜻을 알린다. [[조선 경종|왕자 윤]]이 후궁 소생이라는 사실에 방심<ref group="주">숙종 시대까지 조선 왕실 역사에 후궁 소생이 원자가 된 경우는 없었다. [[조선 중종|중종]]의 아들 [[복성군]]은 장자임에도 불구하고 6살 연하인 [[조선 인종|인종]]이 원자가 되었고, [[조선 선조|선조]]의 장자 [[임해군]]은 평생 원자는커녕 세자도 되지 못했다.
         [[임해군]]의 동복 동생인 [[광해군]]은 큰 아들이 아니기에 당연히 원자가 아닌 신분으로 세자가 되었다. 후궁 소생이 원자가 될 자격이 없지는 않지만 서른이 되지 않은 [[조선 숙종|숙종]]이 후궁 소생을 원자로 정한 것은 비정상적으로 급한 결정이었다.그러나, 부왕인 [[조선 현종|현종]]이 34세에 죽었고, 왕의 평균수명이 짧았던 시대였던 만큼, 30세가 다 되어가도록 후사가 없는 상황이 비정상적이었다는 반론이 있기도 하다.</ref> 하고 있던 서인은 숙종의 선언에 당황했지만 제대로 반대를 하거나 저지를 할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 속에 [[조선 숙종|숙종]]은 불과 닷새 후인 1월 15일에 왕자 윤에게 원자 명호를 내려 종묘 사직에 고했다. 또한, 숙종은 원자 윤의 생모 소의 장씨를 정1품 빈(嬪)으로 책봉하여 귀인 김씨를 제치고 후궁 1위로 만들었다.<ref group="주">숙종실록에는 15일에 빈으로 책봉된 것으로 기록됐지만 승정원일기에는 17일로 기록되어 있다.</ref> 앞서 [[조선 숙종|숙종]]이 원자 정호에 대한 불만이 있으면 관직을 내놓고 떠나라는 선언이 있었으며, 이미 종묘 사직에 고한 일을 무르라는 것은 선대 왕들을 한꺼번에 능멸하는 행위이자 신권이 왕권의 위에 있음을 입증하는 행위나 다름없기에 [[서인]]은 소극적인 반박으로 의사를 표현할 수 밖에 없었고, 숙종은 이 또한 용서하지 않아 그들을 파직하였다.
         숙종실록에는 장씨 소생의 왕자가 9월 16일에 사망하였는데 태어난지 열흘이 지났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승정원일기의 기록에 따르면 6월에 이미 [[산실청]]이 설치되었으며 7월 19일 중궁전(장씨)이 해만(解娩: 해산)한 후 약방(藥房)과 정원(政院), 옥당(玉堂)이 대전과 중궁전의 안부를 물었다.<ref>[[승정원일기]] 숙종 16년 7월 19일 (무신) 원본342책/탈초본18책 (10/14)</ref> 다음 날인 7월 20일, 중전 장씨의 해만 상태와 산후 기후가 편안하다는 보고가 있으며 2품 이상 관원들이 문안을 올렸다. 22일에는 장씨의 유즙(乳汁: 젖)이 나오지 않아 약을 의논하는 기사가 있다. 7월 26일에는 산실청 의관이 입진하여 중궁전(장씨를 말한다)이 해만(解娩: 해산)한 지 제7일이 되었으니 산실을 철파(撤罷)하겠다는 계를 올렸다.<ref>승정원일기 숙종 16년 7월 26일 (을묘) 원본342책/탈초본18책 (8/13)</ref> 같은 날 [[조선 숙종|숙종]]은 산실청 전(前) [[도제조]]와 [[우의정]] 및 여러 관원과 의관들에게 각 [[말]] 한 필과 안장을 하사하였다. 다음 날 27일에는 산실청 담당 의관이었던 [[김유현]] 등에게 숭록(崇祿: 종1품 문무관 관직)을 제수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반대로 수령(守令)<ref group="주">고려ㆍ조선 시대에, 각 고을을 맡아 다스리던 지방관들을 통틀어 이르는 말. [[절도사]], [[관찰사]], [[부윤]], [[목사]], [[부사]], [[군수]], [[현감]], [[현령]] 따위를 이른다.</ref> 직을 제수하였는데, 이는 [[조선 숙종|숙종]]이 의관에게 종1품 숭록의 위를 제수할 만큼 대군의 탄생을 각별히 기뻐했음을 알 수 있다.<ref group="주">이 기록 역시 숙종실록에는 누락되어 있는데 반면에 [[숙빈 최씨]]가 [[조선 영조|영조]]를 출산하자 [[조선 숙종|숙종]]이 [[호산청]] 담당 내시와 [[의관]]에게 말을 하사한 것은 강조하여 기록하였다.</ref> 이러한 승정원일기의 기록은 장씨가 출산한 왕자가 9월 10일 경에 탄생된 것으로 기록한 숙종실록의 기사가 허위임을 증명한다.
         1717년 12월, 장씨의 묘가 용맥(龍脈)은 있으나 혈(穴)이 없고 수법(水法)도 합당하지 못하여 완전한 곳이 아닌 것 같다는 함일해의 상소가 올라왔다. 1718년, 숙종은 노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장리 묘의 천장(=이장)을 명하였다. 예조참의가 지사로 이름난 자 10여 명을 대동하여 1년 간 기내(畿內) 길지(吉地)를 간심한 끝에 가장 평가가 우수한 광주 진해촌으로 와병 중인 숙종이 직접 택점하였다. 1719년에 치루어진 천장식 역시 궁에서 주관하였으며 숙종이 왕세자 부부에게 망곡례를 명함으로써 노론의 극렬한 반발이 있었다.<ref group="주">인장리(仁章里)에서 영구(靈柩)가 발인(發靷)하여 진해촌(眞海村) 신산(新山)으로 향하였는데, 세자가 경현당(景賢堂)에서 망곡(望哭)하고, 세자빈(世子嬪)도 궐내(厥內)에서 망곡례(望哭禮)를 거행하였다.『조선왕조실록 숙종 45년 4월 5일 기사』당시 대리청정을 하고 있는 세자(경종)가 정사를 보던 경현당에서 망곡례를 하는 것을 맹비난하던 노론은 경현당은 대리청정 업무를 보는 곳으로 곧 법전(法殿)과 차이가 없는데 세자의 사친(희빈)을 위한 예절이 지나치다고 비판</ref> <ref group="주">이러한 숙종의 처사는 숙종의 사후에도 논란이 되어 영조시대에도 경종이 숙종의 적자이며 희빈 장씨가 숙종의 제2계비로 기록한 서적이 발간되기에 이르렀다. 경종이 즉위한 후 유학 조중우는 숙종의 처사가 아들인 경종이 희빈 장씨를 추존하라는 은밀한 뜻이었다고 주장하였다.『조선왕조실록 경종즉위년 7월 21일 기사』 이에 반해 영조가 즉위한 후 노론은 숙종의 처사를 다시 거론하며 맹렬히 비난하였다. 『조선왕조실록 영조1년 3월 25일 기사』</ref> 천장지 또한 초상 때와 마찬가지로 종친부 1품의 예장으로 단장되었으며 청룡(靑龍: 주산(主山)의 좌향(坐向)에서 본 좌측의 산맥)에 앞서 자리하고 있던 종친의 묘와 많은 민전도 모두 값을 치루어 옮기도록 하였다.
         기록의 진실성은 차치하더라도 조선 시대의 신분법 상 희빈 장씨를 얼녀 출신 천민으로 계산하기에는 오차가 있다. 희빈 장씨의 생모인 윤씨는 첩이 아닌 엄연한 정실 부인인 계실이었으며, 남의 집 여종을 첩도 아닌 정처로 삼기엔 [[장형 (조선)|장형]]의 사회적 위치 및 조건이 결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ref group="주">남의 집 여종을 아내로 삼은 자를 비부(婢夫)라 하는데, 비부는 아내의 주인 집에 종속되어 그 집안의 대소사에 노동력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자식은 탄생한 즉시 주인집의 사유재산이 된다. 이러한 한계때문에 자신의 남종이 남의 집 여종과 혼인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여 노인이 되도록 혼인을 못하는 경우가 많아 사회적 문제가 되었으며, 지극히 가난하여 나이를 먹도록 혼인을 하지 못한 양인 남성이 생계를 유지하고 대를 이을 목적으로 비부를 자청한 것이 당시의 현실이었다. 실록 등에 기록된 강력 범죄 사건에 비부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비부가 법적으로는 그 가문의 종이 아니기에 사례를 조건으로 주인의 범죄를 대리시켰거나 덮어씌운 결과인데 이는 비부의 사회적 위치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ref> 첩을 처로 만들 수 없는 조선의 국법<ref group="주">[[윤원형]]이 첩 [[정난정]]을 처로 만든 전례가 있어 첩을 처로 만드는 것이 흔한 일인 양 오해되고 있지만 [[윤원형]]이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의 사후에 관직을 잃고 유배되었던 공식적인 이유는 국법을 어기고 첩을 처로 만들었다는 죄목때문이었다. 조선 사회에서 첩실을 정실로 격상할 수 있는건 왕과 왕세자 뿐으로, 이 또한 1701년 이후로 금지되었다.</ref> 과 윤씨 소생 아들인 [[장희재 (조선)|장희재]]가 무과(武科)로 등용<ref>옥산부원군신도비 기록</ref> 되어 [[1680년]]에 내금위에 재직<ref>숙종실록 27년(1701 신사 / 청 강희(康熙) 40년) 10월 22일(을해) 3번째기사 中 동평군 이항의 공초내용</ref> 하였고 [[1683년]]에 좌포도청 부장에 재직<ref>숙종실록 12년(1686 병인 / 청 강희(康熙) 25년) 12월 10일(경신) 4번째기사</ref> 하였던 점<ref group="주">선조16년 병조판서였던 [[이율곡|이이]]의 주청으로 납속을 낸 서얼을 허통하여 무과에 입시하는 것이 허락되었으나 숙종시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청요직은 허락되지 않았으며 무과에 합격한 서얼은 관직은 받지 못한채 무기 발령대기 상태로 남거나 지방 군졸로 발령, 혹은 외적의 침입이 잦은 국경으로 발령되는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시대에 중인 역관의 얼자가 [[내금위]]에 재직하고 경내 좌포도청에 부장으로 재직한다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희빈 장씨가 숙종의 후궁이 된 건 1686년 12월이니 누이의 후광을 입었다고 볼 수 없다.</ref>, [[1689년]] 11월 13일 윤씨를 당하관인 역관의 처로 언급한 윤덕준(尹德駿)의 상소내용<ref group="주">조선시대에는 처와 첩, 적서의 구분을 명확히 구분하여 언급하거나 기록하였다.</ref>, [[1698년]]에 사망한 윤씨가 남편 [[장형 (조선)|장형]]과 전처 제주 고씨의 옆에 나란히 매장된 것<ref group="주">첩은 가문의 묘산에 매장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며 특별히 매장되더라도 남편 부부의 무덤에서 떨어진 음지나 발치 아래에 묻어 정처와 확고한 차별을 두었다. 희빈 장씨는 1694년에 강봉되었으며 오빠 장희재가 [[노론]]의 공격으로 목숨이 위태로웠던데다가 왕세자인 아들 [[조선 경종|경종]]은 [[인현왕후]]에게 입적되어 [[노론]]이 이미 모자의 연이 끊겼다고 주장했던 만큼 만약 윤씨가 첩으로서 처와 동등하게 매장되었다면 당시 탄핵이 되지 않았을 리 없으며 희빈 장씨의 사후나 경종의 사후에도 반드시 탄핵이 있었어야 정상이다.</ref> 은 희빈 장씨가 낳은 아들이 원자가 되어서나 그녀가 왕비가 되어 [[조선 숙종|숙종]]이 특별히 장씨의 생모를 첩에서 처로 승격해주었을 가능성조차 극히 희박함을 증명한다. 이는 윤씨가 설사 여종 출신이었더라도 이미 면천한 후에 [[장형 (조선)|장형]]의 계실이 되어 장씨 남매를 낳았음을 뜻하는데, 그렇다면 장씨 남매에게는 노비 종모법이 적용되지 않아 이들의 신분은 아비를 따라 중인이 된다. 물론 윤씨가 애초에 종 출신이 아니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ref group="주">종(奴婢)의 정의에는 '남에게 얽매이어 그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뜻도 있다. 조사석의 처인 권씨는 권문세가의 딸이고 윤씨는 역관의 딸이었던 만큼 두 사람이 교류하였던 것을 신분의 위계 상 윤씨를 종으로 비유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런 식의 말장난은 [[민진원]]의 특기이기도 했다는 점이 유의사항이다.</ref>
         * 《일상으로 본 조선시대 이야기 1》/정연식 지음/청년사
  • 무라하치부 . . . . 13회 일치
         전통적인 무라 사회에서 무라하치부를 당하면 가난하고 힘든 생활을 하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기본적으로 에도 시대에는 산이나 숲을 무라의 공동 소유로 보았는데, 이런 공동 소유지인 산이나 숲에서 땔감, 비료(낙엽 퇴비 등)을 입수할 수 없게 되면 농업은 커녕 일반적인 생활도 어렵게 된다.
         전국시대에는 전국 다이묘에 의한 지배가 강화되고, 에도 시대를 거치면서 총촌의 자체적인 군사력이나 자치능력은 크게 약화되었다. 하지만 자연적으로 발생한 무라(村, 촌락)의 경제적, 자치적 기능이 우수하여 전국시대의 영주들 역시 지배 단위를 무라로 삼았다. 무라 내부의 자치에는 크게 간섭하지 않고, 무라의 촌장을 통하여 촌락 단위로 지배[* 예를 들어, [[세금]]이 농민 개개인이 아니라 촌락 단위로 부가되는 등.]를 했던 것이다. 메이지 시대에 근대적인 행정이 도입되었지만 전통적인 농촌 지역 사회의 공동체적 생활양식은 크게 바뀌지 않았고 현대까지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렇게 무라를 중심으로 하는 무라 사회의 형성은 가마쿠라 후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기에 나타난 총촌(惣村)은 에도 시대 이후의 무라보다 오히려 강력하고 자치능력이 강력한 공동체로서, 자체적인 치안, 사법권까지 갖추고 잇는 소규모 자치국가라고 부를 만 했다.
         총촌의 치안은 이러한 집단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창, 칼, 활 같은 무기로 무장하는 것 역시 일상적이었다. 본래의 헤이안 시대의 국법대로라면 형사 재판과 처벌은 영주나 관리가 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외부의 간섭을 무라 사회는 거부하는 예가 적지 않았고, 가마쿠라 후기에는 무로마치 시대에는 총촌의 자치능력이 강화되고 영주의 지배력이 부족하다보니 이러한 자경 활동을 승인하였다.
         가마쿠라 시대에서 무로마치 시대에 걸쳐서는, 총촌에서는 회합으로 소우오테키(惣掟) 등의 독자적인 자치 규약을 만들고, 이 규약은 지배 영주와 무라의 자치권을 보장하는 형태로 맺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자치 규약을 위반할 경우에는 무라에서 자체적으로 추방, 재산몰수, 신체형(태형), 심지어 사형 등과 같은 엄격한 형사 처벌을 시행하였다.
         전국시대에 자검단은 전국 다이묘의 지배가 강화되면서 겉으로는 소멸, 감소하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겉으로만 폐지되었을 뿐, 영주로서는 무라에 과도하게 간섭해서 반발을 부르는 것보다 회유하여 연공을 받는 것이 유리했기 때문에 묵인되고 있었다. 에도 시대에도 무라 내부에서 벌어지는 자검단은 거의 묵인되고 있었다.
         이러한 자검단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 농촌에서 보유하고 있던 대량의 무기이다. 에도 시대에는 신분지배의 상징적인 관점에서 무기를 몰수하는 조치가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거의 명분상의 것에 불과하며, 실제로는 무라에서 칼, 창, 총, 활 같은 무기를 다수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는 신불에게 헌납한다는 목적, 혹은 맹수 피해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인정되었다. 심지어 메이지 유신 이후에도 상당한 양의 무기가 농촌에 보유되어 있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야 GHQ에 위한 무장 해제 정책, 극좌, 극우 혁명의 위험에 대비하여 경찰의 강력한 무장 해제 조치를 통하여 사라지게 된다.
  • 하정우(영화감독) . . . . 13회 일치
         처음 브라운관에 얼굴을 비춘 건 [[2002년]] 시트콤 《[[똑바로 살아라]]》이고, 드라마 데뷔는 [[2003년]]의 [[사극]] 《[[무인시대]]》에서 [[이의민]]의 아들이자 3류 악역인 이지광 역이었다. 이 역할이 스타로 거듭난 지금의 하정우 이미지와는 너무 동떨어져 있어서 시청자들이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닫고 [[충공깽]]하는 경우가 많은 듯 하다.[* 여기서도 닭백숙 먹는 연기가 일품이다. [[무인시대]] 항목 참조. 그리고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과 배우를 연결하면 아주 재미있어진다.] [[영화]]에 처음 출연한 건 [[조인성]]이 주연했던 [[2002년]] 영화 《[[마들렌]]》이다.
         [[2012년]] 개봉한 영화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서 [[최민식]]의 항렬상 조카뻘 되는 [[조직폭력배]] 두목 역으로 나와 유들유들하면서도 가족마저 내칠 수 있는 비정한 역을 선보이며 다시 한 번 흥행에 성공하였다. 영화 막판 클라이맥스신을 보면 정말 사람 잡을 듯한 눈빛을 하고 있다. 또한 비슷한 시기 개봉작 《러브픽션》에서도 [[공효진]]과 함께 주인공을 맡아 --찌질한 먹물-- B급 글쟁이 역으로 호연, 이제는 로맨스 코미디로도 연기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2014년]] 다시 한 번 [[윤종빈]] 감독과 함께한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에서는 백정 돌무치로 변신해 머리까지 밀고 열연하였지만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 [[2015년]] 1월 하정우의 두 번째 연출작인 《[[허삼관]]》이 개봉했지만 여러가지 평가 속에서 흥행하지 못하였고, 7월 영화 《[[암살(2015)|암살]]》에서는 청부살인업자 하와이 피스톨 역을 맡아 큰 인기를 얻으며 데뷔 후 첫 천만 영화를 보유하게 되었다.
         하정우의 가장 큰 장점은 다양한 역할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키는 연기력이다. 《[[용서받지 못한 자(한국 영화)|용서받지 못한 자]]》의 에이스 병장에서부터 《[[비스티 보이즈(한국 영화)|비스티 보이즈]]》의 양아치 [[호스트바|호스트]], 《[[추격자]]》의 냉혹무비한 [[연쇄살인마]], 《[[국가대표]]》의 엄마를 찾기 위해 한국에 온 스키점프 선수, 《[[황해]]》의 조선족, 《[[의뢰인]]》의 변호사,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의 조폭과 《러브픽션》의 찌질한 소설가, 《[[베를린(영화)|베를린]]》의 비밀요원, 《[[더 테러 라이브]]》의 오만하고 가식적인 앵커, 《[[허삼관]]》속 아버지와 《[[암살(2015)|암살]]》의 낭만자객 하와이 피스톨, 《[[터널(영화)|터널]]》의 자동차 딜러까지 전혀 다른 배역을 위화감없이 소화해낸다. 연기력만으로는 믿고 보는 배우라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신뢰감을 주는 배우이다.
         '''데뷔작인 [[무인시대]]에서 선보인 예사롭지 않은 먹는 연기.'''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킹크랩을 들고 게걸스럽게 먹는 장면이라든지...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서 크림빵, [[탕수육]]과 [[소주(술)|소주]]를 먹는 장면이라든지...-- 이 사람이 먹방을 시작하면 [[아프리카TV|별풍선으로 은하수를 이룰텐데]].--[* 이에 대해 다른 배우라면 그냥 흘릴 만한 컷 하나에도 혼신의 집중력을 다 하는 배우라는 평가도 있지만...]
         || 2014 || [[군도: 민란의 시대]] || 주연 || 돌무치/도치 || 4,775,811 || 손익분기[* 순수 국내 관객수만 하면 550만 명이지만,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112&aid=0002611449|해외 흥행 등의 성적이 반영되어 약 470만으로 손익분기점이 내려갔다고.]]] ||
         ||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 주연 || 최형배 || 4,720,050 || 성공 ||
         || [[무인시대]] || 조연 || 이지광 ||
         || 제20회 춘사영화상 || '''남우주연상''' || 군도:민란의 시대 ||
         ||<|5> 2012 || 제33회 [[청룡영화상]] || 청정원 인기스타상 ||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러브 픽션 ||
         || 제4회 피어선영상페스티벌 || 남자 최고배우상 ||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
  • 이재용(배우) . . . . 11회 일치
         >'''뭐야?! 또 [[김두한(야인시대)|긴또깡]]이 일을 벌였단 말인가?!'''
         '''우리들 마음 속 영원한 [[미와 와사부로(야인시대)|미와 경부]].'''
         [[영화]] [[친구(영화)|친구]]에서 묵직한 부산 사투리로, 동수([[장동건]])를 앞에 두고 일장연설을 하는 장면으로 [[미친 존재감]]을 알렸다.[* 실제로 이재용은 유년시절을 마산시에서 보냈기 때문에 부산 사투리가 능숙한 건 일도 아니다.] [[이재용|동명의 재벌 후계자]]가 있는 관계로 이재용이라는 [[본명]]을 기억하는 사람보다는 친구의 차상곤, [[야인시대]]의 [[미와 와사부로(야인시대)|미와 경부]], 제5공화국의 [[이학봉]] 등 등장인물의 이름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피아노(드라마)|피아노]]의 [[독사]], [[야인시대]]의 [[미와 와사부로(야인시대)|미와 경부]], [[주몽(드라마)|주몽]]의 부득불,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의 [[이학봉]], [[해신]]의 [[조장길]], [[뿌리깊은 나무(드라마)|뿌리 깊은 나무]]의 [[조말생]] 등이 있다. [[동명이인]] 감독 이재용의 망한 영화 [[다세포 소녀]]에서는 모든 교사 역으로 출연했다. [[무려]] '''1인 9역!'''
          * 2018년 9월 30일 [[tvN]] [[코미디 빅리그]] 외전 격인 콩트 버라이어티 '단내투어-죄와 벌'에 특별출연했다. 영화 [[신과함께(영화)|신과 함께]] 시리즈의 저승대왕을 패러디한 모습으로 등장하여 큰 웃음을 주었다. 이름도 '갤럭시대왕'이다... ~~뭔가 [[삼성 갤럭시|이게]] 떠오르는 건 기분탓인가..~~
         || 2002~03년 || SBS || '''[[야인시대]]''' || '''[[미와 와사부로(야인시대)|미와 와사부로]]''' || ||
          * [[순수의 시대(2015년 영화)|순수의 시대]](2015년) - [[정도전]]
  • 박근혜 . . . . 10회 일치
         2013년 2월 25일 박근혜는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박근혜는 그 날 오전 0시를 기하여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군 통수권 등 대통령으로서 모든 법적 권한을 인수받았다.<ref name="ReferenceA">{{웹 인용|url = 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3239329_5780.html|제목 = 박근혜, 18대 대통령 취임‥"희망의 새 시대 열겠다"|저자 = MBC뉴스데스크|날짜 = 2013-02-25|확인날짜 = 2013-03-20|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30927121331/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3239329_5780.html|보존날짜 = 2013-09-27|깨진링크 = 예}}</ref> 이어 오전 10시 23년간 지내온 사저를 떠나 현충원을 참배한 뒤 취임식에 참석하였다.<ref name="ReferenceA"/>
         또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한 구체적인 실현방안으로 2014년 3월 28일 독일 통일의 상징 도시인 드레스덴에서 인도적 문제해결, 남북한 공동 인프라 구축, 남북 동질성 회복 등 평화통일 기반 구축을 위한 3대 제안을 북한에 제시하는 '[[드레스덴 선언]]'을 천명하였다.<ref>[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4032888471 朴대통령 '드레스덴 선언'이산상봉 정례화 등 인도적 문제부터 해결…核 버리면 經協 확대]</ref> 이어 제69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박 대통령은 "통일 준비는 시대적 소명"이라면서 북한에 대해 하천·산림 관리 공동 협력 사업, 이산가족 상봉, 남북한 광복 70주년 공동기념 문화사업 준비 등 남북이 실천 가능한 사업부터 행동으로 옮기자는 작은 통일론을 제안하였다.<ref>[http://www.fnnews.com/news/201408151515276744 박 대통령 8.15 경축사 행간에 담긴 의미]</ref> 2015년에 들어와서는 박 대통령이 신년사를 통해 광복·분단 70주년을 맞는 2015년에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통일 기반을 구축하겠다고 언급하였다.<ref>{{웹 인용 |url=http://economy.hankooki.com/lpage/politics/201412/e2014123117402393130.htm |제목=[박근혜 대통령 신년사로 본 새해 구상] 경제회복 최우선… 남북관계 개선 통해 통일기반 구축 |확인날짜=2015-02-14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50214093238/http://economy.hankooki.com/lpage/politics/201412/e2014123117402393130.htm |보존날짜=2015-02-14 |깨진링크=예 }}</ref>
         [[2008년]] [[2월]] [[숭례문 방화사건|방화 사건]]으로 소실된 숭례문이 복원되었다. [[2013년]] [[5월 4일]], 숭례문 복원 기념식이 열렸다.<ref name="news.chosun.com">{{웹 인용 |url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5/04/2013050400736.html|제목 = 숭례문 다시 우뚝…박근혜 대통령 "희망의 문, 새 시대의 문"|저자 = 이지은|날짜 = 2013-05-04|확인날짜 = 2013-05-04}}</ref> 박근혜는 이 행사에 참석해 "숭례문 복구가 우리 문화의 저력과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라고 연설했으며 "한류가 전 세계 이목을 집중시키고 새로운 지구촌 문화의 흐름으로 자리 잡은 지금, 대한민국이 진정한 문화강국으로 우뚝 서기 위해서는 우리 문화의 뿌리인 전통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계승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ref name="news.chosun.com"/> 또"기와 한 장, 단청 하나에도 혼신의 노력을 담아 땀 흘려주신 수많은 장인 여러분의 노고와 대를 이어 길러온 소나무를 아낌없이 기증해주시고 7억원이 넘는 성금을 모아 보내주신 국민 여러분의 사랑이 깃들어 있다"며 국민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ref name="news.chosun.com"/>
         한겨레 신문 역시 국가관을 이유로 의원직을 박탈해야 한다는 것은 매카시즘 시대에나 나올 법한 마녀사냥식 발언이라 주장하고, 박 의원 발언은 무엇보다 그의 민주주의적 소양을 의심케 한다고 지적했다. 민주주의는 생각이 다르다고 기본권을 제약할 수 없으며, 생각이 무엇인지를 따져서 국회의원 자격이 있네 없네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설은 종북으로 제명을 논하면 마녀사냥이라는 같은 당 하태경의 발언을 인용하고, 박근혜의 민주주의적 소양이 당의 평균적 인식에도 미치지 못한다면 걱정스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다.<ref>[http://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535848.html (사설) 민주주의 소양 의심케하는 박근혜 의원 발언] 한겨레, 2012년 6월 3일</ref>
         한편, 보수언론인 [[조선일보]] 역시 사설을 통해, [[박정희]] 시대에 대해서는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가 엇갈리지만, 2차 인혁당 사건의 경우 어떤 논리로도 합리화될 수 없는 어둠의 역사에 속한다는 것이 일반 국민의 공감대라면서, 반면 박 후보의 유신관은 박정희식 유신관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대통령 후보의 유신에 대한 입장은 아버지와 딸이라는 개인사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비판했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9/13/2012091301135.html <사설> '박근혜 시대' 열려면 '아버지와 딸' 個人史 넘어서야]조선일보, 2012년 9월 14일</ref>
         1990년 잡지 인터뷰에서 박근혜는 5·16과 4·19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 박 전 대통령의 뜻을 계승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역사 의식에 의문이<ref name="chung01"/> 제기되자 2007년 5.16을 구국의 혁명이라고 본다는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2007년 7월의 한나라당 대선후보 검증 청문회에서 그는 '박 전 대통령 유지 계승' 역사의식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그는 "5·16은 구국(救國)의 혁명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때 상황이 너무나 혼란스러웠고 남북대치 상황에서 잘못하면 북한에 흡수될 수도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 혁명 공약에도 기아 선상에 헤매는 국민을 구제한다는 얘기가 나온다.<ref name="chung01"/>"는 것이다. 다만 [[10월 유신]]에 대해서는 판단유보를 내렸다. 5.16 뒤의 유신시대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ref name="chung01"/> 는 질문에 "역사에 판단을 맡겨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다만 유신시대에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헌신하고 고통받은 분들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항상 죄송하게 생각한다.<ref name="chung01"/>"고 답하였다. 이 때문에 야당 인사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 [[2007년]] [[8월]]에는 영화 [[화려한 휴가]]를 관람하고 5.18은 "민주화 운동"이라며 "27년 전 광주시민이 겪은 아픔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며 "그 눈물과 아픔을 제 마음에 깊이 새기겠다. 진정한 민주주의와 선진국을 만들어 광주의 희생에 보답해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하여 이명박 선대위의 [[장광근]] 대변인은 "영화 관람 한 번으로 '호남의 한' '역사 의식 부재'를 한 번에 뛰어넘겠다는 박근혜 후보. 그의 화려한 광주 1박 2일 외출은 80년 광주정신의 모독일 뿐"이라며 비판했다. 또 "왜 광주에서는 지난 번처럼 '5.16은 구국의 혁명'이라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나"라며 "DJ를 들먹이며 지역감정을 부추기려는 그의 다급함이 안타깝기조차 하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진수희]] 선대위 대변인은 "반역사, 반민주적 유신시대의 퍼스트 레이디 5년은 부끄러워할 일이지, 결코 자랑할 일은 아니다"라며 "유신시절 '퍼스트 레이디' 5년을 공으로 돌리고, 국정경험으로 포장하는 박 후보의 역사관과 정치철학은 무엇인가"라고 비난했다. 이에 박근혜 선대위의 [[김재원]] 대변인은 "'박근혜 대통령 정부'에서 이념, 지역, 세대 간의 갈등과 대립은 과거의 역사로 묻힐 것"이라며 "'박근혜 정부'는 고향과 출신을 가리지 않고 천하의 인재를 골고루 쓰는 '대탕평 인사'로 국민적 에너지를 하나로 뭉치는 '희망정부' '드림정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가지 특별히 주목할 점은, 박 후보에 대한 연설회장의 뜨거운 열기와 성원"이라며 "특정 후보가 압도적으로 앞서간다는 말이 얼마나 허풍이었는지 드러났다. 박풍이 호남에서도 일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황석근 선대위 공보특보도 "오직 박근혜만이 동서화합, 정권교체, 호남발전의 희망이라는 것이 만천하에 다시 한번 공포된 날"이라며 "박근혜는 언제나 빛을 몰고 다니는 후보, 어디서나 빛을 발하는 후보, 어둠과 부패를 몰아내는 후보라는 것이 유감없이 드러났다"고 강조했다.<ref>[https://www.google.co.kr/search?hl=ko&newwindow=1&client=firefox-a&hs=At6&rls=org.mozilla%3Ako%3Aofficial&q=%EC%A7%80%EC%97%AD%EA%B0%90%EC%A0%95+%EB%B0%95%EA%B7%BC%ED%98%9C&aq=f&aqi=&aql=&oq=&gs_rfai=]</ref>
         * [[2012년]] [[9월 11일]] "같은 대법원에서 상반된 판결이 나온 것도 있지만, 한편으론 그 조직에 몸담았던 분들이 최근 여러 증언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까지 감안해 역사 판단에 맡겨야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한 것" <small>([[박범진]] 전 한성디지털대 총장이 명지대 국제한국학연구소가 출간한 학술총서 `박정희 시대를 회고한다'에서 "인혁당 사건은 조작이 아니다"라고 증언한 것에 빗대서)</small><ref>[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20911112515903&RIGHT_COMM=R2] 박종화, 김연정 기자, 박근혜 "인혁당 평가, 관련자 증언도 감안해야", 연합뉴스, 2012.9.11.</ref>
  • 위의공 . . . . 9회 일치
         춘추시대 위(衛) 나라의 군주. [[학]](鶴) 애호가로서, 학을 총애하여 학에게 관직을 주는 등 기행을 벌였다. 정치가 혼란된 결과 나라가 쇠퇴하여, 적(狄) 족의 공격을 받고 위나라는 멸망하고 만다. 적족과의 싸움에 나서 전장에서 살해되었으며, 시체가 갈갈히 찢겨 제대로 수습하지도 못하고 '간(肝)'[* 고대의 간은 간장, 심장 등을 가리킨다.]만이 남았다고 한다.
         위의공의 죽음과 위나라의 멸망은 단순히 암군 때문에 소국이 멸망한 것으로 취급될 수 있기도 한데, 위나라의 패망은 춘추시대 초기에는 사람들에게 굉장한 충격을 가져다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위(衛)가 후대에 약소국으로 전락[* 대부분 위의공 탓이긴 한데(…)]한 탓에 가볍게 느껴지는 점도 있다.
         건국부터가 구 상나라+주왕실 유력왕족으로서, 상당히 권위가 있는 나라였던 것이다. 실제로 위는 춘추시대 초기는 주요 유력국가로서 공(公)을 칭할 정도[* 후대에는 아무나 공을 칭하지만, 본래는 공(公)도 매우 권위 있는 칭호였다.]의 강국이었다. 비록 위의공 시대에는 그 위세가 좀 쇠퇴하였으나, 그렇다고 해도 제후국들 가운데서 중상급, 상급 이상의 국력[* 춘추시대 초기에는 100개가 넘는 제후국이 있어 후대에는 이름도 모르고 역사도 불명한 작은 제후국도 많았다. 이 당시는 위나라는 크고 강력한 국가 축에 들었음은 분명하다.]을 가진 유력 제후국이었던 위나라가 '''이민족에게 갈려나가버리고 군주가 시체도 못 챙길 정도'''로 처참하게 패망했다는 것은 당대인들에게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음이 분명하다.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회맹-제후연합군을 구성하여 이민족과 대항하는 집단안보체계는, 과거 [[주나라]]가 주도하였으나 춘추시대가 개막하고 주나라의 권위가 상실하면서 붕괴하였다. 따라서 새로운 권위로 제후국들의 '연합군'을 만들어서 질서를 바로 잡을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국강병 정책을 펼치던 제나라의 [[제환공]]이 주도하여 위나라를 재건해줌으로서, 주 천자의 권위를 대신하여 이러한 집단안보체계를 주도하는 '패자'의 시대가 나타나는 배경이 되었다.--결국 제환공의 패업의 발판일 뿐이라는 뜻인데 장대하게 썼다.--
         이러한 정황을 보면 [[공자]]가 [[관중]]을 높이 평가한 배경도 알 수 있게 된다. 위의공의 처참한 죽음은 다른 나라에도 닥쳐올 수 있는 것이고, 관중이 제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 패자의 시대를 열지 않았다면 중화 문명 자체가 이민족의 공격으로 크게 쇠퇴하였을 수도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분류:춘추시대]]
  • 김희철(1983) . . . . 8회 일치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배우, 예능인. 공식 이름은 희철이 맞지만 보통 그의 본명인 김희철로 잘 알려져있다. '''아이돌계 돌아이의 대표주자'''[* 아이돌계에서 비글미와 사건사고로는 어느 그룹보다 뒤지지 않는, 덜 미친 자는 있어도 안 미친 자는 없다는 [[슈퍼주니어|그 그룹]]에서도 멤버들과 팬들이 공인하는 가장 미친 놈...--[[유리(소녀시대)|이 분]] 왈 : 싹바가지--]이자 '''아이돌계 미모 종결자.''' 뚜렷한 이목구비와 미소년 이미지로 데뷔 초부터 많은 인기를 끌었다. 한 줄로 설명 가능한데, 천하의 '''[[SM엔터테인먼트]]에 얼굴로 입사한 인물'''이다. 친구들과 서울에 처음 왔다가 오디션 시간에 30분 지각했는데 관계자가 얼굴을 보더니 어라? 하고 기회를 줬다고. 연예인이 되겠다고 결심한 건 다른 이유 없이, 2002년 어느 날 횡성 집에서 빈둥빈둥 TV를 보다가 마침 [[싸이]]가 3집 챔피언을 들고 가요 프로그램에서 노래를 부른 걸 보게 되었고, 그걸 보며 '어? 나도 연예인이나 해볼까?' 라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가서 지원했다고 한다. 참고로 노래는 [[애국가]]를 불렀다. 그렇게 3년을 연습하다가 [[반올림]]2 에 출연하며 먼저 배우로 데뷔를 하고 8개월 후 [[슈퍼주니어]]에 합류하며 가요계에 들어오게 되었다.
         [[태연]]과 김기복 남매라고 불릴 정도로 친하며, 그 외 [[소녀시대]] 멤버들과도 친하다. 전 멤버였던 [[제시카(가수)|제시카]]와도 친하게 지냈지만, 현재는 서로 언급이 없다.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4가지쇼]] 김희철 편에서 소녀시대가 출연했을 때는 김희철에 대해 '싹바가지', '미친사람', '정신나감' 등이라고 표현하며 가식없이 대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그밖에도 소속사 후배 그룹인 [[EXO]], [[레드벨벳]], [[NCT]]와 허물 없이 지낼 정도로 잘 챙겨주며[* [[NCT]] 멤버 [[태용]]에게 게임용 컴퓨터를 사줄 정도로 허물없이 잘 챙겨준다], [[카라(아이돌)|카라]]의 [[구하라]]와 [[EXID]]의 [[하니(EXID)|하니]],[* 팬들은 이 두 사람을 희남매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사실 희남매는 시리즈가 있는데, 1기는 김희철과 그의 누나 김희진을 합쳐 희남매, 2기는 데뷔 초 박희본과의 라디오 케미를 합쳐 희남매, 3기가 바로 EXID와 하니와의 케미인 희남매다.] [[윤보라]]와도 친하다. 또한 [[김신영]], [[AOA(아이돌)|AOA]] 멤버인 [[지민(AOA)|지민]] , [[설현]] 셋과 자주 놀러 다닐 정도로 친하다고 한다.[* 일명 '신김치파'. 2018년 6월 2일자 아는 형님 방영분에 따르면 희철이 하도 모임 참여를 안 해서 탈퇴 직전이라고 한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일밤)|은밀하게 위대하게]] 1화 참조.
         앞서 언급된 것처럼 타 연예 기획사 수뇌부들과도 친분이 많은데 주간아이돌 크리스마스 특집 때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게스트로 출연한 [[걸스데이]], [[TWICE]], [[여자친구(아이돌)|여자친구]], [[러블리즈]]의 기획사 임원들과 깊은 친분이 있음을 인증했다. [[울림 엔터테인먼트]] 실장, [[JYP 엔터테인먼트]] 정욱 사장, [[쏘스뮤직]] 소성진 대표와 절친이라고 한다.[* 소성진 대표의 경우는 SM에서 매니저 생활을 했었는데 이때 친해졌을 가능성이 높다.] [[김희철&김정모]]가 출연한 슈키라에서 박진영, [[MBK 엔터테인먼트]] 김광수 대표, 쏘스뮤직 소성진 대표, [[스타쉽엔터테인먼트]] 김시대 대표 등 유력 굴지의 기획사 대표들과 형동생으로 지낸다고 언급했다. 예전에 [[플레디스]] 한성수 대표와도 친하다고 했었다. 그 친분 덕에 [[오렌지캬라멜]]의 샹하이 로맨스 작사를 '''우주대스타'''라는 필명으로 맡기도 했다.
         === [[희철/여성시대 비판 논란|여성시대 비판 논란]] ===
         [[만물여혐설]]의 피해자라 볼 수 있다. [[희철/여성시대 비판 논란]] 문서 참조. 본인의 [[http://bbs.ruliweb.com/sports/board/300446/read/2374417?|댓글]]을 확인해보면 알겠지만, '''상식과 비상식의 문제일 뿐 젠더 이슈에 대한 문제가 전혀 아니다.''' 참고로 이 날은 소속사인 SM이 대대적인 악플러 및 루머 유포자 고소선언을 한 날이기도 한다. 몇몇 여성 누리꾼은 여시와 악플러들을 향한 일침이 왜 여성들 전체를 혐오하는 발언인지 알 수 없다는 댓글을 남기기도 한 바 있다.
          * 소집해제 이후 [[썰전]]의 당시 2부 코너인 '예능심판자'에 10개월간 출연한 바 있다. 다만 라디오 스타 진행 당시와는 달리 알지도 못하면서 말한다고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다. 추석예능을 다루면서 [[아육대]]에 대해서 출연진 측에서 출연을 강요하고 출연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준다고 발언했다. 아육대 측에선 김희철의 발언에 개의치 않는다는 식으로 넘어갔다. 일부에서는 속 시원한 발언이라고 평했지만 한편에서는 김희철 정도면 모를까 신인 아이돌이나 중소 소속사 아이돌의 앞길을 막으려 드느냐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었다. [[송포유]]에 대해서도 평하면서 정규편성을 반대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했으나 "저 피디 누나 착한데..."라는 되도 않는 드립은 좀 까였다. 그리고 자신은 [[SM엔터테인먼트|SM]]이 제작하는 드라마에는 출연하지 않는다며 "[[SM엔터테인먼트|SM]]은 가수든 연기자든 우리 애가 존나 킹왕짱이다란 경향이 심해서 너무 폐쇄적인 거 같다."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The Boys]]>가 [[소녀시대]]니까 성공할 수 있었던 거라고 발언하며 테디 라일리를 까거나, 슈퍼주니어의 곡이 나오자 '우리 이제 어떡하지?'하고 걱정했다고 한다. [[http://cafe.daum.net/dotax/Elgq/627900?q=%B1%E8%C8%F1%C3%B6|게임 중독 법]]을 디스해 게이머들에게 까임방지권을 얻었다.
  • 아이린(레드벨벳) . . . . 8회 일치
         비주얼이 우수하기로 유명한 [[레드벨벳]]에서도 메인 비주얼로 꼽힌다. 단순히 얼굴이 예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http://theqoo.net/square/461793167|옆선]]도 예쁘다. 또한 피부가 굉장히 하얀 편이라 다른 사람들보다 눈에 확 띄며,[* [[레드벨벳]]이 행복으로 활동했을 때에는 머리색뿐만 아니라 피부톤으로 멤버들을 구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웃을 때와 웃지 않을 때의 분위기 차이가 크다. 게다가 얼굴이 '''[[황금비율]]'''.[[https://www.instiz.net/pt/2455125|#]] '[[Mnet]] '[[문희준의 순결한 15+]]' 방송에서 성형외과 전문의들이 뽑은 마스크 비율 깡패로 아이린이 여자 아이돌 2위로 뽑혔다.[* 1위는 소속사 선배 [[윤아(소녀시대)|윤아]]. ~~[[SM엔터테인먼트|SM]]은 꽃밭이었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04&aid=0000080352|기사]]
         과거 연관 검색어나 [[http://me2.do/FzfeHQ6b|인터넷 기사]]도 떴을 정도로 [[소녀시대]] [[태연]]과 닮은꼴이라는 주장이 많았다. 아이린은 인터뷰에서 '[[태연]]은 자기가 존경하는 선배님'이라며 영광이라고 설명했다.
          * 이미지 컬러는 {{{#hotpink 분홍색}}}이며 행복으로 활동했을 때 이미지 애니멀은 [[고양이]]라고 한다. 아이린이 가장 좋아하는 색은 {{{#9F00C5 보라색}}}이라고 한다. 침대 커버, 다이어리 등 보라색 물건은 모두 아이린 거라고...[* 이런 과로 [[소녀시대]]의 [[티파니]]가 있는데 티파니는 모든걸 다 분홍으로 맞춘다.]반대로 [[예리]]는 분홍색을 좋아하지만 이미지 컬러가 보라색이다. --잘못된 만남-- 아이린이 좋아하는 색이 같은 소속사 선배인 [[소녀시대]]의 [[태연]]과 같다. --러시안 룰렛 활동 때에는 좋아하는 보라색으로 염색했다--
          * [[SM엔터테인먼트|같은 소속사]] 선배인 [[소녀시대]]의 [[서현(소녀시대)|서현]]과 성을 제외한 본명도 같고 나이도 같다. 서현이 아이린보다 7년차 선배여서 소녀시대 팔방미인 4화에서 태연의 주도 하에 서로 "야"라고 부르기로 해 서현은 "야"라고 불렀으나, 아이린은 침묵했다. --서현 : 네. 저 나빠요.-- 그래도 "친구야"라고 부르는 건 성공했다. --하지만 다시 어색해졌다.-- [[http://www.vlive.tv/video/1406|#]][* 8분쯤부터 보면 됨] 2015년 [[MBC 가요대제전]]에서 서현과 악수하고 끝나고 나서 함께 가는 모습이 포착되었으며 친해진 것으로 보인다. 같은 소속사의 남자 선배인 [[샤이니]]의 [[민호]], [[Key(샤이니)|Key]]와도 1991년생 동갑이다. 특히 Key와는 [[대구광역시|동향]]이다. Key는 [[수성구]] 출신이고[* 다만, Key는 출신 학교를 보면 알겠지만 [[동구(대구)|동구]]에서 자랐다.(초등학교가 [[APRIL]] [[예나(APRIL)|예나]]와 같은 곳이다)] 아이린은 [[북구(대구)|북구]] 출신이다.[* 그래서인지 [[백종원의 3대 천왕]] '대구 맛골목 5'편(2017년 2월 11일 방송)에 키와 함께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공통점은 둘 다 1학군[* 중구, 북구, 동구, 수성구, 달성군 가창면]이라는 것--
         2000년 이후 실업 등 청년 문제가 심각한 저성장 시대에 자란 청년층은 사회에 많은 불만을 품고 있다. 이러한 불만을 표출했을 때 그 의견이 가장 잘 수용되는 분야가 바로 서브컬처 업계이기 때문에 갑질이 계속된다는 것이 주류 언론들의 일관된 견해이다. 이들은 소비자로서의 권력을 바탕으로 을의 사적 영역인 SNS 등을 사찰하며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찾아내 공격한다. 비록 이러한 사적 영역이 홍보 수단으로 활용되는 세태에도 문제가 있으나 그것이 개인의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를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 울진군 . . . . 8회 일치
         [[신라]] 시대에는 [[명주]], [[고려]] 시대에는 동계, [[조선]]~[[대한민국]] 시대(1962년)까지 1000년이 넘도록 강원도 관할이었고, 현재 [[경상도]](경상북도) 관할로는 2014년 현재 겨우 50여 년이 되었다. 경상도 다른 지역보다 강원도 정서가 좀 더 강한 것은 당연하다. [[애초에]] 도급 행정구역의 경계지역은 완전히 그 도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것도 강원도같이 도내에서도 지역차가 확고한 지역이라면.
         고려시대 이래로 울진현과 평해군으로 나뉘어져 존속해왔으며, 1895년 [[23부제]]의 시행으로 강릉부 울진군과 평해군으로 편제되었다. 1년 뒤 13도제의 도입과 동시에 [[강원도]]로 환원되었다.
          이름의 유래가 된 불영사는 이 계곡 안쪽에 있다. 신라시대부터 있던 역사가 오래된 사찰로, 응진전과 대웅보전, 영산회상도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고, 삼층석탑과 불패 등도 경상북도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등 사찰 자체가 문화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내 풍경도 좋은 편이다. 의상전의 경우는 그 유래가 불확실하다가 2010년 수리할 때 유래를 적은 상량문이 발견되었고, [[인현왕후]]가 환궁하면서 부처의 성은에 보답하기 위해 지은 곳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최근에 개발된 관광지. 조선 시대의 기인인 격암 남사고의 생가를 유적지로 개발한 곳이다. 성류굴에서 왕피천을 따라 약 2 km 상류에 위치해 있다.
          [[신라]]시대의 비석인 [[국보]] [[울진 봉평리 신라비]]를 전시하는 시설. 죽변면 봉평리 소재. 바로 옆에 해수욕장도 있다.
          근남면 산포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 이 곳 역시 관동팔경 중에 하나이다. 참고로 이 곳은 정철의 [[관동별곡]]의 종지부를 찍은 곳이기도 하다.
  • 일곱개의 대죄/220화 . . . . 8회 일치
          * 연회가 계속되던 중 [[엘리자베스 리오네스]]는 [[디안느]]가 성전시대에 "자기와 닮은 엘리자베스"가 있었다는 말을 마음에 걸려한다.
          * 다시 술잔이 한 바퀴 돈다. 디안느는 문득 성전시대에서 풀지 못했던 의문을 고서에게 물었다. 대체 진짜 고서는 어떻게 성전을 종결지었냐는 것. 할리퀸도 자기도 궁금했다고 말을 보탠다. 하지만 고서는 난처한 기색이다. 그리고 성전시대 일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다른 인워들은 어리둥절한 모습이다. 어지간히 지식이 있는 멀린이나 당시 참전했던 멜리오다스 조차 고서가 직접 성전을 끝냈다는 말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이다. 일단 에스카노르가 "여신족이 자신들의 몸을 희생해 마신족을 봉인해서 끝났다"는 전승을 읊는다. 멜리오다스는 "어둠의 관"을 혹시 고서가 만든게 아닌가 추측해 보지만 멀린이 그것만은 아니라고 부정한다. 그건 거인 명공 "다프즈"란 인물이 만든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 아버지가 미소년을 여장시키는 성벽이 있었다, 이 불편한 진실이 공개되자 호크는 우선 엘리자베스가 받을 충격을 걱정한다. 그렇지만 엘리자베스는 다른 생각에 사로잡혀서 아버지의 치부를 들을 겨를이 없었다. 디안느가 성전시대의 이야기를 꺼낸 시점부터 그녀는 한 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했다. 디안느가 지난 번 한 이야기, 성전 시대에 엘리자베스와 꼭 닮은 또다른 엘리자베스가 있었다는 이야기. 그러고보면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다. 케인이 말했었다. 과거 멜리오다스에게 "리즈"라는 애인이 있었고 그녀의 본명 또한 "엘리자베스"였다는 이야기였다.
          리즈의 일은 기막힌 우연이라고 하더라도 성전 시대의 엘리자베스는? 그녀 또한 멜리오다스의 곁에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아득한 시간 동안 반복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는 동안 엘리자베스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 호크가 평소 성격대로 "그래도 대죄가 다 모였고 이 호크님도 있으니 문제는 없다"고 허세를 떠는데 멀린은 위협에 가까울 정도로 무서운 얼굴을 하고 "생각없이 손을 대면 확실히 당한다"고 경고한다. 호크가 기겁할 정도로 멀린의 반응이 날카롭다. 연회의 떠들썩한 분위기가 사라지고 성전 시대에서 젤드리스의 무서움을 경험한 바 있는 디안느도 멀린의 말에 동조한다. 성전 시대에서 만난 젤드리스는 자신을 "마신왕의 마력을 빌려 행사하는 자"라 표현했다. 직함은 "마신왕의 대리". 멀린의 말대로 무서운 상대다. 디안느까지 이렇게 나오자 다른 멤버들도 겁을 먹는다. 언제나 뺀질거리던 반이 "거의 최강의 마신"이라는 소리냐겨 긴장된 모습이다.
  • 주나라 . . . . 8회 일치
         [[중국]] 역사의 통일 왕조. '주왕조'라고 한다. [[상나라]]를 무너뜨리고 중국의 주도권을 잡은 주왕조는 전국시대 말기에 멸망할 때까지 약 800여년 동안 존속한다. [[갑골문]]의 발견으로 상나라의 역사가 해명될 때 까지는 주왕조를 거의 중국의 '역사시대'로 보았다.
         춘추시대에는 제후들은 실질적으로 주나라 이상의 실력이 있었으나, 명분상 주나라의 신하를 자처하였으므로 군주의 지위는 공(公), 후(侯)에 머물렀다. 단지 초(楚), 오(吳), 월(越) 같은 주나라 외부의 국가들만이 왕(王)을 자칭하였다.
         주나라의 권위는 시대가 갈수록 저하하였다. 전국시대에 이르면 각국이 왕(王)을 칭하는 등 주나라의 권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어 일개 약소국으로 전락하게 되었고, 결국 전국시대 말기에 진(秦)나라에게 항복하여 멸망하고 만다.
         전국책(戰國策)에서는 춘추시대의 주요 제후국으로 노(魯), 제(齊), 진(秦), 진(晉), 초(楚), 송(宋), 위(衛), 진(陣), 채(蔡), 조(曹), 정(鄭), 연(燕)을 꼽았다. 이를 춘추십이열국이라 한다.
         이 시대의 통치는 [[도시국가]] 단위인 읍(邑)을 기본으로 하였다. 국가의 수도는 주읍(主邑)으로 불리고, 읍성 주변의 약간의 경작지가 세력 범위였다.
  • 츠츠모타세 . . . . 8회 일치
         [[일본]]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에 나타난 츠츠모타세(筒持たせ)라는 단어에, [[중국]] [[원나라]] 시대에 쓰여진 『무림구사(武林旧事)』에 소개된 「미인국(美人局)」이라는 한자어가 결합되어 「미인국(美人局)」이라고 쓰고 「츠츠모타세」라고 읽는 은어가 만들어졌다. [[에도 시대]] 무렵에는 지금과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무로마치 시대의 츠츠모타세(筒持たせ)에서, 츠츠(筒)는 [[통]]이라는 뜻인데, 남성기나 여성기를 뜻하는 은어라는 설도 있으나, 본래는 도박 용어로서 [[주사위]] 도박에 사용되는 통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츠츠모타세(筒持たせ) 역시 도박 용어로서, "속임수를 숨긴, 세공을 가한 통을 쓴다"는 의미였다고 여겨진다.
         「미인국(美人局)」은 [[중국]] [[원나라]] 시대에 쓰여진 『무림구사(武林旧事)』라는 책에 수록된 나오는 범죄 행위의 일종이다. 무림구사에서는 "[[창녀]]가 남자와 짜고 [[소년]]이나 [[청년]]을 유혹하고, 나중에 남자가 그 창녀를 자신의 [[아내]]나 [[첩]]이라고 속여서 돈을 뜯어낸다."는 의미였다.
         [[에도 시대]](江戸時代)에는 츠츠모타세(美人局)가 현대와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었다. 당시 서민 오락이었던 [[라쿠고]](落語)의 한 대목인 「코마쵸우(駒長, こまちょう)」에서 츠츠모타세를 다루고 있다. 이 단어는 에도 시대에는 농담거리로 많이 쓰였다.
         에도 시대의 라쿠고 코마쵸우의 내용은 이러하다. 가난하고 빚이 많은 쵸하치(長八)라는 남자는 빚쟁이 타케하치(丈八)를 상대로 츠츠모타세를 걸려고 한다. 과거 쵸하치의 아내 오코마(お駒)는 타케하치와 사귀었으나, 쵸하치가 빼앗았던 적이 있기 때문에 쵸하치는 타케하치가 아직 자신의 아내에게 미련이 있다고 비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 페어리 테일/530화 . . . . 8회 일치
          * 안나는 이 시대엔 "시간의 틈새"에서 흘러나온 "무의 마력"이 충만해 있고 여기에 접촉하는 자는 [[아크놀로기아]]라 해도 사라진다.
          >강력한 마력이 넘쳐흐르는 시대의 아이에게.
          이것은 레이라의 할머니, 혹은 그 이전부터 집안에 전해지던 책에 씌여진 구절이다. 안나는 그게 자신이 쓴 책이라고 밝힌다. 토마 왕은 이해가 안 된다며 자세한 설명을 요구한다.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 안나의 시간 대에서 이클립스를 개발했을 때, 해당 시간 대에서 누군가 "출구"를 열어줘야 한다는게 밝혀진다. 안나는 이 문제를 기발한 방식으로 해결했는데, 바로 자신의 자손들에게 비술과 함께 기록을 남겨서 "적당한 시기가 되면 이클립스의 문을 열어라"고 전승시킨 것이다. 비록 그 전승의 의미는 전해지지 않았지만 문을 열어야 한다는 것 만은 제대로 전해져서, 레이라 대에 이르러 마침내 이클립스가 열리고 두 시대가 연결됐다. 토마 왕은 "그렇다면 당신은 400년 전 사람이냐"고 경악한다.
          * 레이라는 안나가 현대로 온 목적이 뭔지 묻는다. 안나는 거기에 대해서는 비밀에 붙이며 때가 오면 알려주겠다고 대답한다. 토마 왕은 방금 들은 설명을 곱씹으며 문이 열렸다는건 그만큼 이 시대의 마력이 강대하다는 의미인지 생각한다. 레이라는 수치가 없는 부분이라 확신은 못하지만 "감"이 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동기는 자신의 딸 루시였다. 레이라는 딸은 사명에서 자유롭게 살기를 바랬고 그래서 자신의 대에서 문을 열기로 했다.
          안나는 그렇다해도 마력이 충분한 시대였기 때문에 문이 열린 거라며 그녀의 판단이 옳았다고 칭찬한다. 그리고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들을 너무 고생시켰다고 위로한다. 안나는 바깥으로 펼쳐진 피오레 왕국을 내려다보며 400년 뒤에도 인류와 문명이 남아있는게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자신의 행동이 무의미해졌는지도 모른다. 이 시대에 오자마자 멸룡마도사들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곧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을 고친 뒤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기로 한다.
          * 여기까지 이야기한 안나는 다소 침울한 기색으로 말을 멈춘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어 그 뒤 얼마 안 돼서 레이라가 죽었다고 밝힌다. 먼 후손의 죽음이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었는지 말을 잇지 못한다. 이야기를 듣던 [[엘자 스칼렛]]과 [[제라르 페르난데스]], [[웬디 마벨]]. 엘자는 이야기를 계속해달라고 청한다. 안나는 곧 감정을 추스리고 이야기를 잇는다. 그 뒤 멸룡마도사들을 발견하고, 그들을 거기에 둔 채로 안나는 새로운 연구에 착수한다. 이클립스를 작동시켰을 때 사고를 일으킨 원인. 그 이변의 원인은 이 시대에 흐르는 "이질적인 마력" 때문이었다. 그건 원소 계통도, 빛도 어둠도 아닌 "무의 마력"이었다. 안나는 이것이 원래는 이 시대에 있어선 안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을 조사하러 간 그녀는 곧 "시간의 틈새"를 발견한다.
  • 김갑수(배우) . . . . 7회 일치
         흥행하지는 않았으나 [[무인시대]]에서는 [[최충헌]]으로 분해 난세의 간웅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 실력을 인정받은 바도 있다. 특히 젊었을 적의 이상을 쫓는 모습과 젊었을 적 처단하고자 했던 난신적자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노년의 모습의 대비가 극명히 드러났던 마지막 화의 장면은 명장면으로 꼽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또한 2004년 SBS 제작판 [[토지]]에서는 악역 조준구로 출연, 비열한 캐릭터 역할도 소화해낸 바 있다. '''즉, 사극에만 나왔다 하면 그 실력과 [[미친 존재감]]으로 주인공들을 잡아먹는 분이시라는 거.'''
         의외로 2004년에 [[영웅시대]]라는 드라마에서 고 정몽헌 회장으로도 분하여 투신자살하기까지의 고뇌와 아버지 [[정주영]] 회장([[최불암]] 분)이 내린 대북방사업을 완수시키기 위해 분투한 모습도 볼 수 있다. 이 직후 정몽헌 회장 1주기 추모식이었는데 현대그룹은 정몽헌 회장을 간지나게 완벽하게 소화한 그에게 감사를 표시하며 참석해줄 것을 청하기도 해서 실제로 추모식에 다녀오기도 했다.
         [[2003년]]에 [[장화, 홍련]]에서 [[염정아]]의 남편이자 [[임수정]], [[문근영]]의 아버지 역을 맡았는데 공교롭게도 7년후 [[신데렐라 언니]]에서도 문근영의 아버지로 출연. 이와 비슷하게 [[2006년]]에 드라마 [[연애시대]]에 [[손예진]]의 아버지로 출연했는데 2012년 제작중인 영화 [[공범(영화)|공범]]에서도 손예진의 아버지로 나온다. 근데 둘 다 사이가 별로. 특히 공범에서는 손예진이 아버지를 납치범이라고 의심하는 설정.
         || KBS2 || [[감격시대: 투신의 탄생]] || [[덴카이]] || 조연 || 사망 ||
         || SBS || [[연애시대]] || 유기영 || 조연 || ||
         || MBC || [[영웅시대]] || 천사국 || 조연 || 사망[* [[애초에]] [[모델]] 자체가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다. '''첫회'''부터 사망. 후반부에 다시 등장 예정이었으나, [[어른의 사정]]으로 인하여 중간에 종영되었기 때문에 출연은 아예 그것으로 끝이 되어 버렸다. [[지못미]].] ||
         || KBS1 || [[무인시대]] || [[최충헌#s-12.1]] || 주연 || 사망 ||
  • 김재규 . . . . 7회 일치
         [[이회창]] 전 총리는 김재규의 저격이 박정희 시대라는 한 시대를 마감하고 다음 시대를 여는 역사의 전환을 가져왔다고 평가하였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81&aid=0002835485|#]]
         정말 더 간단한 예를 들어 반박할 수도 있다. '''그래서 [[북한]]은 주민들이 다 멍청이라 3대 독재가 이루어졌나?''' 박정희는 헌정사상 독재자 중 가장 군을 잘 장악한 인물이었다. 박정희는 공무원, 군인 등을 다룰 때 소위 '금일봉 정치'라는 것을 행하였다. 이는 누군가에게 포상을 줄 때, 훈장이나 공적 상금 등의 공식적 포상을 주지 않고, 지극히 사적인 포상인 '금일봉'을 전달하여 포상을 주는 사람이 바로 '박정희'라는 것을 부각, 충성심을 유도하는 정치행위였다. 이는 조선시대에 국왕이 [[내탕금]]을 가지고 자신이 총애하는 신하에게 포상을 주는 것과 동일한 중세 수준의 정치행위였지만 효과는 매우 굉장했다. 이런 금일봉 정치는 상당한 비자금을 필요로 해서 박정희 휘하 3,4공 실세들은 정치자금 확보에 혈안이 되어 있었고, '''특히 출처나 사용처를 밝히지 않아도 되는 [[중앙정보부]]의 돈이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활용되었고, 관행이 되었다.''' 당장 2010년대에만 해도 대통령이 [[국정원]]의 돈을 개인 쌈짓돈 마냥 써서 '[[국정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사건]]'이라는 희대의 사건이 터졌는데, 이는 박정희 당시, 정보기관이 대통령에게 돈을 갖다 바치던 '관례'가 고스란히 유지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다만 [[노무현]], [[김대중]]의 경우 특수활동비에 대한 사적유용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많다. 그러나 진위여부가 불분명한 두 대통령과 달리 박정희 이후의 '''나머지 대통령은 다 받았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김재규가 살아나는 것은 [[박정희]] 신드롬에 치명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규는 10·26의 주범일 뿐만 아니라, 중앙정보부장 시절 박 전 대통령에게 [[최순실]]의 부친 [[최태민]]의 비위사실을 알린 당사자다. 한 교수를 김재규를 ‘박정희의 충신’이라는 관점에서 재평가해야 한다며 “유신시대의 자료를 꼼꼼히 읽으면서 김재규란 사람이 자기가 잘릴 수도 있는데 박정희의 충신으로서 자기 몸을 던져서 최태민을 막으려 했던 것을 알게 됐다. 그때 최태민을 막았다면 오늘의 불행한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런 내막이 최근 들어 다시 알려지면서 집회에 김재규 얼굴이 들어간 깃발을 들고 나오는 사람들이 생기는 게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박정희의 전화를 받을 때 일어서서 차렷자세로 받았고, 다른 사람한테 박정희를 지칭할 때는 항상 존칭을 썼다고 한다.[* 심지어 [[10.26 사건]] 이후 재판과정에서도 항상 "대통령 각하"라고 존칭을 쓰면서 말한다. 또 궁정동에 대한 이야기는 심지어 재판정에서 박선호의 증언을 제지하면서까지 막았다. 당시 [[박정희]]조차 [[김영삼]]과 [[김대중]]의 사생아 문제가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었음에도 "남자의 허리 아래는 거론하지 말라"[* 이는 [[이토 히로부미]]도 생전에 했던 말이었다. 이토는 생전에 매우 문란한 인물이었다.]고 일축할 정도로 당시 시대에 남자의 성생활 문제를 언급하는게 금기시되었던 이유도 있을 것이다.] 또한 남은 여생을 박정희 무덤에 묘막을 짓고 시묘하며 보내겠다고 말하기도 하였으며,[* 또 다른 증언으론 박정희를 죽이고 자신도 박정희 무덤에 가서 자살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다만 이 말을 했던 시점은 10.26이 벌어지기 전이기에, 최종적으론 시묘살이를 할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최후진술에서 박정희와는 친형제간도 그럴수 없을정도로 가까운 사이라고 말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47&aid=0002115997&viewType=pc|#]] 실제로 김수환 추기경 역시 김재규가 자신의 입으로 친형제보다 더 가까운 사이였다고 몇번이나 되풀이해서 말했다고 회고했다.[[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190618&path=200404|#]] 그러나 김재규는 10.26 이전에 수차례나 박정희의 암살을 시도했다고 법정에서 증언한 바 있고, 김재규의 수사를 총 지휘한 당시 보안사령관 전두환도 회고록에서 김재규의 언동에서 박정희에 대한 존경심이나 충성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으며, 10.26 직후 김재규를 목격한 국무위원들이 김재규가 박정희를 죽이고도 전혀 슬퍼하는 기색이 없는 걸 보고 의아해했다는 증언 등 위의 언급을 반박할 행적들이 많이 존재한다.[[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100&key=20170404.99002001133|#]]
          [[정한용]]이 [[정주영]] 회장이 연상되는 거대 재벌총수로 나오는 [[드라마]].[* 여담이지만 정한용은 [[영웅시대]]에서는 [[정몽구]] 역할을 맡았었는데, 외모가 정몽구와 정말 많이 닮았다.] 여기서는 실명 대신 정보부 부장이라는 호칭 아래 백찬기가 열연했다. 사진상의 김재규와 상당히 비슷했고 원래 정치자금 문제로 [[박정희]]와 같이 회장님에게 충고하는 1회성 출연이었으나 의외로 인기를 끌어 고정 게스트화 되었다. 여기서 박정희로 나온 사람은 연극인 이진수. 박정희와 정보부 부장 2명은 실제 인물과 꽤 비슷했기 때문에 당시에도 인기가 있었다.
  • 울릉군 . . . . 7회 일치
         뭍과 떨어진 지역이지만 의외로 [[청동기]]시대 유적이 확인될 정도로 사람이 산 역사가 깊다. 나리분지의 나리마을에는 청동기시대(BC 1000~300년)와 철기시대 전기(BC 300~1년) 고인돌 형태의 흔적(지석묘, 무문토기,갈돌, 갈판)이 남아있다.
         [[신라]] [[지증왕]] 때인 512년 [[이사부]] 장군이 '''입에서 연기나는 목각 [[사자]]상'''을 섬에 풀어 놓겠다는 [[야바위]]를 시전하여 울릉도에 있는 [[우산국]](于山國)을 정벌했다는 사실은 유명. 이후 신라에게 꾸준히 조공을 바쳤고, [[후삼국시대]]인 930년 완전히 한반도에 귀속되어 이 때부터 공고히 한국령으로 자리잡는다. 이후 1454년 강원도 울진현에 편입되어 1900년 울릉군이 설치되기 전까지 그대로 유지된다.
         [[조선]] 시대 때 [[왜구]]가 많이 습격하자 조정에선 주민을 모두 이주시키고 공도(空島)정책을 쓴다. 이후 [[일본인]]들이 들어와 어업을 하기도 했지만 [[안용복]]의 활약으로 1696년에 [[도쿠가와 막부]]에서 울릉도를 조선의 땅으로 인정하고 막부는 일본인들의 출입을 금했다([[http://anyongbok.kr/ahn/ahn_01.php|안용복 재단]] 참조). 그 후 19세기 고종 시절에 울릉도를 개척하는 정책이 시행되어 전남, 경남 지역 도서민을 이주시켜 다시 유인도가 되었다.
         제주도처럼 육지와 떨어진 섬으로 흔히 제주도처럼 울릉도만의 독자적인 사투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울릉도는 조선시대 공도 정책으로 사람들을 육지로 이주시켜 오랜 세월 무인도에 가까웠고, 오늘날 울릉도 주민들은 대부분 [[고종황제]] 시대 이후 이주민들이라 조상 대대로 울릉도에서 살아온 건 아니라서 울릉도만의 사투리는 없다. 다만 이주민들 대부분이 경북출신 특히 [[경주시]], 영일([[포항시]]) 출신이 많아서 경북 사투리가 많이 남아있다.
  • 윤용현(1969) . . . . 7회 일치
         '''우리의 마음속 영원한 [[신영균(야인시대)|영균이]].'''
         이후 2002년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신영균(야인시대)|신영균]] 역으로 많이 알려졌으며 이후에도 많은 드라마, 영화에 출연했다. 2012년에는 "제1회 K-드라마 스타 어워즈"에서 악역상을 수상하였다.
         주로 파워풀한 배역을 자주 맡는 편이다. 야인시대의 신영균이라든지, 대조영에서 계필사문이라든지, 천추태후에서의 야율적로라든지, 자이언트에서 고재춘이라든지, 제5공화국에서 고문을 잔인하게 하는 준사관이라든지.
          * SBS [[야인시대]](2002) - '''[[신영균(깡패)#s-2|신영균]]'''[* 야인시대 관련 합성물에서 신영균 자체는 출연비중이 많진 않지만, 그가 했던 [[폭☆8|어떤 장면]]은 합성물에서 엄청나게 사용되고 있다(....)]
          * MBC [[영웅시대]](2004) - 세기건설 사원
  • 이기택 . . . . 7회 일치
         === 정계 입문 - [[대한민국 제3공화국|제3공화국]] 시대 ===
         === [[10월 유신|유신]] 시대 ===
         === [[대한민국 제5공화국|제5공화국]] 시대 ===
         === [[제6공화국]] 시대 ===
         === [[문민정부]] 시대 ===
         이미 1970년대부터 태도결정에 너무 신중해 답답하다는 얘기가 돌았다. 만약 1990년 [[3당합당]] 때 차라리 김영삼을 따라갔다면, 김영삼의 후계자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혹은 노무현처럼 야권잔류 결단을 빨리 내리고 김영삼과 맞서는 모습을 보였다면, 최소한 제14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낙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지역감정]]에 맞서서 부산 해운대 지역구에 출마했다면,[* 뒤늦게 제15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지역구로 돌아왔지만 아무 실익이 없는 때늦은 결정이었다.] 노무현이 받았던 스포트라이트가 그에게 돌아올 수도 있었다. 또 1994년 한반도 전쟁위기때 대북문제와 관련하여 보다 빨리 분명한 입장을 취하였다면, 김대중의 컴백을 막고 1997년에 대권을 잡으며 그의 염원대로 3김시대를 종식시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김대중과 결별하면서 이미 그의 정치적 대운은 다한 것이었는데, 정계를 은퇴해야 할 시점에 시대의 흐름을 잘못 읽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1997년 이회창 진영에 합류하여 한나라당을 만든 것은 그가 일생동안 쌓아올린 이미지를 스스로 망친 것으로서 그의 역사적 평가를 완전히 추락시킨 결정.~~아니 왜 지는 쪽만 계속 골라 다니는지~~
  • 고대 그리스 . . . . 6회 일치
         일반적으로 고대 그리스라고 하면, 고전기 그리스에서 폴리스 전성기, 헬레니즘 시대를 뜻한다. 이후 [[로마 제국]]에 정복되어 그리스가 정치적 주체성을 상실할 때까지를 고대 그리스로 묶어서 부르는 경우가 많다.
         == 시대구분 ==
         고대 그리스 시기가 그리스 최초의 문명은 아니지만, 그리스 암흑시대로서 단절기가 있어 이전 시대는 미케네 문명, 미케네 그리스라고 한다.
         [[미케네 문명]]이 대충 멸망하고, [[그리스 암흑시대]]가 끝난 다음, 폴리스(도시국가)들이 나타나는 초창기의 시기를 뜻한다.
         === 헬레니즘 시대 ===
  • 길용우 . . . . 6회 일치
         [[삼국시대]]의 마지막 왕 역을 두 번 연기하였다. 그리하여 [[사극]]에서는 마지막 왕 이미지가 강하다. 1992년 [[KBS 2TV]] [[삼국기]]에서는 [[백제]]의 [[의자왕]]을, 2007년 [[대조영(드라마)|대조영]]에서는 [[고구려]]의 [[보장왕]]을 연기하였다. [[해신(드라마)|해신]]에서도 [[신무왕]]을 맡았던지라 삼국시대의 왕을 전부 연기해본 경력이 있다. --[[우리들 가운데 스파이가 있는 것 같아|(!?)삼국 중에 중 웬 스파이가 존재하는 듯 한 기분탓을 그만 넘겨줄까 했었는데(…)]] 역시 [[통일신라|통신 시절 때의]] [[신무왕|그 어떤 누구를]] 이대로 흐지부지 넘겨가줘선 결코 아니될 듯 싶다; 현재와 미래에 아이들의 역사지식을 위해서라도(…)--
          * [[삼김시대(드라마)|삼김시대]] - 김영삼 역
          * [[영웅시대|영웅시대(드라마)]] - 임대석( 김윤규 전 [[현대그룹|현대아산]] 부회장역 )
  • 김취경전 . . . . 6회 일치
         [[조선시대]]의 군담소설, [[계모]]형 가정소설. 특이한 점은 대부분의 군담소설이 [[중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매우 드물게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고구려와 백제가 등장하고 단군이 나타나는 등 민족문화적 요소가 있다.--그리고 이때부터 고구려는 선역, 백제는 악역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 고구려 평안도 숙천(肅川)에 김형국(金亨國)이라는 선비가 살았다. 김형국은 늦은 나이에 [[단군]](檀君)으로부터 점지를 받아, 아들 취경(就景)과 딸 선애(仙愛)를 얻게 된다. 부인 양씨는 취경, 선애 남매를 낳고 취경이 6살 되던 해 병사하였는데, 김형국은 안씨(安氏)를 후처로 들인다.
         [[분류:조선시대 소설]][[분류:삼국시대 배경 창작물]]
  • 김형준(배우,가수) . . . . 6회 일치
         ||<#00BFFF> '''별명''' ||자라, 거북[* 목이 길어서 붙었다.], 김오피테[*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 성씨를 합친 별명, 데뷔 초 허리를 구부정하게 하고 있는 모습이 많이 보여 붙여졌다.], [br]인형준[* 인형+형준의 합성어. 말 그대로 인형처럼 예뻐서 붙여졌다. 비슷한 별명으로 프랑스 인형이 있다.] ,아카짱[* 아카(애기)+짱(친애를 뜻하는 일본의 경칭) 일본 활동 때 일본 현지 스텝이 붙여준 게 시초로 멤버들과 팬들이 사용하면서 유명해진 별명. 행동이나 얼굴, 성격이 애기같아서 붙였다고 한다.], 김자라[* 성+자라. 목이 길어서 자라 같다고 붙여졌다.], [br]기명준, 막내온바닥[* 막내온탑의 반대말, 동시대 아이돌들이 다 막내온탑, 실세를 맡고 있을 때 --심지어 그룹 내 동갑 멤버는 서열 1위-- 거의 혼자 막내둥이 취급을 받았다. 서열순위 꼴지. 형준에게 하극상은 없다. 그저 막내일 뿐...], 깐준[* 앞머리를 깐 형준], [br]쪼꼬쭌[* 럽라디 때 베이비펌을 하고 나오자 팬들이 본인이 키우는 푸들인 쪼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 쭌디제이[* 쭌+DJ. SBS 라디오 김형준의 뮤직하이에서 디제이를 맡으면서 본인이 직접 붙인 별명], [br]쭌[* 멤버들이 부르는 애칭이다.], 스에꼬[* 일본어로 막내라는 의미. 이름이 비슷한 김현중과 구분하기위해 쓰였다. 반대로 김현중은 리다], --인왕--[* 인자한왕자 줄임말로 본인은 시키면 무조건 다한다고 그래서 인왕]||
          * [[소녀시대]] [[써니(소녀시대)|써니]]의 본명인 순규라고 부른 사이로 친하다.
          * 2월 13일부터 2009년 8월 17일까지 [[소녀시대]] 멤버 [[써니(소녀시대)|써니]]와 함께 MTV THE M 진행을 맡았다.
          * 2011년 3월 16일 [[최백호]]의 낭만시대 출연
  • 마니교 . . . . 6회 일치
         마니는 사푸르 1세로부터 제국 내에서 포교 허가를 얻게 된다. 마니교 문헌에서는 사푸르 1세로부터 3번에 걸친 초빙을 받고, 황제는 마니의 [[후광]]에 압도되어 존경하게 되었다고 하거나, 병든 딸이 있고 마니가 의술로 완쾌시켰다는 이야기도 실려 있다. 다만 시대배경으로 보면 사푸르 1세는 이 무렵 여러 종교가 번창하던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통치하기 위하여 종교 관용 정책을 펼쳤던 것으로 보이며, 니시비스의 유대교 공동체의 지도자 사무엘을 불러들여 알현을 허락했다는 일화도 있는 것으로 보아 마니는 단순히 포교 허가를 얻었을 뿐. 특권적인 지위를 얻은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사푸르 1세는 조로아스터 교에 대한 신심이 깊었던 것으로 보이고.
         오히려 디오클레티아누스 시대에는 마니교가 로마에서 탄압을 받자 "적의 적"이라는 이유로 박해가 줄었지만, 사푸르 2세(309~379) 시대에는 탄압이 재개된다. 이 시기부터는 페르시아에서는 마니교 내부 자료가 사라지게 되고, 마니교의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워진다.
         명나라 시기에 명교는 오히려 박해를 받게 되는데, 이는 왕조의 국명과 같은 명(明)을 사용하는 탓에 불경죄로 여겨진 것이다. 하지만 명나라 시대에는 어느 정도 명교의 가르침은 기록으로 남게 된다. 명 말의 기록에는 마니에 대한 기록이 어느 정도 정확하게 기록되었는데, 하교원(何喬遠)의 기록에 따르면 208년 3월 12일 발제(抜帝, 파티크)의 처 만염(満艶, 마르얌)이 청정한 채로 가슴으로 낳은 것이 마니(摩尼)이며, 마니는 대식(大食,아라비아), 불림(佛林, 로마), 토화라(吐火羅, 이란 동부), 파사(波斯)에서 선교하여, 266년에 파사에서 사망했다. 저서는 7권이며, 가르침은 대모도(大慕闍)에게 맡겨졌다고 기록되었다. 모도란 모자크로 마니교에서 제2의 위계에 해당한다.
         명교는 명나라 시대의 이단 종교 금지령에 언급되는데, 점쟁이나 무녀가 [[강신]]을 받아 [[부적]]을 그리거나 신탁을 내리고, 스스로를 「단공(端公)」「태보(太保)」「사파(師婆)」로 칭하는, 「백련사(白蓮社)」, 「백운종(白雲宗)」,「미륵불(弥勒佛)」등과 같이, 「명존교(明尊敎)」 역시 금지 대상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비밀결사 종교들은 은밀하게 숨어서 그림을 그리고 야간에 예배를 보았다고 묘사되며, 이런 자들에 대해서는 주모자를 교수형에 처하고, 신도들은 곤장을 쳐서 유배를 보낼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율령은 청나라 시대 까지 계속된다.
  • 막부 . . . . 6회 일치
         중국에서 막부라는 단어는 [[전국시대]]부터 나타난다. [[전한]]의 이광, 위청 등도 흉노를 정벌하며 전선에 막부를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다. 막부라는 단어가 관서를 나타나게 된 것은 [[후한]] 시기로서, [[후한 명제]] 시기에 동평왕 유창이 [[표기장군]]이 되어, 자신의 정청을 설치하고 천자를 보좌하였을 때 부터라고 한다. 기록을 보면 막부를 설치할 권한이 있는 것은 사방장군 이상(좌 / 우 / 전 / 후 의 4장군, 4평장군, 4진장군, 4정장군 등)의 장군들이었다.
         일본에서 막부 체계가 나타난 이유는 일단 조정이 군사적으로 무력해졌기 때문이다. 헤이안 시대 초기에 일단 도호쿠 지방까지 정벌이 완료되자, 일본 조정은 막대한 군비가 드는 국군(國軍) 제도를 폐지해버리고, 군사를 수도의 경비대와 [[한반도]]와 가까운 큐슈 다자이후의 경비병 수준으로 축소하였다. [[섬나라]]인 일본은 일단 혼슈 평정이 완료되자 당장 외적의 침공을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게 되었고, 군사력의 필요성이 낮았기 때문에 이 같이 과감한 결단을 내려서 국가의 재정을 아끼게 된 것이다.
         이렇게 치안이 악화되었지만, 조정에서 일반 서민이나 호족들의 민생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고 이러한 사투는 거의 방치되다 시피 했다(…). 하지만 헤이안 시대 말기에 정권을 장악한 귀족 세력이나 지방 세력가인 [[호족]]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막대한 [[장원]]을 보호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각자 개인적으로 호위병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고용되어 고위 귀족을 모시게 된 [[사병]] 격인 '무사'들이 [[사무라이]]의 기원이 되었다.
         이후로 조정은 거의 귀족들이 놀고 먹는 상태가 되었는데, 원래 헤이안 시대부터 일본 조정에는 별다른 실질적인 업무는 없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다. 가마쿠라 막부에 귀찮은 실무를 맡기면서 조정은 거의 완전히 실무능력을 상실하며, 이후 조정이 실권을 되찾는 [[겐무 신정]] 시기가 되었을 때 무능함을 드러내며 정권을 도로 무로마치 막부에 빼앗기는 중대한 원인이 되었다.[* 기본적으로 이 당시의 일본 귀족이란 태어날 때부터의 혈통으로만 앞으로의 출세가 모두 결정되며, 귀족 이하는 인간으로 보지도 않는 폐기물 급 인성(^^)에다가, 실무는 천하게 보고 시나 서예 같은 예술 활동만을 고상하게 보는 좋게 말해서 문화적, 나쁘게 말해서 놀자판인 놈들이었으므로 이런 놈들에게 실권을 맡겨서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결국 [[오닌의 난]]과 [[일본 전국시대|전국시대]] 개막 후에는 권위가 실추되어 다른 실력자들의 꼭두각시로 전락했다가 결국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 폐쇄된다. 노부나가는 이후 일본 전역의 실권을 잡아가다가 [[혼노지의 변]]으로 변사하여 어떤 형태의 정권을 만들려고 했는지 제설만 분분하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게 되어버렸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전역을 지배하게 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노부나가 사후에 일본 전역을 제압하여 천하통일을 이뤘으나, 본래 미천한 신분이었기에 막부를 열 수는 없었고, 이 때문에 그 대신 '후지와라' 등 귀족 성을 받아 귀족이 되는 방법으로 최종적으로 '도요토미' 씨를 창씨하며, 조정의 최고 관위인 '[[관백]]'과 '태정대신'을 수여받는 등 조정의 권위를 빌리는 방식을 택하였다.
  • 산킨고타이 . . . . 6회 일치
         [[에도 시대]]에 시행된 제도. 다이묘들이 에도에 처자를 두고 본래 부임 영지와 에도를 왕복하도록 한 제도이다. 지방의 다이묘들로 하여금 가족들은 에도에 머물게 하는 한편 다이묘 본인도 1년은 에도에, 1년은 본래 번에 있도록 정하고, 반복해서 오가도록 한 제도이다. 각 다이묘들은 에도에 출장소를 만들게 된다.
         이전부터 사무라이들은 일종의 군역으로서, 중앙에 상경하여 귀인을 호위하는 관습을 가지고 있었다. 헤이안 시대에는 교토대번역(京都大番役)이라고 하여 지방무사들이 교토에 상경하여 호위를 맡는 관습이 있었다. 가마쿠라 시대에는 가마쿠라 대번역(鎌倉大番役)이라고 하여 가마쿠라에도 상경하도록 어성패식목(御成敗式目,가마쿠라 시대의 무가법률)에 지정되어 있었으며, 교토에 상경하여 호위하는 임무도 무사들마다 균등하게 분배하였다. 이러한 관행은 일본에서 어느 정도 통일 세력이 나타날 때마다 반복되었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에서도 오사카에 각 영주들을 상경하여 주둔하고 가족을 인질로 두게 만들었다.
         이러한 관습에 따라서 도쿠가와 막부가 열리고 에도 시대가 시작되자, 다이묘들은 에도에 처자를 두고 영지와 에도를 오가면서 생활하는 관행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관행이 무질서하게 시행되었기 때문에 폐해가 많아, [[도쿠가와 이에미츠]]가 반포한 간에이령(寛永令) 무가제법도(武家諸法度)의 제2조에 지정되어 공식적인 제도가 되었다. 법령으로 정해진 까닭은 이전까지는 참근하는 관행이 있었으나, 그 시기가 정확하지 않아 오히려 다이묘들이 불편[* 일일이 참근할 것인지, 영지에 돌아갈 것인지를 막부에 물어보지 않으면 안된다.]하였기 때문에 1년 간격으로 하도록 명확하게 정해진 것으로 보인다. 이 법령이 정해짐으로서 다이묘들이 막부에 '인사'를 오는 것이 명확하게 결정되어, 막부와 다이묘의 상하관계가 완성되었다.
         일본 시대극에서도 '다이묘 행렬'은 단편적으로만 묘사되지만, 일본 만화 '[[츠라츠라 와라지]]' 등의 일부 작품에선 제법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 서영춘(코미디언) . . . . 6회 일치
         [[한국]]의 [[코미디언]]. 1세대 코미디 트로이카([[서영춘]], [[구봉서]], [[배삼룡]])중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린 전설적인 코미디언이다. 다만, 이들 중에서 가장 늦게 데뷔하고 가장 먼저 단명했다. [[이주일]]을 시작으로 전성시대를 맞이한 1980년대 코미디계에서 다른 2명과 다르게 원로 코미디언으로 활약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쉬운 부분이다.
         사실상 말이 트로이카지 사실상 구봉서, 배삼룡의 인기가 조금 식어갈 시기에 서영춘이 원톱급으로 발돋움한 시기가 맞물렸으며 사실상 당시를 보면 완전한 트로이카 체제보다는 구봉서, 배삼룡 - 서영춘으로 이어진 세대교체로 봐도 좋을 정도였다.[* 정확히는 악극단 시절부터 70년대 초까진 구봉서, 배삼룡이 우위였고 70년대 중후반 경부터 서영춘의 우위라고 보는 것이 맞다. 다만 서영춘 역시 악극단 시절부터 최고의 톱스타였으며 구봉서, 배삼룡 역시 70년대 중후반에도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렇듯 전성기 시절 3명이 팽팽하게 인기를 가져갔으며 트로이카라는 말이 괜히 나온것이 아니다.] 즉, 시대적으로 약간의 개인차가 있었을 뿐 누구 한 명이 어느 특정 시대에 완전히 압도했던 상황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그리고 이들이 엎치락 뒤치락 하던 시기가 한동안 지속되던 때에 [[이주일|다들 알다시피 어느 얼굴천재가 홀연히 나타나 모든것을 뒤바꿔 버렸으니....]]
         서영춘은 특히 무대 위 애드립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희극인이었다. 변화무쌍한 얼굴 표정과 판타스틱한 특유의 슬랩스틱 코미디로 누구도 흉내내기 힘든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였다. TV가 대중화되면서 실질적으로 1세대가 된 당시 악극단 출신 코미디언들 대부분이 그랬듯, 연기 패턴은 왜정 시대부터 내려온 악극, [[만담]]에서 출발한 것이 많고 내용도 일본 것을 그대로 번안한 것이 꽤 있었다. 예를 들어, 서영춘이 공중파에서 선보였던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 워리워리 세브리깡 무두셀라 구름이 허리케인에 담벼락 담벼락에 서생원 서생원에 고양이 고양이엔 바둑이 바둑이는 돌돌이]]" 어쩌고 하는 긴 이름 가진 아이 이야기도 일본 설화에 바탕을 둔 것이다.
         사실 70년대까지는 우리 나라 문화 예술에서 6.25 동란 이후 일찌기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일본의 그림자가 짙던 시절이라, [[웃으면 복이와요]]나 [[고전 유모어극장]] 같은 공중파 프로그램까지 일본 방송의 내용을 대놓고 똑같이 베껴 쓰던 때였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이 세운 극장에서 공연을 하던 배우들이 TV시대가 되면서 TV에 등장한 것도 중요한 이유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서영춘을 비롯한 당시 코미디언들이 독창성 면에서 부족한 개그를 하였더라도 폄하할 수만은 없다. 일단 악극도 연주와 노래 개그가 들어가는 뮤지컬 비슷한 형식이지만 분명히 순발력과 암기력이 필요한 연극이었기 때문에 연기력은 필수였고, 노래와 춤도 대충 해서는 안 되었던 분야였다.
         코미디언으로 활동하던 시절 크고 작은 스캔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는 행사에 지각했다고 지명수배(...)가 내려진 일도 있었다. 이 행사가 다른 행사도 아니고, 경찰의 날(1965년 10월) 행사의 사회자로 참석해야 했는데 그걸 지각한 것. 21세기 현대에도 이런 대형 행사에서 지각하면 방송인으로서 보통 문제가 아닌데 하물며 살벌한 독재 정권 시대에 이랬으니...... 겨우 서영춘이 행사장에 도착하자 당시 참석했던 [[종로경찰서]] 서장이 너무 열받은 나머지 행사가 끝난 직후 서영춘을 직접 불구속 입건 조치해버렸다. 죄목(?)은 사기 혐의.
  • 이순재(1935년 10월) . . . . 6회 일치
         현재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전국 노래자랑]]의 [[송해]](1927년 생) 다음으로 가장 나이가 많은 현역 연예인'''이자[*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을 때 자신이 유일하게 형님으로 부른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나이 많은 현역 원로 배우. 오랫동안 연기 생활을 했으며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 [[허준]], [[상도(드라마)|상도]], [[야인시대]], [[거침없이 하이킥]], [[이산(드라마)|이산]], [[베토벤 바이러스(드라마)|베토벤 바이러스]] 이외에도 수많은 히트작에 출연했다. 빈틈없는 자기관리와 신념, 그리고 대체로 선역을 맡아서 이미지가 좋다. 연극부 출신이면서, 집음 장비가 나빴던 옛날 연극무대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래서 고령인데도 발성과 발음이 아직까지도 뛰어나다. 복합모음인 ㅙ와 단모음인 ㅚ 발음을 구분할 만큼.[* 보통 아무나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시켜봐도 10에 9는 제대로 발음 못한다. 아나운서들을 제외한 일반인들은 ㅙ, ㅚ 는 커녕 장모음 단모음도 제대로 구분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이순재는 타고난 천재 배우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말 그대로 올라운드 그 자체'''다. '풍운'에서의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가, '사랑이 뭐길래'에서의 완고하고 가부장적인 가장, '거침없이 하이킥'에서의 나이값 못하는 돌팔이 의사, '야인시대'에서는 자상한 할아버지 등 어떤 캐릭터를 맡겨도 100% 소화해내는 모습은 시청자가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방송국 원로대접 받는 지금은 상상이 되지 않지만 악역도 많이 했다.[* 수미옥 13화에 게스트로 출연했을때 술회한 바에 의하면 TBC 범죄수사극 검은수첩에 범인 역으로 고정 출연해 미성년자 강간치사범이라는 지금 이미지로는 상상도 안되는 역을 했었다고 한다. 강간치사범 포함해서 33번이나 범인으로 출연해서 이미지 회복하는데 시간이 상당히 오래걸렸다고 한다.]
         자신의 긴 연기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배역으로 [[1982년]] KBS[[사극]] <풍운>에서 맡았던 [[흥선 대원군]]역을 꼽았다. 또한 다시 한번 더 연기하고 싶은 배역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현대사를 다룬 드라마에서는 [[윤보선]] 대통령 역을 자주 맡았다. [[제2공화국(드라마)|제2공화국]], [[제3공화국(드라마)|제3공화국]], [[코리아게이트]], [[삼김시대]]에서 4번.
         최근에는 [[미투 운동]]과 관련해서 성폭력 가해자들에게 [[http://mnews.joins.com/article/22423348#home|일침]]을 날렸다. 한 방송에서 '미투운동을 접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면서 제자나 부하를 내 마음대로 하는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 보고 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분들 다 아는 분들이라 깜짝깜짝 놀란다. 설마설마했는데 사실화됐다"며 "관객들이나 국민들한테 죄송하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성폭력 피해를 입고 꿈을 접은 후배들을 향해서는 "자기 탓이 아니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시 (연기) 할 수 있게 돼야 한다"고 연기 재개를 권유했다. 반면 가해자들을 향해서는 "이 분야를 다 떠나야 한다. 다 끝을 내야 하지 않겠나"라며 "다들 깊이 반성하고 평생을 그렇게 살겠다고 약속했으니 지금 한 약속을 잘 지키고 '나 죽었소'하고 평생 엎드려 있으라"고 충고했다.[* 그래도 본인 역시 구시대를 살아와서 나이가 있다보니 걱정되었는지 한 방송에서 하이킥에 같이 출연한 후배 배우 [[박해미]]와 같이 식사하면서 하이킥 찍을 때 자신도 그런 적 있냐고 물어보기도 했다.(참고로 박해미는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밝인 적이 있다.) 근데 오히려 박해미는 "당시 별명이 '''야동 순재'''였음에도 전혀 없었다"고 말한다.]
          * [[삼김시대]](1998, SBS)/윤보선
          * [[야인시대]](2002, SBS)/원 노인, 도야마 미츠루[* 직접 출연은 하지 않았고 하야시 집에 초상화로만 등장]
  • 자시키로우 . . . . 6회 일치
         에도 시대부터 일본의 주택에 한시적으로 설치된 시설로서, 대상을 사적으로 연금, 감금하기 위한 일종의 감옥이다.
         === [[에도 시대]] ===
         [[에도 시대]]에 다이묘(大名)와 하타모토(旗本)에 상응하는 직책에 있는 영주들은 엄격한 무가제법도에 따라서 행동에 제약을 받았다. 이러한 자들 가운데 미치광이 같은 난폭한 행동을 하거나, 문란하고 분방한 행동을 하는 자가 나타나면 그 부하인 가신(家臣)들은 지극히 곤란해졌다. 왜냐하면, 이러한 법도를 어긴 영주는 막부로부터 영지를 빼앗기는 등의 개역 처분을 당할 수 있었는데 영주가 쫓겨난 다음에는 가신들 역시 벼슬자리를 잃고 낭인 무사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 [[메이지 시대]] ===
         [[메이지 시대]] 부터는 화족(華族, 귀족)이나 대상인 등 자산을 가진 집안에서, 가족 내에 소행이 불량한 자, 정신 상태에 이상이 있는 자를 감금하기 위하여 이러한 시설을 만들었다.
         미디어에서는 무작정 감금하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당시에 일단 어느 정도 제한 절차는 있어서, 가구의 호주, 오인조(다섯 가구를 한데 묶어서 관리하는 조선시대의 오가작통 같은 제도), 그리고 의사의 확인서 등이 필요했으며, 도면 등을 경찰에 제출해야 하고 경찰에서 이를 관리하였다.
  • 최남선 . . . . 6회 일치
         1922년 [[동명사]](東明社)를 설립, 주간잡지 《동명(東明)》을 발행하였고 1924년 《[[시대일보]] (時代日報)》를 창간, 사장에 취임했으나 자금과 총독부의 압력 등으로 폐간, 1925년 [[동아일보]]의 객원과 [[조선일보]] 객원 논설위원을 지냈다. 1927년 총독부의 연구비와 생계 지원 유혹으로 [[조선사편수위원회]]에 참여하면서 친일 성향으로 전향하여 논란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친일 행적은 적극적인 친일이 아니라는 반론이 1950년대에 [[장준하]] 등에 의해 제기된 바 있다.<ref name="changs">[[장준하]], 「육당 최남선 선생을 애도함」, 『[[사상계]]』 53호, [[사상계사]], 1957.12.</ref>
         [[1957년]] [[10월 10일]] [[뇌일혈]]로 별세한 그는 일제 강점기 시대 동안에 [[이광수]], [[홍명희]]와 더불어 '''조선의 3대 천재'''로 대표되었던 인물이다.
         1907년 5월, 귀국한 뒤 한민족의 시대적 각성을 위한 신문화 운동을 일으키기 위해 인쇄 시설을 구입하여 1907년 11월 [[이광수]] 등과 함께 잡지 [[소년]]지를 창간한다. 소년지에서 그는 논설문과 새로운 형식의 자유시 〈해(海)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였고, 이광수는 계몽적인 소설을 실어 대중의 인기를 모았다. 최남선과 이광수가 발행한 잡지 《소년》지는 근대적 종합잡지의 대표적인 잡지이며 어린이, 소년을 대상으로 한 잡지 중 초기작의 하나이기도 하다. 후일 그가 소년 잡지를 창간한 11월 1일이 잡지의 날로 정해지기도 했다.
         최남선은 인쇄시설을 추가로 구비하여 1908년 [[신문관]](新文館)을 창설하였다. 처음 건물과 비용이 넉넉하지 않아 자택에 [[신문관]]을 설립하고 인쇄와 출판을 겸하였으며 후일 사세를 확장하여 [[경성]]시내로 사무실을 옮겼다. 여기서 그는 《대한역사》, 《대한지지》 《외국지지》 등 중요한 책을 출판하였으며, 새 시대의 주인공을 위하여 1908년 최초의 종합 잡지인 《[[소년 (잡지)|소년]]》을 발행하였다. 그는 이 잡지에 〈해에게서 소년에게〉라는 최초의 신체시를 발표하였으며, 1909년에는 [[안창호]](安昌浩)와 함께 '청년 학우회'를 결성하였다. 1910년 3월에는 도산 [[안창호]]와 함께 청년학우회 평사원 겸 변론과장을 지내면서 청년학우회의 노래를 짓는 등 청소년 지도 운동에 앞장섰다.
         1922년 [[동명사]](東明社)를 설립, 주간잡지 《동명(東明)》을 발행하였고, 국사 연구에 전념하여 《조선역사통속강화》를 연재했다. 1924 《[[시대일보]] (時代日報)》를 창간, 사장에 취임했으나 자금도 부족하였고, 신문의 반일적인 논조로 [[조선총독부]]의 압력을 받아 경영난에 처하자 곧 사임하였다. 1925년 [[동아일보]]의 객원과 [[조선일보]] 객원 논설위원이 되어 사설과 칼럼을 발표하였다.
         * [[박태호]] - 《[[야인시대]]》(2003년), [[SBS]] 드라마
  • 츠라츠라 와라지 . . . . 6회 일치
         에도 시대의 제도인 '[[산킨고타이]]'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당시 일반적인 '다이묘 행렬'의 상세한 전모를 들여다볼 수 있다. '츠라츠라 와라지'란 말은 다이묘 행렬 수행원들이 짚신 신고 걷는 모습을 '짚신(와라지) 행렬(츠라리츠라리)'이라고 묘사한 것.
          * 비젠(備前) 쿠마다 가(家) : 오카야마(岡山) 지역을 근거지로 한 다이묘 가문으로 원래는 히메지(姫路) 지역에 근거하고 있었다. 가문의 문양은 벌 모양인데, 이는 전국시대 당시에 전투 중 말벌이 적군을 습격해 승리를 거둔 것을 기념한 것이다.
          * 쿠마다 하루타카 : 오카야마 번 5대 번주. 대대로 검약을 기풍으로 삼던 쿠마다 가에서 유독 풍류와 호사를 즐기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정작 도를 넘는 사치는 하지 않는다. 막부의 검약정책을 지나치다고 여겨 우회적으로 비꼬곤 했기 때문에[* 사치를 막기 위해 은 제품을 금지하는 명령이 내려오자 일부러 금으로 된 곰방대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도 있다. (그 직후 금 제품 또한 금지령이 내려졌으나, 그 이후로도 금으로 된 곰방대를 사용하였다.)] 막부의 실력자인 마츠다이라 사다노부와 사이가 나쁘다. 여러가지 일화가 따라다니는 인물로 기행을 일삼는 것처럼 보이지만 매우 속이 깊고 대범해서, 이 때문에 행렬 중간중간마다 과거에 은혜를 입었던 사람들이 선물을 바치려고 줄을 잇곤 한다. ~~전국시대 시절이었다면 천하통일은 무리라도 관서 제패는 해냈을 것 같은 포스다~~
          * 마츠다이라 사다노부 : 막부의 수석 로쥬로 실권을 장악하고 있다. 보통 관직명인 '엣츄노카미'로 불린다. 실제 역사에서 전 시대인 '타누마 시대'의 중상주의 정책을 백지화하고 검약을 강요하던 '칸세이 개혁'을 주도한 인물로, 굽힘없는 완고한 성격 때문에 수많은 정적을 만들어냈으며 급기야는 쇼군에게도 노여움을 샀다. 자신의 정책에 우회적으로 비판을 던져오는 하루타카를 불편하게 여기지만 그 능력은 인정하고 있다.
          * 협본진 찬모 : 고오리야마 본진(本陳. 에도 시대의 숙박 시설 중 다이묘와 그 수행원들이 이용하던 숙사의 통칭)의 찬모(반찬을 비롯한 음식을 만드는 여자). 누명을 쓰고 탈번(脫藩. 번을 이탈하여 낭인이 되는 것. 당시 무단으로 탈번하는 것은 중죄였다)한 관리와 정을 통한 사이로, 임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관리가 숙사를 수배하러 온 선발대에게 들켜 처형당하자 쿠마다 가에 원망을 품었다. 그녀의 사정을 알게 된 하루타카가 그녀 뱃속의 자식을 자신의 사생아인 것으로 꾸미고 이를 인정하는 듯한 연기를 하여 협본진에서 계속 일하며 아이를 키울 수 있게 되었고, 원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하루타카의 배려에는 감사하게 된다.
  • 현진건 . . . . 6회 일치
         [[1923년]] 2월부터 10월까지 현진건은 『개벽』에 중편 「지새는 안개」를 발표하고, 9월에는 그의 동인지 『백조』에 단편 「할머니의 죽음」을 발표하였다. 「지새는 안개」는 당시의 문인 [[염상섭]](廉想攝)이 "살아있는 춘화도"라 평하고 있을 정도로 정밀하고 세련된 묘사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또한 최남선이 주재한 동인지 『동명(東明)』의 편집동인으로 참여하여, 번안소설 「나들이」를 기고하는 한편으로 1924년 3월 31일에 창간된 「시대일보」(동명사의 후신)에 입사하였다(이때 그의 부인은 병치레로 대구의 친정으로 가 있었고 현진건만 홀로 서울에 남아 있었다<ref>「文壇風聞」 1923년 1월 1일자 『개벽』 제31호.</ref>). [[1924년]] 1월에는 단편 「까막잡기」를 『개벽』 , 2월에 「그립은 흘긴 눈」을 잡지 『폐허이후』에서 발표하고, 이어 다시 6월에 단편 「[[운수 좋은 날]]」을 『개벽』에 발표한다. 또한 4월 2일부터 5일까지 「시대일보」 지면에 소설 「발(簾)」을 연재했다.
         [[1925년]] 1월, 현진건은 『개벽』에 단편 「불」을 발표하였다. 이때 그는 「시대일보」의 사회부장이 되었으나 「시대일보」가 폐간되면서 동아일보사로 전직하여야 했다. 3월 1일자 『개벽』 제57호에는 이때의 현진건의 근황에 대해 "근래에 빙허(憑虛) 군은 신문사 일도 뜻대로 되지 않으므로 더 많은 독서와 연구에 노력하겠다 한다. 늘 군은 조선의 평론계가 아무 보잘 것 없는 것을 매우 분개해서 앞으로는 논문도 쓰실 작정이라고. 고마운 일이며 즐거운 일이며 마음히 든든해지는 일이다."라고 짤막하게 소개하고 있다.<ref>「文壇雜談」 1925년 3월 1일자 『개벽』제57호.</ref> 그리고 박문서관에서 그의 중편 「지새는 안개」가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 또한 2월에 단편 「[[B사감과 러브레터]]」를 『조선문단』에 발표하고<ref>현진건이 『조선문단』에 작품을 싣기 시작한 것은 『개벽』이 점점 '계급주의 문학'을 외치는 [[카프]]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부터였다는 지적이 있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91.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총서24.</ref>, 4월과 5월에는 수필 「목도리의 복면」과 「설 때의 유쾌와 낳을 때의 고통」을 각각 기고하였다. 7월에는 「조선문단과 나」라는 기고에서 작가는 삼삼오오 짝을 짓고 당을 나누어 서로 갈라서서 싸우는 존재가 아니라 작가 하나하나가 독립적인 개체라는 "일인일당(一人一黨)주의'라는 용어를 써가며, 계급주의 문학을 옹호하는 카프의 주장에 맞서 내용적 가치와 계급적 가치란 별개임을 주장하였다. 또한 『조선문단』에서 만든 조선문단합평회의 정기회원으로서, 10월에는 『조선문단』 신추문예(新秋文藝)에 응모한 작품들의 심사를 맡아 처음으로 평론을 싣기도 했다.
         [[1926년]] 1월에 현진건은 『개벽』에 평론 「조선혼(朝鮮魂)과 현대정신의 파악」을 기고하였다. 이 평론은 오늘날 현진건이 가진 '민족주의' 성향을 강하게 드러낸 것으로 평가받는다.<ref>현진건이 「조선혼과 현대정신의 파악」을 실을 무렵에 기자로서 재직하고 있던 「동아일보」에 현진건이 「시대일보」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최남선이 「동아일보」 객원논설위원으로 있었던 점을 지적하고, 최남선이 당시 주창한 '조선주의'가 현진건의 '조선혼' 주창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을 거라고 보기도 한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91.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총서24.</ref> 2월에는 『조선문단』에 수필 「무명 영웅」을 기고하고, 11월에는 『개벽』에 단편 「사립정신병원장」을 기고하였다. 또한 이 해 3월에 단편집 『조선의 얼골』이 출판사 글벗집에서 간행되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일본 대표로 출전해 1등을 차지한 조선인 선수 [[손기정]](孫基禎)의 유니폼에 그려진 [[일장기]]를 지워버린 채 신문에 실은 사건으로([[일장기 말소 사건]]) 현진건은 기소되어 1년간 복역해야 했으며, 이듬해 출옥하면서 동아일보사를 사직하고 관훈동에서 서대문구 부암동 325-5번지로 이사하여<ref>당시 부암동은 서울에서도 사람들의 발길이 별로 닿지 않는 곳이었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156.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24.</ref> 그곳에서 땅을 빌려 양계 사업을 시작한 한편, [[1938년]] 7월 20일부터 다시 「동아일보」지면에 장편역사소설 「무영탑(無影塔)」을 연재한다.(~ 1939년 2월 7일) [[1939년]] [[7월]]에 「동아일보」 학예부장으로 복직되었으며, 같은 해 10월 25일부터 「동아일보」에 역사소설 「흑치상지(黑齒常之)」 연재를 시작하는데, 이 와중에 문예지 「문장」과 가진 인터뷰에서<ref>「침묵의 거장 현진건 씨의 문학종횡담」, 『문장』 1939년 11월. p.116~120.</ref> 현진건은 당시의 소설들에 대해서 "(자신이 처음 글을 쓰던 때에 비해) 문장이라든가 소설 만드는 기술은 가히 괄목할 만큼 진보.... 그러나 구상의 도약이 드뭅니다"라며 "동경(東京) 문단의 말기적인 신변잡기 같은 것에 안주하려는 경향"에 대해 경계하고, 또한 현재가 여러 면에서 세계적인 문학의 빈곤시대가 아닌가 싶다며 "문은 실상 기(氣)이며 기가 없으면 아무리 진주같다 해도 곧 사회"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리고 12월에는 같은 잡지에 또 한 번 「역사소설의 제(諸)문제」라는 글을 기고하여 역사소설이라는 것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였다.
  •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 . . . 5회 일치
         그 존재가 최초로 확인된 경우는 중국 케이케시에서 태어난 빛이 나는 아기인 모양이며 뉴스로도 보도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 각지에서 개성이 확인되었다고 하는데 이때를 초상여명기라 부른다. 이 시대에는 초능력을 각성한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의 대립이 일어나는 등 혼란이 극심해서 문명까지 정지해버렸으나 미도리야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히어로는 개성이 없으면 안된다고 못이 박힌 듯한 인상마저 있을 정도로 현 인류 사회에서 존재감이 크다. 다만 극중에서 개성이 어째서, 어떻게 나타났는지는 현재로선 묘사가 없다.
         개성과 관련된 법률도 당연히 이미 제정되어 있는 상태인데 상세한 면은 나오지 않았으나 일단 자격이 없는 상태에서는 공공장소에서 한도 이상 사용할 수 없는 모양.[* 극중에서 뭐가 됐건 억눌린 시대라는 말이 이것과 관련이 잇을 듯하다.]
         개성 발현 2~3세대에서 사회적 문제가 된 구시대의 악습. 강한 개성의 소유자들끼리 결혼시켜 더 강한 개성을 가진 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결혼이다. 사실상 인간 품종 개량이라 봐도 무방한 것. 개성 사회의 씁쓸한 부분이며 현 시대에서는 상술한 대로 구시대의 악습이라 인식되는 듯 하다. 그런데 극중에서 한 히어로가 이를 현대사회에서 실행했다.
  • 고현정(미스코리아) . . . . 5회 일치
         은퇴한 지 딱 10년 후, 일드 '별의 금화'를 리메이크한 [[SBS]] 드라마 "봄날"을 통해 실어증에 걸린 인물의 역할을 소화해내며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 드라마로 [[조인성]]과 호연하여, 원래 [[지진희]]와 이어져야 했는데 시청자 반응으로 [[NTR]] 발생. 공교롭게도 모래시계를 찍고 떠난 [[SBS]] 드라마를 통해 복귀하였다.] 2006년에는 충격의 후속작 "여우야 뭐하니"[* [[내 이름은 김삼순]]을 쓴 김도우 작가의 후속작으로, 여주인공 고병희는 3류 에로잡지 기자 겸 편집부 겸 영업부 겸... 이 드라마에서 고현정의 동생으로 출연한 김은주는 드라마가 끝난 후 자신이 맡았던 배역의 이름을 본뜬 [[고준희]]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게 된다. 현재도 둘은 친하다고.~~립서비스 같지만 넘어가자~~], [[홍상수]] 감독 최초의 15금 영화(...나머지는 물론 19금) "해변의 여인", [[김영현]] [[박상연(각본가)|박상연]] 콤비의 [[히트(2007)|히트]]를 찍으면서 두 작가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봄날" 빼고는 다 이름값에 걸맞지 않은 성과를 거두어, 고현정의 시대는 갔다는 평을 듣기도 했는데, [* 단 "해변의 여인"은 고현정을 캐스팅한 것이 예산의 대부분일 정도로 저예산일뿐 아니라 원래 대충 찍어도 졸라 좋은데 대중성은 엿바꿔 먹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임을 감안하면 제외해도 좋다.] 히트로 인연을 맺었던 [[김영현]], [[박상연(각본가)|박상연]]의 드라마 [[선덕여왕(드라마)|선덕여왕]]에서 미실 역을 맡아 카리스마로 신드롬을 터뜨리며 [* 삼성경제연구소 올해의 10대 히트상품에 [[소녀시대]]와 같이 실려버림.~~본진을 털었다!~~] "역시 고현정이다" 라는 평가를 받았다.
         영화 필모그래피가 약해 영화에서의 연기에 대한 평가는 많이 찾기 힘들다. 그러나 두 편의 홍상수 영화 해변의 여인,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 출연한 고현정이 감독의 영화세계 뿐 아니라 영화를 찍는 방법론에까지 영향을 미쳤을거라는 평[* 프로-아나 시대의 카운터 디바 <여우야 뭐하니> (Dramatique 7호) -변영주 감독]과 더불어 영화평론가 [[이동진(평론가)|이동진]]으로부터 고현정은 홍상수스러움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것을 넘어서 자기스러움을 연기하는, 대한민국 여배우 중 가장 머리가 좋은 배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푸른밤 성시경 '필름 속을 걷다'에서] 고현정이 고현정을 연기한 이재용 감독의 영화 여배우들은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에 있어 어디까지가 연기이고 어디까지가 실제인지 판단은 자기 몫.[* 짜고 치는 상황극인 고현정 vs 최지우 씬에 관한 유튜브 댓글에서는 실제 배우가 까이고 있다. 이걸 보면 연기를 잘하긴 잘한 듯...?] 2012년 개봉한 고현정의 첫 상업영화 미쓰GO는 유해진, 성동일, 박신양 등 걸출한 배우들과 함께 했지만 모두 영화가 구리다는 평으로 덮혔다.
          * [[윤여정]] '선생님', [[이미숙]] 선배님과는 오래된 친분. 결혼 후 힘들었던 시기 미용실에서 마주친 [[이미숙]]은 "얘, 할말은 하고 살지? 기죽지 말고 살어." 라는 돌직구를 꽂아넣고 사라지셨다고. [[윤여정]] 선생님은 영화 여배우들에서 고현정이 이혼 후 고충을 털어놓자 한 마디를 남기셨다. '내때는 예수재림이었다' 고. [* 영화 대사 중: "나 때는 내 [[이혼]]이 거의 주홍글씨였어. 이혼한 여자가 TV에 나오면 국민 정서에 안 좋대나 뭐래나. 그래서 방송 관계자들이 방송도 안 나오는 게 좋겠다고 하던 시대야, 얘." 윤여정의 결혼과 이혼(연예계 최초 공식이혼)은 당시 고현정 이상의 센세이션과 루머를 일으켰다. 몇십년 뒤 요즘도 아침방송 및 종편에서 쉽게 들을 수 있을 정도. 즉 내때는 더했다는 뜻.] 영화 [[여배우들]]이나 무릎팍 도사 [[윤여정]] 편, 고쇼 [[윤여정]] [[최화정]] 출연분에서도 윤 선생님의 포스와 굽신거리는 고현정을 확인할 수 있다.
         ||<|2> 1991 || [[KBS]] || 맥랑시대 || 신애 ||
  • 공후백자남 . . . . 5회 일치
         [[주나라]] 시대의 작위. 다섯 등급으로서 '오등작'이라고 한다.
         춘추시대에는 위(衛), 진(晋), 제(齊) 역시 공을 칭하게 되었다. 제나라는 태공망의 후손으로, 태공망이 [[삼감의 난]]을 진압한 공적으로 공에 필적하는 권한을 얻었으며, 위나라는 [[주유왕]](周幽王)이 살해되었을 때, 이 복수를 하였기 때문에 공작의 지위를 얻었다. 다만 원칙적으로는 '공'을 칭하는 것은 당대에 한정되었기 때문에, 그 자손들이 공을 칭하는 것은 일종의 참칭이었으나 주 왕실의 권위가 저하한 춘추시대에는 크게 문제삼지 않았다.
         춘추시대에는 유력한 제후국은 대부분 공을 칭하게 되고, 보다 상위개념으로 제후들의 맹주가 되는 패(覇)의 개념이 나타나게 된다.
         [[분류:작위]][[분류:춘추시대]]
  • 김국진(MC) . . . . 5회 일치
         이 시기 데뷔한 KBS 개그콘테스트 시대 멤버들은, 당시 SBS의 코미디언 영입전략 덕분에 기회를 빨리 잡았다. 기존의 KBS식 콩트와 맞지는 않았지만 선배들의 이적으로 인해 생긴 공백을, 김국진이 [[김용만]], [[김수용(코미디언)|김수용]], [[박수홍]] 등과 함께 이른바 '[[감자골]]'이라는 개그팀을 통해 완전히 메워버렸다. KBS의 모든 예능 프로에는 이들이 출연했을 정도로 히트도 쳤고 KBS도 팍팍 밀어줬다. [[1992년]] [[KBS 연예대상|KBS 코미디대상]] 신인상을 탄 것이 그 증거.
         김국진을 제외하고 전국민적 인기를 누린 개그맨을 말하라면 [[유재석]]이 첫손에 꼽히는 일이 많기에 인터넷 상에서는 '전성기 김국진 vs 현재 유재석'이라는 떡밥이 항상 돌고 있는데 장기적인 커리어가 아닌 단기적인 최정점의 포스를 따지자면 김국진이 우위에 있다는 것이 중론. 물론 예능계에 있어서 종합적인 인기와 지지도, 커리어까지 본다면 유재석이 훨씬 더 앞선다. 비유하면 '''김국진은 2등과의 점수차가 굉장히 큰 전국 1등을 3~4년 한것과 같고 유재석은 2등과 점수차가 그리 크지는 않은 전국 1등을 15년 가까이 차지한것과 같은 느낌이다.''' 전성기가 아직도 현재진행 중이지만 그 절반 정도의 기간을 [[강호동]]이라는 강력한 대항마가 공존했었던 유재석과 달리 전성기의 김국진은 개그계에서 라이벌이 존재하지 않는 수준을 넘어 가수나 배우들을 통틀어서 인지도와 인기로 그를 넘볼 대상이 없던, 그야말로 연예계 혼자 1등이라 할만한 절대적인 인기를 누렸다. 특히, 김국진은 개그맨이 연예계 최고 스타가 된 정말 몇 안되는 희귀 사례로 꼽힌다.[* 개그맨, 예능인이 가요계, 연기계를 넘어 연예계 전반에 걸쳐 최고의 위상을 지닌 톱스타가 된 경우는 정말로 극히 드물다.현재 예능계 최고의 MC들인 이경규, 강호동, 신동엽도 연예계 종합 최고 스타의 위상을 가져본적은 없으며 역대로 꼽으면 80년대의 이주일과 심형래, 전성기 김국진, 현시대 유재석 정도만이 달성한 매우 극히 드문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당시 김국진은 '''코메디 30년을 통틀어서 최고의 코메디언'''에 선정되었는데, '''2위가 한국 코미디계의 영원한 대부 [[구봉서]]'''. 또한 '''광복 50년 최고 연예인'''으로 선정되었는데, '''2위가 대중가요의 황제이자 전설 [[조용필]]'''. 광복 50년 최고의 연예인 설문조사에서 2위를 기록한 가왕 조용필을 이겼다는 건 그야말로 당시 중장년층을 넘어 노년층의 인기마저도 지배했다는 이야기이다. 김국진을 제외하고 코미디계를 넘어 연예계 전반 최강의 포스를 보여준 코미디언은 1980년도에 말 그대로 2주일만에 원톱이 되어 80년대 초중반 내내 연예인 소득 1위를 차지했던 코미디의 황제 [[이주일]], 그리고 영화로도 전국 300만 관중을 돌파할 수 있었던 전성기 [[심형래]] 정도 밖에 없다.
         당시 김국진의 인기를 한 줄로 줄인 말이 바로 '''대한민국 방송계를 움직이는 네 인물 중 한 명'''.(KBS 사장, MBC 사장, SBS 사장, 그리고 '''김국진''') [* 실제로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 의하면 모 방송국 PD들이 그를 출연시키기 위해 그의 집 앞에서 밤샘을 할 정도였다고한다.] 2014년 방영된 [[라디오 스타(황금어장)/2014년 하반기#s-24|라디오 스타 내가 제일 잘나가 특집]]에서 일본계인 [[강남(가수)|강남]]이 김국진이 뭐하는 사람인지(...) 묻자 [[김구라]]가 '''한국의 [[시무라 켄]]'''이라 소개했다. ~~그리고 본인을 한국의 [[기타노 다케시]]로 소개했다~~ 실제로 비록 시대는 다르지만 두 사람 모두 한일 양국에서 한 시대를 지배한 국민적 코미디언들이었고 화려한 전성기가 끝나고 적지않은 시간동안 몰락해 있었다는 점과 다시 재기에 성공했다는 점이 상당히 흡사하다. 다만 시무라 켄은 1970년대 후반~80년대에 활약한 정통 코미디언인 [[이주일]], [[심형래]]의 위치와 더 가깝고 김국진은 버라이어티 예능인에 가까웠다. --여기서 [[이경규]]는???-- --당시 이경규는 일본에서 유학 중이었다.--
         [[2005년]] 토요일 밤 6-8시대 버라이어티 꼭지에서 고전하고 있던 MBC에서 회심의 카드로 제작된 [[토요일]]이라는 버라이어티[* 이 프로그램에서 [[무한도전]]의 전신 [[무모한 도전]]이 시작되었다!]로 복귀를 선언하고, 당시 [[김용만]], [[박경림]] 등과 중국에서 중국어를 배우며 여행하는 "커이 커이"라는 프로그램으로 간만에 주말 버라이어티에 출연했다. [[MBC]]가 야심차게 준비한 특대형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으로 기획이 된 프로인데다가, 유학 후 복귀하는 [[박경림]]과 함께 다시 전성기를 맞이 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프로그램은 참신한 기획보다는, 유명 MC의 복귀라는 회제성에만 치우친 분위기였고, 1년도 버티지 못하고 코너가 없어졌고 프로그램명도 [[토요일]]에서 강력추천 토요일로 바뀌었다. 이후 그는 다시 방송활동이 스톱된다.
  • 김민희(1982) . . . . 5회 일치
         ||<:> 트린 디어홈[br](사랑의 시대) ||<:> {{{+1 → }}} ||<:> '''김민희[br]([[밤의 해변에서 혼자]])'''||<:> {{{+1 → }}} ||<:> 아나 브룬[br](라스 에레데라스) ||
         이렇듯 데뷔 직후의 행보는 파죽지세였다. 이미 만 20세가 되기 전 CF 모델로서 최고의 주가를 올렸고, 만 20세이던 2002년 드라마 <[[순수의 시대]]>에서 주인공을 맡아 정통 멜로 연기를 펼친다. '''하지만...''' 꽤 이른 나이의 성공이라는 요소, 실력 논란 등이 (주로 또래의) 수많은 [[어그로]]를 끌었으며 동시에 엄청난 [[안티]]를 양산하게 된다.
         당시 김민희를 향한 소녀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상큼한 외모와는 별개로, 무심해보이는 시크하고 독특한 이미지를 구축한 김민희는 큰 인기를 모으며 다수의 작품에 출연한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의 인기는 실력이라기보다 운으로 뜬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인터뷰의 말실수라던지 상상을 초월하는 [[발연기|연기력]]으로 인해 차츰 활동이 주춤해지는 듯 했다.[* [[MBC]]에서 《[[네 멋대로 해라(드라마)|네 멋대로 해라]]》를 방영할 당시 [[SBS]]에서는 김민희, [[고수(배우)|고수]] 주연의 [[순수의 시대]]가 방영 중이었다. 전자의 드라마가 주연배우들의 호연으로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낼 때 후자의 드라마는 김민희 등 주연 배우들의 안습한 연기력으로 --사실상 거의 김민희-- 냉담한 반응을 얻었다.]
         || 2002년 || SBS || [[순수의 시대]] || 지윤 ||
         || 2002년 || SBS 연기대상 || 여자 인기상 || 순수의 시대 ||
  • 김태우(god) . . . . 5회 일치
         프로그램 중에서 [[소녀시대]]의 [[유리(소녀시대)|유리]], [[한선화]]와 러브라인을 만들고, 아이돌들과 스킨십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져(예를 들어 1:7 씨름을 했다) 전국 수 많은 아이돌 팬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게 만들었다. 대놓고 사심 방송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청춘불패 시즌1]] 초반에는 막 전역한 참에 여자 아이돌들과 방송을 하는 것을 상당히 기뻐했으며 [[유리(소녀시대)|유리]]와 러브라인을 엮으려는 시도도 계속 됐으나, 막상 그에게 적극적으로 대시를 했던 것은 당시 신인으로서 방송 분량이 아쉬웠던 [[한선화]]밖에 없었다. 게다가 대부분이 여자 아이돌이다 보니 웬만큼 힘든 일은 전부 김태우의 몫이 되어 제대하고도 여전히 삽질, 망치질, 곡괭이질 등등의 작업이 떠나지 않았다.
         의견은 '요즘 같은 세상에 무슨 시대착오적인 [[똥군기]]냐'라는 의견과 '그래도 인사는 예의다'라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는 상태. 전자의 경우 지나가다 마주친 것도 아니고 각자 대기실에서 대기하고 있는 상황인데 그럼 당연히 모를 수 있는 거 아니냐는 의견이고 후자는 큐시트 보면 그래도 누구누구 나오는지 다 알 수 있는 상황인데 서로간의 인사를 하는건 사회생활의 기본 아니냐며 지지하는 입장. 하지만 설령 인사를 안 한 것이 예의가 없는 행동이라 할지라도 저런 행동이 옳은가는 별개의 문제다. 넌지시 지적을 해보거나, 언제 한 번 허심탄회하게 그건 좀 아니지 않느냐고 대화를 시도하면 되고, 그래도 말을 안 듣는다면? 당연히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트루 라이브 쇼>에 나와서 [[신화(아이돌)|신화]]와 라이벌 구도를 이뤘던 과거를 이야기할 때 신화는 god에 상대가 안됐다고 말하면서 [[신화창조]]의 공분을 샀고, 이로 인해 간만에 양측 팬덤이 와글와글 들고 일어났으며 해체한 아이돌도 아니고 둘 다 현역이라 더 문제가 되었다. 예를 들면 소녀시대와 원더걸스 중 한 쪽이 '누구는 우리에게 상대도 안 되었다'라며 다른 한 쪽을 저격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로 인해서 그가 [[이민우(신화)|이민우]]에게 직접 통화해서 사과했고, 트위터에 양측 팬덤에게 장문의 사과문을 올리는 등 꽤 큰 후폭풍에 시달렸다.
  • 나비야 꽃이야 . . . . 5회 일치
         확실한 기원은 없지만 가장 오래된 용래는 [[마쿠라노소시]]에 있다. 비슷한 시기에 [[겐지모노가타리]]에도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이미 헤이안 시대에는 관용적으로 널리 쓰이는 표현이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헤이안 시대]]에는 「하나야쵸야(花や蝶や)」, [[에도 시대]]에는 「쵸야하나야(蝶や花や)」, 메이지 시대에는 「쵸요하나요(蝶よ花よ)」로 변화했다.
         에도 시대에 쓰이던 「쵸야하나야(蝶や花や)」가 생략되서 「치야호야(ちやほや)」가 되었다.
  • 몽키 D. 루피/작중행적 . . . . 5회 일치
         이후 동료를 찾으려 섬을 떠날 때, [[실버즈 레일리]]를 만난다. 레일리는 지금 이대로는 아무것도 안 변한다고 충고하고, 루피에게 무슨 제안을 한다. 그 제안은 '마린 포드'를 '또 다시' 습격하는 것으로 해군과 초신성은 이를 마린 포드에 있는 '옥스벨'[* 이 종은 옛날에 이름을 날렸던 군함 옥스로이드 호에 달려있던 신성한 종이며 그 시대의 끝과 시작을 알리는 상징물이다.] 이라는 종으로 '신시대의 16타종'[* 해군 관습으로 옛날 이름을 날렸던 군함 옥스로이드 호에 달려있던 신성한 종인 옥스벨로 한 해의 끝과 시작에 한 해의 감사에 종을 8번을 울리고, 새로운 해를 맞아 종을 8번을 울린다. 합쳐서 16번을 울리는 관습으로 시대의 끝과 시작의 선언을 알리는 선언식이다.]을 행해 울렸다는 것과 꽃다발을 던지며 묵도를 한 행동으로 미루어 이번 전쟁 때문에, 죽은 사람을 애도하고 의형제인 에이스를 개인적으로 애도했다. 그리고 흰 수염이 죽어서 구시대는 끝나고, 시작되는 새로운 시대의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의지 표시인 것으로 추측한다.[* 물론 [[해적왕]]이 목표라서 본래 그러려고 했다.] 하지만 이것은 루피답지 않은 사건을 일으켜 위화감을 느낀 동료들에게 뭔가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신문에 실린 사진을 보면 묵도하는 루피의 오른쪽 팔에 3D2Y 문신(혹은 그림)이 있는데 3D에 X자가 그려져 있다. 사실 그 내용은 3 Day(X) 2 Year로 샤본디 제도에서 배의 코팅을 맡기고 3일 뒤에 만나자고 한 것을, 2년 뒤에 만나자고 정정하는 것으로 신문을 본 동료들이 루피가 보낸 메시지를 알아채는 모습이 나온다. 여담으로 S에 X자를 치고 AS(X)CE라고 적혀있는 에이스 문신과 위치가 같고 모양새가 흡사하다. 덕분에 에이스를 애도하는 장식처럼 보인다. 3D2Y라는 단어를 괜히 감추려는 레일리의 지혜로 보인다. 그 후 행보는 2년 간 각자 수련한다고 추측된다(현 전개로는 신세계는 완전한 지옥으로 나오며, 또한 지금 동료들은 각자 누구나 한명씩은 스승, 혹은 도움이 될 만한 사람과 함께 있으므로 가능성이 꽤 높다.).
  • 유태웅(탤런트) . . . . 5회 일치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로) 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에 귀국한 이후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로) 에서 성장했다. [[1993년]] [[SBS]] 시트콤 《오박사네 사람들》에 단역 출연해서 연기자 첫 데뷔를 했고 이듬해인 [[1994년]] [[문화방송|MBC]] 23기 공채 탤런트로 정식 데뷔했다.[* MBC 23기 공채탤런트 동기로 [[이현경]], [[최지우]], [[이민영]], [[윤용현]], [[안재욱]]이 있다.] 2003년에는 [[SBS]] 드라마 [[야인시대]]의 [[유지광(야인시대)|유지광]] 역으로 열연했다.
         || [[2002년]] || [[SBS]] || [[야인시대]] || '''[[유지광(야인시대)|유지광]]''' || ||
         || [[2014년]] || [[KBS2]] || [[감격시대: 투신의 탄생]] || [[신마적]] || 불발[* 출연 예정이었으나 작가 교체로 나오지 않았다. [[안습]]] ||
  • 이효정(남배우) . . . . 5회 일치
         1981년 영화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둘째아들 역으로 데뷔했다.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당시 같은 과에는 [[이경규]], [[최민식]], [[홍학표]]를 비롯한 새싹들이 있었다.]에 다니다가, KBS 10기 공채 탤런트로 선발되면서 본격적으로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각종 단막극과 단막 드라마를 거치면서 연기내공을 쌓았고 현재까지 [[문화방송|MBC]] [[아파트(동음이의어)#s-4|아파트]], [[여명의 눈동자]], [[영웅시대]], [[한국방송공사|KBS]] [[야망의 전설]], [[불멸의 이순신]], [[SBS]] [[야인시대]], [[자이언트(드라마)|자이언트]], [[장옥정, 사랑에 살다]] 등 각종 드라마에서 명품조연으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다.
          * 1993년 SBS 열정시대
          * 2002년 SBS [[야인시대]] (유진산 역)
          * 2004년 MBC [[영웅시대]] (국철민 역)
  • 임수정(탤런트) . . . . 5회 일치
         2004년 상반기 동안에는 잡지촬영, 광고 출연 외에는 특별한 활동이 없었다가 하반기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에 캐스팅된다. 이 캐스팅에 대해 그녀의 팬들이 이후 임수정이 배우, 연기자가 아닌 그저 대중적인 스타로 가는것이 아닌가 우려했고[* 사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이전부터의 팬들 중 일부는 지금도 이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다.] 당시 경쟁작들이[* 대작드라마 전문 이환경 작가의 [[영웅시대]], 당시 서울대 출신의 미녀 탤런트로서 인기 절정이었던 [[김태희]]의 '러브 스토리 인 하버드'] 만만치 않아 흥행도 보장을 못 했었다. 심지어는 KBS 관계자가 제작사 대표에게 임수정은 [[듣보잡]]이라며 빼라고 요청[[http://www.sportsseoul.com/news2/life/social/2009/0202/20090202101050100000000_6541684867.html|#]]까지 했다고 한다. [[2003년]] 각종 영화제에서 신인상을 휩쓸었던 배우에게 이런 말을 한 건 '무식 인증'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영화에 주로 나오고 드라마와 버라이어티 쇼에는 출연을 거의 안하기 때문에 미안하다 사랑한다로 인기 끌던 시절을 제외하면 대중적 인지도가 생각보다 높지 않다. 특히 중장년층 이상과 중학생, 초등학생은 잘 모른다. 그 한가지 예로 2008년 3월 사인회 도중 한 초등학생이 "임수정은 필요없고 소시짱 [[태연]]짱"이라고 언급했다.(...) 실제로 2007년과 2008년의 공백기간에 지친 남자팬들 중에는 당시 인기절정이었던 [[소녀시대]]로 갈아탄 이들도 있다.(...) 문제는 이 때 갈아탄 팬 중에 한 팬이 [[소녀시대 팬레터 사건|부적절한 일]]을 겪었다는 것.(...)
         사실 위에 있는 인연들 대부분은 과거 신인 시절 소속사 선후배 동료 관계였고, 본인도 어느 정도 선배의 위치에 있고 소속사 이전 후에는 그 전과 달리 이들과 활발한 교류는 없는 듯. 오히려 의외로 [[구혜선]][* 위에도 언급된 애용처럼 영화 감독을 하고 싶다는 인터뷰에서 캐스팅하고 싶은 배우로 임수정을 꼽았고 임수정 본인도 인터뷰에서 구혜선과 알고 지낸다고 말했다.]과 [[산다라박]][* 김종욱 찾기 VIP 시사회 때 왔고 팬들 사이에서 두 사람이 친분이 있다는 소문이 있다가 산다라박이 [[아이스버킷 챌린지]] 때 다음 지목 대상으로 임수정을 호명했고 임수정은 그걸 그대로 이행했다.], [[서현(소녀시대)|서현]][* 시간이탈자 VIP 시사회 때 임수정의 초대로 왔다고 말했다. 그 뒤 서현의 뮤지컬에 임수정이 관람을 오면서 서로의 인스타그램에서 대기실 셀카 사진을 올리며 친분을 다시 드러내기도.] 등 배우가 아닌 아이돌 기획사 소속 연예인과의 친분이 더 드러나고 있다.
         데뷔 이후 한 번도 본격적인 [[사극]]/시대극에 출연한 적이 없다. 한복을 입고 연기한게 영화 [[전우치(영화)|전우치]]에서 회상씬으로 조금씩 나온 정도이고 그나마 이 영화는 장르가 판타지에 가깝다. 그 외에 [[시카고 타자기(드라마)|시카고 타자기]]에서 일제강점기 시기의 [[전설(시카고 타자기)|전설]] 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지만 이 역시 장르가 판타지.
  • 임채무 . . . . 5회 일치
         원래는 해병대 제대 후[* 기수는 228기였다.] 70년대 중반 데뷔하여 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드라마(주로 MBC)에서 선 굵은 배역을 자주 맡은 연기파 배우로 중장년층에게 알려져 있다. 70년대 중반까지 TV 드라마계의 남자배우 투톱이던 [[노주현]][* 60년대 후반까지는 미남 주인공 역할은 노주현 원탑이었다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군대를 갔다 올때쯤 한진희가 등장하고, 얼마 지나 임채무까지 등장하며 원톱의 자리는 내려놓게 된다.], [[한진희]]의 미남역할 주인공 독점을 사실상 임채무가 막은 셈일 정도였고, 본인만의 자리를 차지하며 영역을 늘렸었다.[* 물론 그들보다 선배였던 노주현은 "아무리 한진희, 임채무 걔네가 잘 나갔어도 나한테는 안 됐지"라고 방송에서 너스레를 떤 적도 있으나, 그도 사실 그들의 커리어를 인정해온 편이다.] 맡은 역할 이미지가 젠틀맨 이미지로 겹치면서도 각자 조금은 다른데, 노주현은 잘생기고 부드러워보이는 신사지만 때로 터프하고 호쾌한 이미지, 한진희는 큰키의 훤칠하고 부드러운 멋쟁이 꽃미남 이미지, 임채무는 중후하고 우수에 찬 남성 이미지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셋 다 외모도 시대상과 어울리지만, '''중후한 목소리'''가 애정 연기와 잘 어울려, 여성 시청자에게 엄청 인기를 끌었다.
         수많은 미녀스타들이나 인기 배우들과 연기했으나, 그들보다 임채무의 인기가 더 많았다. 꽃미남과는 아니지만 멜로 드라마에서의 중후한 표정 및 목소리 연기, 그로 인한 이미지 때문에 20대 후반부터 40대 후반까지 폭넓은 여성시청자의 인기를 차지했다. 말하자면 '''80년대의 레전드급 임팩트 배우 중 하나'''. 그래서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까지는 드라마쪽은 노-한-임 트로이카 남주시대라 봐도 될 정도.[* 물론 먼저 그 자리를 차지했던 노주현, 한진희에 비하면 당대에도 커리어가 살짝은 밀리는 감이 있지만, 최소한 당대 다른 남자배우들은 압도할만한 인기와 경력을 쌓았다.] 지금의 모습으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채시라와 멜로 연기를 한 작품도 있다. 당시 가십지에서 키스신을 어떻게 찍었는지 자세히 써낸 기사도 있을정도. 입술에 테이프를 붙이고 찍었다고..최근에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듯. ~~그래야 놀이공원 빚을 갚지요~~
         소녀시대 [[효연]]이 [[전현무]]를 실수로 이사람 이름을 불렀다고 한다.
          * [[영웅시대]] - 국철규[* [[이건희]] 회장을 모델로 한다. 배우 본인의 연구로 특유과 표정과 불편한 거동을 재현해 내어 호평을 받았다.] 역
          * [[삼김시대(드라마)]] - [[노태우]] 역
  • 최영미 (시인) . . . . 5회 일치
         최영미는 인간의 조건을 풍자적인 언어로 파헤친 시집 《돼지들에게》로 2006년 [[이수문학상]]을 수상했다. 이수문학상 심사위원 유종호교수는 “최영미 시집은 한국사회의 위선과 허위, 안일의 급소를 예리하게 찌르며 다시 한번 시대의 양심으로서 시인의 존재이유를 구현한다”라고 수상 이유를 밝혔다. 《돼지들에게》의 추천사에서 [[신경림]] 시인은 "진실을 추구하는 치열한 정신 없이는 이와 같은 시는 불가능할 것이다. 자칫 관념적 교훈적으로 될 수도 있는 알레고리적 방법이 시에 활기와 재미를 더해주는 점도 주목을 끈다”라고 썼으며 "시를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진정성과 언어의 조탁이 돋보인다”라며 심사평을 전했다. 시집 《이미 뜨거운 것들》은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의 2013년 상반기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되었다
         최영미는 삶과 여행, 그리고 예술에 관한 산문집 『《시대의 우울: 최영미의 유럽일기》, 《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를 출간했으며, ''Francis Bacon in Conversation with Michel Archimbaud''를 한국어로 번역해 《화가의 잔인한 손: 프란시스 베이컨과의 대화》(1998,도서출판 강)이란 제목으로 출간했다. [[인하대학교]]와 [[강원대학교]]에서 시 창작을 가르쳤으며, 지학사 고등검정교과서 문학(2014년)에 최영미의 시 〈선운사에서〉가, 창비사 고등인정지도서 문학(2012년)에 〈지하철에서 2〉가, 학연사 고등검정지도서 작문에 (2012년) 산문집 《시대의 우울》, 〈쾰른〉편이 수록되었다.
         * 산문집《시대의 우울》(창작과비평사, 1997)
         * 사가와 아키 "글로벌 시대의 세련된 지성" --2009년, 최영미 시집 <도착하지 않은 삶>의 해설
  • 콜 오브 후아레즈 : 건슬링어 . . . . 5회 일치
         Call of Juarez: Gunslinger. [[서부개척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FPS 게임으로, [[콜 오브 후아레즈 시리즈]]의 네번째이자 제일 최근 작품이다.
         맵 곳곳에 숨겨져있는 빛나는 말 발굽. 획득하면 많은 양의 경험치와 함께 서부시대에 대한 정보를 해금시켜준다.
          젊은이. 서부시대를 양산형 서부 소설로 배웠다. 자칭 사일러스의 이야기에 끼어들어 소설의 이야기를 말한다.
          본명은 윌리엄 헨리 맥카티. 실존인물로 서부개척시대의 유명 무법자다.
          작중에서는 링컨 카운티 전쟁[* 서부개척시대 미국에서 있었던 분쟁. 잡화점 주인과 농장주가 가축의 소유권을 놓고 벌인 전쟁이다.]에서 사일러스와 같은 편으로 싸웠다.
  • 태종무열왕 . . . . 5회 일치
         [[남북국 시대]]론을 지지하였으며 《조선상고사감》을 저술하기도 했던 [[안재홍]]도 [[신라]]가 당을 끌어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한 것은 [[평양]]이나 [[관북]] 일대를 비롯한 대부분의 북방 영토를 방기한 데다 당의 명령을 빌어 외세의 힘을 이용한 [[신라]]의 행동에서 후세 역사에 등장한 소위 '[[사대주의]]'의 대부분이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평하였다.<ref>"新羅가 唐을 聯하야 麗濟를 깨뜨리매 渤海가 北方에서 再興하야 비록 南北朝 200년의 歷史를 나타내엇스나 分裂의 形勢는 드듸어 나흘 수가 업섯고 朝鮮의 勢力은 더욱 減殺됨이 잇섯다. 金庚信이 太宗 武烈王을 도아 統三의 業을 이루엇다 하지마는 당시의 記錄은 平壤이 오히려 茂草를 悲嘆하엿고 關北의 地 太半 荒廢하엿슴을 전하엿다. 하물며 唐의 誥命을 빌고 그의 節度에 應하는 등 外力을 이용하는 後世 所謂 事大政策은 이때부터 大部이나 作俑된 觀이 만타." 1926년 7월 1일자 〈[[개벽 (잡지)|개벽]]〉 제71호 「한양조 5백년 총평(漢陽朝五百年總評)」</ref>
         해방 후에도 이러한 인식은 고스란히 이어졌다. [[한국]] [[민속학]]의 원조이기도 한 [[손진태]]는 [[김유신]]이나 [[김춘추]]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동족을 공격하기 위해서 이민족과 연맹하는 것은 민족적으로 최대의 죄악"이며, 신라가 당과 손잡은 것을 "귀족 국가의 비민족적 본질"이라 비난하였고,<ref>〈한국민족사개론〉, 1948년</ref> 한국역사연구회에서 편찬한 <한국역사>(1992)는 '통일'이라는 용어를 쓰면서도 그 통일의 '불완전함'과 '남북국 시대'라는 그 다음 시대의 성격을 강조했다.
         [[1993년]] [[성균관대학교]]의 김영하 교수는 [[천리장성]]의 예를 들어 축소된 강역으로 [[만주]]의 요동땅을 밟지못하고 고토를 잃고 살다가 [[조선]]에 와서야 겨우 [[압록강]]과 [[두만강]] 그리고 [[백두산]]만을 찾을 수 있었다고 평가를 내놓으면서 당의 [[한반도]] 경략에 발맞추어 외세와의 공조로 [[백제]]만을 겨우 정복한 [[신라]]는 "통일을 완수할 힘도 의도도 전혀 없었다"고 단정하고 '통일신라 시대' 대신에 '신라와 발해' 내지는 '남북국 시대'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적극 주장했다.
  • 페어리 테일/529화 . . . . 5회 일치
          >멸룡마도사와 함께 이클립스를 통해 이 시대에 왔어.
          * 마그놀리아의 공원. 전쟁은 끝났지만 파괴의 흔적이 역력하다. 루시와 [[해피(페어리 테일)|해피]], [[그레이 록버스터]]는 [[메이비스 버밀리온]]이 지시대로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멍하니 벤치에 앉아 있다가 루시가 갑자기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녀가 눈물을 참지 못하다 그레이와 해피가 당황한다. 메이비스가 건넨 END의 서는 루시의 손에 들려있다. 루시를 그걸 들여다 보다가 "나츠의 목숨이 이런 책 한 권이라니"라는 생각이 들어 울음이 터졌다. 그레이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해피도 루시를 따라 울먹거렸다.
          * 크리스티나호는 아크놀로기아를 꽁무니에 달고 전속으로 날아간다. 항해가 어느 정도 안정되면서 방금 전처럼 심한 흔들림은 사라졌다. 안나와 엘자 일행은 조금 더 차분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안나는 400년 전쟁 당시엔 아크놀로기아를 제압할 방법이 전혀 없었다고 말한다. 당대의 드래곤들은 미래에 희망을 걸기로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키운 멸룡마도사 체내에 들어가 400년 후의 미래로 건너온다. 여기까지는 웬디가 그란디네에게 들어서 아는 내용. 그란디네는 이 시대가 가장 마력이 충만한 시대이기 때문에 선택됐다고 말했다.
          안나는 분명 이 시대로 오는 "문"을 만드는건 성공이었다고 말한다. 놀랍게도 이 문은 제레프가 만든 것이다. 그 문을 여는 역할은 안나 자신의 몫. 제랄은 제레프가 이 일에 관여했다는 것에 놀라지만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제레프는 당시에도 "시간"을 연구하고 있었다. 비록 그가 원하는 "과거"로 거슬러가는건 불가능했지만 그가 아직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시절이다. 안나는 "출구"에 있을 사람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아직 어린 멸룡마도사들을 키우는 역할로 선택되어 함께 미래로 오게 된다.
  • 헤이안 시대 . . . . 5회 일치
         일본의 시대구분. 대략 400년 정도의 기간이다.
         아스카 시대와 나라 시대, 다이호 율령(大宝律令)가 제정되어 있던 시기에 나라의 토지는 모두 덴노의 것이라는 왕토사상 아래, 농민에게는 토지를 빌려주고 있다고 보았다. 이를 구분전(口分田)이라고 하였으며, 개별 농민에게 과사게 이루어졌다. 새롭게 개간한 토지는 사유지로 삼을 수 있었으나, 1대에 한하여 반납하여야 했다. 이를 반전수수법(班田収授法)이라고 한다.
         본래 반전수수법으로서 각 쿠니(国)[* 헤이안 시대의 행정구역으로서 국은 현재의 한 현 정도의 크기이다.]에 보내지던 쿠니시(国司)는 호농들에게 조세를 간접 징수하는 정도의 존재로 바뀐다.
         [2] [[이태란 (헤이안 시대)|이태란]]
  • 현이와 덕이 . . . . 5회 일치
         1975년 [[미8군부대]]에서 데뷔한 [[장현 (1955년)|장현]](1956~1990)과 [[장덕]](1961~1990)은 이듬해인 1976년 현이와 덕이를 결성하고 한국 가요계에 데뷔한다.<ref>{{뉴스 인용 |제목 = 두엣 현이와 덕이 순진한 아이 취입|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805230032920801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8-05-23&officeId=00032&pageNo=8&printNo=10044&publishType=00020|출판사 = 경향신문|날짜 = 1978년 5월 23일}}</ref> 이들은 《선생님 안녕》, 《우리들의 고교시대》, 《내마음 나도몰라》, 《꿈초올 둘이서》등과 같은 영화에도 출연하였다.(이들 남매는 10여편의 영화에 주연 또는 조연으로 출연하여 하이틴스타로서 많은 인기를 누렸다.) 특히 [[장덕]]은 작사,작곡 능력이 뛰어나 싱어송라이터로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 2012년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 저서 / [[도서]]-책 <가수를 말하다 - 영혼으로 노래하는 우리시대 최고의 가수 41>
         1978년 4월 장덕은 1970년대 하이틴 [[영화]]의 붐을 주도했던 세 명의 명[[감독]] [[김응천]] · [[석래명]] · [[문여송]]이 모여 [[옴니버스]] 형식으로 만든 [[영화]] <[[우리들의 고교시대]]> 제1화에서 다시 [[주연]]으로 출연, 음악을 전공하는 청순한 여고생 역을 맡아 열연하며 하이틴 [[스타]]로 거듭난다. 당시 그녀는 자신을 짝사랑한 팬들에게 다섯 번씩이나 납치를 당했을 정도로 대단한 큰 인기를 누렸다. 가는 곳마다 밀려든 팬들의 사인 요청이 이어졌다(10여 편의 [[영화]]에 [[주연]] 또는 [[조연]]으로 출연). 그 해 7월 장덕은 제1회 [[MBC]]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오빠 [[장현]]이 부른 <더욱 큰 사랑>의 [[작사]]/[[작곡가]]로서 출전, 2년 연속 [[MBC]]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입상하게 된다. 이 시기 오빠 장현은 오라오라에 출연했을 때 부터 알게 된 부산연예협회지부장이자 왕년의 작사가였던 천봉의 딸 천인실과 극도로 가까워지면서 결혼까지 하게 되고 아이까지 갖게 된다. 그리고 장덕은 결혼한 오빠의 집에서 같이 살게 된다. (1978년 [[현이와덕이]] 정규1집 <[[순진한 아이]]>가 발표 되었다. <[[순진한 아이]]>, <꼬마인형>, <일기장>, <[[소녀와 가로등]]>, <정말>, <작은소녀의 사랑 이야기> 등 11곡+경음악1곡 수록, 같은 해 <크리스마스 캐롤집> 발표)
         * 2012년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 저서 / [[도서]]-책 <가수를 말하다 - 영혼으로 노래하는 우리시대 최고의 가수 41>
         * 《[[우리들의 고교시대]]》(1978)
  • 김지석(배우) . . . . 4회 일치
         [include(틀:뇌섹시대 문제적 남자)]
         [[영국]]에서 중고등학교(브래드필드 컬리지)를 다니다가 [[한국외대]]로 진학한 이력이 있으며 원래는 2001년 5인조 댄스그룹 리오로 데뷔했다가 리오가 묻히면서[* 참고로 이 그룹의 소속사가 여성 4인조 아이돌 그룹 [[슈가]]를 배출했고, 소녀시대 [[써니]]의 아버지가 운영했던 스타월드였다.] 가수의 길은 접고 연기자로 전업해 2004년 MBC 시트콤 아가씨와 아줌마 사이로 데뷔했다. 이 과정에서 연예계 생활에 회의, 혹은 불안을 느낀 것인지 학교생활을 하면서 이중전공으로 [[독어]]/[[영어]] 교사 자격을 얻었다. 인터뷰에 따르면 연예인 포기하고 정말 학교 선생님으로 전직할 생각이었던 모양.
         예능에서 영어 교사 자격증을 갖고 있음에도 소녀시대 티파니에게 영어 발음을 지적받았다는 영상이 여초 사이트에 돌았으나, 사실 여자친구 집안에 인사드리러 가는 컨셉의 김지석이 사위에 적합한지 외가 역할 패널들이 하나하나 트집잡는 과정의 꽁트였다. 티파니 뿐만 아니라 정형돈이 김지석보고 배를 내밀며 내가 너보다 더 몸매 좋다(...)고 놀리는데 당연히 진심이 아닌 예능상 컨셉. 김지석 본인도 연출이었다고 밝혔다. 애초에 미국인이 영국 영어를 못알아들을 리 없다(...). [[http://m.todayhumor.co.kr/view.php?table=star&no=283285|해명글]]
          * 2015년 [[뇌섹시대 문제적 남자]]
  • 김지훈(배우) . . . . 4회 일치
         || [[며느리 전성시대]] || 이복수 || ||
         || 2017년 || 역모: 반란의 시대 || [[이인좌]] ||
         || 2018년 || tvN || [[뇌섹시대 - 문제적 남자]] || 게스트 ||
         ||<|2> 2007년 ||<|2> [[KBS 연기대상]] || 남자 신인상 ||<|2> 며느리 전성시대 ||
  • 김창규 (작가) . . . . 4회 일치
         고교시절, 청주 독서회에서 활동을 하였으며 [[1983년]] 《분단시대》에 [[배창환]], [[김용락]], [[김종인]], [[정대호]], [[도종환]], [[정만진]], [[김희식]], [[김윤현]] 등과 동인으로 참여하였다.
         {{출처|날짜=2012-04-03|[[1975년]]부터 민주화운동을 시작해 구금, 구속, 연행 등의 고난을 겪었는데,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연행되어 고문을 당하였으며 그때 입은 부상으로 한쪽 청각을 상실하고 한쪽 다리가 불편하다.}} {{출처|날짜=2012-04-03|1981년에는 납치되어 대전 안기부, 경찰서 보안대 지하실에서 고문을 당했으며, 1987년 [[6월 항쟁]]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구속당하기도 했다.}} {{출처|날짜=2012-04-03|[[보안사 민간인 사찰 사건]]으로 감시대상 1호임을 알게 되었다.}} 2008년에는 ‘남북관계 정상화를 촉구하는 시국선언’에 참여하였다.<ref>{{뉴스 인용
         작가로서는 [[1984년]]《분단시대》동인지로 등단하고 1985년《창작과 비평》16인신작시집에《그대가 밟고 가는 모든 길위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한국작가회의|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했다. 충북작가회의를 만들었고 충북민예총을 건설하였으며 회장과 부지회장을 지냈다.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54년 태어남]][[분류:충청북도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목회자]][[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분단시대 동인]][[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한신대학교 동문]]
  • 니쿠쟈가 . . . . 4회 일치
         일단 데미글라스 소스를 사용한 하야시라이스(하이라이스)가 메이지 시대 초기에 나오고 있었으므로, 정황상 이 시대는 이미 서양 요리가 일본 요리사들에게 그리 낯선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독 같은 높으신 분이 비프스튜를 주문했는데 간장이나 설탕으로 소스를 대체하는 일은 있을 수 없고 어디까지나 전설에 지나지 않는다는 반론이다.
         니쿠쟈가 자체가 특별히 발명할 필요가 없는 요리라는 주장도 있다. 고기를 간장, 설탕 양념으로 끓이는 스키야키 류의 요리는 이미 메이지 시대에 널리 퍼졌고, 감자 역시 에도 시대에 많이 보급된 작물이었기 때문에 감자와 고기를 이용한 요리가 자연발생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는 주장이 있다.
  • 미래소년 코난/설정 . . . . 4회 일치
          플라스틱이 아닐까 싶은데[* 일본어 표기는 플라스칩이라 되어 있다.] 그렇다면 석유로 만든 플라스틱을 사람이 먹는 음식으로 바꾼다는 것이 매우 놀라운 기술인데, 어쩌면 그게 아니라 이 시대의 플라스틱은 우리가 말하는 "바이오 플라스틱," 즉 식물 섬유를 주원료로 만든 플라스틱일지도. (그래도 놀라운 기술이긴 하지만...)
          대참사 당시 지구에서 탈출을 시도하던 우주선이 불시착하여 우주선에 타고 있었던 사람들이 정착하게 된 곳으로 여기서 코난이 태어났으며 코난의 부모를 비롯한 코난의 할아버지 동료들이 차례대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1화 시점에서는 [[코난(미래소년 코난)|코난]]과 코난의 할아버지 두 사람만이 거주하고 있었다. [[라나(미래소년 코난)|라나]]라는 여자아이를 통해 코난과 코난의 할아버지는 자신들만 살아남은 것이 아님을 알아차렸고 코난의 할아버지가 라나를 잡으러 온 몬스리를 비롯한 인더스트리아 군인 2명에게 저항하다가 죽은 뒤, 코난은 이 곳을 떠나게 된다. 마지막화에서 남겨진 섬이 지각변동으로 융기하여 대륙이 되면서 코난이 살던 집은 산 정상에 위치하게 되었는 데 대륙이 된 홀로 남은 섬(남겨진 섬)에 다이스, 몬스리, 류케를 비롯한 인더스트리아 피난민과 테라를 비롯한 하이하버의 일부 주민이 코난 일행과 함께 이주하게 된다. 홀로 남은 섬(남겨진 섬)은 작 중에서 새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지역이다.
          미래소년 코난에서 등장하는 국가로 공업시설이 대부분이고 작 중에서 유일하게 첨단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지역이다. 실적에 따라 1등시민, 2등시민, 3등시민으로 나뉘어 지는 데 지하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레프카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레프카에 의해 정치범[* 작 중에서 레프카 본인은 지하거주민들을 반역자, 쓰레기라고 부른다.]으로 규정되어 있다.[* 지하거주민들의 이마에 정치범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사각별 형태의 낙인이 찍혀있다.] 참고로 이 지역은 대참사 이전의 유산들이 남아 있는 곳으로 지각변동으로 가라 앉게 될 징조가 보이면서[* 때문에 지하도시의 정치범들이 불안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레프카는 답없는 행보를 바꾸지 않는다.] 25화에서 침몰하게 된다. 작 중에서 인더스트리아는 옛 시대의 마지막 지역이었음을 의미하고 인더스트리아의 침몰은 옛 시대의 완전한 종말을 의미한다. 자세한 내용은 [[삼각탑]] 문서 참조. 여담으로 시민과 정치범 간의 괴리감은 심한데 시민은 정치범을 마구잡이로 대해 함부로 총질하기도 한다. 결국 나중에 레프카가 쫓겨날때 같이 쫓겨난다.
  • 바키도/134화 . . . . 4회 일치
         [[바키도]] 제 134화. '''시대의 보물'''
          * 모토베는 그 사과를 놀라워하는 듯고 기뻐하는 듯도 보인다. 그는 바키의 "지상최강의 애송이"란 호칭을 부르더니 그는 "보물"이며 이 시대의 상징이라고 말한다. "힘"이란 개념을 바로 그가 계승하고 있다는 것.
          * 그는 이어서 "오우거", 한마 유지로는 이 시대의 신이자 질서이며 놓칠 수 없는 존재라 말한다. 시부카와 고키는 "국보"이자 "무형문화", 오로치 돗포는 "근대 가라데의 아버지"이며 "태양"같은 존재, 하나야마 카오루가 가진 자신만의 "긍지"나 오로치 카즈미의 "가라데의 2대 태양"이란 위치, 두말할 필요없는 인류의 재산이자 동료인 피클. 그 외에도 가이아나 시노기 형제 등 수많은 격투가들을 일일히 거명하며 이들이 모두 빠질 것 없는 "시대의 보물"이라고 칭한다.
  • 박명수(MC) . . . . 4회 일치
         이에 대해 시대적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 좋다. 90년대에의 콩트 프로그램에서는 현재의 버라이어티 예능쇼처럼 무작정 한 장면이나 단락적으로 웃기고 그걸 유재석과 같은 중재자가 받아서 잘 정리해주는 게 아니라, 일정한 스토리의 틀이나 흐름 속에서 희노애락 등을 나름대로 표현해 가면서 김국진이나 홍기훈, 김진수처럼 기본적인 연기력+반전으로 웃기는 패턴이었기 때문에 대본 소화능력이 떨어지는 박명수는 자연스레 그 역할은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비교적 순발력이 중요해진 이후 시점의 코미디 하우스 등에서의 무대에서조차 '약방에 감초' 역할을 벗어나지 못했다. 사실상 박명수는 콩트에서는 특이한 얼굴이나 말투를 바탕으로 극을 돋보이게 하는 조연 역할이었다. 종종 회자되는 박명수의 대표코너격인 [[코미디 하우스]]의 3자 토론이 대표적인데, 이회창 역으로 출연하며 좋은 활약을 보이기도 했지만, 여기에서조차 박명수는 약방의 감초 역할에 불과했다. 코미디 하우스의 대표코너는 [[정준하]]의 출세작 노브레인 서바이버, 조혜련의 골룸 개그, 김현철의 1분 논평 등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당대 박명수의 위상을 대략적으로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3자토론은 코미디 하우스 내에서 반응이 그렇게까지 좋진 못했던 코너여서 자주 편집되기까지 했으니...
         흔히 어린시절 공병 줍고 다녔던 시절, 동급생들에게 눌려지내던 쭈구리 시절 등 본인의 주장에서 비롯된 가난한 가정사가 언급되는데, 사실 군산에서 살때는 엄청 잘 살았다. 방마다 화장실을 따로 썼고, 집 안에 [[유치원]] 앞에 있는 그런 [[놀이터]]가 있었다고 한다. 라디오 방송에서 말하길, 학창시절 당시 기백만원 하던 컴퓨터(MSX급)를 아버지가 사주셔서 집에서 프로그램도 직접 짜며 놀고, PC용 게임도 많이 알고 있었다. PC통신도 즐겨한 듯한 언급이 있었다. 박명수의 어린 시절이 1970 ~ 1980년대라는 걸 생각해보면 대단한 것이다. 아버지께서 중동으로 가서 달러를 벌어오시기도 했고 귀국 후 아버지가 운수업을, 어머니가 [[만화방]], 그것도 컬러 TV[* 지금이야 훨씬 더 선명하고 깔끔한 컬러 TV가 집마다 한 대씩 있고, 이젠 컬러냐 아니냐가 아닌 HD냐 LCD냐 등을 따지는 시대이니 별로 대단하지 않지만, 70년대 초반에는 흑백TV도 부의 상징이었고 컬러방송이 늦게 시작되어서 그때쯤 되어서야 컬러TV의 보급이 시작된지라 1980년대 초반 기준으로 컬러TV를 가진사람이 아직은 적었을때였다. 그래서 어쩌다 컬러 TV를 들여놓은 영업장에서는 컬러 TV를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대가로 시간당 요금을 받는 식으로 굴려먹기도 했다.]가 있는 만화방까지 운영한 적도 있었다. 다만 사업이 뒤집어지면서 그 많던 재산을 죄다 날리고 서울로 상경하게 된다. 200만원 융자 받아서 사글세 방에서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연대보증이 이렇게 무서운 거다~~ 공병 줍는 시절과 쭈구리 시절은 아마 이 시절을 기점으로 한 이야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소녀시대 제시카의 탈퇴를 계기로 갑자기 "명수의 저주"가 떠오르기 시작했다.~~사실 GD대마초 때부터...~~ 그 내용을 적어보면...
          * [[제시카(가수)|제시카]]와 함께 '냉면'을 불렀고, 제시카도 2014년에 [[소녀시대]]에서 나가게 되었다.
  • 박진성(시인) . . . . 4회 일치
         그리고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35282180711837697|ㅁㅊ]]([[https://archive.is/GZrdp|@]])이라는 전형적인 [[트페미]]는 자기 말로는 이미 등단한 실제 시인인데도 익명을 쓰고 있다고 추측되는 [[https://twitter.com/jajf1le1/status/934947768753299457|글]][[https://archive.is/uk1hs|@]]을 올렸다. 심지어 ㅁㅊ은 저 글 전체에서 간이 부었는지 트페미, [[여성시대]], [[메갈리아]], [[워마드]]를 비판하는 [[박가분]]과 [[유아인]]과 박진성을 같이 엮어 비꼬고 있다. [[https://twitter.com/jajf1le1/status/935280720691437568|#]][[https://archive.is/nKyFQ|@]][* 그리고 ㅁㅊ은 박진성을 비하하는 과정에서 '''문단_내_성폭력''' 태그를 처음 돌렸다고 자처했으며, 카페 창비에서 자기 편을 들거나 자기와 처지 같은 모임에 모인 사람 몇몇과 같이 뒷담화와 무차별 고소를 모의했다는 간접적인 자폭 시인(是認)을 해버렸다. 이는 박진성처럼 무고죄 처분을 받은 피해자들의 조사에 쓰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https://twitter.com/jajf1le1/status/934436470416334849|#]] [[https://archive.is/9IZbK|@]] 여담으로 [[http://www.hankookilbo.com/v/59c63886250945728a1b52d81920104c|이 기사]][[https://archive.is/eNOrA|@]]에 나온 비공식 모금 출판 책 '참고문헌없음'에는 박진성 작가를 허위사실로 조리돌림한 한국일보 황수현 기자, 유진목 작가, 탁수정(책은탁)이 공동 저자로 표기되어 있다([[https://tumblbug.com/baumealame4|해당 펀딩 주소]]). 즉, 저 자료도 무고죄 소송에 쓰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 2018년 2월에 2016년 10월 이후로 트위터 내에서 본인에 대해 조롱한 트윗을 모은 책 '혐오의 시대'(가제)라는 책을 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당시 "아무리 생각해봐도 가장 치욕스러운 건 활자로 책으로 남겨서 후대로 만방으로 기록해두는 것. 그러니까 네가 사라지고 없어져도 너의 더러운 말들은 영원히 살도록 그렇게 영원을 살아서 누군가 너를 기억할 때 너의 더러운 말들이 너의 얼굴이 되도록 해주는 것. 그게 진짜 치욕인 것."이라고도 말했다. 3월 28일엔 트위터의 조리돌림에 대해 분석한 책을 낼 예정이라고 말했는데 이 책을 말하는 듯.
          >'''성재기 류의 비상식적이고 몰시대적이고 희화화된 단체 말고''' '남성의 인권'을 대변해줄 기관이나 시민 연대 같은 것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인 것 같다. 단지 남성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선량한 남성들을 지키고 싶은 여성들을 위해서라도.
  • 백성현 . . . . 4회 일치
         | [[황금시대 (드라마)|황금시대]]
         | [[영웅시대 (2004년 드라마)|영웅시대]]
  • 벚꽃놀이 . . . . 4회 일치
         이렇게 제사이자 놀이로서 즐기는 벚꽃놀이는 [[헤이안 시대]]에 [[일본 귀족]]들이 시작하였다. [[만엽집]]에서 벚꽃에 대해서 읊는 시가 나타나고 있으며, 고금화가집(古今和歌集)에도 봄의 노래는 벚꽃에 대한 것이 많다. [[겐지모노가타리]]에서 연회가 화려하게 묘사된다.
         [[가마쿠라 시대]]에는 귀족 문화에 영향을 받은 사무라이 계급, 서민 계급에서도 벚꽃놀이가 벌어지게 됐다. [[에도 시대]]에는 서민들 역시 벚꽃놀이를 널리 즐기게 되었다. [[메이지 시대]]에는 길가, 하천부지, 공원, 학교 각지에 벚꽃을 심는 것이 유행하여 전국 각지에 벚꽃놀이를 즐기기 좋은 장소가 마련되었다.
  • 보루토/1화 . . . . 4회 일치
          * 카와키는 닌자 시대의 끝을 선언한다
          * 그걸 알아본 보루토는 "구닥다리 같은 아버지 시대와 다르다"면서 뛰쳐나간다.
          * 보루토의 옷은 언제나 새것처럼 깨끗하다며 자신들은 이미 시대에 뒤쳐졌을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 하지만 사스케는 시대가 어떻든 닌자의 본질이 바뀌는건 아니라고 답하는데, 나루토는 "결국 보루토도 우리랑 같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면서 그건 아닐 거라고 한다.
  • 손지창 . . . . 4회 일치
         [[1998년]]에는 드라마 《[[일요일은 참으세요]]》에서 공연한 배우 [[오연수]]와 결혼하여 현재 슬하에 2남을 두었으며, [[2004년]] 드라마 《[[영웅시대 (2004년 드라마)|영웅시대]]》를 끝으로 배우활동은 접고, 기업 홍보 대행 사업을 하는 등 사업가로 활동을 넓혔다.
         * 2004년 MBC 《[[영웅시대 (2004년 드라마)|영웅시대]]》 ... 국철규 청년 시절 역
  • 스키야키 . . . . 4회 일치
         스키야키라는 이름은 [[에도 시대]] 부터 보인다. 에도 시대의 문헌에서 스키야키는 [[쟁기]]에 구워서 먹는 언급이 있어, 쟁기(스키)에 고기를 놓고 구워먹기(야키)를 했던 것이 스키야키의 어원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에도 시대에는 쇠고기를 먹는 것이 금지되어 있어, [[오리고기]], [[멧돼지고기]], [[사슴고기]] 등을 사용했으며 현재 간사이 스키야키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메이지 시대]] 이후 육식이 해금되면서, 도쿄를 중심으로 빠른 속도로 전국으로 현재와 같은 스키야키가 퍼졌다. '서민의 음식'으로서 여겨졌다.
  • 식객 . . . . 4회 일치
         춘추전국시대에는 식객을 자처하고 나타나는 사람을 주인이 보호해주고 대접해주는 것이 당연시 되는 문화가 있었으며, 이러한 문화는 상당히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춘추전국시대의 식객은 여러 나라의 귀족 계급의 분쟁에서 주요한 전력으로 이용되었으며, 그 뛰어난 실력을 살려서 일종의 [[사병]](私兵)이 되거나 주인의 참모 역할을 하기도 했다. 때로는 주인이 살해되면 식객이 [[복수]]에 나서는 경우도 있었다.
         식객이 복수를 한 사례로는 전국시대 초기에 조양자[* 위씨, 한씨와 함께 진(晉)나라를 3등분하여 '조, 위, 한' 중 조나라를 건국한 인물.]에게 패사(敗死)한 지백의 식객 '예양'의 사례[* 조양자를 시해하려다 연거푸 실패하고 붙잡히자 조양자의 옷이라도 베길 원한다고 말해 원을 풀고 자결한다. 공교롭게도,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조양자는 병이 들어 죽고 만다.]와, 삼국지에 나오는 [[손책]]이 [[허공]]을 죽이자, 그 식객들 가운데 몇몇이 손책을 암살한 사건이 있다.
         삼국시대의 위나라에서는 각 제왕(황족)이 식객을 두는 것을 엄격하게 단속했다.
  • 유인촌 . . . . 4회 일치
         [[역사스페셜]]의 진행자로도 친숙하며 여러 드라마와 연극에 출연하였다. KBS 드라마 야망의 세월에서 이명박을 모델로 한 박형섭, SBS 드라마 삼김시대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 역으로도 출연한 적이 있다. 특히 드라마 중 이명박을 모델로 한 인물의 역할을 두 번 맡은 적이 있다.
         정치인이 된 이후 행보를 보면 꽤나 괴리감이 크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유인촌은 딱히 정치 성향 여부로 평가되는 인물이 아니었고, 오히려 <역사스페셜> 진행자로서 공정한 이미지가 큰 편이었다.[* 한 예로 유인촌은 김대중 역으로 삼김시대에 출연한 시기(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한 해)에 역사스페셜 진행자도 맡고 있었다.] 유인촌에 대한 평가가 정치적 잣대로 인해 엇갈리게 된 것은 그가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 지지를 본격화하고, 이후 장관으로 입각한 2000년대 후반부터의 일이다.
          * [[삼김시대(드라마)|삼김시대]] - [[김대중]]
  • 육미당기 . . . . 4회 일치
         [[조선시대]]의 [[고전소설]]. 논평 가운데 작가의 이름으로 운고(雲皐)라는 아호가 언급되며, 서유영(徐有英)이 유력한 저자로 보인다.
         [[분류:조선시대 소설]][[분류:삼국시대 배경 창작물]]
  • 이만섭 . . . . 4회 일치
         * [[김봉근 (배우)|김봉근]] - [[1998년]] ([[삼김시대 (드라마)|삼김시대]]), [[SBS]] 드라마
         * [[정국진 (배우)|정국진]] - [[2003년]] ([[야인시대]]), [[SBS]] 드라마
         * [[오협]] - [[2005년]] ([[영웅시대]]), [[MBC]] 드라마
  • 이승엽 . . . . 4회 일치
         1995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계약금 1억 3200만원, 연봉 1,000만원의 조건으로 투수로 입단하였다. 좌완 투수 유망주였으나 시절 당했던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ref>[[문화일보]] - 2009년 9월 기사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9091701032230073002 "이의수의 마흔 이후 남자의 생존법 - 실패는 성공을 잉태한다"]</ref><ref>[[동아일보]] - 2010년 8월 기사 [http://news.donga.com/3/all/20100820/30624874/1 "투수 → 타자 변신 성공시대… 타자 → 투수는 왜 잘 안 될까"]</ref> 입단 초기부터 투수 훈련에 애를 먹은 그는 첫 스프링 캠프에서 당시 타격코치였던 [[박승호 (야구인)|박승호]]로부터 1년만에 타자로 뛸 것을 권유받았고, 이후 좋은 반응을 보여 1루수로 완전히 전향했다.<ref>[[마이 데일리]] - 2010년 8월 기사 [http://www1.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08101138562229 "이대호·이승엽·추신수, ‘잘 던져야 잘 친다’… 투수 출신들 맹활약"] {{웨이백|url=http://www1.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08101138562229# |date=20140814152842 }}</ref> 그가 타자로 전향하자 ‘좌승엽 우승관’으로 불리며 기대를 받았던 입단 동기 내야수 [[김승관]]은<ref>엑스포츠 - 2010년 7월 기사 [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23613 "추신수와 부산고의 황금 시대를 이끈 한화의 김백만"]{{깨진 링크|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23613 }}</ref> 상대적으로 기회가 줄어 [[2004년]] [[롯데 자이언츠|롯데]]에 트레이드된 후 [[2007년]]에 방출돼 그 해를 끝으로 은퇴했다. 타자로 완전히 적응하며 프로 첫 해부터 가능성 있는 모습을 보였다. 점차 그는 거포로서의 재능을 뽐내며 붙박이 3번 타자 겸 1루수로 자리매김했지만 내야수 [[이동수 (야구인)|이동수]]에게 밀려 데뷔 첫 해에 신인왕 수상에는 실패했다. 프로 입단 3년차인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그의 타격이 정점을 찍기 시작하면서 그는 아시아 프로 야구 역사상 최고의 타자로 거듭났다.<ref>스포츠 춘추 - 2009년 12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338 "양준혁이 말하는 ‘선구안 향상법’"]</ref>
         ** [[성공시대]] - 홈런왕 이승엽 (1999년 10월 23일)
         ** [[SBS 스페셜]] - 승엽의 시대 편 492회 (2017년 10월 15일)
  • 이유리(배우) . . . . 4회 일치
         2005년 MBC 드라마 《영재의 전성시대》에서 '영재([[김규리]])'의 여동생이자 성공한 억대 연봉의 애널리스트 '주은재'로 분했다. 극 중 성공한 당당한 커리어우먼 역이라 매회 화려한 의상과 메이크업으로 미모를 뽐냈다.
         || 2005년 || MBC || 영재의 전성시대 || 주은재 || ||
          * 2006년 인기리에 연재된 박소희 작가의 동명의 순정만화가 드라마 《[[궁(드라마)|궁]]》으로 리메이크 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네티즌으로부터 주인공 '신채경'역으로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준수한 연기력과 만화 원작의 신채경 모습과도 싱크로율이 높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결국 여주인공으로는 [[윤은혜]]가 낙점됐다. 이유리는 인터뷰에서 제의를 받았으나 연기자로서 차근차근 한 발을 내딛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사랑과 야망》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다만 '《[[궁(드라마)|궁]]》의 전작이 바로 이유리가 출연한 《영재의 전성시대》였는데 바로 다음 작품을 출연하는게 말이 안된다.', '제작사는 이유리에게 캐스팅 제의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등을 근거로 들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의견도 있으나 《영재의 전성시대》에서 이유리는 주인공도 아니였을 뿐더러 전작을 했다고 다음 작품에 출연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견에 불과하고 제작사에서 캐스팅 제의를 한 적이 없다는 주장 또한 이유리가 여러 차례 인터뷰에서 캐스팅 제의 사실을 분명히 언급했던것과는 달리 출처가 불분명 하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 주현미 . . . . 4회 일치
         참고로 [[경상남도]] [[진주시]]의 시외버스 업체인 [[부산교통]]의 안내방송에 주현미 노래의 일부분이 BGM으로 나온다고 한다.[* 주로 "어제같은 이별"과 "비 내리는 영동교"가 주로 나온다.] 이외에도 [[소녀시대]]의 [[서현(소녀시대)|서현]]과 같이 짜라자짜로 활동했다.
          * 1980년대 초반 기준으로 '''1억원'''의 빚이 있었다. 승용차가 100만원하던 시대에 그 정도의 빚이 있었다는 건 충격이 아닐 수 없었지만 워낙 인기있는 가수이다 보니 비교적 빠르게 빚을 다 갚았다. 사실 1년에 364일을 공연했다고 할 만큼 무시무시한 속도로 돈을 벌었으니 그 정도의 빚은 문제도 아니었을 것이다.
          * 2008년 EP <짜라자짜> with 소녀시대 서현
  • 청도군 . . . . 4회 일치
         [[삼국]] 시대 초기 이서소국(伊西小國)의 땅이었다. 그러다가 [[신라]] [[유리왕]] 때 신라에 병합되었다. 후에 구도성의 경내 솔이산, 경산, 오도산의 3[[성(건축)|성]]을 합하여 대성군(大城郡)을 두었다. 경덕왕 때 구도를 오악현(烏岳縣)으로 개칭하고, 경산을 형산현(荊山縣)으로, 솔이산을 소산현(蘇山縣)으로 고쳐 밀성군(密城郡, 현 [[밀양시]])의 소속으로 삼았다.
         [[고려]] 시대였던 940년(태조 23) 오악현, 형산현, 소산현을 통폐합하여 청도군이라 하였다가 밀성군에 속하게 하였다. 1366년(공민왕 15)에 청도군이 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1405년 10도제 실시로 경상도 청도군이 되었다가 태종 때 좌우도로 분할할 때 경상좌도에 속하였다. 1413년 지방제도 개혁에 따라 대구도호부에 속하였고 1433년 다시 밀양도호부로 환원하였다가 1458년 대구진에 속하였다. 1896년(건양 1) 13도제(道制) 실시로 청도군이 되었다.
         사실 오래된 걸로 치면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하는 진주전국민속투우대회가 오래되긴 했지만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는 하나 정확한 시기는 불명), 청도소싸움대회가 여러가지 부대행사(로데오,콘서트,루미나리에 등)를 준비하면서 인지도를 차곡차곡 쌓아가는지라 진주시에서도 바짝 긴장한 듯.
  • 춘추 . . . . 4회 일치
         춘추시대, 각국의 사관이 편찬한 공식적인 기록이다. 『[[맹자]]』에서는 진에 '승', 초에 '도올', 노에 '춘추'(晉之乘, 楚之檮杌, 魯之春秋)가 있다고 하였으며, [[묵자]]에는 주나라, 송나라, 연나라, 제나라에 춘추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춘추는 점차 국가 기록이 아닌 개인에 대한 기록에도 쓰이게 됐는데, 여씨춘추, 노씨춘추, 안자춘추 등이 그것이다.
         춘추는 역사서이며, 당시 학문을 익히던 사람들의 교과서이기도 했다. 『국어(國語)』에는 초어상 진어칠(楚語上 晉語七) 편에서 춘추를 배우고 익혔다는 언급이 있어, 춘추시대에 이미 춘추가 교과서로서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본래 춘추는 단지 과거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 소박한 용도로만 쓰였던 것으로 보이지만, [[공자]]와 연관되면서 복잡한 '춘추학'의 체계를 갖추게 된다.
         『[[맹자]]』에서는 "공자가 노의 춘추를 고쳐써서 춘추경(春秋)을 만들고, 거기에 의(義)를 담았다"고 설명하였다. 여기에서 보듯이, 전국시대의 유학자들은 유학자들은 공자가 춘추에 작은 표현(미언微言)으로 큰 뜻(대의大義)을 담는 '미언대의(微言大義)'를 실천했다고 여기게 된다. 이 춘추경에 담긴 뜻을 '춘추대의'라고 하며, 이를 풀이함으로서 춘추에 담겨 있다고 여겨지는 공자의 뜻을 해석해내는 '춘추학(春秋學)'이 나타나게 된다.
         한나라 시대에는 춘추가 중시되면서, 춘추에 대한 해석도 함께 편집하여 해석에 따라 3종류의 춘추가 나타나게 된다. 가장 먼저 만들어진 것이 춘추공양전이며, 그에 대항하여 춘추곡량전, 마지막으로 춘추좌씨전이 나타난다.
  • 켄카양성패 . . . . 4회 일치
         싸움을 억제할 이유가 있었던 데는 사무라이들의 호전성도 있었다. [[무로마치 시대]]에서 [[일본 전국시대]]에 걸쳐서, 사무라이들은 불합리할 정도로 복수심이 강했다. 현대적인 관점에서는 피해자가 명백하게 자업자득인 경우조차도 집요하게 복수를 했다. 켄카양성패는 이러한 문화에서 전국 다이묘들이 불합리하더라도 질서를 잡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나타난 법이다.
         이 관습은 본래 사무라이 계층의 것이었지만, 무로마치 시대에서 에도 시대에 걸쳐서 사무라이 계층의 풍습이 관습법적으로 여겨져 사회 전반에 퍼지게 되었다.
  • 트로피코 4/건물 . . . . 4회 일치
         ||쓰레기는 그냥 바다나 길거리에 버리면 그만인 좋은 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 이젠 환경주의자들이 이웃들더러 쓰레기는 쓰레기 처리장에 버리라고 강요하는군요. 이런 쓰레기 같은!
         ||전기가 없다면 나라는 석기시대로 퇴보할 것입니다. 발전소는 각하께서 이 이국적인 작은 섬에 비싼 고급 건물들을 건설하실 수 있도록 해드리지요.
          * 우라늄 농축: 요즘 같은 시대에 좀 잘 나가는 국가들 사이에서는 우라늄 농축이 유행이라고 합니다. 왜인진 모르겠으나, 분명 뭔가 죽여주는 이유가 있겠지요. 우라늄 농축 모드로 설정되어 있는 모양에는 핵무기 프로그램에 유지비가 전혀 들지 않게 됩니다.
          * 지하감옥 - $3,000 소모. 식민지 시대때 쓰였던 요새를 세련된 재교육 시설로 바꿉니다.
  • 한규복 (1881년) . . . . 4회 일치
         {{인용문2|자수 편지<br /><br />천운(天運)이 순환하사 우리 [[대한민국]]이 탄생되니 산천(山川)과 초목이 다시 금빛이 나고 잃었던 자유가 우리 몸에 다시 오니 일반의 환희는 무엇으로 형용하리요. 하물며 일제시대에 허다의 압제를 견디면서 관리생활을 계속한 본인으로서는 더욱더욱 감개무량이외다. 본인은 대한제국시대에 관비유학생으로 일본에 유학하여 조도전 대학早에서 정치경제과를 졸업한 고로 행정관으로 출세하여 민중지도에 노력하겠다는 이상을 가지고 관계(官界)에 투신하여 도지부 서기관으로 재임한 채로 병합을 당하여 임시토지조사국 감사관에 임명되었을 때 본인은 자신처리에 대하여 재삼 고려한 결과 나의 지력과 성력의 한도대로 민중을 지도하는 것이 차라리 유리하다는 견해로 관리생활을 계속하여 [[도지사]]를 역임하고 正4位 勳3등까지 되었으니 가위 고급관리의 지위까지 점진하였다고 하겠으며 30여 년간 관리생활을 하는 중에 민중의 계발을 여하(如何)한 정도로 하였느냐 하면 구체적으로 진술할 재료는 제공치 못하나 다만 양심적으로 민중을 지도하고 또한 민중의 의지를 대표하여 항거할 점은 어디까지든지 항론도 사양치 아니 하였으며 평범한 정치로 민중에 임하고 공정렴근(公正廉謹)으로서 관계일생(官界一生)의 목표로 삼은 것은 천인(天人)이 공인(共認)하는바 옵니다. 그러하니 민중에 대하여 행복이 되고 이익이 된 점을 일일이 수거치는 못하고 다만 장구한 세월의 관리생활을 하였다는 것밖에 남지 않았으며 무엇이라고 변명하오리까. 금일에 지하여는 전일의 양심적으로 민중을 위하여 음으로 양으로 보도, 노력한 점은 무형(無形)으로 돌아가고 다만 관계생활(官界生活)을 하여 일제에 아부한 자로 추인되어 이 점이 기탄불기(慨歎不已)할 뿐더러 관리생활로 일생을 보낸 것이 참회되는 바이며 근신(勤愼)할 뿐이 옵니다. 오직 현명한 당국의 선악을 분별하사 관대한 처분만 바라옵고 감히 소회(所懷)의 일단을 진백(陳白)하나이다.<br><Br>단기 4282년 8월 12일<br />위 인 한규복<br><br>반민행위특별조사위원회 귀중|[[1949년]] [[8월 12일]] 자수 직전에 [[반민특위]]에 보낸 편지}}
         [[1949년]] [[8월 31일]]의 [[반민특위]] 최종 심리에서 그는 반민법(제4조 2항, 3항) 위반의 혐의를 받았지만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사실及이유 본건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의 의견서 기재 범죄사실에 관하여 수사한 바, 피의자는 한일합방 전부터 일제시대까지 30여년 간에 亘하여 관리생활을 계속하고 최후에 [[중추원]] [[참의]]까지 임명받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겠으나, 평소 그가 악질적으로 민족에게 해를 끼쳤다는 현저한 증거가 없음으로 주문과 如히 결정함'이라고 결정되었다. 그는 순순히 수사에 협조, 진술하여 정상참작이 되었다. [[1950년]] 초 한규복은 [[김시권]](金時權) 등과 함께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사회운동가이자 문학평론가인 [[김두용]](金斗鎔)은 그가 악성 반역자는 아닌 것으로 봤다. 그에 의하면 '고관 전직자, 친일파의 거두 등은 기장지무(巳張之舞<ref>이미 춘 춤</ref>)이니 이러한 기회에 일층 적극 진충보국하면 자기 개인은 물론이요, 우리 민족적으로도 장래에 유리할 것으로 생각한 자<ref>김인덕, 《일제시대 민족해방운동가 연구》 (국학자료원 펴냄, 2002) 67페이지</ref>
  • 호농 . . . . 4회 일치
         일본의 호농 계급은 [[에도 시대]] 말기에서 [[메이지 시대]]에 걸쳐서 나타났다. 대규모 토지를 보유하고, [[소작농]]에게 소작을 시키거나 일부를 자작농으로서 경작하였다. 또한 양잠업이나 직조업 같은 [[수공업]]이나, [[상업]]도 겸업하여 부를 쌓았다.
         이들은 일본의 무라(농촌 마을) 사회에서 지도자 격인 촌역인(村役人, 무라야쿠닌)을 맡는 경우가 많았으며, 후기 에도 시대에 정치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메이지 시대에는 점차 호농형 생산이 줄어들고, 직접 농업이나 생산에는 참여하지 않는 [[지주]] 계급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늘어났다.
  • 황희두 . . . . 4회 일치
         * "우리 시민들과 박원순 시장님께서 계신다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청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시민시대 창립식 中》
         <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25552|'박원순 근위병' 시민시대 출범...더민주 의원들 참석 축사</ref>
         *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도래한 이 시대에도 여전히 게임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 무척 아쉽다. 공부 외의 게임의 길에서도 충분히 인생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널리 알리고 싶으며, 선수 시절 게임에 더 미치지 못했던 점을 후회한다. 그래도 무언가에 미쳤던 경험 속에서 인생의 지혜를 배웠다고 생각하여 무척이나 행복하다." - 《Global Leaders Club 게임 관련 특강 中》<ref>http://www.kns.tv/news/articleView.html?idxno=358096|프로게이머 출신 청년문화포럼 황희두 회장, Global Leaders Club 포럼에서 게임관련 특강 실시</ref>
  • 히나마츠리 . . . . 4회 일치
          * 히나 인형(ひな人形) - 히나마츠리에 장식하는 인형. [[헤이안 시대]]의 궁중 의상을 모델로 하고 있다.
         히나마츠리의 유래는 확실하지 않다. 헤이안 시대에는 인형 놀이로서 행해지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에도 시대에 장식물과 놀이로서의 의미 이외에, 인형이 대역이 되어 재액을 대신 받아낸다는 주술적인 의미가 포함되었다. 에도 시대에 일본 전국에 널리 퍼진 풍속이 되었다.
  • 경순왕 . . . . 3회 일치
         [[935년]] 11월 그는 재위 8년만에 신라의 천년 사직을 고려에 양국(讓國)하고, [[고려]] 조정으로부터 상주국(上柱國) 낙랑왕(樂浪王)에 봉군되었다. 또 정승공(政承公)에 봉해지고 [[경주시|경주]]를 식읍으로 하사받았는데 그 품위가 [[태자]](太子)보다 높았다. 신란궁(神鸞宮)을 하사 받고, [[경주시|금성]]의 [[사심관]]에 임명되어 [[고려|고려시대]] 사심관 제도의 시초가 되었다.
         [[935년]] 12월 경순왕을 정승공(正丞公) 상주국(上柱國) 낙랑왕(樂浪王)에 봉하고 위계를 태자(太子)의 위에 두고 녹봉으로 1,000섬을 주었다. 또 왕을 모시고 온 관원과 장수들도 모두 다 관직을 주어 등용시켰다. 신라를 [[경주]]로 고치고 식읍으로 삼도록 하고, [[경주]]의 [[사심관]]에 임명하여 [[고려]]시대 사심관 제도의 시초가 되었다.
         그 후 원본은 사라졌지만 조선시대에 이모한 작품 5점이 전하고 있다. 5점은 [[1677년]](숙종 2년) 강원 원주의 고자암에서 제작한 것, [[1749년]] 경북 영천 은해사 상용암에서 그린 것, [[1794년]] 초상화가 이명기가 은해사본을 보고 다시 그린 것, [[1904년]](광무 8년) [[승려]] 출신 [[대한제국]]의 화가 이진춘이 이명기 본을 보고 다시 그린 것과, 이진춘 본의 초본 등이다.
  • 규성 진씨 . . . . 3회 일치
         진나라는 민공 월(湣公 越) 시대에 초혜왕(楚惠王)에게 멸망당한다. 진나라 공실에서 많은 성씨가 파생된다.
         춘추시대에 규성 진씨에서 규성 전씨가 분리된다. 진(陳) 나라의 공자 완(完)이 [[제나라]]로 망명하고, 제환공에게 중용되면서 전(田)씨가 시작되었다. 진씨가 전씨로 바뀐 까닭은 몇 가지 설이 있는데 (1) 진완이 전(田) 땅을 [[식읍]]으로 받았다.[* 《사기집해》, 응소] (2) 진(陳)과 정(田)이 음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 《사기색은》, 사마정] (3) 진완이 본국의 이름을 쓰기를 꺼려했다.[* 《사기정의》, 장수절] 등이 있다.
         [[손씨]](孫氏) 역시 전씨에서 갈라져 나오는데, 전완의 5대손이 군공을 세워 손씨(孫氏)를 하사받았고, 그 손자가 [[손자병법]]을 저술한 병법가 [[손무]](孫武)이다. 『신당서(新唐書)』「재상세계삼하(宰相世系三下)」에서는 손무의 아버지를 손빙(孫憑)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 후손으로 삼국시대에 오나라를 세우는 [[손견]] 등이 있다.
  • 기간트 . . . . 3회 일치
         작중 등장한 다른 비행체는 물론 어떠한 무기와 견주어도 대단한 전투력을 지니고 있었다. 솔직히 작중 시대에서는 정상적인 교전에서 대등하다고 볼 존재가 없으며, 그야말로 전쟁을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봐도 무방한 존재다. 그렇기에 레프카는 기간트를 부활시켜 세상을 지배하는데 쓰려 했다. 그러나 이런 기간트조차도 코난과 그의 친구들을 저지할 수는 없었다. 결국 최후에는 코난이 탑승하게 된 탈출용 부분 외에는 바다에 추락한 후 대폭발한다. 이 과정에서 레프카와 심복들은 전멸한 것으로 보인다.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마지막으로 나온 걸 봐도 이들이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었다. 불타던 기간트가 바다로 추락할 당시 엄청난 파도와 그 압력을 봐도 도저히 견딜 수 없었거니와 그 거리에서 떨어진 충격을 봐도. 게다가 마지막에 바다로 추락하며 기간트가 터진 위력은 거의 핵폭발급이었다.
         참고로 기간트가 추락한 바다 아래에는 과거 시대의 도시가 있었다. 기간트가 구시대의 상징물로도 해석될수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의미깊은 부분.
  • 김미숙(1959) . . . . 3회 일치
         동 시대 활동하던 다른 여배우들에 비해 빼어난 외모는 아니지만, 특유의 분위기와 그 이미지에 맞는 연기력으로 80년 대의 톱 여배우 중 한 명으로 성장한다. 특이한 사항은 또래의 여배우들과 달리 이 시기에 영화 출연이 거의 없다는 것인데, 에로시티즘이 만연하던 ~~3S의 그림자~~ 80년대 영화계가 본인과 맞지 않다고 느껴 TV를 위주로 활동했다고.
          * [[1998년]] [[SBS]] 《[[삼김시대(드라마)|삼김시대]]》 ... [[육영수]] 역
  • 김부식 . . . . 3회 일치
         '''김부식'''(金富軾, [[1075년]] ~ [[1151년]])은 《[[삼국사기]]》를 쓴 [[고려]] 시대 학자·문신·역사가이다. 본관은 [[경주 김씨|경주]], 자는 입지(立之), 호는 뇌천(雷川),<ref>[http://people.aks.ac.kr/front/dirservice/dirFrameSet.jsp?pUrl=/front/dirservice/ppl/viewDocumentPpl.jsp?pLevel2Name=&pLevel3Name=&pAgeCode=&pAgeName=&pGanadaFrom=&pRecordID=PPL_5COb_A1075_1_0001702&pPplCount=&pOrderByType=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ref> 시호는 문렬(文烈)이다.
         * 《[[무인시대 (드라마)|무인시대]]》 [[KBS]] 드라마, [[2003년]]~[[2004년]], 배우 : [[주효만]]
  • 데부 . . . . 3회 일치
         [[에도 시대]]에 쑥 튀어나왔다는 뜻인 뎃파리(出っ張り,でっぱり)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이는, 「뎃푸리(でっぷり)」나 「데부데부(でぶでぶ)」라는 표현이 있었다. 이 뎃푸리나 데부데부가 명사화 되어, [[메이지 시대]] 이후로 명사로서 「데부(デブ)」가 되었다고 여겨지고 있다.
         [[메이지 시대]]부터 명사로서 '데부'가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 라늬 . . . . 3회 일치
         [*[2013년 ]] Lpg출신 (효녀시대,빵야빵야)앨범발매
         *[[2013]] ;(효녀시대),(빵야빵야)
         바다의공주,사랑의초인종 ,사랑의KTX,효녀시대,빵야빵야 ,몽땅몽땅
  • 마기/344화 . . . . 3회 일치
          * 알마트란 시대의 희생자들은 모두 일 일라와 연결된 공간에서 무기력하고 지루한 생활을 지속하고 있었다.
          * [[알리바바 사르쟈]]는 [[아르바(마기)|아르바]]에게 자신이 사후세계, 일 일라와 연결된 공간에서 겪었던 일을 알려준다. [[연백룡]]과 싸우다 패한 것만이 기억에 있는 그는 갑작스럽게 아무 것도 없고 시간 조차 흐르지 않는 곳으로 날려져 당황하지만 곧 주변에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는 가까운 곳에 있던 삼인조와 말문을 트는데 이들은 [[알마트란]] 시대 솔로몬 대왕의 동료였던 [[와히드]]와 [[셋타]], 그리고 와히드의 자식 [[테스]]였다.
          그걸 깨닫게 되자 근처에는 보통 인간과 다른 이종족들도 여럿 있는게 보인다. 알리바바는 "전설 상의 시대 속 사람들과 만났다"는 흥분에 방금 전의 침울함도 잊어버린다.
  • 만쥬 무섭다 . . . . 3회 일치
         [[명나라]] 시기 풍몽룡이 저술한 『소부(笑府)』에 기록되어 있으며, 이 책은 일본에서 [[에도 시대]]에 출판되어 많은 인기를 끌었다. 송나라 시대의 『피서록화(避暑録話)』, 명나라 시대의 『오잡조(五雑組)』에도 유사한 이야기가 보인다.
  • 바키도/110화 . . . . 3회 일치
          * "그 시대에게 배운 자로서, 그 시대를 좇는 자로서, 그 시대에서 이어지는 자로서, 미야모토 무사시와 대치는 피할 수 없는 책무"라고 답한다.
  • 박녹주 . . . . 3회 일치
         [[송만갑]]과 그 제자 김정문에게서 소리를 배웠고, 그녀가 주장한 예술적인 기반 자체가 동편제였기 때문에 계보상으로 동편제 명창에 속하며, 20세기에 들어서 송만갑제 판소리의 전승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1964년]]에 처음 춘향가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될 때 남긴 녹음자료에도 송만갑제의 더늠[* 일종의 '마스터피스'와 같은 의미로 명창들이 새로 짜거나 과거의 것을 이어받아 방창한 대목을 말한다.]을 중심으로 하는 대목을 맡아서 소리를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는 송미경, 「판소리 춘향가의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배경 및 지정자료 <춘향가>(1964)의 성격」, 『구비문학연구』 41, 2015 참조.] 그러나 실제로는 송만갑이나 김정문 이외에도 서편제의 김창환, 정정렬에게서도 소리를 배우는 등 사승 자체는 동편제나 서편제를 가리지 않고 배웠으며, 동편제 흥보가를 부르면서도 제비노정기 만큼은 서편제인 김창환의 소릿제로 부르고 있는 등, 동시대 여러 명창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유파를 겸했던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듯 하다. 다만 [[송만갑]]이나 정정렬 이외에도 동편제 명창인 박기홍, 유성준에게서도 배웠던 만큼 동편제의 소리 지향에 가까운 소릿제를 부르긴 하였다.
         이처럼 판소리, 그 가운데에도 흥보가 전승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자 당대의 슈퍼스타였는데 일반 대중들에게는 [[김유정(소설가)|김유정]]의 스토킹 상대로 많이 알려져 있다. 시대시대였고 김유정이 훗날 소설가로 유명해지는 바람에 한동안 짝사랑으로 포장되었으나, 사실 김유정의 행동거지는 악질 스토커의 그것이었다. 김유정은 박녹주가 자신의 마음을 안 받아준단 이유로 그녀에게 혈서를 보내는가 하면, 박녹주가 가마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노려 사람을 납치하려고도 들었다.[* 심지어 명목상이지만 박녹주는 그때 유부녀였다. 임자가 있는 몸인데도 저랬다는 소리다!] 그러다보니 박녹주는 김유정이라면 질색을 했다. 특히 김유정 때문에 박녹주가 받은 고통을 생각하면 그가 한 행동은 사랑을 핑계로 극심한 민폐를 끼쳤을 뿐이다. 그래도 결국 김유정에게 동정심이 없진 않았는지 김유정의 친구인 안회남이 김유정이 죽고 난 뒤 오히려 자신더러 김유정을 죽인 살인자라며 매도하는 안회남에게 그때 손 한번 잡아주기만 했더라면 그렇게 죽지 않았을거라고 동정했다고 한다. 스토커에 시달리다 못해 그의 친구마저 되려 자신을 매도하려 했음에도 이런 말을 했다는 건 어찌보면 정말 대인배다.
  • 박술희 . . . . 3회 일치
         '''박술희'''(朴述熙 또는 朴述希, ? ~[[945년]] [[10월 24일]]([[음력 9월 16일]]<ref>『[[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권2, [[고려 혜종|혜종]](惠宗) 2년(945) 9월 16일(기유)</ref>))는 [[신라]](新羅) 말기와 [[후삼국시대]](後三國時代, 사람이며, [[고려]](高麗) 초기의 [[무신]](武神)이다. [[고려 태조|태조]](太祖)의 측근 중의 한 사람이다. [[면천 박씨]](沔川朴氏)의 시조로 [[고려]]高麗) 전기의 무신(武神)이자, 개국공신으로 [[호 (이름)|시호]]는 엄의(嚴毅)이다. 대승(大丞) 득의(得宜)의 아들이다. [[눌지 마립간]](訥祗 麻立干)시대의 문신 [[박제상]](朴堤上)과 [[백결 선생]](百結 先生)의 후손이다.
         [[신라박씨선원세보]]에 의하면 그는 [[눌지왕]]시대의 문신 [[박제상]]과 [[백결 선생]]의 후손이라 한다. 박제상의 아들 박효원의 후손인데, 박효원이 아들이 없어 삼촌 박지상의 아들 충혼의 아들 등원을 양자로 삼았고, 그로부터 세계가 이어졌다. 아버지는 대승 박득의이고 할아버지는 박기원이다.
  • 박용우(배우) . . . . 3회 일치
         그러다가 [[2003년]] [[한국방송공사|KBS]]의 [[KBS 대하드라마|대하드라마]] [[무인시대]]에서 [[경대승]] 역을 맡아 호평을 받으며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더욱이 이 캐스팅은 초기 미스캐스팅이라는 여론[* 심지어 그 친하다는 정우성까지 '''형이 장군이라곸ㅋㅋㅋㅋㅋ'''이라며 --비--웃었다 한다.]을 불식시킬 만큼 호연이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명성을 가져다 준 역할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처럼 사극에서의 호연으로 [[무명]] 시절을 벗게 된 [[케이스]]로는 [[김명민]]이 맡았던 [[이순신]] 역,[* 박용우와 김명민은 2002년 '스턴트맨' 이란 영화의 투톱 주연으로 캐스팅되어 촬영까지 진행했었다. 그러나 김명민의 부상과, 치료 후에도 흥행 전망에 비관적인 제작사와 투자사의 포기로 엎어지고 말았다. 그 후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침체기를 겪은 두 배우가 나란히 대하사극 주인공들로 인상 깊은 연기로 재기했다.] [[김남길]]이 맡았던 [[비담]] 역 등이 있겠다.
          * '''[[무인시대]]''' (KBS1, 2003) - '''[[경대승]]''' 역
         || 2003년 || [[KBS 연기대상]] || 우수연기상 || 무인시대 ||
  • 병거 . . . . 3회 일치
         전투용으로 쓰이는 [[마차]]를 뜻하는 말. 좁은 의미의 병거는 고대의 청동기 문명 시기에 여러 지역에서 널리 사용되었으며, 청동기 시대 이후로는 [[기병]]에 밀려서 대부분의 지역에서 실용성을 거의 상실했다.
         [[청동기 시대]]의 병거는 여러 마리의 말이 끄는 2륜 마차가 주로 쓰였다. [[마부]]와는 별도로 [[활]]로 적을 저격하는 [[궁사]]가 탑승하였는데, 대개 이 궁사가 병거가 가진 전투력에서 핵심이자 리더를 맡았으며 병거를 탄 전사들은 청동기 문명에서 [[귀족]] 계급을 차지하였다. 전장에서는 빠른 기동성과 돌파력으로 보병을 이끌었다.
         청동기 시대에는 직접 탑승하는 [[기병]]의 발달은 미비하였는데, 고대에는 말의 품종 개량이 부족하여 승마에 적합한 말이 적었고 따라서 승마가 불가능하거나 그 효용성이 낮았기 때문이다. [[보병]]은 병기의 발달이 부족하여 그리 큰 전력이 되지 못했는데, 청동기로 대표되는 청동기 문명이라고 해도 [[청동]]의 제조에는 높은 야금 기술이 필요하여 청동기는 생산성이 낮았다. 대개 청동기는 소수의 귀족 계급만이 무기나 제례 도구로 사용하였고, 보병의 무기나 일상 도구는 [[석기]]나 [[나무]], [[구리]]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보병과 기병의 발달이 부족한 상황이라, 야전에서 병거는 무서운 위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 서부개척시대 . . . . 3회 일치
         [[미국]]의 서부개척시대는 미국-멕시코 전쟁 등을 전후하여 미국인들이 아메리카 대륙 서부로 이주하고, 그 과정에서 원주민, 멕시코인 등과 충돌하며 미국의 영토로 확정해 나갔던 시기를 뜻한다. 현재의 초강대국 미국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며 미국인들에게는 꿈과 희망의 시대지만, 원주민에게는 백인들의 대침략이 벌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흔히 '웨스턴'이라 불리는 장르의 영화가 이 시대를 묘사하게 되었다.
  • 신민아 . . . . 3회 일치
         본명은 양민아. 중학교 2학년이던 1998년 10월 패션잡지[* 90년대 후반 당시에는 각종 패션잡지가 창간되고 '패션잡지 전성시대'였고, 10대 여자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달별로 패션잡지를 사서 학교에서 돌려보는 일이 유행했다. [[배두나]], [[김민희]], [[김효진]] 등 잡지 모델들의 인기도 상당했으며, cf모델등을 거쳐 연예계에 진출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또한 잡지 부록 경쟁도 한창 치열하여 다이어리, 화장품, 가방등 다양한 부록이 선보였다.] '키키'(현재는 폐간)의 전속모델 선발대회로 데뷔했다. 이런 이야기에서는 의례 들어가기 마련인, '친구'가 '장난삼아' 써준 응모원서를 냈고, 대회에서 춤도 추고 표정연기도 하는 끼많은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숫기없이 꾸벅 이름만 간신히 말하고 들어갔는데도(심사위원들이 될성부른 떡잎을 알아본건지) 대상으로 뽑혔다. 워낙 나이가 어려(당시 15세) 대회 심사위원들 사이에서도 우려를 낳았지만, 1년도 지나지 않아 스포트 리플레이를 시작으로 예스비, dop, tea, 017등 각종 화보와 지면광고를 찍는 등, 김효진, 김민희와 더불어 대표적인 틴에이져 잡지모델로 활발히 활동했다. 키키 전속이 끝난 뒤에는 당시 유행했던 거의 모든 잡지(쎄씨, 신디더퍼키, 유행통신, 피가로 등)에 인기있는 모델로 얼굴을 도배했고, 촉촉한 초코칩, 네스카페, 코오롱 샴푸, 위스퍼, 매직 스테이션 등 tv광고도 수없이 많이 찍을 정도로 잘 나가는 유망주였다. 대중에게는 [[이승환]]의 '당부' 뮤직비디오.[* 이 '당부' 뮤직비디오는 1999년에는 [[엠넷]]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영상음악대상]]에서 당시의 대세였던 [[아이돌]]들의 뮤직비디오를 제쳐버리고 대상을 받았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뮤직비디오다.] 로 "저 처자는 누구냐"는 반응을 끌어내며 얼굴을 널리 알렸고, 가요프로그램에서 순위를 알려주는 VJ로 출연하는 등 본격적으로 방송에 진출하게 되었다.
         연기를 잘 한다고는 할 수 없는 편이기에 기존에 형성된 이미지에 맞춰 캐릭터를 선별하는 방향으로 작품들을 선택해서 나아갔어야 했는데 경력 초반에는 오히려 고도의 연기력이 필요로 하는 이죽사나 마왕을 했고 이후 나름 자신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작품들을 선택했으나 이미 이런 작품들의 시대는 지나간 지가 오래였다. 연기력을 키워 자신의 연기의 폭을 넓혀 다양한 작품을 고르고 골라 선별해야하는데 이제 그걸 받쳐줄 연기력 없이 작품만 꾸준히 찍으니 이러한 참사가 계속 반복되고 있다. 연기력을 기르든지 아니면 최근의 [[전지현]]처럼 자신의 캐릭터를 확실하게 살려줄 만한 작품들을 잡아가든지 둘 중의 하나의 방향으로 선택해야 좋은 결말에 이를 듯 싶다.[* 사실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연기 스펙트럼이 좁다는 것을 뜻한다. 자연스러운 연기, 멜로 연기는 상당한 연기 수준을 가지고 있으나 확실히 다른 작품에서는 부족함을 보여준다.]
         || 2006년 || [[디올(브랜드)|Dior]] 타임리스 뷰티 어워즈 || 이 시대 가장 아름다운 여배우상 || ||
  • 야규 무네노리 . . . . 3회 일치
         전국시대 말기, 에도 시대 초기의 인물. [[에도 막부]]의 관료, 정치가, 검술가. 야규 무네토시 세키슈사이(柳生宗厳 石舟斎)의 아들.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임관하여, 도쿠가와 쇼군의 호위 무사와 검술 지도역으로 2대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 도쿠가와 이에미츠 까지 보좌하였다. 에도 시대 야규 신음류(柳生 新陰流)의 번영의 초석을 놓았다. 검술가, 정치가로서 평가가 높다.
  • 양시칠리아 왕국 . . . . 3회 일치
         양 시칠리아 왕국은 나폴레옹 시대의 [[헌법]]을 폐기하고, 나폴리에 있는 중앙정부의 중앙집권적 통치하에 놓였다. 시칠리아에서는 자치를 요구하는 분리 운동이 시작되었다. 역대 왕들은 보수적인 경향이 강하여, 민족주의나 개혁사상을 배척하고 오래된 사회, 정치 구조를 유지하려는 통치를 유지했다.
         구시대적 체계를 유지한 양시칠리아 왕국은 경제적으로 상당히 낙후되었는데, 사실 북부의 사르데냐-피에몬타 왕국은 경제적 문제 때문에 남부에 대한 병합을 망설일 정도였다(…).
         죠죠의 기묘한 모험 6부 [[스틸 볼 런]]에 등장하는 네아폴리스 왕국(ネアポリス王国)은 명칭이나 통치 지역 면에서 양시칠리아 왕국에 해당하는 듯 하지만, 작중 시기인 1890년 시점에서 양시칠리아 왕국은 이미 멸망하고 이탈리아 통일이 완료된지 오래되었으므로 현실과는 다르다. 하지만 상당히 구시대적이고 불합리하게 보이는 국가 정세나, 결국 혁명으로 왕정이 전복되버린 것은 양시칠리아 왕국과 유사점이 있을지도?
  • 연규진 . . . . 3회 일치
          극 중 둘째아들 최인욱으로 나오는 [[배우]] [[최준용(배우)|최준용]]도 [[야인시대]]에서 [[임화수(야인시대)|임화수]]를 연기하였다(...). --다만 작중 [[캐릭터]]는 법 없이도 살 순박한 [[농민]]이다.--
          * 2004년 MBC [[영웅시대]] - 박춘삼
  • 연정(우주소녀) . . . . 3회 일치
          * [[https://youtu.be/DsU5ae5SVCA|<소녀시대(소녀시대)>]] with 설아, 은서, 수빈 - 이홍기의 키스 더 라디오
          * 유독 [[소녀시대]] 데뷔곡인 [[다시 만난 세계]]와 인연이 깊다. 데뷔 전 [[프로듀스 101]] 때 이 곡을 부르고 뜬 것부터 시작해서 데뷔 후에 I.O.I 멤버들이랑도 부르고 이 곡으로 2016 KBS 가요대축제 때 [[I.O.I]], [[레드벨벳]], [[TWICE|트와이스]], [[여자친구(아이돌)|여자친구]] 합동무대를 했으며, 2018 DMC페스티벌에서는 [[우주소녀]] 멤버들과 같이 불렀다.[* 파트가 없었던 가요대축제 때를 빼고 시간 순으로 보면 점차 실력이 늘어남을 알 수있다.]--부를 때 마다 기분이 묘할거 같다-- 게다가 유연정 본인은 SM에서 [[연습생]]으로 있었고.
  • 외척 . . . . 3회 일치
         === 삼국시대 ===
         결국 후한은 붕괴하여 멸망하고, 중국은 삼국시대와 5호 16국, 남북조시대로 이어지는 막장에 빠진다. ~~에일리언 VS 프레데터~~
  • 유동근(배우) . . . . 3회 일치
         대중은 '''[[왕]] 전문 배우'''로 기억한다. 군주 역할을 많이 맡았지만 '''특유의 후덜덜한 발성'''이 강렬한 카리스마를 각인시키는 탓도 있다. 비슷하게 카리스마형 배우로 유명한 [[김영철(배우)|김영철]]이 야인시대 2부의 그 유명한 '''[[내가 고자라니|공산당 할 거야 안 할거야!!!]]'''로 대표되는 귀청이 떨어질듯 쩌렁쩌렁한 호통으로 유명하다면, 유동근은 마치 호랑이가 낮게 으르렁거리다가 포효하는 듯한, 절로 오금을 저리게 하는 초저주파 타입의 호통이다. [[https://youtu.be/DhGlBFPcmCg|이 영상을 보면 그 특유의 성난 음색이 드러난다!]] [[사자후]]라는 말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배우. 그야말로 역대급이다. 사극의 주요 배역에서도 카리스마가 있고 강력한 권력자 역을 많이 맡았다. [[계백]], [[연개소문]]이나 '''[[태조(조선)|태조(이성계)]]''', '''[[태종(조선)|태종(이방원)]]''', [[세조(조선)|세조]], [[연산군]], '''[[흥선대원군]]''' 등.
         1980년대까지만 해도 드라마에서 악역을 맡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쌍꺼풀 수술을 하고 부드러운 이미지가 생기더니 드라마에서 맡는 역할도 좋은 쪽으로 바뀌었고 그러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로맨틱한 역할의 포텐셜이 폭발한 것은 1996년 방영한 드라마 [[애인(드라마)|애인]]으로, 이 드라마에서 보여준 부드럽고 낭만적인 모습을 통해 기혼 여성들의 수퍼스타로 순식간에 자리매김했다. '''잉크블루''' 컬러 셔츠의 유행은 덤. [[불륜]]을 메인 소재로 삼은 이 드라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가정윤리를 파괴하는 저질 드라마'''라는 비난도 쇄도했지만[* 심지어 국회 문화체육상임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공영방송 [[문화방송|MBC]]가 이런 막장드라마를 방영해서 되겠냐면서 논란이 되었다.], 아무렴 어떤가. 우리는 [[막장 드라마|그보다 더 자극적인 소재로 방영시간을 가득 채운 드라마들]]이 범람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MBC 드라마 [[영웅시대]]에서는 [[이명박]] 역을 맡아 열연했는데, 박대철이란 이름으로 바뀌어 나온다.'''
  • 유지인(1956) . . . . 3회 일치
         그 당시 닮고 싶은 여성상 1위이기도 했고 몇 년 동안 연예인 소득 1위를 고수했다. 또 그 당시 여배우들 중에서 스캔들은 한 번도 없었고([[정윤희]]나 [[장미희]]만 해도 스캔들이 큰 것들이 제법 있었다. 그나마 장미희의 경우 그야말로 카더라만 무성하지만 정윤희는 문제의 그 남성과 결혼까지 했고 나중엔 자식까지 두었다.) 사생활이 깨끗한 배우였다. --근데 결국엔(...)--[* 유지인의 인생에서 스캔들이라 할 만한 건 이 모 배우와의 스캔들인데 2008년에 터진 스캔들이니 전성기가 한참 지나고 나서 생긴 스캔들이고, 인정한 것도 증거도 그 후로 엮인 것도 별로 없으니 루머일 확률이 높다.] 또한 지성미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 답게 [[윤정희]]에 이어 두 번째로 여배우 중에서는 석사 학위를 취득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70년대]] 후반 TBC 전속 탤런트인 [[장미희]], [[정윤희]]와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를 이루어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1986년]] 결혼과 함께 연예계에서 은퇴, 16년만인 [[2002년]] 이혼과 동시에 전격 복귀하여 지금도 활동 중이다.
         정윤희와 동시대에 활동한 배우들 중에서 정윤희급의 인기를 누린 배우는 유지인, [[장미희]] 뿐이었다.[* 이외에 [[김자옥]], [[이영옥]]도 많은 인기를 누리기는 했다.] [[1980년대]]에는 [[3세대 여배우 트로이카]]도 가세하지만 아무래도 신인이다 보니 2세대만큼의 인기는 누리지는 못했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3세대 트로이카라고 불릴 만큼의 인기를 누리기 시작한 것은 정윤희의 은퇴 이후이다. 물론 이들의 인기는 2세대가 활동하던 시절에도 2세대 트로이카 다음일 정도로 나름 엄청난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장미희]]는 신성일이 혹평한 대로 외모에서는 이 2명에 밀리는 편이었고, 대통령과의 스캔들에 휘말려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그에 따라 인기에서도 이들 2명에 비해 '''상대적으로''' 밀렸다. 그러나 유지인은 장미희와 달리 유일하게 정윤희와 외모에서 비견될만 했고, 인기 순위나 수입 순위에서 절정기의 정윤희와 여러 차례 엎치락 뒤치락 했다. [[2000년대]] 이후 [[김태희]]가 70년대 정윤희급의 타 배우를 압도하는 외모패권을 누릴 때 [[한가인]]만이 오똑한 콧날로 외모에서 김태희의 유일한 라이벌로 평가된거랑 비슷하다. 물론 2000년대 이후 여배우 외모의 승자가 한가인이 아니라 김태희인 것처럼 정윤희가 유지인보다는 예쁘다는 평이 많았다.
  • 유카타 . . . . 3회 일치
         본래 [[가마쿠라 시대]]에 귀인이 증기욕을 할 때 입었던 삼(麻)으로 만든 유카타비라(湯帷子)라는 옷의 이름을 줄여서 '유카타'라고 한 것이 기원이다. 카타비라(かたびら)는 「겹옷의 한쪽면(袷の片ひら,아와세노 카타히라)」라는 뜻으로서, 안감을 붙이지 않은 홀옷을 뜻한다. [[무로마치 시대]]에는 [[봉오도리]](盆踊り)가 성행하면서, 유카타가 민간에 퍼지게 되었다.
         [[에도 시대]] 이후에는 나체로 입욕하게 되면서, 목욕을 한 뒤에 입는 [[면]]으로 만든 홀옷을 유카타(浴衣)라고 부르게 되었다. 본래는 실내복이었지만, 점차 [[여름]]에 야간 등에 외출을 할 때도 입게 되었다.
  • 의상 (신라) . . . . 3회 일치
         | 제자 ={{개행 금지 시작}}[[오진 (남북국 시대)|오진]](悟眞){{.w}}[[지통]](智通){{.w}}[[표훈]](表訓){{.w}}[[진정 (승려)|진정]](眞定){{.w}}[[진장 (승려)|진장]](眞藏){{.w}}[[도융 (승려)|도융]](道融){{.w}}[[양원 (승려)|양원]](良圓){{.w}}[[상원 (승려)|상원]](相源){{.w}}[[능인 (승려)|능인]](能仁){{.w}}[[의적 (승려)|의적]](義寂) 등{{개행 금지 끝}}
         '''의상'''(義湘, [[625년]] ~ [[702년]])은 고대 [[통일신라]]시대 중기의 왕족 출신, [[승려|고승]]이다.<ref name="글로벌-의상">[[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사/고대사회의 발전/통일신라와 발해/고대문화의 융성#의상|한국사 > 고대사회의 발전 > 통일신라와 발해 > 고대문화의 융성 > 의상]],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br/>[[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사/중세사회의 발전/귀족사회와 무인정권/귀족문화#의상|한국사 > 중세사회의 발전 > 귀족사회와 무인정권 > 귀족문화 > 의상]],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ref> 또한, [[통일신라]]시대 초기의 작가이자 철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중국]] [[당나라]]에 유학하여 [[지엄]](至嚴)으로부터 [[화엄종]](華嚴宗)을 수학하고 법통을 받아 중국 화엄종의 제3 세조가 되었다.
  • 이경영(1960) . . . . 3회 일치
         '''현시대의 최고의 적폐악역 전문 배우'''
         7월 : [[군도: 민란의 시대]](땡추 역)
         ||2014||[[군도: 민란의 시대]]||땡추|| 4,775,811 ||
  • 이철희(1964) . . . . 3회 일치
         한때 [[청와대]] 행정관으로 근무한 적도 있고, 중앙 정계의 언저리를 있으면서 민주당 쪽 정치인들과도 두루 인연을 쌓았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그리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다. 두문정치전략연구소라는 작은 정치 컨설턴트 사무소의 소장으로 여러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한 바 있으나 역시 그의 인지도를 전국적으로 높여준 건 [[JTBC]] [[썰전]]이다. 이 시기 보수 진영의 패널을 맡았던 [[강용석]]과 더불어 진보 진영의 패널로서 ~~열심히 MB를 까며~~ [[썰전]]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1964년, 포항에서 3남 2녀 중 [[3남|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 [[부산광역시]] [[동래구]]로 이주하여 부산 [[동인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고 동대학원에서 석사가 되었다. 시대시대라 그런지 [[석사]] 논문 제목이 '민중통일론에 관한 일 연구 : 통일과 변혁이행의 상관성을 중심으로'인데, 별다른 건 아니고, 당대 운동권의 두 축이었던 [[NLPDR|NL]]과 [[민중민주주의|PD]]의 [[통일]]론을 비교 연구한 것이다. 대학생 시절 [[학생운동]]을 열심히 했다고 하는데, 석사 논문 주제도 그런 영향일 것이고, 군 [[입대]] 전후로도 관련 [[연구소]]에서 연구위원으로 있기도 했다. 그래도 감옥에 갇히는 신세는 면했다고 한다. 잡힌 후 감옥에 갇히는 쪽과 안 가는 쪽이 있었는데 안 가는 쪽에 포함되었다고. 그리고 감옥에 갇힌 쪽의 학생들은 모두 국회에 한 번씩은 발을 담갔다고 하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자신도 감옥에 갈걸하고 후회했다고 한다.[* 실제로는 계파 문제였을 가능성이 있다. 김한길 의원 보좌관 출신에, 위 기사에서는 손학규 전 의원 계파로 분류했는데, 두 인사는 공통적으로 당시 공천을 주도한 친노계와 앙숙이었기 때문.]
  • 일곱개의 대죄/200화 . . . . 3회 일치
          * 할리퀸과 디안느가 모두 그 시련을 받겠다고 승락하자 드롤이 어떤 술법을 써서 성전시대의 그로키시니아와 드롤의 몸 속으로 넣어버린다.
          * 갑자기 달라진 시대, 달라진 육체에 허둥대던 두 사람 앞에 멜리오다스와 엘리자베스가 나타나는데.
         이 시대의 엘리자베스는 오드아이가 아니고 오른쪽 눈도 가리지 않고 있다.
  • 일곱개의 대죄/202화 . . . . 3회 일치
          * 그로키시니아도 요정왕이기 때문에 파장이 비슷해 헬브람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그로키시니아는 헬브람에 대해선 모르지만 "할리퀸의 지인"이라 부르며 그들이 제대로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는 이상 절대로 깨어나지 않을 거라고 설명한다. 이걸로 보아 두 사람은 진짜로 성전 시대로 이동한건 아닌 것 같은데.
          * 성전 시대의 킹은 그로키시니아의 영창 바스키어스를 능란하게 다룬다. 제 2형태 가디안으로 "네크로시스"란 기술을 사용, 십계 배신의 [[카르마디오스]]의 팔에 바람 구멍을 낸다. 팔 여기저기를 꿰뚫린 카르마디오스는 무기를 놓치며 틈을 보인다.
          * 싸움이 끝나자 인간 생존자가 하나둘 나타난다. 그 중에 "로우"라는 젊은이가 다가와 감사를 표한다. 어딘지 현세의 [[반(일곱 개의 대죄)|반]]을 닮은 젊은이다. 그는 일행을 "스티그마"(빛의 성흔)가 아니냐고 묻는다. 물론 이 시대가 처음인 디안느와 킹은 알지 못하는 이름이다.
  • 일곱개의 대죄/210화 . . . . 3회 일치
          * 그런데 그러던 중에 이상한 녀석과 부딪히는데, 놀랍게도 지금 시대에 존재할리 없는 [[고서]]였다.
          * 이 시대의 고서는 감정변화가 극심하고 어딘지 정상이 아닌데, 그를 관찰하던 할리퀸은 그가 진짜 고서가 아니라고 느낀다.
          * 그 이상한 녀석과 부딪힌 할리퀸. 잠시 이동을 멈춘다. 할리퀸은 자신과 부딪힌 사람을 보고 눈을 의심한다. 이 시대에 있을리 없는 인물이기 때문. 그를 알아보지 못한 디안느는 누구냐고 정체를 묻는다. 그는 놀랍게도 [[고서]]. 그는 고우셀과 똑같은 복장을 하고 있지만 사악한 웃음을 띄운다. 그는 그로키시니아와 드롤을 알아보고 그들의 정보는 자신들도 모르는 부분까지 전부 알고 있다고 협박조로 떠들기 시작한다.
  • 일곱개의 대죄/211화 . . . . 3회 일치
          * 난데없이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과 [[디안느]] 앞에 나타난 십계 무욕의 [[고서]]. 그러나 이 시대 사람이 아니고 그가 마신족 출신인 것도 몰랐던 둘은 그를 무욕의 고서가 아니라 일곱개의 대죄 멤버였던 고서로 생각하고 있다. 물론 그런 사정은 고서 본인도 모르는 일이다. "고서가 아니다"라는게 무슨 뜻이냐고 묻는 고서. 할리퀸은 확실히는 몰라도 자기가 아는 고서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고서는 "내가 모르는 날 알고 있다는 이야기"라며 흥미를 보인다.
          * 그런데 고서는 그들을 보내주지 않는다. 할리퀸이 급히 밀쳐내는 덕에 피했지만 그대로 있엇으면 디안느, [[드롤]]의 뒤통수가 날아갈 뻔 했다. 할리퀸은 고서에게 방해하지 말라고 화를 낸다. 하지만 지금 그는 성전 시대의 십계였던 고서. 문이 완성될 때까지 둘이 접근하게 둘 수 없다며 사과하지만 사과하는 사람치곤 매우 공격적인 태도다.
          할리퀸은 그건 성전시대 일이 아니라 3천년뒤 현대의 일이라고 설명해주지만 고서가 이야기를 들어버려서 상황이 꼬인다. 고서는 요정왕과 거인왕을 만난건 지금이 처음이라고 말하는데, 상황을 전달하기 위해서 결국 진실을 밝히게 된다. 할리퀸은 자신들이 진자 거인왕, 요정왕이 아닌, 그들의 몸을 빌린 존재이며 3000년 뒤 미래에서 왔다고 밝힌다. 그러면서 믿을지 말지는 그에게 맡기는데, 고서는 뜻밖에도 "재밌다"고 엄청나게 흥미를 보인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면 좋겠다고 하는데.
  • 일곱개의 대죄/214화 . . . . 3회 일치
          * 그것은 성전시대 당시의 [[젤드리스]]였다.
          * 할리퀸은 긴 악몽을 꾼 것처럼 비명과 함께 정신을 차린다. 그는 더이상 3000년 전 성전 시대에 있지 않았다. [[디안느]]와 그로키시니아, [[드롤]]에게 끌려온 나무 속이었다. 할리퀸은 아직도 현실감이 돌아오지 않았는지 자기 몸을 만져보며 원래대로 돌아온 걸 깨닫는다. 그때 진짜 그로키시니아가 말을 건다.
          킹은 새삼 무서운 선택지를 골랐다는게 실감나는지 침을 삼킨다. 그로키시니아는 그를 지긋이 쳐다보다가 가볍게 웃으며 "당신은 내가 못한 길을 골라 돌아왔다. 이건 분명 큰 성장을 줄 것이다"라고 격려한다. 그 탓인지 할리퀸도 따라 웃으며 편안한 얼굴이 된다. 하지만 자질구레하게 따지는 성미가 변하진 않았는지, 자신이 성전시대에서 배운건 그로키시니아의 몸으로 한 것이라 지금은 원래대로 돌아온게 아닌지 의심하며 전전긍긍해한다.
  • 임은정(법조인) . . . . 3회 일치
         >"이 땅을 뜨겁게 사랑해 권력의 채찍에 맞아 가며 시대의 어둠을 헤치고 걸어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몸을 불살라 그 칠흑 같은 어둠을 밝히고 묵묵히 가시밭길을 걸어 새벽을 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분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으로 민주주의의 아침이 밝아, 그 시절 법의 이름으로 가슴에 날인했던 주홍글씨를 뒤늦게나마 다시 법의 이름으로 지울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는 모진 비바람 속에서 온 몸으로 민주주의 싹을 지켜낸 우리 시대의 거인에게서 그 어두웠던 시대의 상흔을 씻어내며 역사의 한 장을 함께 넘기고 있습니다. 피고인이 위반한 대통령긴급조치 제1호와 제4호는 헌법에 위반되어 무효인 법령이므로 무죄이고, 내란선동죄는 관련 사건들에서 이미 밝혀진 바와 같이 관련 증거는 믿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피고인이 정권교체를 넘어 국헌문란의 목적으로 한 폭동을 선동하였다고 볼 수 없으므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 장남교 . . . . 3회 일치
         장남교란, 장남을 특별시 하는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을 비꼬는 표현이다.
         장남 중시는 구시대의 관습으로, 기본적으로 메이지 시대의 가독상속 제도의 흔적이다.
  • 장선우 (영화감독) . . . . 3회 일치
         * 1988년 《[[성공시대 (영화)|성공시대]]》안성기, 이혜영
         *<성공시대> 각본 감독/백상예술대상 시나리오상, 영평상 시나리오상(1988)
  • 전인범 . . . . 3회 일치
         1986년 30사단 90연대 2대대 중대장 시절에는 육군의 우수 전투중대장에게 주는 [[강재구|재구상]]을 받기도 했다. 당시 초급 지휘관으로 중대원들의 사격 훈련 중 소총 사격 영점을 못 잡는 병사를 데려다가 실탄을 주고 자신은 표적지 앞에 서서 사격을 하게 해 영점을 잡게 했다는 일화가 있다.<ref name="c">[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2742447 ‘제설작업 하고, 전역사병에게 경례’ ‘괴짜장군’의 퇴임식], 《서울신문》, 2016년 7월 29일</ref> 군사정권 시절 그가 중대장을 역임한 부대는 대학생들의 데모가 일어나면 연세대학교를 점령하는 부대였는데, 그는 국민을 보호해야하는 군인이 대학생을 진압하라는 명령에 많은 갈등을 했다. 그래서 원래는 데모 때 중대장이 맨 뒤에 서서 진압을 지시하게 돼 있는데 그는 맨 앞으로 나가서 돌 맞더라도 제일 먼저 맞고 죽으려고 했다고 과거를 회고하였다.<ref name="b">[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47&aid=0002140702 [단독] 전인범 "내 문제, 문재인에게 부담 안 돼... 아내, 구시대 법에 걸려든 것"], 《오마이뉴스》, 2017년 2월 9일</ref> [[소령]]으로 진급한 뒤에는 육군참모총장실에서 정책장교 및 군사외교협력장교 보직을 받아 많은 통번역 임무를 수행하였고, 이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2년 한미연합사령관 [[:en:Robert W. RisCassi|로버트 리즈카시]] 대장으로부터 [[:en:Commendation Medal#Army|육군표창훈장]](Army Commendation Medal)을 받았다. [[중령]] 때에는 한미연합사 작전참모부 연습처 을지포커스렌즈 연습장교를 맡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연합모의 연습을 기획하고 실행한 공로로 2002년 [[:en:Meritorious Service Medal (United States)|근무공로훈장]](Meritorious Service Medal)을 받았다.
         특전사령관 취임 후 부대의 장비 구입을 위한 예산 확보, 새로운 장비의 개발, 해외 특수부대와의 교류협력 등 특전사의 전투력 강화를 위한 개혁을 주도하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2476150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괴짜 사령관’과 특전사의 환골탈태], 《서울신문》, 2014년 10월 23일</ref> [[:en:Picatinny rail|피카티니 레일]]이나 광학장비와 같이 관행적으로 몰래 사용하던 사제 장비들의 사용을 허용하는 등 기존의 과도한 제재 규정들은 폐지시켰으며, 특히 헬기 사격, 천리행군 인증제 도입과 같이 과거에 하지 않던 실전적 훈련들을 대거 강화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3&aid=0000028778 [한국군 코멘터리] 불굴의 ‘지옥훈련’ 더 독해진 특전사], 《주간경향》, 2014년 12월 17일</ref> 우선 일반 병사보다 3배 정도 총을 더 쏘는 특전사 요원의 사격량을 5배로 늘렸고 전진하면서 사격할 때 탄피받이를 못 쓰게 하였다. 탄피 하나 없어지면 전 부대원이 나서서 찾아야 하는 것이 매우 비생산적인 일이라고 생각한 그는 대신 탄피를 주울 필요가 없도록 전진 사격 훈련시 1명이 뒤따라가게 하여 실제 몇 발을 쏘는지 세게 하였다. 또한 사령관 취임 당시 특전사에 체계적인 체력 증진 프로그램이 없어 특전사에서 35년간 복무했고 체력 단련과 관련해 박사 학위를 받은 한 원사에게 12개 코스의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지시했다. 그 결과 특전사 요원의 허벅지가 평균 1cm 커졌고 체력 프로그램 시행 후 6개월 뒤 미군 특전사 요원들과 경기를 해 수영을 제외한 나머지 종목을 한국 특전사 요원들이 다 이기게 하기도 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3&aid=0003210074 [Why] "특전사 허벅지 1cm 굵어졌다, 그게 내 자랑"], 《조선일보》, 2016년 9월 10일</ref> 이와 같은 훈련들은 특전사의 실제 전투력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50108010004329 왜 우릴 특전용사라고 부르는가?], 《아시아투데이》, 2015년 1월 8일</ref><ref>[http://www.breaknews.com/sub_read.html?uid=344947§ion=sc2 육군 특수전사령부 설한지 극복-생존훈련], 《브레이크뉴스》, 2015년 1월 9일</ref> 그리고 긴박한 전장상황에서 오역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한미 연합작전 수행능력 향상을 위해 전군 최초로 한국군은 영어로, 미군은 한국어로 브리핑하는 제도를 시행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7500588 특전사 창설 57주년 기념식… 내년 2월 이천시대 개막], 《연합뉴스》, 2014년 4월 1일</ref> 전 사령관은 이러한 자신의 개혁적인 행보에 관해 “모든 3성 장군은 4성 장군이 되고 싶어하고 4성 장군이 되는 게 군인으로서 더 없는 영광이라는 것을 나 역시 알고 있다. 일각에선 내가 부대 훈련을 실전적으로 바꾸고 개혁을 하면서 무리수를 두어 4성 장군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걱정한다. 하지만 나는 특수전사령관이고 내 임무는 4성 장군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싸워서 백전백승 할 수 있는 세계 최고의 특수전 부대를 만드는 게 나의 사명이다”라고 밝혔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17906 전인범 전 특수전사령관, 영원한 특전맨이자 진정한 군인의 퇴임], 《뉴데일리》, 2016년 7월 28일</ref> 훗날 그가 사령관을 이임한 뒤 특전사에 부대장비 및 개인물자를 납품하고 연구하는 특전사 출신의 한 예비역 대위는 “우리 군은 지나치게 ‘군복제 규정’에 얽매여 있다. 전인범 前 특전사령관은 유연한 사고를 가진 지휘관이었다. 그는 “‘군복제 규정’보다 임무와 전술향상이 더 중요하다. 사고를 유연히 하고 우수 장비라면 사제라도 활용하라”라고 이야기하면서 전술장비 및 피복의 사용과 발전을 장려했지만, 그가 교체되면서 이런 유연한 사고는 다시 움츠러들었다. 우리 군의 유연한 사고는 지휘관에 따라 들쑥날쑥 하다”며 아쉬움을 소회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8&aid=0002286112 [무기와 사회] 한국군 전투복], 《한겨레》, 2015년 8월 19일</ref> 뉴데일리 군사전문기자 태상호는 “전인범 前 특수전사령관 같은 깨어 있는 특수전 지휘관들이 (특수부대의 역량을 강화시키기 위해) 고군분투를 했지만 특수작전에 대한 군내외부의 중요성 인식 부족과 비대칭 전력을 이해하지 못하고 큰 군(Big Army)만 중요시 하는 풍토로 인해 그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라고 현 한국군에 대해 비판했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01915 [컬럼] 프로 대접을 못 받는 한국의 특수부대], 《뉴데일리》, 2016년 2월 22일</ref>
         2016년 10월부터 [[:en:Brookings Institution|브루킹스 연구소]] 동아시아정책연구센터 방문연구원, [[:en:Paul H. Nitze School of Advanced International Studies|존스 홉킨스 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 객원연구원으로 1년 동안 활동했다. 미국 연구기관의 연수는 연수자가 주제를 선정해 그 분야를 연구하며 자신의 전문 분야를 다른 연구자들과 공유하는 활동을 하는데, 그는 전시작전통제권 문제, 한국의 핵무장, 한미 군사동맹 강화 방안 등을 중심으로 연구하였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70111010007259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미국, 북핵 심각하게 평가... 미 공격 초래 상황 가고 있어”], 《아시아투데이》, 2017년 1월 12일</ref> 연수 3개월 동안 프린스턴 대학교 등 학교에서 특강,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주관하는 세미나 참여, 워싱턴 내의 많은 연구소와 기관 발표, 세미나, 회의에 참석해 미국의 생각을 이해하고 한국의 입장을 미국 전문가들에게 적극 설명하였다고 말했다.<ref>[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parent_no=59&bbs_id=BBSMSTR_000000000138&ntt_writ_date=20170117 ‘한국 안정·동북아 평화=美 국익’ 각인시켜야], 《국방일보》, 2017년 1월 16일</ref> 2017년 1월에는 특전사 예비역들을 중심으로 결성되어 전국적으로 2만 6천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는 비영리 사단법인 봉사단체인 특전동지회의 제2대 총재로 취임하였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33180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제2대 특전동지회 총재 취임], 《뉴데일리》, 2017년 1월 16일</ref> 전 총재는 취임사를 통해 “새로운 시대 변화에 부응하는 대한민국 친목단체의 새로운 章을 열겠다”고 다짐하며, “현역 후배들의 권익을 위해 앞장서고, 회원을 편애하지 않는 모두의 특전동지회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포부를 역설했다. 같은 달 [[북한]]의 [[김정은]] [[조선로동당|노동당]] 위원장에게 [[대륙간탄도유도탄|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 등의 재고를 촉구하는 내용으로 A4 용지 4장 분량의 영문편지를 보내기도 하였다.<ref>[https://www.nknews.org/2017/01/dear-kim-jong-un-an-open-letter-from-a-former-s-korean-lieutenant-general Dear Kim Jong Un: An open letter from a former S. Korean lieutenant general], 《NK NEWS》, 2017년 1월 23일</ref> ‘김정은 위원장님께: 전 대한민국 육군 중장의 공개편지’라는 제목의 이 편지에서 그는 “평화를 추구할 기회는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라면서 “가장 필수적인 첫 단계는 공공연한 위협의 회피, 핵과 미사일 실험의 중단, 핵무기 개발부터 인권에 이르기까지 신뢰를 증진시킬 협상에 참여하는 것 등을 포함합니다”라고 평화 프로세스를 제안했다.<ref>[https://kr.nknews.org/%EA%B9%80%EC%A0%95%EC%9D%80-%EC%9C%84%EC%9B%90%EC%9E%A5%EB%8B%98%EA%BB%98-%EC%A0%84-%EB%8C%80%ED%95%9C%EB%AF%BC%EA%B5%AD-%EC%9C%A1%EA%B5%B0-%EC%A4%91%EC%9E%A5%EC%9D%98-%EA%B3%B5%EA%B0%9C-%ED%8E%B8/ 김정은 위원장님께: 전 대한민국 육군 중장의 공개 편지], 《NK NEWS》, 2017년 1월 25일</ref>
  • 정주관백 . . . . 3회 일치
         관백(간파쿠)은 일본 헤이안 시대에서 부터 덴노를 대신하여 실권을 행사한 지위이다. [[후지와라 섭관가]]에서 대대로 이어받았으며 덴노가 어릴 때는 섭정(摂政)이 되고, 성인이 된 뒤에는 관백(関白)이 되는 것이 관례화 되어 이를 섭관정치(摂関政治)라 부른다. 헤이안 시대 이후로 권력이 쇠퇴하였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오툐미 가문이 일시적으로 관백의 지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에도 시대의 섭관 가문은 쇼군이 된 도쿠가와 가문의 후원으로 상당한 권위를 가지게 되었으며, 도쿠가와 가문과 혼인을 맺기도 했다.
  • 정형돈 . . . . 3회 일치
         * [[MBC 에브리원|MBC Every1]] 《[[지금은 꽃미남 시대]]》
         * [[MBC]] 《상암시대 개막특집 무한드림 (9월 1일) : 게스트》
         * [[MBC]] 《[[쇼! 음악중심]] : 상암시대 개막특집 - 422회 (9월 6일) : 가수 (형돈이와 대준이)》
  • 정호용 . . . . 3회 일치
         * [[박영지]] - 1998년 《[[삼김시대 (드라마)|삼김시대]]》 [[SBS TV|SBS]] 드라마
         * 암파편집부, 전두환시대 1~6:제5공화국정치비사제2부(중원강좌 17) (암파편집부 저, 황인 역, 중원문화사, 1988)
  • 조동혁(배우) . . . . 3회 일치
          * [[감격시대: 투신의 탄생]](2014, KBS2) - [[신이치(감격시대)|신이치]]
          * 영재의 전성시대(2005, MBC) - 박찬하
  • 조선활자본 삼국지통속연의 . . . . 3회 일치
         [[조선시대]]에 출판된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의 판본이다. 조선방각본 삼국지연의와 함께, 삼국지연구에 중요한 판본이다. 8권만이 현존하고 있다.
         [[분류:조선시대 소설]][[분류:삼국지연의]]
  • 주윤발 . . . . 3회 일치
         * 족보에 의하면 송나라 시대 관직을 지낸 [[주응두]]로 이어지는 가문 출신이라는 그는 [[삼국 시대 (중국)|삼국 시대]] [[오나라]]의 군사 [[주유]](周瑜)의 직계후손이다.<ref>
  • 진격의 거인/86화 . . . . 3회 일치
          * 아버지가 들려주는 "엘디아인의 진실"은 그들의 선조 "유미르 프리츠" 시대까지 올라간다.
          * 시대는 계속 바뀌고 기술은 더욱 발전한다. "사진"이 보편화될 무렵 예거 일가도 가족사진을 찍는데, 이것이 그리샤의 책에 남겨진 "사진".
          * 이 시대의 군사력은 신병기들을 유지할 수 있는 "막대한 양의 화석연료"를 확보하는게 관건이고, 파라디섬은 이 화석연료가 풍부한 것으로 추정된다.
  • 창원시 . . . . 3회 일치
         역사적으로 조선시대부터 한 지역이었으며, 개화기에 들어 행정적으로 완전히 분리되기 시작하였다가 2010년 다시 하나의 지역으로 통합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창원시/역사]] 문서 참조.
          * [[무학(기업)|무학소주]] : 진짜 [[마산야구장]]에서 보면 지역특산물 같아 보인다.(...) [[마산아재]] 문서를 참조. 구 마산시 시절에는 9경 5미라고 해서 나름 밀던 컨셉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일제시대 현재의 두월동 인근에 있었던 시미즈 양조장의 명맥을 계승한다.
          * [[몽고간장]] : 일제시대 몽고정 옆에 있던 간장 양조장. 현재도 몽고식품 본사가 이 자리에 있고, 경남지역 간장 시장점유율 부동의 No.1이다. 수도권에서는 기성업체에 밀려 보기 힘들지만 가성비가 괜찮기 때문에 가끔 수도권의 오래된 식당들이 플라스틱 벌크통째로 사다가 쓰는 게 관측되기도 한다.
  • 철인 28호 . . . . 3회 일치
          90년대에 방영. 초대 철인 이후의 시대라는 설정이며 새롭게 만들어진 철인들이 등장. 초대 철인도 등장한다. 이쪽도 국내 방영.
         흑백 시절에 실사화되었다. 시대시대이다보니 철인의 모습이.....
  • 최재성(배우) . . . . 3회 일치
         젊은 시절 간지나는 잘생긴 외모로 각광을 받으며 영화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주연을 잡아 스타덤에 올랐다. 나이가 들어서도 미모는 죽지 않아 [[여명의 눈동자]]에서 최대치 역으로 호평받았다. 한동안 슬럼프를 겪다가 야인시대에서 마루오카 역으로 다시 슬럼프를 씻어냈다. 이후 [[MBC]] "개와 늑대의 시간"의 마오[* 드라마 자체도 큰 호평을 받았고, [[악역]]이면서도 사연이 있는 캐릭터를 맡아 연기력과 카리스마도 제대로 드러나서 호평을 받았다.], [[KBS]]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원균]], [[SBS]] 연개소문에서는 이밀 역을 맡았다. 연개소문부터는 나잇살이 부쩍 많이 붙었다. 2010년 이후에는 재력가, 정치인, 특히 가족의 출생의 비밀을 가진 비운의 아버지 등의 역을 잘 한다.
          * [[2002년]] SBS 대하드라마 《[[야인시대]]》 ... [[마루오까]] 역
          * [[2014년]] KBS 수목드라마 《[[감격시대: 투신의 탄생]]》 ... [[신영출]] 역
  • 최정호 (성우) . . . . 3회 일치
         '''엄길청의 성공시대 ([[KBS 2라디오]])'''
         * [http://www.kbs.co.kr/radio/radio_drama/rd_last/con/aod/index.html 엄길청의 성공시대]{{깨진 링크|url=http://www.kbs.co.kr/radio/radio_drama/rd_last/con/aod/index.html }} - '''[[엄길청의 성공시대]] ([[KBS 제2라디오]])'''
  • 카케오치 . . . . 3회 일치
         전국시대부터 에도 시대까지는, 전란이나 세금, 빈곤, 악행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도망치는 것을 나타냈다.「결락(欠落),(카케오치欠け落ち)」이라고 썻다. 여기에는 특정한 집단에서 빠져나가는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 카케오치는 여기에서 유래한 말이다.
         지금과 같은 의미가 된 것은 메이지 시대 쯤이다.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번 . . . . 3회 일치
         >센고쿠 지다이(전국시대)가 끝난 이후, 약 200년간 평화가 도래했습니다. 덴노는 교토에서 국가의 신성한 군대로 계속 군림해왔습니다…그러나 실권은 도쿠가와 막부가 쥐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2세기 동안 절대적인 권력으로 국가를 지배해왔습니다. 일본은 번영했고, 백성들은 만족했습니다. 1853년, 미국 군함은 이러한 모든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쇼군은 서양인들을 환대했고 화친조약에 서명했습니다.''' 일본의 문호가 개방된 것입니다.
         >센고쿠 지다이(전국시대)가 끝난 이후, 약 200년간 평화가 도래했습니다. 덴노는 교토에서 국가의 신성한 군대로 계속 군림해왔습니다…그러나 실권은 도쿠가와 막부가 쥐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2세기 동안 절대적인 권력으로 국가를 지배해왔습니다. 일본은 번영했고, 백성들은 만족했습니다. 1853년, 미국 군함은 이러한 모든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쇼군은 백성들을 저버리고 화친조약에 서명했습니다'''. 일본의 문호가 개방된 것입니다.
         나가사키를 본거지로 둔 번. 이 번을 다스리는 나베시마 가문은 전국 시대 당시 도쿠가와 가문에게 충성을 다한 댓가로 사가 번을 하사받았다. 일본 내 공식적으로 유일한 서방과의 접촉로인 나가사키를 소유하고 있었기에 서방의 여러 이념과 기술들이 흘러들어왔다.
  • 한명회 . . . . 3회 일치
         '''한명회'''(韓明澮, [[1415년]] [[11월 26일]] ([[음력 10월 25일]]) ~ [[1487년]] [[11월 28일]] ([[음력 11월 14일]]))는 [[조선]]시대 전기의 문신, 군인, 정치인이며 외척이다. 1475년에서 1476년까지 1년간 조선국 상급 국상 지위를 지낸 그의 본관은 [[청주 한씨|청주]], 자(字)는 자준(子濬), 호는 압구정(狎鷗亭)·압구(狎鷗)·사우당(四友堂)이며, 별칭은 칠삭동이<ref>7개월만에 출생하여 생애 초기에 칠삭동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ref>, 시호는 충성(忠成)이다. 일찍이 [[조선 태조]]때 학사로 [[명나라]]에서 [[조선]]이란 국호를 받아온 [[개국공신]] [[한상질]](韓尙質)의 손자이자 [[증직|증]] [[의정부]][[영의정]]에 추증된 [[한기]](韓起)의 아들이고, 이조참판과 직제학을 지낸 [[여주 이씨]] [[이척]]의 외손자이자 [[대제학]] 이행의 증외손이다. [[조선 예종|예종]]의 원비 [[장순왕후]]·[[조선 성종|성종]]의 원비 [[공혜왕후]]의 친정아버지이다. [[조선왕조실록]]에 그 이름이 2300건이나 등장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한상환(韓尙桓), 류태재(柳泰齋)의 문인이다. [[한성부]] 출신.
         {{인용문2|제 친구인 한생(韓生, 한명회)은 뜻이 웅대하여 간국(幹局)이 있고, 둘도 없는 [[국사]](國士)로 적합한 인물이며, 지금의 [[관중 (춘추)|관중]](管仲), [[악의]](樂毅), [[사마중달]], [[제갈공명]]과 같은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공께서 [[춘추 시대]] [[오나라]]의 계찰(季札)의 절개와 지조를 지키시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고 큰 뜻을 품고 이 세상을 평치(平治)하시겠다면 이 사람이 아니고는 할 수 없습니다.|권람의 진언}}
         지방은 역시 다섯 집을 1통으로 하고 5통을 1리(里)로 해서 약간의 이(里)로써 면(面)을 형성하여 면에 권농관(勸農官)을 두었다. 주로 호구를 밝히고 범죄자의 색출, 세금징수, 부역의 동원, 인보(隣保)의 자치조직을 꾀하여 만들었<ref name="naver01"/>다. 면장인 권농관은 [[조선]]시대 당시에는 명예직으로, 면리제는 군현제보다 실효성은 떨어졌지만 다른 제도가 20세기를 넘기지 못한 반면 [[면리제]]는 20세기까지 명맥을 이어왔다.
  • 한방의학 . . . . 3회 일치
         [[일본]]에서 [[한의학]], [[중의학]]을 부르는 명칭이다. 일본에서는 자국의 한방의학이 전래된 중의학과는 독자적으로 발전하여 별개의 요소가 많다고 주장한다. 한방(漢方)이라는 명칭은 [[에도 시대]] 중엽에 [[네덜란드]]의 의학이 전래되어 이를 란방(蘭方) 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이와 대조하여 기존의 중국에서 전래된 의학을 '한방'이라고 부른데서 비롯되었다.
         [[일본]]에는 [[금나라]], [[원나라]] 시기에 정립된 금원의학(金元医学)이 전래되었는데, 이러한 의학을 후세방(後世方)이라고 부른다. [[에도 시대]] 중기에는 사회 전반적으로 일본 국학 부흥과 복고 열풍이 불어, 『상한론(傷寒論)』과 『금궤요락(金匱要略)』을 중시한 고방(古方)이 나타나게 된다. 이후 양자를 절충하겠다는 절충파, 더욱 고문헌의 고증에 중점을 두겠다는 고증파가 나타난다.
         에도 시대 말기에는 네덜란드 의학이 전파되어 이를 란방의학(蘭方医学)이라고 부르게 된다. 그리고 기존의 의학은 한방의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 혜정(1993년 8월) . . . . 3회 일치
         1회-디지털 쇼트 <[[23 아이덴티티]]>에서 납치된 일행 중 한명으로 등장했다. [[수영(소녀시대)|수영]]에게 스프레이를 맞아 기절하고 일행과 창고에서 깨게되는데, 탈출 하기 위해 [[야노 시호]]의 인격으로 변한 수영을 상대로 어설프게 [[추성훈]] 성대모사를 하다가 바로 끌려가 살해되고 그대로 퇴장 (...) [[http://m.tv.naver.com/v/1545828/list/119135|#]] <미국아빠vs한국아빠> 에서 미국가정의 딸 역할로 출연해 거요미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let's party!!!~~ [[http://m.tv.naver.com/v/1545849/list/119135|#]]
         3회- 혜정의 분량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디지털 쇼트 <[[윤식당|백윤식당]]>에서 손님일행으로 등장, 수제 모히또를 주문했지만 공산품 술을 받는다(…). [[http://3m.tv.naver.com/v/1584088/list/121804|#]] <걸그룹 구조조정>에서 구조조정으로 3명만 남은 [[구구단(아이돌)|구구단]]의 추가 맴버로 등장. SNL에 출연했다고 [[유젝스밴드(아이돌)|유젝스밴드]]에서 구조조정 되어 오게되었다고(…). 일명 'A4용지'라는 그룹으로 재탄생…. [[http://m.tv.naver.com/v/1583914/list/121804|#]] <3분 후배>에서는 복학생의 후배로 등장하여 복학생과 같이 밥먹는걸 꺼려하는 모습을 보인다. <미국결혼 vs 한국결혼>에서는 전 아내 [[수영(소녀시대)|수잔]]대신 재혼했다는 설정으로 미국엄마 역할을 맡았다. 아이들을 존중한답시고 불건전한 것들을 모두 하게 해주는~~ 막장~~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 [[2017년]] [[9월 19일]] || [[파일:20119934.jpg|width=100]] || 란제리 소녀시대 OST Part.2 || 사랑소녀 || ||
  • 황부인전 . . . . 3회 일치
         [[삼국지]]를 소재로 한 조선시대의 소설. [[제갈공명]]의 부인인 황부인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황부인전은 활자본이며, 황처사전(黃處士傳)이라는 표제를 가진 필사본이 있다.
         황소저는 꿈에서 계시를 얻는데, 그녀는 전생에 월궁항아였으나 용모가 빼어나고 교만하여 인간세계에 내려오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한편 은거 선비 [[제갈량]]도 꿈에서 계시를 얻는데, 그는 천계 공명성이 전생한 몸으로서 300년 전에 인간 세상에 태어났으나 시대를 잘못 만나 명성을 떨치지 못했으며 하늘의 뜻으로 다시 태어나 성주(聖主)를 모심으로서 명성을 떨치게 된 운명이었다.
         [[분류:조선시대 소설]]
  • 회맹 . . . . 3회 일치
         [[춘추시대]], 주나라의 질서가 무너진 뒤 회맹은 유력한 제후, 패자(覇子)를 중심으로 한 제후들이 맺게 되었으며, [[존왕양이]]를 명분으로 삼았다.
         === 춘추시대 ===
         춘추시대의 회맹은 제나라에서 시작된다. 기원전 682년 가을, 송나라의 권신 남궁장만南宮長萬이 송 민공緡公을 시해, 대부 구목仇牧과 태자 화독華督을 살해했다. 기원전 681년 3월, 제 환공은 주 왕실의 허가를 얻어 북행北杏(지금의 산동성 동아현)에서 제후들을 모았으며, 송나라를 구원하기로 결정한다. 이 때 모인 제후들 가운데서는 송 환공이 '공작'으로 가장 작위가 높았으나, 제 환공이 '후작'이었음에도 가장 실력이 높았기 때문에 제 환공이 맹주가 되었다.
  • 경관 . . . . 2회 일치
         === 삼국시대 ===
         === 삼국시대 ===
  • 고경표(배우) . . . . 2회 일치
         2015년 11월 이루어진 고경표의 페이스북에서는 "너무 나대서 불편하고만"이라는 글과 함께 tvN 초인시대에서 [[응답하라 1988]]을 풍자하는 [[유병재]]에 대해 비난조의 글을 게시한다. 당시 tvN 드라마 '초인시대'에서 유병재는 "올해 하반기에 '응답하라 1988'이 방영합니다. '너무 옛날로 돌아가는 거 아니야', '그래서 공감을 얻을 수 있겠느냐' 뭐 이런 우려들이 있는데, 저는 오히려 조금 더 옛날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응답하라 1894', [[동학농민운동]] 때로 돌아가서 그 안에서 벌어졌던 풋풋한 사랑 이야기, 여자 주인공 전봉준과 탐관오리 조병갑 사이에서 누구한테 갈까 이런 내용으로 시청자들과 밀당한다면..."이라는 등 응답하라를 풍자하는 내용의 콩트를 하였는데, 당시 응답하라를 출연 준비중이었던 고경표가 이에 대해 '너무 나대서 불편하고만'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다.
  • 권혁 . . . . 2회 일치
         그리고 셋업 상황이라고 볼 수 없는 5점 차 이상의 경기에서 2년간 17경기 22이닝 355구를 던졌는데, 이 중에서 10점 차 이상 경기도 2경기가 있었다. 큰 점수 차에서 권혁의 경기감각을 조율하기 위해 등판한 경기도 있었지만 김성근 감독의 조바심으로 인해 등판하게 된 경우가 많았다. 타고투저 시대라서 5점 차 리드가 불안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으나, 최근 2년간 5점 차 리드가 뒤집힌 것은 1,282경기 중 30경기로 2.3%에 불과했다(2016년 8월 26일 기준).[[http://www.msn.com/ko-kr/news/sports/%EA%B8%B0%EB%A1%9D%EC%9C%BC%EB%A1%9C-%EB%B3%B4%EB%8A%94-%EA%B6%8C%ED%98%81-%EB%B6%80%EC%83%81%EC%9D%80-%EC%98%88%EA%B2%AC%EB%90%9C-%EC%9E%AC%EC%95%99/ar-BBw1kEy|#]]
         기사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김성근 감독의 지시대로 2년간 그 누구보다 팀을 위해 열심히 뛴 권혁이 혹사로 인해 2군행을 택할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얻었고, 이로 인해 수술을 결심했지만, 김성근 감독은 무통주사를 맞으며 던지길 원했고, 권혁은 "주사까지 맞으면서 던질 몸이 아니다"라고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김성근 감독은 이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그리고 이미 이때는 권혁의 팔꿈치가 본인이 스스로 수술을 결심한만큼 선수생명이 위험한 상태였었다.
  • 길은혜 . . . . 2회 일치
         * [[2003년]] [[KBS1]] 대하드라마 《[[무인시대 (드라마)|무인시대]]》
  • 김무력 . . . . 2회 일치
         [[분류:삼국시대의 인물]]
  • 김보미(1958) . . . . 2회 일치
         |align="center"|[[무인시대 (드라마)|무인시대]]
  • 김성겸(탤런트) . . . . 2회 일치
          * [[무인시대]] - 경진
          * [[삼김시대]] - [[조병옥]]
  • 김윤환 . . . . 2회 일치
         이렇게 막강한 세력을 구축한 김윤환은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했으나, 이내 자신이 후보가 될 가능성이 없음을 깨닫고 [[이회창]]을 차기 대통령으로 밀면서 다시 '킹 메이커'로서의 위세를 떨쳤다. 당내 민정계와 영남세력을 대거 규합해 이회창을 대선 후보로 옹립한 김윤환은 3회 연속으로 대통령을 좌지우지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울 뻔했지만, 정작 이회창은 아들들의 병역 문제와 [[이인제]]의 이탈을 막지 못하면서 대선에서 [[김대중]]에게 패했다. 여당에서 야당으로 전락한 이때부터 김윤환의 정치적 생명은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했고,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는 자신이 밀었던 이회창 총재에게조차 구시대 정치인으로 몰리면서 [[토사구팽|팽]]당해 공천을 못받고 한나라당에서 쫓겨난다.[* 이 당시 이회창의 참모가 [[윤여준]]이었는데, 그간 총선의 화두는 공천이었음을 상기시키며, 김윤환을 위시한 민정계, 구시대 인물들을 쳐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고, 이회창은 계속 망설이다가 결국 윤여준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윤여준의 전략대로 중진급 현역 의원과 정계 거물 수십여명을 날리고 정치 신인들을 대거 전면에 내세운 개혁 공천은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면서, 예상을 뒤엎고 한나라당의 총선 승리를 이끌어냈다.] 이후 [[조순(1928)|조순]], [[이수성(정치인)|이수성]], [[박찬종]], [[이기택]] 등 3김 정치 + 이회창에게서 팽당한 정계의 옛 거물들을 끌어모아 [[민주국민당(2000년)]]을 차렸다. 재야의 장기표나 심지어 신군부 출신 [[허화평]]도 있었다! 이렇게 거물과 명망가만으로는 상당히 그럴싸했지만, 선거를 앞두고 급조한 정체성이 불문명한 정당으론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 결국 양당 구도에 밀려 지역구에선 [[춘천시]]의 [[한승수]] 前 경제부총리, 전국구에선 후보 1번이던 [[강숙자]] 등 총 2명 당선에 그치는 참패를 당했다. 본인 역시 자기 지역구인 구미시에서 한나라당 [[김성조]] 후보를 상대로 10% 차의 패배를 당했다.(41.7%:32.1%)
  • 김주승 . . . . 2회 일치
          * [[1998년]] [[SBS]] 주말특별기획 《[[삼김시대(드라마)|삼김시대]]》 ... [[정동년]] 역
  • 김지수(배우) . . . . 2회 일치
         ||<|2> [[1993년]] ||<|2> SBS || 열정시대 || || ||
         || [[2004년]] || MBC || [[영웅시대]] || 박소선 || ||
  • 김하은(1984) . . . . 2회 일치
         * [[2003년]] [[KBS1]] 《[[무인시대 (드라마)|무인시대]]》
  • 김혜옥 . . . . 2회 일치
         * [[2007년]] [[KBS2]] 주말연속극 《[[며느리 전성시대]]》 ... 이명희 역
         * [[2007년]] [[KBS 연기대상]] 여자 조연상 《미우나 고우나》,《며느리 전성시대
  • 김혜은(탤런트) . . . . 2회 일치
         2002년 MBC 청춘시트콤 《논스톱 3》에 출연했으며, 2004년 드라마 《결혼하고 싶은 여자》에서 [[명세빈]]의 친구로 깜짝 출연했다가 6회분에 출연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연기를 접했다. MBC 퇴사를 결심한 후 3년간의 휴식기를 갖고 연기 공부를 시작했고 2007년 MBC 일일극 《아현동 마님》 에서 성악과 출신 맏며느리 역할을 맡아 연기자로 데뷔했다. 2012년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 2012년 ||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 여사장 || ||
  • 깨끗한 독일국방군 신화 . . . . 2회 일치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는 '국가'와 '헌법'에 대하여, 히틀러가 수상이 되자 '민족'과 '조국'에 대하여 충성을 맹세했으나, 독일국방군으로 개편되기 직전에 있었던 이 충성 맹세는 '독일 민족의 지도자', '국방군 최고사령관'인 '''아돌프 히틀러 개인'''에게 맹세한 것이다. 사실 이 시점에서 독일국방군은 (선입견과는 달리) '독일 국가의 군대'라기보다는 (이론적으로는)'히틀러 개인의 군대'에 가까운 존재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이 시대가 기독교적 윤리가 아직 강하던 사회였고, 특히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독일군에서는 '충성 맹세'가 지닌 사회적 가치는 매우 컷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7화 . . . . 2회 일치
          * 올마이트가 은퇴하고 시대가 변해가고 있는데, 본래라면 히어로를 대폭 늘려야 하는 시점이다.
          * 그런데도 올해는 임시면허 정원 조차 대폭 줄어들었다. 이것은 "도태"의 시대가 왔다는 의미이며, 무분별하게 히어로를 양산하기 보단 우수한 인원을 선별하는 것.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3화 . . . . 2회 일치
          방금 전까지 징징거리던 빌런이 기고만장해졌다. 녀석은 자기 형님들의 말에 따라 "히어로 사회는 곧 무너진다"고 떠들어댄다. 그리고 다음 시대는 자기들처럼 "버젓이 살지 못하는 자들의 시대"라고 선언한다.
  • 남효온 . . . . 2회 일치
         [[조선]] 초기의 학자. 재야 [[사림]] 학자의 일원으로서, [[생육신]]의 일원이다.[* 단, 생육신은 사육신과 숫자를 맞추기 위해 억지로 분류한 점이 있는 개념으로, 당대에 세조의 집권에 반대한 이들은 생육신으로 알려진 인물들 외에도 몇 명 더 존재했으며, 특히 남효온은 다른 생육신들에 비해 한두 세대 이후의 인물로 시대 차이가 매우 커서 논란이 있다. (당대에는 '권절'과 같은 인물들의 인지도가 더 컸다.)]
         육신전은 [[세조]]의 찬탈을 비난하고, [[사육신]]의 절개를 칭송하는 내용으로, 왕조 시대의 관점에서 보자면 왕실의 정통성을 공격하는 심각한 '불온 서적'이었다. 하지만 이 충격적인 '불온 서적'은 사림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필사]]되어 널리 읽혀졌고, 후대의 사림은 육신전에 근거한 '사육신 사관'을 널리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결국 육신전의 기록에 근거하여 사육신이 복권-헌창받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 노행하 . . . . 2회 일치
         * 《[[순수의 시대 (2015년 영화)|순수의 시대]]》 (2015년) - 취항루 기녀 역
  • 도게자 . . . . 2회 일치
         도게자는 계속 유지되어 [[가마쿠라 시대]]에 편찬된 일본의 귀족 사회 예법서인 『홍안예절(弘安礼節)』에서도 공식적으로 유지되었다. [[에도 시대]]에는 [[다이묘]]가 지나갈 때 [[서민]]은 도게자를 해야 했으며, [[사무라이]] 역시 신분이 높은 귀족에게는 도게자를 해야 했다.
  • 돌턴 갱 . . . . 2회 일치
         Dalton Gang. [[서부개척시대|미국 서부시대]]에 활동했던 8인조 갱단. 갱단 멤버 중 밥 돌턴(Bob Dalton), 그랫 돌턴(Grat Dalton), 에밋 돌턴(Emmett Dalton) 세명이 형제였기에 돌턴 형제(Dalton Brothers)라고도 불렸다. 이 세명은 연방보안관으로 활동하였으나 1890년경 무법자가 되었다. 이들은 다른 총잡이들과 함께 돌턴 갱을 이루었고, [[오클라호마]]주와 [[캔자스]]주에서 [[은행강도]]와 [[열차강도]]를 벌였다.
  • 동왕부 . . . . 2회 일치
         서왕모 자체의 양성구유, 혹은 천상의 천제-지상의 서왕모라는 구도는 한나라 시기에 급격하게 바뀌었는데, 서왕모가 서쪽을 관장하는 신격이 되면서 동쪽을 관장하는 신격의 필요성이 나타난 것이다.[* 시대적으로 보자면, 춘추전국시대 여러 나라로 분리되어 있었던 중국이 하나의 국가([[진제국]], [[한제국]])이 나타나면서 '중앙'(자국)에 대응하는 '사방'(국경,외계)의 개념이 강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 드래곤볼 . . . . 2회 일치
         토리야마 아키라 원작의 만화. 한 시대를 풍미한 소년만화의 왕도격인 작품이었다. 스토리상으로 초반에는 '서유기'를 기반으로 작가의 다른 작품 '닥터 슬럼프'를 섞어넣은 듯한, 슬랩스틱 코메디가 섞인 로드 무비 방식이었으나 점차 소년 격투만화 스타일로 변모해 갔다.
         나메크 별에서 전투력 이상 반응이 나타나자, '[[큐이]]'와 같은 디자인의 캐릭터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다. 우리 종족을 멸망시킨 프리더가 드디어 죽었다."고 발언을 하는데, 그 발언을 하자마자 광선 총에 무수히 맞아서 시체도 안 남기고 소멸한다. 숙청을 한 것은 또 큐이와 같은 디자인의 캐릭터(망토 장비). '사령관'이라고 불리는 이 캐릭터가 "우리가 우주의 승리자가 될 수 있었던건 프리더 님 덕분, 언젠가는 우리 종족을 부흥시켜 주신다고 약속했다. 프리더 님이야 말로 전 우주의 구세주다!"라면서 열렬한 프리더 빠심을 드러낸다. 하지만 초사이어인 오공의 전투력을 계측한 순간 계측기가 폭발하여 기지채로 전멸.
  • 딴따라 . . . . 2회 일치
         [[연예인]]을 뜻하는 비속어. 주로 가수나 코미디언처럼 무대 공연을 하던 예능인들에게 쓰던 말인데 TV시대가 되면서 Tv에서 활동하는 연예인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과거 유교적 관습이 남아있던 시대에는 연예인이 그리 좋은 직업으로 여겨지지 않았고 음악을 팔고 웃음을 파는 직업 정도로 취급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비칭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수들의 이야기를 보면 노래를 연습하고 있으니 "너 딴따라 될거야?"라면서 부모에게 맞았다는 이야기를 자주 찾아볼 수 있다.
  • 랑그릿사(검) . . . . 2회 일치
         이 때문에 3의 시기에서 지크하르트와 깊은 인연을 지닌 자들은 랑그릿사를 사용할 수 있으며, 이후 시대에서 랑그릿사를 사용할 수 있는 자들을 [[광휘의 후예]]라 보통 부르게 된다.[* 그러나 랑그릿사3에서는 밸런스 때문인지 조카인 디하르트와 루인만이 사용이 가능하다.]
         성검이라 알려져 있지만 랑그릿사의 모태가 되는 파사의 검부터 성스러움과는 거리가 떨어져 있다. 4~5의 시대에서 알려진 사실로는 파사의 검은 알하자드 원본의 예비로 만들어진 물건이었으며 랑그릿사가 가진 성스러움은 따지고보면 순수하고도 정의로운 용사라 불린 지크하르트의 혼에 의한 결과물에 불과하다.
  • 로베르 기스카르 . . . . 2회 일치
         기스카르가 형에게서 작위를 상속받고 제일첫번째로 한것은 정복군주로 악명높은 그치고는 살짝 의외였던건데, 전처인 알베라다와의 혼인이 근친이라는 이유로 이혼하고 살레르노 공작의 여동생인 시켈가이타와 혼인한것이다. 다만 중세 유럽은 귀천상혼하면 짤없이 귀족직위가 박탈당하는 시대다 보니 혼인풀이 좁았고, 이에 어지간한 귀족들은 전부 한두다리건너 연결되는 경우가 흔했다. 즉, 그가 알베라다와 이혼한 이유는 진짜로 근친혼인걸 몰랐다(...)기보단, 시켈가이타의 몫의 영지들[* 중세때는 혼인을 두가문의 혼합으로 보았기에, 사위에게도 딸의 몫이라면서 영지일부를 나눠주는걸 당연시했다.]을 살레르노 공작에게서 뜯어내기 위해서로 보는게 타당하다.
         그는 11세기~12세기에 비잔티움을 침략한 야심가들[* 차카 베이, 그의 아들인 [[보에몽|보에몽 1세]]등]중 가장 그의 꿈을 이룰 가능성이 높았던 자였다. 동시대 서방황제와 동방황제들 모두 그와 절대로 정면승부를 하지 않으려 했고, 오히려 야전에서 알렉시오스를 패퇴시키기까지 하는등, 군재로써는 당시 최고를 달렸던 자였다.
  • 마기/335화 . . . . 2회 일치
          * 그들 앞에는 7개의 던전만 남아 있다. 쥬다르는 신드바드가 한 말을 툴툴거리며 비꼰다. 결국 그가 한 말은 "막을 테면 막아봐라"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열받아서 한 대 패주고 싶다고 하자 다른 일행들고 고개를 끄덕이는데, 그런데 누군가가 슬쩍 끼어들어서 "그말대로"라며 임금이란 족속들은 어느 시대에나 길이 나쁘다고 투덜거리고 있다.
          그것은 소년시대의 신드바드다.
  • 박노식(1971) . . . . 2회 일치
         ||<|4> 2017년 || [[역모 - 반란의 시대]] || 철물점 주인 || ||
         ||<|2> 2015년 || tvN || [[초인시대]] || || ||
  • 박상원(배우) . . . . 2회 일치
         시대를 풍미한 드라마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첫사랑(KBS)|첫사랑]] 등 굵직한 작품을 맡으면서 특유의 부드럽고 젠틀한 이미지를 내세워 성공 가도를 달렸으며 당시 가장 결혼하고 싶은 남자 1위에 뽑히기도 했다.
          * 2000년 황금시대 (MBC)
  • 방이설화 . . . . 2회 일치
         당나라 시대 『유양잡조속집(酉陽雑俎続集)』에 기록된 [[신라]]의 이야기이다. 금추설화(金錐說話)라고도 한다. [[혹부리 할아버지]], [[흥부전]]의 원형으로 보이는 설화이다.
         신라시대에 형제가 살았는데, 형 방이는 가난하여 구걸을 했지만 동생은 부자였다. 어느 해 방이는 동생에게 누에와 곡식종자를 구걸했는데, 동생은 성격이 심술궃어서 누에알과 종자를 삶아서 주었다. 방이는 그걸 모르고 누에와 씨앗을 열심히 가꿨는데, 누에알 가운데 하나에서 태어난 누에 한 마리가 소처럼 커졌으며, 질투가 난 동생은 누에를 죽였는데 사방에서 누에가 모두 모여들어 실을 만들어줘서 방이은 큰 부자가 됐다.
  • 사쿠라 . . . . 2회 일치
         본래 노점상의 은어였으며, 메이지 시대 이후 일반 사회에 퍼졌다. 한자로는 위객(偽客)이라고 쓰기도 했다.
          * 에도 시대에 연극 오두막에서 배우에게 말을 거는 구경꾼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사람들이 화려하게 분위기를 돋구고 확 사라지기 때문에, 확 피고 사라지는 벚꽃의 성질에서 따와서 사쿠라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노점상의 은어를 거쳐서 일반적으로 퍼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 소학 . . . . 2회 일치
         [[조선시대]]의 '[[바른생활]]' [[교과서]].
         소학은 [[고려]]말에 [[우리나라]]에 전래되었으며, [[조선]] 시대에 매우 중요시되었다. [[천자문]]과 함께 [[서당]]에서 배우는 기초적인 교재로 쓰였다.
  • 송병구 . . . . 2회 일치
         둘의 첫 만남은 2007년 5월 14일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이지만, 실질적인 라이벌 관계는 두 번째로 만난 [[곰TV MSL 시즌2]] 결승전에서부터 시작된다. 당시까지 동일한 종족 간의 결승은 왠만해선 흥행이 힘들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두 선수는 5경기까지 가는 모든 경기를 명승부로 만들며 우승자 [[김택용]]도, 준우승자 송병구도 박수를 받는다. 이후 두 선수 모두 전성기를 이루면서 역대 [[스타크래프트]] 리그 판도에 전혀 없던 [[프로토스]]의 전성기를 만들고, [[김택용]]과 송병구의 '택뱅시대'를 만들게 된다.
         최종병기 이영호와의 상대전적은 공식전만으론 11:10으로 앞서나 비공식전까지 합치면 13:16으로 밀린다. 두 선수는 개인리그에서 자주 만났는데, [[다음 스타리그 2007]], [[에버 스타리그 2007]]에서는 모두 송병구가 승리했지만, [[박카스 스타리그 2008]]에서의 이영호의 우승을 시작으로 이영호의 시대를 알리면서 테란전에 정말 강한 송병구마저 본좌 모드로 돌입한 이영호한테는 역부족이었다. 계속 만나도 패배가 훨씬 많았지만, 이긴 적도 몇번 있다.
  • 송재호(배우) . . . . 2회 일치
         4남1녀의 자녀가 있었는데, 2000년 막내아들이 눈길에 차가 미끄러지는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그 충격으로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렸던 적이 있다. 장남 송영춘은 대학생 시절, 아버지가 주연으로 출연했던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1975년)의 속편(1982년) 주인공으로 배우 데뷔를 한 적 있다. 부자가 한 작품의 전편과 후편 주연을 맡은 이례적인 케이스였으나 이후 배우를 그만두고 현재 용인아멘교회 목사로 재직중이다.
          * [[영자의 전성시대]] - 창수 역
  • 송지효 . . . . 2회 일치
         | 《[[순수의 시대 (드라마)|순수의 시대]]》
  • 수애 . . . . 2회 일치
         1999년 KBS 드라마《[[학교 2 (드라마)|학교 2]]》로 정식 연기자로 데뷔했고 그 뒤 MBC 주말연속극 [[맹가네 전성시대]]에서 베일 속의 여인 허주연 역을 맡으며 비중있는 조연으로 자리잡았다. 2달 후 MBC 월화드라마 [[러브레터 (드라마)|러브레터]]에서 여의사 역으로 첫 주연을 맡았다.
         | 《[[맹가네 전성시대]]》
  • 스트라테고스 . . . . 2회 일치
         스트라테고스란 '군사적 지도자', '군사령관'을 의미한다. 고대로부터 그리스어에서 이는 주로 고위 군사적 지도자를 의미하는 단어였으며, 시대별, 국가별로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대체로 [[한자]] 문화권에서는 '[[장군]]'과 비슷한 의미라고 볼 수 있다.
         === 헬레니즘 시대 ===
  • 스파이더 . . . . 2회 일치
         두편의 영화가 만들어졌는데 제목은 <The Spider's Web>(1938년), <The Spider Returns>(1941년)다. 시대시대이다보니 흑백 영화. 영화에서는 거미줄 문양같은 복면을 쓰고 있다. [[스파이더맨]]과 비슷. 다른 복장은 복면 대신 아이 마스크스러운 가면을 쓴 이미지도 있다.
  • 시치고산 . . . . 2회 일치
         [[에도 시대]]에는 사무라이 집안에서 아들이나 딸의 3,5,7세 생일 때 약간의 행사를 하는 정도였던 것으로 보이며, 지금처럼 화려하게 축하하게 된 것은 [[다이쇼 시대]]에 [[간토 지방]]에서 나타났다고 한다. [[간사이 지방]]에서도 시치고산을 하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고도성장기 때부터 라고 한다.
  • 신동미 . . . . 2회 일치
         * 2002년 [[MBC]] 주말연속극 《[[맹가네 전성시대]]》
         * 2005년 [[MBC]] 수목드라마 《[[영재의 전성시대]]》
  • 신성우(가수) . . . . 2회 일치
         이후 2집은 자기의 원류인 헤비메탈/하드록 성향을 제대로 보여준다. 복장도 헤비메탈 시대의 끝물인 LA메탈 시대 보컬리스트의 상징인 가죽점퍼/가죽바지/롱부츠 차림으로 무대에 올랐다. 타이틀곡 <노을에 기댄 이유>는 마이너의 헤비한 록 발라드인데 그리 대중적인 곡은 아니었지만, 후반부의 샤우팅에서 신성우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대중적인 인기는 1집에 비해 영 신통치 않았고, 급하게 어쿠스틱 기타가 주도하는 밝고 부드러운 미드템포의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건>으로 주력노래를 바꾸면서 다시 인기를 회복한다. 2집에는 특이한 곡들도 많이 들어 있는데 [[핑크플로이드]]의 The Wall 을 연상시키는 첫 곡 <요람에서 무덤까지>, [[데이빗 커버데일]] 의 솔로 시절을 연상시키는 피아노와 브래스 사운드가 가미된 셔플리듬의 록넘버 <민아의 일기>등 앨범 발매년 1993년을 무색케 하는 세련된 넘버들로 가득하다.
  • 신적강하 . . . . 2회 일치
         고대 율령제 시대에 일본의 황족은 성씨가 없으며, 다양한 혜택을 받았다. 그러나 이 같이 황족을 무한정으로 늘릴 수는 없기 때문에, 덴노의 직계에서 일정 이상 멀어진 황족은 성씨를 주고 황족에서 제외하여 신하의 신분으로 만드는 조치를 취했다. 이것을 신적강하라고 한다. 신족강하가 원인으로 고대 일본의 귀족과 무사는 많은 수가 황족에 기원을 두고 있다.
         물론 일본과 명나라와는 시대적 차이, 관습적 차이가 있기는 하다. 예를 들어서 명나라와는 달리 일본은 섬나라라서 대외 침략의 위험이 적었고, 일본 황족은 관습적으로 친족 내의 근친혼이 권장되었기 때문에 근친결혼으로 황족의 숫자가 늘어나는 속도를 약간 억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황족 문제에 대처가 거의 없으면 고작 200년 만에 국가 재정이 파멸적인 결과(…)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신혜진 . . . . 2회 일치
          * [[앞머리]]가 없을 때 [[한지민]](!) 닮았다는 [[소리]]를 심심치 않게 듣는다. [[본인]]도 알고 있다(...) ~~[[여담]]으로 되게 수줍어하면서 쪼끔 들어봤다고~~ 또 [[소녀시대]]의 [[써니(소녀시대)|써니]]를 닮았다는 [[이야기]]도 가끔 들리는 듯.
  • 심양홍 . . . . 2회 일치
         시대극에서는 [[유진산]] 전문 배우다.
          * [[삼김시대]] - [[유진산]]
  • 안기효 . . . . 2회 일치
         재미있는 기록으로 방송경기 데뷔무대였던 챌린지리그 vs [[서지훈]]전에서 무승부를 기록했었다. 이는 [[온게임넷]]의 [[스타리그]](챌린지리그, 듀얼토너먼트 포함.) 역사상 최초의 무승부이기도 하다. 또 마린에게 캐리어가 잡히는 경기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1 24강 VS [[변길섭]](맵 [[개척시대(스타크래프트)|개척시대]]), 상황은 안기효가 3캐리어+적절한 양의 지상병력 VS 변길섭이 골리앗 없는 메카닉에 소수 마린+SCV인 상황, 러시 거리가 매우 가깝고 변길섭이 선공을 날렸다고는 하지만 병력 구성으로 보면 안기효한테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방심했는지 캐리어 컨트롤을 하나도 안하다가 마린의 피니시를 맞고 격추당한다.(그 전에 터렛에게 많이 맞았다.) '''더불어 그 경기 졌다.''']
  • 안석환 . . . . 2회 일치
         * 2004년 [[MBC]] 특별기획 대하드라마 《[[영웅시대 (2004년 드라마)|영웅시대]]》 ... 종로경찰서 보안과 주임 곤도 [[경부보]] → [[경부]] 역
  • 안숙선 . . . . 2회 일치
         현재 [[판소리]] [[명창]] 중 실력과 대중성을 모두 갖춘 명창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영원한 춘향', '우리시대 최고의 소리꾼', '국악계의 [[프리마돈나]]' 등으로 불리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음악인이다.
         *2005 MBC 대한민국음악축제 우리시대의 명창 안숙선/국민성악가 임웅균/대한민국 최고의 대중가수 인순이 3色 콘서트.
  • 애니프사 . . . . 2회 일치
         예를 들어서 1980년대 일본 좌익 사회활동가들은 지금보면 말판에서 종이조각으로 된 말을 가지고 노는 종이게임에 대해서도, 살인게임(人殺しゲーム)이라는 비판을 했고, 이러한 게임을 하는 취미인에 대해서 경멸하거나 비판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이후 시대에도 그랬고, 그 이후 시대에도 그랬으며, 대략 수십년간 이어지면서 적대관계는 거의 고착되었다.
  • 양키 . . . . 2회 일치
         1980년대 당시의 양키 패션은 특이한 패션 센스가 유행하였다. 양키 남자는 앞머리를 크게 부풀리고 파마를 한 [[리젠트 헤어]]를 하고, 학생복을 입지만 '도캉'이나 '본탄'이라 부르는 폭이 넓게 개조한 바지를 입는다. 화려한 셔츠나 샌들을 입기도 했다. 양키 여자는 1970년대 ‘스케반’이라 불리던 시대의 연장으로서, 교복 사복을 불문하고 꽉 죄이는 롱 스커트를 즐겨 입었다.
         이 시대의 스타일을 가리켜서 “클래식 양키”라고 부른다. 만화 등에서는 이런 스타일의 고전적인 양키 불량배를 자주 볼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1990년대에 이미 보기 드물게 된 스타일로서, 불량 청소년들의 패션은 1990년대에는 컬러갱 스타일, 2000년대에는 힙합 패션 등으로 바뀌어 가게 된다. 다만 일부 지방도시에는 아직도 이런 스타일이 남아 있다는 괴담(?)도 있다.
  • 어쌔신 크리드 III/등장인물 . . . . 2회 일치
          시퀀스4 부터 시퀀스12 까지의 주인공. 데스몬드 마일즈의 조상. 헤이덤 켄웨이와 카니에티오의 아들. 영국인들에 의해 어머니인 카니에티오를 잃었다. 유노가 보여준 계시대로 아킬레스에게 가 훈련을 받고 암살단원이 된다.
          발명가, 정치인, 그 외 등등. 숀 헤이스팅스 曰, 그 시대의 락스타. 헤이덤과 찰스 리가 총을 장만하러 가던 길에 만나는게 첫 등장. 괴한에게 자신이 쓴 도감을 도둑맞았다. 이후 헤이덤에게 시간이 나면 흩어진 도감 페이지를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 염재욱 . . . . 2회 일치
         * [[2002년]] [[MBC]] 주말드라마 《[[맹가네 전성시대]]》
         * [[2005년]] [[MBC]] 수목미니시리즈 《[[영재의 전성시대]]》
  • 영국 요리 . . . . 2회 일치
         [[로마 제국]] 시기에 영국 요리는 로마 각지로 수출되었는데, 브리튼 족 요리사는 로마 귀족 사회에서 가장 인기 있는 노예였다. [[암흑 시대]]에 영국 요리는 켈트 족의 전통에 게르만 족의 전통이 더해져서 더욱 성숙하였다고 여겨진다.
         제국주의 시대, 대영제국의 식민지는 [[인도]], [[홍콩]] 등으로 퍼져나갔다. 이를 통하여 중국 요리와 인도 요리의 비법이 영국으로 전파되었다. 영국인들은 요리에서는 전 세계 어떤 문화라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습성이 있어, 집요하게 인도 요리와 중국 요리의 장점을 영국 요리에 받아들여 영국 요리를 더욱 풍성하게 발전시켰다. 현재 [[만한전석]]은 영국에만 남아 있다.
  • 오다 노부나가 . . . . 2회 일치
         일본 [[전국시대]]의 위인.
         당시 기준으로 여러 방면에서 시대를 앞서간 행보를 보인 인물로, 상공업 촉진을 위해 [[관문]]을 철폐하거나 종교의 영향력을 억제하는 등 선진적인 정책을 펼쳤으며, 군사적으로 최강은 아니었으나 이를 전략적인 밑그림을 통해 역전시켜 다른 다이묘들을 차근히 압도해 나갔다. 한편 성정이 폭급한 부분이 있어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마왕]]'과 같은 이미지로 그려지기도 했으나 사적인 부분에서는 당대 기준으로 오히려 자상한 부분도 보인다.
  • 오오반후루마이 . . . . 2회 일치
         원래는 밥과 전복, 매실장아찌, 해파리, 식초와 소금을 차린 밥상인 '오반'에서 유래했다. [[일본]] 전국시대 시기까지는 정월에 아랫사람이 이 '오반'을 윗사람에게 헌상하는 것이 의례였으나, 에도 막부 시대에 이르러서는 윗사람이 부하들을 대접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 오유나 . . . . 2회 일치
         * [[2003년]] [[KBS1]] 대하드라마 《[[무인시대 (드라마)|무인시대]]》 ... [[연희궁주]] 역
  • 오정태 (희극배우) . . . . 2회 일치
         [[동신대학교|동신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중퇴하였으며, 연극 《택시 택시》로 데뷔하였고 [[2006년]] [[MBC]] 15기 공채 개그맨으로 정식 데뷔했다. [[소녀시대]] 멤버 [[태연]]이 열성 팬한테 끌려가는 것을 보고 구출을 한 것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ref>김은주 기자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ent&arcid=1303122527&cp=nv ‘태연’ 구한 오정태, “국민 영웅이요? 진행자로서 할 일 했을 뿐”], 《쿠키뉴스》, 2011년 4월 18일 작성</ref>
         * 《[[전설의 시대]]》([[경인TV|OBS]])
  • 오지훈 (1973년) . . . . 2회 일치
         그는 제대 후에 [[1997년]]에는 투투 출신 [[유현재]], 여성 멤버 이삭과 함께 얍(YAB, Young & Alternative Beaux)으로 활동하였다. <ref> [http://music.naver.com/album/index.nhn?albumId=65189 개성시대:네이버 뮤직]</ref> YAB의 1집 음반을 프로듀싱하였으며, 전곡을 작곡하였다. <ref> [https://www.komca.or.kr/srch2/srch_01.jsp 한국음악저작권협회 - 저작자명 W0190100, 가수명 얍 참조]</ref>
         * [http://music.naver.com/album/index.nhn?albumId=65189 개성시대: 네이버 뮤직]
  • 오카마 . . . . 2회 일치
          * 에도 시대에 오카마는 항문을 의미하는 속어였다. 이것이 변하여 항문성교를 하는 여장 남창을 뜻하는 단어가 되었다.
          * 에도시대에 남창을 의미하는 「카게마(陰間, かげま)」와 연관이 있다는 설.
  • 오토메 . . . . 2회 일치
         『[[만연집]]』에서는 미혼 여성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사실 만연집이 쓰여졌던 [[헤이안 시대]]의 [[일본 귀족]]들은 10대 초반에 [[결혼]]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조혼]] 사회였으므로, 이 시대의 미혼 여성 역시 대략 10대 초반 정도로 정말 어린 여자아이였을 것이다(…). 지금으로 치면 [[중학생]] 정도 나이를 지나면 [[노처녀]] 취급이었으니까.
  • 온주완 . . . . 2회 일치
         || '''데뷔''' ||<(> [[2002년]] [[SBS]] 드라마 [[야인시대]] ||
         || 2002년 || [[SBS]] || [[야인시대]] || 일본인 학생 1 || 단역 ||
  • 요괴:파워블로거지 . . . . 2회 일치
         일설에 따르면, 조선시대에 잔치집에 뒤늦게 도착하여 미처 밥을 얻어먹지 못하고 굶어서 거지들의 영혼이 요괴가 되어 나타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의 [[그슨새]]와 같은 사람이 겁을 먹을수록 커지는 요괴, [[누라리횬]]처럼 밥을 먹고 사라지는 요괴와 유사함이 있다.
  • 우치데노코즈치 . . . . 2회 일치
         당나라 시대의 서적 『유양잡조속집(酉陽雑俎続集)』에서는, [[신라]](新羅)의 옛 기록으로서 [[방이설화]]가 등장한다.
         가마쿠라 시대 초기에 써진 서적 『보물집(宝物集)』에서는 우치데노코즈치는 저택, 하인, 가축에서 먹을 것, 입을 것까지 치는 대로 바라는건 모두 나오지만, 이러한 물건들은 종소리가 들리면 사라져버린다고 써있다.
  • 원피스/842화 . . . . 2회 일치
          * 제프는 "남자는 여자를 때려선 안 돼!"라고 일갈하며 이것은 공룡이 살던 시대부터 내려오던 원칙이라 말한다.
          * 회상을 마친 상디는 "공룡 시대부터 상식"이라고 얼버무린다.
  • 위서 . . . . 2회 일치
          * 위서(緯書) : [[한나라]] 시대 [[유교]]의 서적을 [[신비주의]]적으로 해석한 책. 소위 말하는 [[도참]]이다. 경서(經書)에서 냩실을 뜻하는 경에 대응하여 씨실을 뜻하는 위(緯)를 붙였다. 본래 위서는 유교 경전의 주석, 해석을 가리키는 것이었으나, 한나라 시대에는 유교에 신비주의 요소가 많아지면서 유교 경전을 일종의 [[예언]]으로서 해석한 책으로 변질되었다. 전한-후한 시기에 널리 연구되었으며 [[도참]] 사상에 이용되었다. [[광무제]]는 후한의 건국 명분으로 이를 이용하였다. 그러나 폐해도 많아서, [[왕망]]이나 [[원술]] 같은 인물이 왕조를 세우는데 악용하기도 했다. [[서진]]에서는 사회 혼란을 염려하여 위서를 연구하거나 배우는 것을 금지하여 이후로 위서의 영향력은 사라졌다.
  • 윤진솔 . . . . 2회 일치
         * 2016년 [[JTBC]] 금토드라마 《[[청춘시대 (드라마)|청춘시대]]》 ... 조현희 역
  • 은혼 . . . . 2회 일치
         무사 시대에 천인(=외계인)이 등장해 무사 계급이 끝나고, 그런 시대에서 사카타 긴토키가 동료들과 함께 좌충우돌하는 이야기이다. 막장스러운 개그가 나오면서도 진지할 때는 어색하지 않은 진지함을 발휘하는 만화.
  • 은혼/617화 . . . . 2회 일치
          빈보쿠사이는 적진을 누비면서 한탄한다. 야규가가 쇼군가의 검술사범으로 번영한 듯 보이지만 평화의 시대가 오고 심지어 이젠 배가 하늘을 나는 시대가 되면서 검은 필요가 없어졌다고 자조한다. 그렇지만 하늘은 검의 마지막 순간에 빛이 들게 해줬다며, 이기든 지든 이게 검의 마지막 전장일 테지만 곧 이 별을 구할 수 있는건 검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그동안 검에 목숨을 바쳐왔던 젊은 검사들에게 "지금까지 단련해온 건 지금을 위해서"라고 격려한다.
  • 은혼/641화 . . . . 2회 일치
          * 그는 신스케가 영웅이기 전에 그저 인간에 지나지 않지만 시대가 영웅을 필요로 하는 지금, 그는 많은 이의 희생을 감수한 영웅일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신스케는 영웅이기 때문에 동료와 적의 시체를 밟고 가는 유형은 아니었다. 그는 그게 얼마나 아픈 일인지, 얼마나 슬픈지 보통보다 뼈져리게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이를 악물고 앞으로 나아간건 시대가 그에게 강요한 내용이었다. 반사이가 본 신스케란 인간은, 그저 한 사람의 연약한 인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 이경영(1958) . . . . 2회 일치
          * SBS [[야인시대]] - [[장도영]] 역 (2002~2003년)
          * KBS [[무인시대]] - 조환관 역 (2003~2004년)
  • 이우석(배우) . . . . 2회 일치
         * 《[[무인시대 (드라마)|무인시대]]》 [[KBS]] ([[2003년]] [[2월 8일]] ~ [[2004년]] [[8월 15일]]) ... [[고려 신종]] 역
  • 이인영(정치인) . . . . 2회 일치
         이에 대해 박미숙 기자가 "운동권 시절의 가치를 이제는 시대 변화에 맞게 좀 바꾸라는 것이 국민의 요구다."라고 하자, "내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버릴 수 없다. 그걸 버리면 정치를 왜 하나? 나보고 이라크 파병을, 한미FTA를 찬성하라는 건가? 내 생각의 변화가 있다면 옛날에는 각목 들고 바꾸려 했던 것을 지금은 표로 바꾸려 하는 것 정도다. 지난 총선과 대선의 실패는 지휘부의 리더십 책임이지 진보의 가치를 고집해서 생긴 일이 아니라고 본다."고 답하였다. 이로 인해 '화석화된 진보'라느니 '민중에게 권력을 주긴커녕 고립을 안겨주는 원리주의자'라느니 '약자심리, 피해자심리, 방어심리로만 가득한 운동권 출신'이라느니 하는 비난을 당하였다.
         2015년 7월에는 새민련 내에서 청년세대 정치인인 이동학과 공개논쟁을 벌였다. 이동학 혁신위원이 공개 편지를 통해 "선배님들을 응원할 든든한 후배 그룹 하나 키워내지 못했다." "시대는 빠르게 변해왔고, 또 변해 가는데, 우리 사회의 새로운 어젠다나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지금의 계파 전쟁이라고 하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 낸 것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고 이인영을 비판하면서, 이인영에게 내년 4월 총선에서 '약세 지역'으로 뛰어들어가야 한다고 주문한 것이다.
  • 이정재(영화배우) . . . . 2회 일치
         ||<:><#4C4C4C>'''{{{#FFFFFF 본관}}}'''||[[전주 이씨]] [[효령대군]]파[* 전주 이씨 [[효령대군]] 20세손, 시조 43세손 宰자 항렬이다. 동일 항렬 유명인으로는 [[이휘재|이영재]], [[이혁재]], [[이학재]] 등이 있으며, [[이경규]]와 [[써니(소녀시대)|이순규]]는 손자, 손녀 뻘이 된다.] ||
         굉장히 의외이고 이런 유례는 상당히 적지만 사극연기 하나만큼은 꾸준히 평가가 좋다(...) 캐릭터 운도 한몫하지만 이미지완 다르게 시대를 초월한 인물,아님 지극히 역사적인 인물을 맡더라도 사극이라면 현대극 과는 얘기가 달라진다. 고어체를 은근히 잘 소화해내는 것도 그렇지만 분위기 자체가 잘 녹아드는걸 생각하면 그저 적성이라고 밖엔... ~~대하드라마 부활하면 출연이 시급하다... 이방원역으로 적절할듯~~ 대선배이자 역대급응 논하는 송강호가 유독 사극에선 호불호가 갈리는걸 생각하면 참 묘하다(...)
  • 이종혁 (배우) . . . . 2회 일치
         * [[2000년]] [[MBC]] 수목드라마 《[[황금시대 (드라마)|황금시대]]》
  • 이준(배우) . . . . 2회 일치
         2017년 2월 18일, [[소녀시대]] [[서현(소녀시대)|서현]]과 함께 [[아는 형님]] [[아는 형님/방영 목록/2017년 상반기#s-2.7|63회]]에 출연했다.
  • 인교진 . . . . 2회 일치
         * 2017년 [[KBS2]] 월화드라마 《[[란제리 소녀시대]]》 ... 오만상 역
         | [[완벽한 아내]], [[란제리 소녀시대]]
  • 일곱개의 대죄/203화 . . . . 2회 일치
          * [[할리퀸(일곱 개의 대죄)|킹]]은 스티그마와 현시대의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하지만 디안느는 생활에 적응해서 별 관심이 없다.
          * [[게라이드]]는 [[그로키시니아]]의 '''여동생'''--근친?--. 성전 시대에도 그로키시니아와 함께 있었다.
  • 일곱개의 대죄/215화 . . . . 2회 일치
          이 시대의 젤드리스는 [[고서]]의 감시자이자 "처형인"이다. 그는 십계 고서에게 마신왕의 노여움을 전하며 당장 돌아가지 않으면 배반자로 간주해 처리하겠다고 엄포한다. 고서도 그렇게 협조적인 태도는 아니다. 그는 다소 날선 태도를 내보이는데 최대한 마력을 온존하고 싶었지만 젤드리스 상대로는 그럴 수 없겠다고 말한다. 분명 싸울 태세다.
          * 성전 시대의 젤드리스는 거듭 드롤을, 아니 디안느를 설득한다. 그는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드롤의 출신성분에 대한 것. 지금은 거인왕인 그도 원래는 거인족 사이에서 따돌려지던 과거가 있다. 보통 거인족을 능가하는 체구, 사파이어처럼 파란 피부, "마를 머금은" 척안과 기암과도 같은 네 개의 팔. 그는 외형이 "이물"이라는 이유로 동족에게서도 기피됐었다.
  • 일곱개의 대죄/222화 . . . . 2회 일치
          *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에게 걸린 [[젤드리스]]의 저주를 풀기 위해 그 마력과 접촉한 [[엘리자베스 리오네스]]. 놀랍게도 그 마력을 통해 저주를 건 당사자와 연결된다. 젤드리스는 엘리자베스를 혐오하는 듯 한데. 그는 엘리자베스를 자신을 형 [[멜리오다스]]를 괴롭히는 "저주받은 여신"이라 비난한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로서는 전혀 모르는 이야기들 뿐. 젤드리스는 "저주는 진짜였다"고 중얼거리며 그녀가 얽혀있는 진실을 폭로한다. 성전 시대로부터 3천년 간, 엘리자베스가 몇 번이나 전생을 되풀이하며 멜리오다스와 이별과 만남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
          * 믿기지 않는 이야기이나 엘리자베스는 그의 말이 거짓말이 아닐거 같다고 예감한다. 그녀는 긴장하면서 성전시대에 멜리오다스와 함께 있던 또다른 엘리자베스에 대해 묻는데, 젤드리스는 그것도 당연히 "너 자신"이라 대답한다. 그리고 뜻밖의 기쁜 얼굴을 하는 엘리자베스. 젤드리스는 뭐가 그렇게 기쁘냐고 날을 세웠다. 엘리자베스는 꿈같은 일이 실현됐다며, 아주 오래 전부터 멜리오다스와 함께였다는게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고 말한다.
  • 일곱개의 대죄/고서 외편 . . . . 2회 일치
          * 성전시대의 요정왕의 숲은 격한 지각변동을 거치고 3000년 후 그 잔해 위에 세워진 왕국이 "리오네스 왕국"이었다.
          * 성전시대로부터 까마득히 많은 시간이 지났다. 인형 고서는 어두운 곳에서 눈을 뜬다. 이곳은 어디인지, 자신은 누구인지 가볍게 혼란을 느낀다. 그때 인기척이 나서 뒤돌아 보니 이런 장소엔 어울리지 않는 소녀가 있었다. 고서가 비명을 지르자 소녀도 놀라서 같이 비명을 지른다. 먼저 정신을 수습한건 소녀 쪽이었다. 그녀는 등잔불을 비추며 "놀라게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하지만 고서는 그녀를 정말로 무서워하는 건지 바위 뒤로 몸을 숨긴다. 소녀가 자신은 아무 것도 안 할 것이고 무서워하지 말라고 설득하고 나서야 고서는 고개를 내민다.
  • 임성은(가수) . . . . 2회 일치
         그 다음 2집에서는 힙합 풍을 접합한 'My love'로 활동했으며 영턱스 때 보여준 비보이 댄스 실력을 선보이면서 신나는 무대를 연출했지만 2세대 아이돌로 인기가 넘어가는 시대였던데다가 갑작스럽게 이미지를 급전환해서 그런지 별다른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후속곡으로 '짝사랑' 활동을 하였는데 트로트댄스 풍의 곡으로 돌아와 타이틀곡의 부진을 어느 정도 만회했다. 노래방이나 전국노래자랑에서 이 노래가 많이 불려졌었다.
         'Miz'라는 예명으로 바꾼 다음 낸 1집 앨범 타이틀곡 'That's Alright'과 후속곡 '용서'로 활동한 게 그녀의 마지막 솔로 앨범이다. 참고로 '용서'는 후에 야인시대 'ost'에서 삽입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 장서희(1972) . . . . 2회 일치
          * '[[두시탈출 컬투쇼]]'에서 기아체험 특집방송에 출연하여 '''“몸무게가 50kg씩이나 나간적이 있다.”'''(…)는 --천인공노할-- 발언을 해 방청객들에게 엄청난 야유를 들었다. 장서희는 자기 키에 50kg 넘으면 엄청난 거라고 변호했지만 야유는 더 거세질 뿐(…). 그러나 《[[인어 아가씨]]》 방영 당시에 다른 여배우들과 비교하면 장서희는 여배우들 중에서도 상당히 마른 편이었다.[* 지금이야 장서희만큼 마른 여배우들이 많아졌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지금 시대처럼 마른 몸매에 집착하는 풍조가 덜한 편이었다.] '거식증 걸린 것 같은 연예인'에 자기 이름이 포함된 기사가 나와 콤플렉스가 생긴 적이 있다고 '[[무릎팍도사]]'에서 증언하기도 했다.
         || 2002 || '''[[인어 아가씨]]''' || '''은아리영'''[* '''실질적인 데뷔 첫 주연작.''' '실질적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1990년대 초 [[한국방송공사|KBS]]에서 방송했던 시대극 <비가비>에서 주인공 역을 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방영 당시에도 큰 주목을 받지도 못했고, 애초에 단독 주인공도 아니었던 터라... 참고로 공동 주인공을 맡은 이들은 <[[전원일기]]>의 응삼이 역을 맡았던 [[박윤배]]와 <[[태조 왕건]]>의 [[유금필]] 역을 맡았던 [[강인덕]]이다. ] || 47.9% ||
  • 전관 . . . . 2회 일치
         |기타 이력 = [[새시대참사람연합]] 총재 <br /> [[중앙대학교]] 초빙교수 <br />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2007년 대선 출마 당시 [[새시대참사람연합]] 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시 대선 포스터는 '''지키자, 대한민국!'''이라는 로고를 새겨넣고 철모와 함께 있는 모습이었다. 보병 제9사단장 및 [[학생중앙군사학교]]장을 지낸뒤 소장으로 예편하였다.
  • 절대가련 칠드런/470화 . . . . 2회 일치
          * 코메리카 합중국은 반에스퍼 정책을 펼치는 대통령이 취임했다. 그는 "노멀 우선 주의"를 제창하며 초능력자에 대한 규제 관리를 강화하고 에스퍼 시대 이전의 질서로 되돌리려 한다.
          문제는 이런 정세 속에선 에스퍼의 능력을 활용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에스퍼 개개인의 손해일 뿐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도 그렇다. 그리섬은 시대상으로 보면 에스퍼 능력을 제약하고 격리시킬 수록 사회의 능률은 떨어진다. 그는 반대로 이런 상황을 자신의 이익으로 만들려는 자들은 없는가 자문한다. 그건 에스퍼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조장해 에스퍼 자원을 독점하려는 인물일 가능성이 높았다.
  • 정기성 . . . . 2회 일치
         * 《[[영웅시대 (2004년 드라마)|영웅시대]]》 (2004년, MBC) - 야학선생님 역
  • 정웅인 . . . . 2회 일치
         정웅인은 이후, [[2000년]]에는 밤11시대의 다소 늦은 방송시간대에도 불구하고 30%대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문화방송|MBC]] 성인 시트콤 《세 친구》에서 [[윤다훈]], [[박상면]]과 함께 코믹한 캐릭터로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었다.<ref>{{뉴스 인용
         * 2000년 9월 9일 [[MBC]] 《추석특집 전파견문록 - 퀴즈 순수의 시대》 ... 세 친구 팀 vs 전파 팀 대결
  • 정칠성 . . . . 2회 일치
         [[1929년]] [[1월 21일]] 신간회 경성지회 사찰위원, [[1월 22일]] 신간회 임시대회에서 본부대회 대표회원에 선출되었다. [[2월 17일]] [[신간회]] 2주년 기념식에 [[권동진]], [[허헌]], [[김여식]], [[이종린]], [[홍명희]] 등과 함께 축사를 낭독하던 중 임석경관에 의해 소환되었다. [[2월 19일]] 근우회 중앙상무위원회에서 [[근우회]] 회보 발행책임위원에 선출되었다.
         |제목=황금광시대
  • 정흥채(배우) . . . . 2회 일치
          2003년 KBS1 [[무인시대]] 부루 역
          2004년 MBC [[영웅시대]] 차지철 역
  • 조성모(가수) . . . . 2회 일치
         1998년 9월 4일 첫 앨범 《To Heaven》[* 그런데 본래 조성모가 아닌 [[다른 가수가 부를 예정이었던 노래|다른 가수에게 가려고 했던 곡]]이었다고 한다. 원래 주인공은 현 [[FNC엔터테인먼트]] 사장인 한성호 대표이다.]으로 데뷔 후 줄곧 신비주의 컨셉을 고수했는데 [[이병헌]]과 [[김하늘]]이 주연한 뮤직 비디오만 공개[* 조성모의 말에 따르면 방송국에 홍보용으로 미리 돌린 것이 의도치 않게 송출되는 사고를 겪었는데 그것이 예상치 못하게 반응을 끌면서 본의 아니게 얼굴 없는 가수가 된 것이지 원래 의도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한 후 얼굴 없는 가수로 활동하다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1998년 10월 17일 [[이소라(가수)|이소라]]의 프로포즈(99회)로 [[https://www.youtube.com/watch?v=doW-NQXoWgY|방송에 첫 출연하면서 얼굴을 공개했다.]] [* 이 장면은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도 나온다. 방성재와 도학찬은 조성모의 외모를 가지고 내기를 걸었고 예상 외로 조성모의 얼굴이 매우 멀쩡하자 충격을 받는 모습이었다.] 이후 [[이수영(가수)|이수영]]과 함께 유명 발라드 가수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엄밀히 말하면 둘을 동시대 가수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데뷔 초부터 전성기를 구가했던 조성모와는 달리 이수영은 2집의 실패 이후 3집 그리고 사랑해로 슬슬 뜨다가 2003~2006년을 전성기로 보낸 탓이다. 대신 조성모의 전성기를 2005년 6집 Mr.Flower까지로 보면, 이수영이 7집 Grace와 8집 단발머리까지 히트시키며 그만큼 더 롱런하기는 했다.]
         1999년에는 '''조성모 [[다키마쿠라]](...)'''도 나온 적이 있다 ~~시대를 앞서갔다~~ ~~사실 저 종류의 물건치곤 상당히 싼 편이다.~~
  • 줄리아나 도쿄 . . . . 2회 일치
         [[도쿄]]에 있었던 [[버블 시대]]의 '''전설적'''인 [[디스코]] 홀. 1991년 5월에서 1994년 8월까지 도쿄 시바우라에서 영업했다. 영국의 레코드 회사 줄리아나와 합작하여 만들어졌다.
         당시의 패션, 음악이나 디스코 유행 등의 첨단을 달리던 장소로서, [[버블 시대]]의 상징이라고 불린다.
  • 진격의 거인/95화 . . . . 2회 일치
          피크와 라이너는 그 말을 놓치지 않았다. 지크는 가끔씩은 쉬는 것도 좋다며 커피를 돌린다. 하지만 그들이 모인 이유는 결코 쉴려고 그런게 아니었다. 자리에 앉은 지크가 본론을 말한다. 그는 거두절미로 "상황이 좋지 않다"고 운을 뗐다. 수년 간 계속된 "자원쟁탈전 시대". 마레는 거인의 힘으로 승리하고 역시 그 힘으로 주변국의 반발을 억눌러왔다. 그리고 그 첨병역을 하는 거인, 엘디아인에 대한 여론은 역대 최악으로 과거 엘디아제국 시절에 견줄만 하다. 지크는 분명 엘디아 민족이 분명한 반성의 뜻을 표했다고 말한다. 그것은 속죄라고 말하는게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엘디아인의 멸절을 바라고 있다. 단지 그 뿐만이 아니다. 과학병기가 거인병기를 앞지르는 것은 시대적 필연. 거인은, 엘디아인은 멀지 않은 장래에 전술적 가치를 잃는다. 거인에 의존하는 마레가 국력을 상실하는 건 뻔한 일이고 마레가 약해지면 엘디아인과 세계를 가로지르는 장벽도 사라진다. 엘디아인을 존속시킬 필요 자체가 없다고 말하는 세계에 던져지는 것이다.
  • 창작:트와일라이트 시티 마피아 . . . . 2회 일치
         대중매체에서 등장하는 마피아와 똑같다. 시대 배경이 현대인지라 소설 '대부' 시리즈 같은 낭만은 더 이상 없고 권력암투와 배신이 난립하고 있다. 물론 해당 시리즈 같은 전통과 로망(?)을 간직한 조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대착오적인 취급을 받고 있다. 게다가 케이스에 따라 청년급이 조직의 두목이 되다 보니 마피아란 이름을 달고 양아치 집단처럼 보이는 부류도 있다.
  • 책표지 . . . . 2회 일치
         고전 시대에는 단순히 제목만 써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현대에 출판이 상업화 되고 나서는 주제를 나타내는 그림을 넣는 등. 공들여서 만들어진 책표지가 많이 나타났다.
          * 조선시대에는 헌책을 오려서 책표지를 만드는 일이 흔했다. 이 때문에 책표지를 뜯어보면 가끔 희귀서적이 있을 수도.
  • 천호진 . . . . 2회 일치
         | [[삼김시대 (드라마)|삼김시대]]
  • 초한춘추 . . . . 2회 일치
         [[중국]] 한나라 시대의 역사서. 유방의 막료로 종사했던 육가(陸賈)의 저작이다. [[초한전쟁]]을 다룬 제1차 사료.--하지만 지금은 없다.--
         [[초한전쟁]]에서 [[한문제]] 시대 까지를 다루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서 주요 사료로 채용된 것으로 여겨진다.
  • 최석기 . . . . 2회 일치
         | 별명 = 석기시대, 무셜석기
         최석기는 신인으로는 유일하게 개인기록상 주요 부문인 블로킹 부문에서 5위 안에 들면서 [[구미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의 [[세터 (배구)|세터]] [[황동일]]과 함께 신인왕 후보로 오를 만큼 활약을 펼쳤으나<ref>[http://www.sportsseoul.com/news2/sports/volleyball/2009/0317/20090317101030400000000_6732676814.html 지금은'석기시대' KEPCO45 최석기 신인상 맹추격] 《스포츠서울》2009년 3월 17일 12:23, 2009년 3월 19일 1:42 확인</ref> 전 경기를 소화한 황동일에 밀려 신인상 수상에 실패하였다.<ref>[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Sports/Basketball/Article.asp?aid=20090416004415&subctg1=05&subctg2=00 프로배구 정규리그 MVP 박철우?데라크루즈, 공격남녀 최후의 승자] 《스포츠월드》 2009년 4월 16일 22:53, 2009년 4월 19일 23:01 확인</ref> 하지만 그는 팀내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NH농협 2008~2009 V-리그 올스타전]]에는 [[한국 배구 연맹]]의 추천으로 [[수원 KEPCO 45]]의 유일한 올스타 선수로 참가하였다.
  • 최아라 (모델) . . . . 2회 일치
         |2017|| [[JTBC]] || [[청춘시대 2]] || 조은<ref>{{뉴스 인용|제목=‘청춘시대2’ 최아라 “시청자 입장에서 시즌2 기다려… 합류하게 돼 영광”|url=http://tenasia.hankyung.com/archives/1277401|날짜=2017-08-22|출판사=텐아시아|저자=이은진}}</ref> ||
  • 최항석 . . . . 2회 일치
         [[1981년]] [[연극배우]]로 첫 데뷔하였고 이듬해 [[1982년]] [[MBC]] 공채 탤런트로 정식 데뷔하였으며 그 후 [[1986년]] [[영화]] 《입을 연 석류》의 주연으로 [[영화 배우|영화배우]] 데뷔하였다. 이후 [[문화방송|MBC]], [[KBS]], [[SBS]], [[EBS]]의 공중파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주연과 조연과 단역을 두루 배역하였다. 그는 [[2002년]] [[MBC]] [[텔레비전 드라마]] 《[[리멤버 (드라마)|리멤버]]》의 오 주임 역과 [[2002년]] [[SBS]] 텔레비전 드라마 《[[야인시대]]》의 임동호 역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2002년]] [[MBC]] [[시트콤]] 《[[연인들 (시트콤)|연인들]]》에서는 극중에서 [[연극]] [[배우]]인 [[김형자]]와 함께 [[배우]]와 [[연출가]]들의 사이로서의 호흡을 오래도록 동반한 [[연극]] [[연출가]] 최항석 역, 연극연출가 이주헌 역, 연극연출가 김세호 역으로 각각 몇회간을 단역하였다.
         * 《[[야인시대]]》
  • 추봉 (배우) . . . . 2회 일치
         * 1975년 《창수의 전성시대
         * 1990년 《보통여자시대》 - 최 회장 역
  • 캐딜락&디노사우르스 . . . . 2회 일치
         그런데 문제는 지구의 환경이 말 그대로 중생대 수준으로 돌아온지라 공룡,익룡,수장룡등 중생대 시대의 생명체들이 다시 살아서 돌아온 것! 결국 공룡과 인간이 공존하는 상태가 되었다.
         공룡과 인간이 서로 건드리지 않고 평화롭게 살아가던 시대. 그런데 어느 순간 공룡들이 인간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런 경우는 꽤 드물어서 다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 토리코/371화 . . . . 2회 일치
         [[토리코]] 371화. '''시대의 대결'''
          * 아카시아가 네놈은 대체 뭐냐고 하자, 코코가 끼어들어 "이 남자는 토리코"이고 "그리고 우리는 사천왕. 당신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한다.
  • 토요토미 히데요시 . . . . 2회 일치
         [[전국시대]] 말기, 아쯔치모모야마시대(安土桃山時代)의 [[일본]]의 통치자.
  • 토탈워: 쇼군 2 . . . . 2회 일치
         >1545년. 지금은 센고쿠 지다이: 전쟁에 휘말린 전국시대이다. 200년 동안, 아시카가 쇼군은 교토에서 통치를 해왔다. 대단한 영광과 권력은 그들의 것이었다. 이제 그들보다 더 강력한 가문은 더 이상 그들에게 복종하지 않는다. 새로운 영주가 쇼군이 될 수 있는 시간이 다가왔다. 하지만 과연 누가 승리하게 될 것인가?
         플레이어는 일본 전국 시대의 9(+3, DLC 구매시)개 가문 중 하나를 이끈다. 게임의 목표는 아시카가 막부가 차지하고 있는 교토를 빼앗아 쇼군이 되는 동시에 일정 지역을 차지하는 것이다.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유닛 . . . . 2회 일치
         시대에 뒤떨어진 조총을 든 시대에 뒤떨어진 사무라이 90명. 유격병 분류에 들어있지만 징집 민병대보다 사거리가 떨어진다.
  • 토탈워: 쇼군 2/가문 . . . . 2회 일치
         일본의 명문 가문 중 하나였던 미나모토 가문에 뿌리를 둔 가문. 미나모토 가문 만큼은 아니었지만 시마즈 가문 또한 이름있는 가문이었다. 실제 역사에서는 센고쿠 시대에서 살아남아 임진왜란에도 참전하고, 메이지 유신이 벌어지기 전까지 본거지인 사츠마를 지배했다. 그러니까 사무라이의 몰락에 나오는 사츠마의 번주들이 얘네 후손들이다.
         실제 역사에서는 "후 호조"나 "고호조"로 불리는 가문. 가마쿠라 시대에 있었던 호조 가문과 별개의 가문이라서 이렇게 불린다. 실제 역사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끄는 군대에게 패배해 멸망했다.
  • 토탈워: 쇼군 2/유닛 . . . . 2회 일치
         이름의 유래는 전국 시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가신이던 혼다 타다카츠.
         이름의 유래는 전국 시대 검성이었던 토다 세이겐. 사사키 코지로의 스승으로 알려져있다.
  • 페어리 테일/544화 . . . . 2회 일치
          >이날 하나의 시대가 끝났다.
          >하지만 그건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기도 하다.
  • 폴리스 . . . . 2회 일치
         고전기 그리스 시대의 폴리스는 정치적 주권을 가지고 자치와 자유를 누렸다. 하지만 [[헬레니즘 시대]]에는 대부분의 폴리스는 자치권을 상실하여 단순한 지방자치단체나 행정구역으로 전락했다.
  • 하춘화 . . . . 2회 일치
          * 나이가 든 동시대 연예인들과 달리 젊은 층들의 음악도 듣고 춤도 추는 듯 하다. 한때 예능에서 소녀시대의 춤을 추기도 했다.
  • 하카마 . . . . 2회 일치
         고대에서 [[에도 시대]]에 걸쳐서 널리 쓰였으며, [[메이지 시대]] 이후에 널리 퍼졌다.
  • 하현우 . . . . 2회 일치
          * '라젠카 세이브 어스'로 엄청난 열풍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으며, 그 외에도 여러 [[신해철]]의 노래를 부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신해철을 매우 존경한다. 또한 신해철도 본인 생전에 국카스텐을 고평가해준 적도 있다. 사실 생전에 신해철은 국카스텐을 고평가하는 정도가 아니라 엄청나게 칭찬해줬으며, 좀 속되게 표현하면 엄청나게 빨아줬다. 고스트스테이션에서 신해철은 '예전에는 안 뜨는 인디 밴드들을 보면 이런 점이 좀 아쉽네, 했었는데 지금은 대중들이 문제인 거 같다. 국카스텐의 외모, 연주, 노래를 보면 (국카스텐이 뜨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아니 그럼 이 이상 뭘 더 해야 되냐?' 라는 생각이 든다. 국카스텐은 다른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밴드이고 이미 200~300만장 음반이 팔렸어야 하는 밴드' 라는 극찬을 한 적이 있다. 또 다른 지면 인터뷰에서는 '넥스트가 아닌, 지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스타가 나와 구멍을 뚫어주는 게 훨씬 중요하다. 그러니까 빨리좀 앨범좀 내라 이새끼들아. 너희가 멈춰있으면 후배들이 기회를 잃는다.' 같은 발언도 했었다. 이렇듯 생전의 신해철은 국카스텐의 음악 세계에 완전히 반했었다. 그런데 정작 신해철과 하현우는 직접 만나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실제로 만나본 적이 없는데도 자신들의 음악을 고평가한 그에 보답하는 의미에서 하현우는 2집 음반을 갖고 신해철을 찾아가려 했으나, 안타깝게도 신해철은 의료사고로 인해 만날 수 없게 되었다.
  • 한징 . . . . 2회 일치
         '''한징'''(韓澄, [[1886년]] - [[1944년]])은 [[한글]]학자이다. 호는 효창이며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1922년]]부터 10년간 <[[시대일보 (1924년)|시대일보]]> <[[중외일보]]> <[[조선일보]]> 등의 기자를 지냈다. [[1930년]] [[이윤재]]와 함께 [[조선어학회]] 사전을 편찬하는 데 힘썼으며 이어 [[표준말]] 사정위원이 되었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에 관련되어 옥살이를 하던 중 [[1944년]] 함흥 감옥에서 죽었다. [[1962년]] [[건국훈장|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단장이 수여되었다.
  • 함인섭 . . . . 2회 일치
         [[1907년]](광무 10년) [[5월 3일]] [[충청남도]] [[천안군]]에서 함병석과 진주 강씨 강리백가(姜利百加)의 아들로 태어났다. 처음 이름은 재인이었으나 뒤에 인섭으로 고쳤다. 함병석은 [[대한제국]]시대의 법관이자 [[일제 강점기]] 당시에는 [[장로교]] [[목사]]로 활동했던 [[함태영]]의 본처 밀양 손씨 소생 아들이었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일찍 사망하였다. 형제로는 남동생 함의섭이 있었다.
         함인섭이 태어날 당시 할아버지 [[함태영]]은 [[대한제국]]의 판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함태영이 본처 밀양손씨와의 사이에서 장남 함병석을 1889년에 얻었고, 함병석은 다시 1년 연하인 강성흠(姜星欽)의 딸 진주강씨와 결혼하여 그를 얻었다. 친할아버지인 [[함태영]]과는 나이 차이가 34살 밖에 나지 않았기에 비슷한 시대인 [[제1공화국]]에 사회활동을 하였다.
  • 헤타레 . . . . 2회 일치
         은어로서 쇼와 시대에서 부터 쓰였으며, 간사이 지방에서는 이전부터 일반적으로 쓰였다. 헤이세이 시대 이래로는 TV방송에서 쓰이게 되면서 젊은이들을 시작으로 전국의 일반인들에게 퍼졌다.
  • 현아 . . . . 2회 일치
         탈퇴한 후 2008년 5월 [[현아]]는 비보이 페스티벌인 싸이언 비보이 챔피언십 2008 광고 홍보 모델로 등장해 컴백설이 떠돌기도 했지만, [[JYP]] 측은 사실 무근이라고 말했다.<ref>{{뉴스 인용|제목=JYP, 김[[현아]] [[원더걸스]] 복귀와 타이틀곡 '봉봉' 사실무근|url=http://cnbnews.com/category/read.html?bcode=39378|출판사=씨앤비뉴스|저자=김성호 기자|날짜=2008-05-21|확인날짜=2010-11-25}}</ref> 2008년 3월, 현아는 [[한국예술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같은 해 12월 [[큐브 엔터테인먼트]]로 소속사를 옮겨 컴백 준비와 함께 병원 치료를 진행하고 있다고 발표했다.<ref>{{뉴스 인용|저자=길혜성 기자|제목=김현아솔로데뷔, "병원치료하며 컴백위해 맹연습중" |url=http://www.artsnews.co.kr/news/9632|출판사=아츠뉴스|날짜=2008-12-02|확인날짜=2010-11-25}}</ref> 2009년 2월에는 의류브랜드 [[TBJ]] 화보를 통해 원더걸스 활동 이후 처음으로 연예계에 모습을 드러냈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前멤버 김현아, 화보 통해 '깜짝 컴백'|url=http://autotimes.hankyung.com/article_view.php?id=42452|출판사=오토 타임즈|저자=연예취재팀|날짜=2009-02-13|확인날짜=2010-11-25}}</ref> 2009년 3월 30일에는 [[이기광|AJ]]의 데뷔 앨범 《[[FIRST EPISODE A NEW HERO]]》의 선공개곡 〈2009〉에 피처링으로 참여했고, 타이틀곡 〈댄싱슈즈〉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원걸 前 멤버 현아, AJ 신곡에서 ‘원더걸스’ 외친 이유 뭘까?|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3310906191002|출판사=뉴스엔|저자=김형우|날짜=2009-03-31|확인날짜=2014-06-29}}</ref><ref>{{뉴스 인용|저자=이수인 기자|제목=원더걸스 전 멤버 '김현아', AJ 뮤직비디오 출연으로 활동재개|url=http://mhj21.com/sub_read.html?uid=11141§ion=section3|출판사=문화저널21|날짜=2009-03-25|확인날짜=2010-11-25}}</ref> 한편, 2008년 12월부터 걸 그룹으로 컴백한다고 밝혔으나, 멤버 수와 그룹명 등 정확한 것은 알려지지 않았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전 멤버 현아 화려한 컴백 … 2009년 새롭게 변신|url=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8121867597|출판사=한국경제|날짜=2008-12-19|확인날짜=2014-06-29}}</ref> 나중에 정확한 정보가 알려질때까지 현아 그룹이라고 불렸다.<ref>{{뉴스 인용|제목=퍼신인 여자 빅뱅-현아 그룹 맞대결 기대만발|url=http://www.newshankuk.com/news/content.asp?news_idx=2009032518550855843|출판사=뉴스 한국|날짜=2009-03-25|확인날짜=2014-06-29}}</ref> 이후 2009년 5월 14일 5인조 걸 그룹 [[포미닛]]으로 컴백한다고 발표했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前 멤버 김현아, ‘포미닛’으로 컴백 초읽기|url=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ent&arcid=0921288145&cp=nv|출판사=쿠키뉴스|날짜=2009-05-14|확인날짜=2010-11-25}}</ref> 2009년 6월 15일 포미닛의 데뷔 싱글 〈[[Hot Issue]]〉가 발매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그룹 ‘포미닛’, 15일 데뷔곡 ‘핫이슈’ 선공개|저자=온라인 뉴스팀|url=http://breaknews.com/sub_read.html?uid=103665§ion=sc4|출판사=브레이크 뉴스|날짜=2009-06-09|확인날짜=2010-11-25}}</ref> 포미닛은 2009년 6월 《[[엠 카운트다운]]》을 통해 데뷔 무대를 치뤄 큰 호응을 얻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18일 성공적 데뷔 무대...김현아 공연 후 눈물|저자=박미애 기자|url=http://spn.edaily.co.kr/entertain/newsRead.asp?sub_cd=EA24&newsid=01508806589723032&DirCode=0010204|출판사=이데일리 SPN|날짜=2009-06-18|확인날짜=2010-11-25}}</ref> 포미닛은 날마다 말그대로 핫이슈였는데, 〈Hot Issue〉는 공개당일 각종 실시간 음원차트 1위를 휩쓸었으며,<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핫이슈’ 데뷔 당일 음원차트 1위 기염 ‘핫이슈됐다'|저자=김형우 기자|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6160952181002|출판사=뉴스엔|날짜=2009-06-16|확인날짜=2010-11-25}}</ref> 데뷔 일주일만에 광고 2건을 체결하는 파워를 보였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데뷔 1주 만에 의류-통신 광고모델|저자=박재덕 기자|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100&g_serial=424598|출판사=조이뉴스24|날짜=2009-06-25|확인날짜=2010-11-25}}</ref> 또한 현아의 무대 의상이였던 일명 '구멍난 스타킹'은 큰 화제가 되기도 했었고, 방송에서 원더걸스의 "Tell Me"를 재연해 주목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지금은 레깅스 전성시대"…타이즈가 창조한 섹시열풍|저자=송은주 기자|url=http://www.sportsseoul.com/news2/life/style/2009/0624/20090624101051100000000_7135486611.html|출판사=스포츠서울닷컴|날짜=2009-06-24|확인날짜=2010-11-25}}</ref><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2년만에 '텔미' 완벽 재연 '팬들 열광' |저자=박정민 기자|url=http://sstv.freechal.com/index.html?page=news/flypage&od=1&cid=1&nid=55619|출판사=SSTV|날짜=2009-07-03|확인날짜=2010-11-26}}</ref> 이후 포미닛의 첫 EP 앨범 《[[For Muzik]]》을 발매해 타이틀 곡 〈[[Muzik]]〉은 공개하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뮤직뱅크' 시작으로 'Muzik' 활동 본격 시동 |저자=박미라 기자|url=http://web.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194889|출판사=리뷰스타|날짜=2009-09-04|확인날짜=2010-11-26}}</ref> 그리고 곧 인기에 힘입어 여러 쟁쟁한 선배 가수들을 제치고 지상파 《[[인기가요]]》에서 첫 1위를 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인기가요' 첫 뮤티즌 송 수상…끝내 눈물 |저자=박건욱 기자|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09092716115557586|출판사=아시아경제|날짜=2009-09-27|확인날짜=2010-11-26}}</ref>
         2011년 12월에 [[현아]]는 같은 소속사의 가수이자 [[비스트 (음악 그룹)|비스트]]의 멤버 [[장현승]]과 함께 유닛 그룹 [[트러블 메이커 (음악 그룹)|트러블 메이커]]를 결성했다.<ref>{{뉴스 인용|제목='뮤직뱅크' 장현승-김현아 '트러블메이커' 컴백 예고|확인날짜=2011-11-26|url=http://reviewstar.hankooki.com/Article/ArticleView.php?WEB_GSNO=10013323|출판사=리뷰스타|저자=김혜정|날짜=2011-11-25}}</ref> 트러블 메이커는 12월 1일 첫 미니 앨범 《[[Trouble Maker (EP)|Trouble Maker]]》를 발매했고, 동명의 타이틀곡 〈Trouble Maker〉로 활동을 시작했다. 〈Trouble Maker〉는 좋은 반응을 얻으며 [[K-Pop 빌보드 핫 100]] 최고 2위까지 올라갔고,<ref>{{웹 인용|제목=BILLBOARD K-POP HOT100 12월 3주차|출판사=[[빌보드]]|url=http://www.billboard.co.kr/v1/chart.php?t=3&query=&pubdate=2011-12-14|확인날짜=2011-12-12}}</ref> [[가온 디지털 차트]]에서는 1위를 했다.<ref>{{웹 인용|제목= 2011년 12월 다섯째주 디지털 종합차트|출판사=가온 차트|url=http://www.gaonchart.co.kr/main/section/total/list.gaon |확인날짜=2011-12-12}}</ref> 그러나, 〈Bubble Pop!〉과 똑같이 공연 중 안무 선정성 문제가 일어나 결국 안무를 수정했다.<ref>http://star.moneytoday.co.kr/view/stview.php?no=2011120913181888325&type=1&outlink=1</ref> 2012년 3월 현아는 [[스파이시칼라]]와 손을잡고 현아 위드 스파이시칼라라는 브랜드를 론칭했고, 50년대 낙관주의와 60년대 레트로 빈티지 무드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자신의 이름 내건 브랜드 론칭|확인날짜=2012-03-15|url=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2&c1=02&c2=02&c3=00&nkey=201203141127323&mode=sub_view|출판사=bntnews|저자=이형준|날짜=2012-03-14}}</ref> 2012년 여름에는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싸이 강남스타일, 유재석 노홍철 김현아 ‘3인 3색 댄스 화제|url=http://www.interview365.com/news/27962|출판사=인터뷰365|저자=장민혜|날짜=2012-07-13|확인날짜=2012-08-07}}</ref> 2012년 8월 15일에는 〈강남스타일〉을 여자의 입장에서 재해석한 〈오빤 딱 내 스타일〉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다.<ref>{{뉴스 인용|제목=싸이·김현아, '오빤딱내스타일' 뮤비공개..섹시·상큼↑|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2081512060525950&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길혜성|날짜=2012-08-15|확인날짜=2012-08-05}}</ref> 〈오빤 딱 내 스타일〉 뮤직비디오는 [[유투브]] 조회수 1억 건을 넘기며 [[소녀시대]]의 〈[[Gee (노래)|Gee]]〉를 제치고 〈강남스타일〉에 이어 유튜브 역대 가장 많이 본 동영상 한국 순위 2위를 차지하고 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오빤 딱 내 스타일' 1억뷰 돌파..싸이 효과! |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2102111121506368&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윤성열|날짜=2012-10-21|확인날짜=2012-10-21}}</ref> 2012년 10월 21일에는 두 번째 솔로 미니 앨범 《[[MELTING]]》을 발매했다. 타이틀곡 〈Ice Cream〉은 [[가온 디지털 차트]] 1위에 올랐고, [[코리아 K-Pop 핫 100]]에서는 최고 6위에 올랐다. 2012년 12월 29일 SBS 《[[SBS 가요대전|가요대전]]》을 앞두고 현아는 [[효린]], [[전효성]], [[니콜 (1991년)|니콜]], [[나나 (가수)|나나]]와 함께 대즐링 레드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해 27일 [[용감한 형제]]와 똘아이박이 작곡한 〈이사람〉을 발매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효린]]·[[전효성]]·[[니콜 (1991년)|니콜]]·[[나나 (가수)|나나]], SBS '가요대전'서 대즐링 레드 결성|url=http://www.mydaily.co.kr/new_yk/html/read.php?newsid=201212280748241118|출판사=[[마이데일리]]|저자=최두선|날짜=2012-12-28|확인날짜=2014-01-08}}</ref>
  • 혜리(1994) . . . . 2회 일치
         '''현 시대 가장 핫한 아이돌 중 한 명이자 [[http://osen.mt.co.kr/article/G1110344518|광고 퀸]]'''
         얼굴 막 쓰기로는 걸그룹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인재이다. 여자아이돌이라고 무조건 포장만 해주는 시대도 아니고 이런 면모를 보여준 이들도 없는 건 아니지만, 혜리는 그 중에서도 빈도나 정도가 크다. 캡처 앞에 장사없는 수준이 아니라 방송에서든 트윗에서든 자기가 나서서 대 놓고 얼굴을 함부로 사용하니 팬들도 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는 분위기. 조막만한 얼굴로는 상상하기 힘든 입 크기가 혜리 엽사의 주 포인트이다.
  • 홍명희 . . . . 2회 일치
         [[한국]]의 [[소설가]],독립운동가, 민족운동가, 월북 [[북한]] 정치인. 호는 벽초(碧初)[* 뜻은 "[[에스페란토|푸른빛(碧)의 말]]을 처음으로(初) 배운 [[한국인]]". 에스페란토을 상징하는 색이 초록색이라 그렇다.]이다. 춘원 [[이광수(소설가)|이광수]], 육당 [[최남선]]과 더불어 '''일제강점기 [[조선]] 3대 [[천재]]'''로 알려진[* 참고로 말하는데, 이 3대 천재라는 것은 대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홍명회, 이광수, 최남선은 같은 시기에 동경유학을 하였고, 양건식과 신형철들이 이들을 동경삼재라고 불렀다. 동경에서 유학하고 있는 유학생중에서 유능한 인재들이란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들이 귀국하면서, 잡지 소년에 함께 글을 기고하면서 동경삼재라는 이름은 (일제시대하) 조선삼재로 변했다. 이들은 모두 문인으로, 문학계에서 칭찬 삼아서 붙여준 별명이었던 것 같다. 다만 명칭이 이런 식이라서 그럼 왜 세종대왕이나 정약용 대신에 이런 인물들이 있느냐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여담]]으로 이 3대천재 드립은 전부 다 홍명희 관련으로 나왔다. 현대에 이 언급을 한 것도 홍명희 평전이었고, 조선삼재 이야기도 홍명희와 [[현상윤]]이 나눈 1940년대 인터뷰에서 나왔다.] 인물로 실제로 이 셋은 죽마고우였으나 앞의 둘은 반민족행위자로 변절한 데 비해서 홍명희는 변절하지 않지만 월북하여 한동안 우리나라에서 언급하기를 꺼려했다. 이광수의 친일 행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와 친교를 유지했고, 훗날 [[한국전쟁]] 당시 춘원이 납북되자 그의 신변을 보호했으며 그가 폐결핵으로 사경을 헤매자 병원으로 이송까지 할 정도로 막역했다고 한다. 다만 이렇게 친한 만큼 매섭게 이광수를 비판하기도 했다. 야사에서는 이광수가 친일파로 변절하자 홍명희는 이광수의 집 대문 앞에 음식상을 차리곤 곡을 하기 시작했다. 놀란 이광수가 나와서 연유를 묻자 홍명희는 "내 친구 춘원(이광수의 호)이 그만 죽고 말아서 이렇게 곡을 하며 슬퍼하고 있소."라고 대꾸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 비슷한 이야기가 꽤 많다. [[최남선]]과 [[정인보]], 최남선과 정인보의 스승인 승려 석전 박한영 간에도 있다. 최남선이 변절한 뒤 정인보(또는 스승 박한영)를 만나자 "나에게 최남선은 이미 죽고 없는 사람이오."하고 헤어졌다는 야사.]
         그밖에도 [[신간회]] 운동을 주도했고 [[동아일보]] 편집국장, 시대일보 사장, 오산학교 교장 등을 역임했다. 위당 [[정인보]]와는 사돈 지간으로, 홍명희의 며느리가 정인보의 딸인 정경완 씨이다. 정경완 씨는 해방 뒤 홍명희의 뒤를 따라 북한에 남았고, 평양에 거주하고 있다.
  • 홍순언 (1530년) . . . . 2회 일치
         [[조선]] 멸망 후 [[1928년]] 위당 [[정인보]]는 그의 방계후손 [[홍정구]]의 부탁을 받고 당릉군유사징(唐陵君遺事徵)을 찬하였다. [[정인보]]는 당릉군유사징의 '唐陵君遺事徵引文'에서 홍순언 동생 [[홍덕린]]의 후손인 [[홍정구]](洪正求)가 자신([[정인보]])을 찾아와 선조 당릉군의 행적이 너무 미약하니 선조의 행적을 기술한 유사(遺事) 편찬을 부탁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홍정구]]는 여러 번 [[정인보]]를 찾아와 거듭 부탁하였고, [[정인보]]는 시대가 바뀌어 가족도 몰라보는 시대에 [[홍정구]]의 조상을 추모하는 의리에 감동하여 결국 이를 수락했는데, [[정인보]]는 자료가 부족한 가운데서도 동평위공견사문록, 열하일기의 옥갑야화편 외에도 직접 여러가지 사적을 조사하여 [[1928년]] 당릉군유사징 제1권《당릉군유사 (唐陵君遺事)》를 집필하였다.
  • 효령대군 . . . . 2회 일치
         '''효령대군'''(孝寧大君, [[1396년]] [[1월 6일]] ([[음력]] [[1395년]] [[12월 11일]]) ~ [[1486년]] [[6월 12일]]([[음력 5월 11일]]))은 [[조선]]시대 전기의 [[왕자]], [[왕족]], [[서예|서예가]], [[정치가]]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로 나한도량(羅漢道場)의 하나로 알려져 있는 사찰이다. 나한은 여섯가지 신통(神通)과 여덟가지 해탈을 모두 갖추어 인간과 천인들의 소원을 성취시켜 주는 복전(福田)이기 때문에 통일신라시대부터 신앙의 대상이 되어 있다.
  • 후리소데 . . . . 2회 일치
         [[가마쿠라 시대]]의 그림에 보이며, 후리소데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은 [[에도 시대]] 부터이다.
  • 후미에 . . . . 2회 일치
         [[일본]] [[에도 시대]]의 풍속. [[에도 시대]]에는 [[기독교]]를 억압하였기 때문에, 기독교도를 색출하기 위하여 [[예수]]를 그린 동판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밟도록 하여 숨은 기독교인을 색출하려 했다.
  • Crusader Kings 2 . . . . 1회 일치
         === 몽골인들의 시대 (1220. 2. 1.) ===
  • DC's Legends of Tomorrow . . . . 1회 일치
         타임 마스터 [[립 헌터]]가 [[반달 새비지]]를 저지하기 위해 과거로 와서 히어로들을 모아 대항한다는 내용. 그러다보니 현 시대의 히어로들 기준으로 과거와 미래를 여행하기도 하기에 시간여행물이기도 하다.
  • DQN . . . . 1회 일치
          * [[수호전]] 같은 시대에는 흔히 '호걸'이라고 불리던 사람들이다. 봉건사회에서 호걸은 나름대로 쓸모가 있었으나 현대에는 사회의 짐 밖에 되지 않아서 DQN으로 타락했다.
  • Europa Universalis 4/공략/아시아 . . . . 1회 일치
         이게임시작지점에서 가장 많은 땅덩어리를 지니고 있으며, 가장 높은 총개발도(developement)를 지닌 국가. 상당히 많은 고유시스템을 들고있는데, 고유 팩션인 천조국 체제를 지니고 있는데 관료, 사원, 환관이 행정, 군사, 외교를 담당하고 있으며, 각 팩션의 영향력이 가장 높을경우 그 팩션이 보너스를 주는 형식이다. 그리고 고유 정부체제인 천조국(Celestial Empire)체제를 지니고 있는데, 기술비용과 안정도 비용을 10%줄여주며, 모든 땅의 수입이 반이된다. 천명이란 시스템으로 반란도를 5줄여준다. 만약에 정통성이 70이하이거나 안정도가 음수가 될경우엔, '천명을 잃음'이 뜨면서 천명의 보너스가 사라지고 반란도가 5상승해 최종적으로 반란도 10이 늘어난다(...) 거기다가 중국계 문화권이 엄청 세분화되어 천명한번 터질경우엔 오나라, 촉나라, 연나라, 제나라등 소국들이 죄다 반란일으키고 독립해 춘추전국시대를 만들기도 한다...~~안습~~ 내적 완결성등 명한테 들어있던 수많은 디버프들이 전부 사라져서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 여전히 천명이란 고유시스템덕에 빵빵터지는 반군들을 맛볼 수 있다(...) 가능하면 최대한 빨리 서구화를 하도록 하자
  • K리그 클래식/2014시즌 . . . . 1회 일치
         [[분류:조선시대 소설]]
  • NEC 코퍼레이션 . . . . 1회 일치
         1995년 10월에 [[NEC]]에서 소프트웨어 관련 부문이 분리되어 NEC인터채널 주식회사로 창립됐다. 2004년 3월에 NEC가 보유하던 주식의 대부분이 양도되어 2004년 7월 1일에 '주식회사 인터채널'로 사명을 변경했다. 하지만 이 회사 전성기는 NEC인터채널 시대로 그냥 '인터채널'로 하면 도무지 적을 정보가 없으니 이걸로 쓰자.
  • Victoria II . . . . 1회 일치
         [[스웨덴]]의 게임회사 [[Paradox Interactive]]에서 제작한 실시간 [[대전략]] 게임. [[제국주의]]와 [[민족주의]], [[혁명]]의 시기인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있다.
  • ∀건담 . . . . 1회 일치
         마지막 시대를 다룬 건담 작품으로 기존 건담 시리즈와 동일하게 지구와 우주의 갈등의 중심에서 주인공 [[로랑 세아크]]와 각 인물들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주요 스토리이다.
  • 강성호 (1966년) . . . . 1회 일치
         * 월간 저널시대 정치부,사회부 기자
  • 강타 . . . . 1회 일치
         * 2000년 영화 《평화의 시대
  • 강호 . . . . 1회 일치
         당나라 시대의 당시(唐詩)에서 강호는 관계(官界)에서 벗어난 재야(在野)의 생활들을 뜻하는 말로서, 낙향하여 초야에 묻혀 사는 생활을 가르키게 된다.
  • 개돼지 . . . . 1회 일치
          * 돈견(豚犬)이라는 고사가 있는데, 중국 삼국시대에 [[조조]]가 [[손권]]의 군세를 보고 "자식을 낳는다면 손중모[* 중모는 손권의 자]와 같아야지, 유경승(유표)[* 경승은 유표의 자]의 자식들[* [[유기]]와 [[유종]]을 가리킨다.]은 돼지나 개(豚犬)와 같다."고 감탄한 데서 나온 말이다. 자신의 미흡한 자식을 뜻하는 말로 돈견이라는 말이 쓰이게 되었다.
  • 건즈 고어 앤 카놀리 . . . . 1회 일치
         1920년대 금주법 시대, 갱단의 행동대장격 인물이던 비니 카놀리는 갱단 보스인 벨루치오에게서 지령을 받는다. 떠그타운으로 가서 "파리" 프랭키라는 남자를 데려오라는 것. 떠그타운은 세인트 패트릭 데이 이후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동이 일어나 완전히 무법지대가 된 곳이었다. 카놀리도 이를 알고 있었지만, 일은 일이기에 SS. 럭키라는 이름의 배에 타고 떠그타운으로 향한다.
  • 경산시 . . . . 1회 일치
         * [[설총]] - 신라 시대의 대표적인 학자이다. 신라 3문장 중 한 사람이다.
  • 계림 . . . . 1회 일치
         [[신라]]의 시조 [[김알지]]가 탄생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김알지의 후손이 신라의 왕족인 김씨가 되었기 때문에, 계림은 신라 시대 내내 신성한 곳으로 여겨졌다. 이후 [[고려]], [[조선]]에서도 계림은 한 나라의 시조가 탄생한 곳으로 여겨져서 존중되었다.
  • 계한보신찬 . . . . 1회 일치
         [[분류:삼국지]]
  • 고두심 . . . . 1회 일치
          * [[야인시대]] (SBS, 2002~2003) - 김두한 외할머니
  • 고성국 . . . . 1회 일치
         이후에는 [[나라정책연구회]] 정책실장 등을 지냈으며, [[1994년]]에는 서울경찰청의 민간인 사찰대상으로 거론되기도 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101100289101001&editNo=6&printCount=1&publishDate=1994-10-11&officeId=00028&pageNo=1&printNo=2034&publishType=00010</ref> 같은 해 5월에는 자신이 편집위원으로 있던 진보적 월간지 《사회평론 길》에서 《[[월간조선]]》과 논쟁하기도 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052600289114011&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4-05-26&officeId=00028&pageNo=14&printNo=1907&publishType=00010</ref> 1995년에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보수 일간지의 '이승만 재평가'에 대해 "분단과 독재를 정당화하고 [[박정희]] 시대와 그 이후까지 미화하려는 시도의 시작"이라 비판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021800289101001&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5-02-18&officeId=00028&pageNo=1&printNo=2153&publishType=00010</ref>
  • 고소영 . . . . 1회 일치
         연기력에 대한 비판과 함께 '''광고 모델이 주업인 배우'''로 손꼽힌다.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로 불린 전도연이 자타공인 연기파 배우로 성장한데 반해 이쪽은 정말 발전이 없었다. 90년대 [[김희선]]처럼 연기폭이 좁은것도 아니고 그냥 연기를 못한다. [* 한 시대를 풍미한 미녀배우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지금도 두사람이 같이 거론되지만 배우로서는 엄연히 김희선이 위다. 김희선은 브라운관안에서의 존재감에 비해 연기력이 미숙하다는 평가를 받은 90년대에도 선하고 청순 발랄한 캐릭터를 맡기면 대박을 터트렸고 원톱 주연을 맡아 완판을 기록했으며 연기대상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주목을 덜받었을 뿐 《세상 끝까지》나 《안녕 내사랑》같은 90년대 말 작품에서 진지한 연기도 가능함을 보여줬다. 이러한 기반이 있었기에 원숙함과 노력에 더해진 2010년대에는 진지한 역, 억척스러운 역, 우아한 역 다 해내면서 연기력 논란을 완전히 털어버리고 연기 잘 하는 배우 반열에 올라섰다.]1990년대에는 워낙 잘나가서 그런 얘기가 드물었지만 2002년 [[이중간첩(영화)|이중간첩]]의 흥행 참패 이후 본격적으로 연기력 논란이 제기 됐으며, 이 논란은 현재까지 유효하다. 앞서 말한 2000년대 들어 활동이 없다시피한 것도 결국 그녀의 연기력이 문제로 작용한 것이다. 2000년대 이후 출연작 중 그나마 연기평이 좋았던 출연작은 [[강풀]]작가 웹툰 원작의 영화 [[아파트(영화)|아파트]] 정도.
  • 고인범 . . . . 1회 일치
          * 2012년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 곽월 . . . . 1회 일치
         '''곽월'''(郭越, [[1518년]] ~ [[1586년]] [[8월 6일]])은 [[조선]]시대 중기의 문신, 성리학자이다. [[1556년]](명종 11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제주목사에 이르렀다. 본관은 [[현풍 곽씨|현풍]](玄風)으로 자는 시정(時靜), 호는 정재(定齋) 또는 정암(定庵)이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곽재우]](郭再祐)의 아버지이다. 사후 아들 [[곽재우]]의 훈공으로 [[예조판서]]에 [[추증]]되었다.
  • 광언 . . . . 1회 일치
          * 라쿠고(能楽)에서 막간에 벌이는 희극. 노오 광언(能狂言)이라고 한다. 무로마치 시대에 발달했다.
  • 궁가 . . . . 1회 일치
         조선시대에는 [[왕실]]의 일부인 궁실(宮室), 그리고 왕실에서 [[분가]]하여 독립한 가문을 통틀어서 일컷는다. 대원군(大元君), 왕자군(王子君), 그리고 공주(公主), 옹주(翁主)가 사는 집을 통틀어서 일컫는다. 일본에서는 '미야케(宮家)'라 하여, 역시 [[천황가]]의 분가를 뜻하는 말이다. [[중국]]에서는 친왕(親王)이나 이에 준하는 직위를 가진 황실 인물의 가문이 이에 해당하며 주로 왕부(王府)라 하였다.
  • 권수현(배우) . . . . 1회 일치
         * 《[[청춘시대 2]]》 (2017년, JTBC) - 황우섭 역
  • 권영해 (1888년) . . . . 1회 일치
         === 일제 강점기 시대 ===
  • 권해효 . . . . 1회 일치
          * 2017 [[란제리 소녀시대]]
  • 규동 . . . . 1회 일치
         메이지 시대에 처음으로 나타났으며, 당시는 규메시(牛めし)라고 불렸다. ‘규동’이라는 명칭은 [[요시노야]](吉野家)가 1899년 창업되면서 붙여졌다. 다른 가게에서는 규메시라고 부르기도 한다.
  • 그랜드 펜윅 공국 . . . . 1회 일치
         매우 작아서 듣보잡 취급 받는 국가. 대부분이 중세 시대에 멈춰있다. 군대의 주무장이 장궁일 정도. 하지만 해외에 대한 소식은 접하는 듯.
  • 김가은(1989년 5월) . . . . 1회 일치
          * 2007년 신사고 우공비 - 때는 학습무림시대 편[* 맨처음 야밤꼴딱의 여학생 역]
  • 김경식 (희극인) . . . . 1회 일치
         * [[MBC]] 《[[만화열전 - 감격시대]]》 - 시라소니의 무술스승
  • 김광석 . . . . 1회 일치
         '''김광석'''(金光石<ref>[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711220915531&code=900307 '대중음악 100대 명반'25위 김광석 ‘다시 부르기 2’], 《경향신문》, 2007년 11월 22일 작성, 2011년 2월 14일 확인.</ref>, [[1964년]] [[1월 22일]]<ref>{{저널 인용|제목=[추억의 LP 여행] 김광석(上) 시대의 감성을 일깨운 우울의 미학 해맑은 미소로 기억될 '거리에서'|저널=주간한국|이름=|url=http://weekly.hankooki.com/lpage/enter/200407/wk2004070211320337570.htm|날짜=2004-07-02|출판사=|저자=최규성|확인날짜=2010-03-12}}</ref> ~ [[1996년]] [[1월 6일]])은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이다. ‘노래하는 철학자’로도 불린다. 2014년 제5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표창장이 추서되었다.
  • 김규철(배우) . . . . 1회 일치
          * [[2003년]] KBS1 [[무인시대]] - '''[[의종(고려)|의종]]''' : --"왕, 왕광취라니?" "[[이의방|황제는 폐위되셨소이다!]]"--
  • 김근 (고려) . . . . 1회 일치
         '''김근'''(金覲, ? ~ ?)은 [[고려]]시대 중기의 문신으로 [[신라]]왕실의 후예이다. [[김부일]], [[김부필 (고려)|김부필]], [[김부식]](金富軾), [[김부의 (고려)|김부의]] 형제의 아버지이자 [[김돈중]], [[김돈시]]의 할아버지이다. 본관은 [[경주 김씨|경주]](慶州). [[경상북도]] 출신.
  • 김기수(코미디언) . . . . 1회 일치
          * 화장제품에 대한 지식 논란도 있는데 [[https://youtu.be/pf6A_yAq_kY|인간 코카콜라 메이크업]]에서 "[[https://www.yslbeautykr.com/dw/image/v2/AAWH_PRD/on/demandware.static/-/Sites-ysl-master-catalog/default/dw73d15065/Products/WW-34101YSL/3614271826572-alt1.jpg|입생로랑 탑 시크릿 밤 인 오일]][* 자세히 보면 '유니버설 메이크업 리무버'라고 영어로 버젓이 적혀있다.]으로 수분 보습막 형성을 하겠어요."라는 말을 하는데 문제는 이 제품이 수분 형성이나 보습 크림이 아니라 무려 '''화장을 지우는 클렌징 용품'''이란 것. --그 덕에 앞에 먼저 바른 기초 제품을 지워버리게 되었...-- 아무리 실수라고 하지만 뷰티 유튜버의 리뷰를 보며 사는 소비자가 증가하는 시대에 촬영 전에 어떤 제품인지 사전에 미리 자세히 알고 있어야하는 건 당연지사.
  • 김기창 (법학자) . . . . 1회 일치
         * ''Legal education and legal profession changes and challenges'' (법학교육과 법률가 : 변화와 도전), 세계화 시대의 법과 한국법의 발전, 고려대학교 개교 백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2005.11.19
  • 김문집 . . . . 1회 일치
         |제목=같은 시대 살았지만 문학의 길 달랐다 - 서정시에서 국문학연구 등 다양 ···1907년 문학인 7인 심포지움 열려
  • 김민기(가수) . . . . 1회 일치
         70년대를 살아낸 인물로써, 김민기는 당 시대의 수많은 인물들과도 연분이 있었다. 김민기의 인간 관계는 다음과 같다.
  • 김상조 . . . . 1회 일치
         공정위에 따르면 17년 5월 기준 31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자산규모 10조 원 이상)이 보유한 93개의 순환출자 고리가 18년 4월 확인 결과 10개로 줄어들었다. 자산규모 5조 원 이상 10조 원 미만인 공시대상기업집단도 17년 9월 1일 지정 당시 26개 집단이 보유한 189개의 순환출자 고리가 18년 4월 31개로 축소됐다. 이를 종합하면 자산규모 5조 원 이상의 57개 대기집집단의 순환출자 고리가 282개에서 41개로, 약 85%가 해소된 셈이다.
  • 김상중(배우) . . . . 1회 일치
          * 2015년 [[KBS 대하드라마]] [[징비록(드라마)|징비록]]에 주인공 [[류성룡]] 역으로 캐스팅되었는데 기사가 나오자마자 덧글에는 '그런데 말입니다'를 비롯한 그것이 알고싶다 관련 드립들이 달리고 있다. 그런 드립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이 방영 초기에는 '그것이 알고싶다'의 톤과 겹쳐서 [[디시인사이드]] 징비록 갤러리 내에서 [[호불호]]가 갈린 바 있다. 멘트의 고조가 사극의 전형을 구현하면서 자신의 장기인 조곤조곤하면서 정확한 대사전달을 능히 하고 있어 연기력 자체에 대한 불만은 아니다고 볼 것이다.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어두운 세트에서 깔끔하게 슈트를 차려 입은 중년이 생각나는데 조선시대 공복을 입고 있으니 그리고 마침내 징비록 40화에서 '그런데 말입니다'가 대사로 나와버렸다! 덧붙여서, 선조의 찌질함에 열받은 네티즌들은 김상중의 훌륭했던 악역 연기에 힘입어 [[https://www.youtube.com/watch?v=qR_0MJVAnGY|선조를 대놓고]] [[https://www.youtube.com/watch?v=Q4jfZU9um2M|비난해대는 영상을]] [[https://www.youtube.com/watch?v=D9HYf8cTLk8|만들고 있다.]]
  • 김석원 (금융인) . . . . 1회 일치
         *일본 히도츠바시대학교 상학(금융론) 석사
  • 김석형 (역사학자) . . . . 1회 일치
         *《조선봉건시대 농민의 계급구성》(1958)
  • 김선영(1976) . . . . 1회 일치
          * [[란제리 소녀시대]] (2017, KBS) - 정희 모
  • 김성곤 . . . . 1회 일치
         [[제3공화국(드라마)|제3공화국]], [[삼김시대]]에서 배우 [[박규채]]가 김 회장을 연기했다.
  • 김수자 . . . . 1회 일치
         '''김수자''' ([[1957년]] ~ )는 [[뉴욕]], [[파리]], [[서울]]을 기반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개념 미술|개념 미술가]]이다. 24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와 55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 특별관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출품하였다.<ref name="biography">Kimsooja Biography: http://www.kimsooja.com/biography.html</ref>그의 작업은 퍼포먼스, 비디오, 설치를 넘나들며 가장 첨예한 회화적 질문으로부터 예술과 삶의 조건들을 연계하여 다루어 왔고 이 시대를 치열하게 직면해 왔다. 구겐하임 빌바오(2015),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2013), 밴쿠버 아트 갤러리(2013), 국제 갤러리(2012), 뉴욕PS1/현대미술관(2001)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30여 회의 주요 국제 비엔날레와 트리엔날레에 참여했다.<ref>{{웹 인용|url=http://www.vmspace.com/2008_re/kor/sub_emagazine_view.asp?category=artndesign&idx=11956&pageNum=3|제목=SPACE Magazine|웹사이트=www.vmspace.com|확인날짜=2016-11-18}}</ref>
  • 김승관 . . . . 1회 일치
         타자 친화적 구장인 사직구장을 홈으로 쓰고 극타고투저 시대에서 지독한 스몰볼을 추구하고 레벨스윙을 강조하고 있다. 다른 팀들은 발사각도 연구까지 하면서 타고투저 시즌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만 롯데는 전혀 그렇지 않다. 게다가 롯데의 대표적인 느린 발을 가진 최준석, 강민호가 전력에서 이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병살타가 리그 2위이다.
  • 김연경(배구선수) . . . . 1회 일치
         2005년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이전 시즌 최하위였던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에 입단했다. 이미 김연경은 프로 입문 전부터 압도적인 피지컬로 고교 무대를 평정해 ''''여자 [[김세진]]''''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엄청난 기대주였다. 위로 1년 선배인 [[황연주]][* 다만 [[황연주]]는 부상으로 고교 시절 때 특별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현대건설]]), 동기 [[김수지]]([[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 아래로 2년 후배인 [[배유나]]([[김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한국도로공사]])와 함께 고교 여자배구에서 한일전산 시대를 이끌기도 했다. 또한 고등학생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국가대표 여자배구팀에 발탁 [* 이때 출전한 대회가 2005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대회인데, 이 대회에서 득점 3위를 기록했다.]이 되기도 했다.
  • 김연수(작가) . . . . 1회 일치
         산문집을 읽어 보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애독자인 듯 하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원더보이>에서는 청년과 중년 여성의 섹스, 가족이나 연인의 자살과 그로 인한 트라우마, 밤낮없이 길을 걸으며 방황하는 주인공 등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의 영향을 받은 듯한 소재가 종종 등장한다. 그러나 이들 작품 모두 격동의 시대를 살며 방황하는 청춘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자살과 섹스, 목적지 없는 도보 여행 등 '방황하는 청춘'의 보편적인 이미지를 사용했다고 볼 수도 있다.
  • 김제철 . . . . 1회 일치
         '''김제철'''(金齊喆)은 [[조선시대]]의 [[판소리]] 명창으로 8명창의 한 [[사람]]이다. [[충청도]]에서 태어났다. 그의 더늠은 [[심청가]] 중에서 〈갑자 사월 초파일〉이다. 그의 [[소리|소리제]]는 [[가야금]]과의 병창제인 석화제라고 한다.
  • 김처선 . . . . 1회 일치
         [[조선]] 시대의 유명한 [[환관]].
  • 김현철(교수) . . . . 1회 일치
         [[대한민국]] 경제가 당면한 저성장 시대 생존 전략을 중심으로 꾸준히 연구해 온 학자로서 [[일본]] 등 글로벌 경제 환경에 대한 이해가 풍부하다는 평가가 있다.
  • 김형인(코미디언) . . . . 1회 일치
         웃찾사에 출연하지 않고 있던 2006년 11월 KBS의 신설 코미디 프로그램인 '''[[웃음충전소]]에 출연하면서 KBS로 이적.''' '''대안제국''' 코너에서 조선 시대 대신들 중 한 명으로 등장해서 다른 대신인 박성호와 함께 서로 왜 웃찾사 버리고 건너왔냐며 자학개그를 했다. 박성호는 원래 개콘에 출연하다가 소속사 문제로 웃찾사로 이적한 바 있다.
  • 깨진 남비에 떼운 뚜껑 . . . . 1회 일치
         [[에도 시대]]에 이로하 카루타의 하나로 쓰였던 적이 있다.
  • 나다카 타츠오 . . . . 1회 일치
          * 1976년(당시 25세) : 드라마 「혼약시대(婚約時代)」 출연.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 . . . 1회 일치
         대부분의 인류가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이란 이름의 [[초능력]]을 타고나는 시대.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3화 . . . . 1회 일치
          * 1500여명 응시에 100명 합격은 15:1이라는 극악한 합격률. 히어로 포화시대라는 설명도 틀린 말은 아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5화 . . . . 1회 일치
          * 오버홀이 빌런연합에 접근한 이유는 간단하다. "자금". 지금의 야쿠자들은 큰 자금을 끌어모을 여력이 없다. 그러나 한껏 악명을 떨친 빌런연합을 수중에 넣고 그들을 내세운다면? 오버홀은 자신이 그들의 힘을 백분 활용해줄 테니 자기 산하로 들어오라고 권유한다. 그리고 다음 시대의 "지배자"가 되겠다는 것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6화 . . . . 1회 일치
          지시대로, 그는 에리의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려고 하지만 고개를 움츠리며 피한다. 어려운 일이다. 남자는 방을 나서면서 애초에 애들 심리에 대해선 모르겠다고 투덜거린다. 그가 떠올릴 수 있는건 기껏해야 [[프리큐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4화 . . . . 1회 일치
          크림슨 라이오트는 키리시미가 존경하는 히어로였다. 꽤 오래 전에 활약한 인물로 지금 시대의 중학생들 에겐 낡은 히어로 취급을 당했지만, 키리시마만은 그의 어록을 항상 곱씹으며 생활화하곤 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7화 . . . . 1회 일치
          >아니예요. 지금은 시대에 뒤떨어진 천연기념물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2화 . . . . 1회 일치
          * 그는 이미 만신창이였다. 여유롭게 달변을 쏟아내는 것도 할 수 없었다. 그가 하는 말이라곤 광기에 찬 궤변이었다. 그에겐 모든 것이, 이 시대 전부가 더러운 현대병이었다. 그리고 히어로들, 루밀리온은 중병자. 그는 그들을 "고쳐주겠다"고 말했다. 에리를 희생한 힘으로.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5화 . . . . 1회 일치
          * 미도리야는 "올마이트 시대"의 종결을 느낀다.
  • 남창희(연예인) . . . . 1회 일치
          * [[야인시대]](SBS) - [[휘발유]] 役(청년기)[* 장년기는 이배국.]
  • 남치근 . . . . 1회 일치
         ~1570(선조 3). [[조선시대]]의 무신. [[조선 명종]] 시기의 대표적인 장군. 시호는 무양(武襄).
  • 낭만 주먹 . . . . 1회 일치
         사실, 애초에 우리나라 조직폭력배들이 낭만주먹이었다는 것 자체가 허구로서, 제1공화국, 제2공화국 시기의 조직폭력배는 [[칼]]이나 [[도끼]]는 물론, [[권총]]이나 [[폭탄]] 같은 화기 까지 동원할 정도로 과격하기 짝이 없었다. 이는 [[야인시대]]에도 묘사된 심영 습격사건 등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일반인의 시점에서는 이 무렵 치안 상황이 굉장히 심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농가 . . . . 1회 일치
         [[시골]]에 있는 오래된 농가(農家)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전시대적・봉건적・인권을 무시하는 사고 양식・행동 양식을 당연하다는 듯이 타인에게도 강제하는 인간, 또는 그 가정이나, 마을 등의 공동체. 농업 종사자로서의 「농가(農家)」, 또는 현대적으로 상식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는 「농가(農家)」와는 구별하기 위해서 태어난 말이다. 고름 농(膿)을 사용한다.
  • 니시키노미하타 . . . . 1회 일치
         붉은 [[비단]]에, 일월을 금은으로 자수하거나, 그린 깃발을 뜻한다. [[가마쿠라 시대]] 이래, [[일본]]에서는 조적(朝敵)을 토벌하러 갈 때 쓰는 관군(官軍)의 깃발로 쓰였다. 금기(錦旗,킨키)라고도 한다.
  • 단기선교 . . . . 1회 일치
          * 잉여의 시선으로 본 공공성의 인문학 한신대 평화와공공성센터 총서 1,위기의 지구화 시대 청(소)년이 사는 법
  • 대군 . . . . 1회 일치
         거대한 규모의 군대라는 뜻. 시대나 지역에 따라서 '대군'의 기준은 달라지는데, 이는 각 국가마다 인구수가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고대에는 1만명 정도면 대군으로 여겨졌으나, 점차 십만 이상은 되어야 대군으로 여겨지게 된다.
  • 대마신 . . . . 1회 일치
         [[괴수물]]에 시대극적 요소가 융합된 특이한 [[특촬물]]인데 주역 괴수 대마신의 행동도 다른 괴수가 단순무식한 파괴인 것에 비해 악인에게서 사람들을 구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다보니 가메라처럼 수호자의 캐릭터성이 있는 편.
  • 대중흑기 . . . . 1회 일치
         [[가마쿠라 시대]]에 겐지 일족이 각지에 정착하여 여러 분가로 분할되면서, 백기 역시 그대로 쓰이지 않고 분리된다. 대중흑기는 백기의 바탕에다가 검은 실선을 그려서 만들어진 닛타 가문의 표식이다.
  • 더 선 . . . . 1회 일치
         3면에 여성의 [[토플리스]] 사진을 싣는 전통(?)이 있다. 성차별적,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받는데 2015년에 이 전통을 폐지하기도 했다. 그런데 4일 만에 원상복귀.
  • 도노 . . . . 1회 일치
         에도 시대에는 다이묘(大名)나 하타모토(旗本) 계급에 대하여 존칭으로 쓰였다.
  • 동군연합 . . . . 1회 일치
         [[마리아 테레지아]] 시대의 신성로마제국-오스트리아 왕국은 엄밀하게 말하면,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란츠 1세'와 '오스트리아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의 부부동군연합이 된다. 물론 실제로는 마리아 테레지아가 사실상 전부다 해먹고 여제 대우를 받았지만(…). 이후 프란츠 1세의 제위는 요제프 1세에게 넘어가면서, 모자동군연합이 된다.
  • 두부 . . . . 1회 일치
         [[중국]]에서 처음 만들어졌으나 어떤 시대에,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알려져있지 않다.
  • 류종원 . . . . 1회 일치
         * [[2002년]] [[SBS]] 대하드라마 《[[야인시대]]》 ... 소년 개코 역([[이동훈 (배우)|이동훈]], [[성동일]] 아역)
  • 리그컵(K리그) . . . . 1회 일치
         다만, 여기에는 제법 잡음이 있었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엉뚱하게도 [[아디다스]]가 해외상표이기 때문에 "아무리 돈이 좋다지만 해외업체의 이름을 단 대회를 한국에서 치뤄야 하느냐?"라는 [[신토불이]]적 마인드가 표출화 된 것.[*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60400209217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92-06-04&officeId=00020&pageNo=17&printNo=21844&publishType=00020|당시 기사]를 보면 시대의 흐름을 알 수 있다. 기사만 보면 재정자립을 위해 해외업체와의 협력도 꼭 필요하다는 협회의 주장이 일견 타당해 보일 수는 있으나 완산 푸마의 7구단 합류 과정에서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3646721|외국 스폰서 이름이 붙었다는 이유]로 참가를 못하게 된 사례를 보면 한국축구계가 왜 이렇게 이상하게 굴러가는지 수긍된다.]
  • 마기/303화 . . . . 1회 일치
         [[마기]] 제 303번째 밤. '''새로운 시대의 전쟁'''
  • 마기/306화 . . . . 1회 일치
          * 아스난 등은 "인형"을 만들어서 갈아타지만 그정도론 알마트란 시대의 힘을 쓸 수 없다.
  • 마기/307화 . . . . 1회 일치
          * 귀왜국이 자리잡고 있는 귀왜도는 원래 알마트란 시대에 마고이가 축정된 지층에 세워진 유적섬
  • 마기/313화 . . . . 1회 일치
          * 모든 것이 백룡의 연기였다. 속았던 알라딘은 백룡의 인성을 탓하며 놀래키지 말라고 한다.--성추행범 놈이 인성을 논하는 시대--
  • 마기/317화 . . . . 1회 일치
          * 그들은 신드리아 왕국이 짓밟힌 이후 전쟁이 없는 평화의 시대를 만들고자 맹세했다.
  • 마기/321화 . . . . 1회 일치
          * 동료들의 말처럼 지금 시대의 성취에 만족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더 먼 곳으로 떠나려 한다.
  • 마기/327화 . . . . 1회 일치
          * 사건은 조금 전에 있었던 어떤 "말다툼". 함께 식사를 했는데 알리바바가 연홍옥이 국제동맹을 탈퇴하는걸 불안해한다고 말한다. 그 일로 연일 회의 중인데 알리바바는 나가도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평한다. 그런데 거기서 모르지아나가 반대한다. 모르지아나는 황제국의 이탈이 국제동맹의 붕괴를 초례할 것이며 결국 힘이 분산돼 전쟁을 일삼는 시대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홍옥은 자국의 내전까지 겪었으면서 왜 그런 생각을 안 하냐고 매우 비판적인 발언을 한다. 알리바바는 당황하며 홍옥도 나름대로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이라고 옹호하는데 그러자 버럭 소리를 지른다.
  • 마기/340화 . . . . 1회 일치
          그러자 연백룡은 "왕의 정의 자체가 잘못되었다면?"이라고 반문한다. 옳고 그름은 불변하는 가치가 아니다. 백룡은 황제국의 예를 들며 한때는 군사력에 의한 세력 확장이 전부였던 시기가 있었지만 지금 시대엔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 자신이 황제이던 시기엔 복수가 대의였지만 대상이 사라지자 한계가 드러났다. 백룡은 이제 신드바드에게 다시 묻는다. 정말로 그의 정의가 흔들리지 않을 것인지를. 혹시 자신이 잘못된 길에 들어선건 아닌가 하는 불안은? 신이 된 그는 그런 불안감에서 해방된 것인가? 백룡은 오히려 자신이 묻고 싶다며 신드바드에게 대답을 요구한다.
  • 마기/349화 . . . . 1회 일치
          신드바드가 끼어들었다. 커뮤니케이션이라니? 토론자들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신드바드는 차원의 구분을 나라에 빗대고 차원의 벽을 국경으로 친다. 그렇게 친다면 현재 논쟁의 두 의견은 각기 "쇄국"과 "침략"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엔 다른 차원 입장에서 말하면, 그쪽에도 이쪽과 비슷하게 사회성을 가지고 지성과 의지를 겸비한 존재들이 살고 있을 수 있다. 단지 알마트란 시대의 이종족들처럼 말이 통하지 않을 뿐. 그런 존재들이 있다면 자신들이 취해야할 행동은 무엇일까?
  • 마로 . . . . 1회 일치
         여담으로 에도 시대의 귀족 가문은 자택 내부가 사실상 치외법권인 것을 악용[* 막부 휘하의 관리들은 간섭하기 어려웠기 때문.]하여, 자택 내에 도박장 등을 영업하여 부수익을 챙기는 경우가 실제로 많이 있었다고 한다.
  • 마츠자카소 . . . . 1회 일치
         본래 [[에도 시대]]까지 일본에서 소는 [[농업]]용으로만 길러졌으나,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 문명을 받아들이면서 소고기를 먹게 되었고, 이때부터 마츠자카 지방은 육우의 산지로 유명해졌다. 1958년에 마츠자카 육우협회가 창설되었으며, 1974년 부터 소 한마리를 개체 단위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 마치콘 . . . . 1회 일치
         "콘파(コンパ)"란, 주로 학생이나 젊은이가 벌이는 회식 모임을 뜻한다. 독일어 Kompanie , 영어 company , 프랑스어 compagnie 등에서 유래하는데, 메이지 시대에 학생들이 돈을 모아 술이나 음식을 모아서 사먹으면서 환담을 하며 친목을 도모하는 모임을 "컴퍼니"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이후 세대의 대학에 계승되면서 "콤파"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마치콘은 여기에 거리를 뜻하는 '마치'를 붙여서 대학이나 학생 중심이 아닌, 지역 중심의 만남의 장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 망나니 장군 . . . . 1회 일치
         1978년에서 2002년에 걸쳐, TV 아사히에서 방송된 시대극. 토에이와 TV 아사히가 제작하였다. 주연은 마츠다이라 켄.
  • 맥닐의 법칙 . . . . 1회 일치
         이러한 현상이 역사적으로 확실하게 드러난 것은 [[대항해시대]]이다. 수천년 동안 교류가 거의 없던 구대륙 유라시아에서 신대륙 아메리카로 사람들이 이동하면서, 생물학적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셈이다.
  • 맥스 페인 2: 맥스페인의 몰락 . . . . 1회 일치
          맥스를 보안관이라고 부른다던가, 두번째로 만났을 때 "하이 눈"을 외치거나 하는걸 보면 [[서부개척시대]]에 관련된 걸 좋아하는 듯.
  • 멸사봉공 . . . . 1회 일치
          * 일제시대, 일제강점기에 강요되어 사용된 단어로서, 군국주의적 색채가 강하여 논란이 있다.
  • 모레아 전제국 . . . . 1회 일치
         모레아의 전제공들은 코린토스 지협에 건설되었던 [[헥사밀리온]]을 수복하고, 내정을 보살폈으며 [[알바니아]] 인을 이 지역에 이주시키기도 했다. 모레아 지역은 인구가 늘어나 요새였던 미스토라스는 도시화 되었고, 경제적, 문화적 발전을 이룩했다. 1428년 취임한 전제공 콘스탄티누스(후의 [[콘스탄티누스 11세]])는 파트라를 점령하고 아카이아 공국을 완전히 축출했다. 콘스탄티누스 시대에 모레아는 '팔레올로고스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문화적, 경제적 부흥이 일어났다.
  • 모리시오 . . . . 1회 일치
         아무튼 나라, 헤이안 시대부터 모리시오 풍습은 있었다고 한다.
  • 모테루 . . . . 1회 일치
         [[에도 시대]]에 이미 쓰이고 있었던 말이라고 한다. 표기는 모테루(持てる)라고 한자로 쓰고 있었으나, [[쇼와]] 중기 떄부터 모테루(モテる)라는 [[가타카나]] 표기가 정착되었다고 한다.
  • 무법자 . . . . 1회 일치
         무법자라는 단어가 흔히 나오는 것은 [[서부개척시대]]인데, 이 무렵 미국 서부는 미국 연방 정부의 영향력이 제대로 미치지 않고, 지방 주 정부는 제대로 구성되어 있지 않아, 결과적으로 공권력이 거의 움직이지 않아서 무법자들이 각지에 활보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 무신 . . . . 1회 일치
         한국의 경우에도 고려시대 무신정권과 무력 쿠데타를 통한 조선 건국의 영향, 그리고 조선 초의 각종 내란으로 인해 무신에 대하여 강하게 견제를 하였고, 이러한 부분이 훗날 임진왜란 당시 초반에 왜군에게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한 원인이 되었다.
  • 문무왕 . . . . 1회 일치
         [[진덕여왕]] 4년([[650년]])<ref group="주">[[진덕여왕]] 4년부터 [[신라]]의 독자 연호가 아닌 [[당나라|당]]의 연호를 쓰기 시작했다.</ref>에 [[당나라|당]]에 사신으로 파견돼 [[당 고종|고종]]에게 〈[[한국의 삼국시대 시가#치당태평송|치당태평송]]〉(致唐太平頌)을 바쳤다. 고종은 이를 가상히 여겨 법민에게 태부경(太府卿)이라는 벼슬을 내렸다.<ref name="삼국사기-650">《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진덕왕 4년(650)</ref> [[654년]] 아버지 [[김춘추]]가 [[진덕여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뒤 [[파진찬]]으로써 [[병부령]]직에 임명되었다.<ref name="삼국사기-661">《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1년(661)</ref> [[655년]] 태자로 봉해졌다.<ref name="삼국사기-655>《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태종 무열왕 2년(655)</ref> [[태종무열왕]] 7년([[660년]])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칠 때, [[김유신]]과 함께 5만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를 멸망시켰다.<ref name="삼국사기-660">《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태종 무열왕 7년(660)</ref> 이어 [[태종무열왕]] 8년([[661년]]) 부왕이 승하하자 곧 즉위하였다.
  • 문호월 . . . . 1회 일치
         |제목=식민지시대 대중예술인 사전
  • 문희옥 . . . . 1회 일치
         1969년 7월 27일, [[강원도]] [[태백시]]에서 2남 3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이후 학업을 위해 상경하였고, [[강원도]] [[태백시]]에서 위치한 [[태백기계공업고등학교]]에 재학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고등학교 2학년인 1986년 당시 학교 장기자랑에서 가수 [[주현미]]의 "비 내리는 영동교"를 불렀는데 이 때 친구들의 반응이 좋자 문희옥은 가수의 꿈을 가지게 된다. 꿈을 가지게 된 이후 둘째 언니의 주선으로 작곡가 안치행 씨를 만나게 된다.[* 안치행 씨는 [[최헌]]의 <오동잎>, 주현미의 <눈물의 부르스>를 작곡한 유명 작곡가이다.] 그 뒤 안 씨의 소속사 안타 프로덕션에서 1년 간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다.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1987년 전라도, 경상도, 함경도 사투리를 소재로 창작곡을 모은 <8도 사투리 메들리>를 발표해 가수로 데뷔하게 된다. 참고로, 이 메들리 음반은 발표되자 마자 360만 장이 팔리게 된다 ~~지금으로 봐도 어마어마한 숫자다.~~ 데뷔와 동시에 엄청난 인기를 모으자 자신이 다니던 고등학교의 주최로 학교 강당에서 처음 리사이틀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기대했던 것 만큼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는데 하이틴 스타가 트로트를 부른다는 것이 좀 매치가 안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10대 청소년들이 지금도 그렇지만 별로 트로트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또한 문제는 당시 시대상으로 사투리는 공중파 무대에서 활동하는 것이 금기시되어 1987년 그 해에 <빈손>이라는 노래를 발표하였다. ~~그런데 빈 손 가사도 왠지 그 노래를 부른 10대 여학생과는 맞지 않았다~~ 1988년 문희옥은 [[서울예술대학]] [[실용음악과]]에 입학하였고, 꾸준히 더 많이 음반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슬로우 템포의 <가는 님 가는 정>을 발표하고 1989년 원래 가수 정재은이 1984년 발표한 <사랑의 거리>를 2집 타이틀곡으로 리메이크하여 가수로서 상위권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본 오사카 교민 위문 공연을 시작으로 일본에도 진출하였다. 1990년 <강남 멋쟁이>가 히트하여 문희옥이 최상의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을 때 KBS 가요대상을 수상한 가수 현철과 <잘했군 잘했어 메들리>를 발표하였다. "잘했군 잘했어는 아는 사람은 아시는 바와 같이 원래 하춘화 - 고봉산의 노래다. 그리고 여러 메들리를 발표하면서 정통 트로트를 고수하는 [[이미자]], [[김연자]], [[주현미]], [[문희옥]]의 정통 트로트 4대 천왕으로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 미나모토노 요시이에 . . . . 1회 일치
         {{구별:[[이태란|헤이안시대]]
  • 미래소년 코난 . . . . 1회 일치
          * 인류 문명이 무너진 시기가 서술된 것처럼 2008년이다. 다만 이 애니메이션의 방영 시기가 70년대로서 [[냉전]] 시대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무리도 아니다.
  • 미미도시마 . . . . 1회 일치
         미미(耳)는 귀, 토시마(年増)는 노처녀를 뜻한다. 노처녀라고 해도 [[에도 시대]]에는 10대에 결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이 말은 대략 20세 전후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현대에는 30대를 가리킨다.
  • 미즈코 . . . . 1회 일치
         낙태된 아이들에 대한 공양 자체는 에도 시대부터 존재하였는데, 일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빨간 턱받이를 한 지장보살' 석상이 바로 이러한 낙태된 아이나 또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사망한 아이들을 공양하기 위해 만들어진 석상이다.
  • 민도 . . . . 1회 일치
         기원은 '이거다'라고 볼 만큼 확실하게 사용된 시점을 가늠하기 어렵다. 친일문학가인 김동인의 글에서도 민도라는 용례를 찾아볼 수 있을 만큼, 의외로 잘 안쓰는 단어지만 확실하게 과거에는 쓴 적도 있다. 박경리의 토지에서도 이 민도 언급이 있을 정도로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전후한 시기에는 제국주의적 의미의 "계몽"과 상통되는 의미로 쓰였다. 이후의 자료에서는 '생활수준'이나 '경제력', '문명수준'을 뜻하는 말로 나오지만, 최근의 인터넷 자료에서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의식에 대한 말로 쓰이는 것으로 나오는 사례가 많다. 21세기에서 보면 제국주의 시대의 의미로 돌아온 느낌으로 봐도 아주 틀리지는 않다.
  • 민효린 . . . . 1회 일치
         | 《우유시대
  • 바실레이오스 1세 . . . . 1회 일치
         전술했듯이, 그는 거의 완전한 아르메니아인이었으며, 어렸을때는 아예 아르메니아어만 사용했고, 커서 그가 사용한 그리스어도 아르메니아 억양이 잔뜩 묻어났다고 한다. 거기다가 글은 아예 하나도 모르는 문맹이기까지 했다.[* 물론 당시 시대를 생각해보면 평민출신이던 바실레이오스가 글을 모르는건 당연한 일이긴 하다.] 그나마 그가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었던 것은 엄청난 힘과 말을 다루는 뛰어난 솜씨뿐이었다.
  • 바키도/106화 . . . . 1회 일치
          * 백악기 최강의 악력과 전국시대 최강의 악력의 대결.
  • 바키도/109화 . . . . 1회 일치
          * 다소 고전적인 소재로 대나무에 짚단을 말아 묶은 것도 있는데, 무사시 시대엔 없던 물건이라 생소하게 여긴다.
  • 바키도/114화 . . . . 1회 일치
          * 솔직히 전국시대 무장 베어재꼈다고 티라노랑 비교하고 있는게...
  • 바키도/126화 . . . . 1회 일치
          * 뜻밖에도 담배를 권하는 모토베. 그의 시대에 있던 "연관"하고 같은 거라고 친절히 설명까지 해준다.
  • 바키도/130화 . . . . 1회 일치
          * 일본의 시대극 "추신구라"에서 다룬 "아코 낭사 습격사건"에선 낭사들이 이 쇄자갑으로 무장했다.
  • 바키도/132화 . . . . 1회 일치
         자신을... 동료를... 시대를... 그리고 무엇보다
  • 바키도/136화 . . . . 1회 일치
          * 이 방송은 당연히 일반 대중들에게도 전파된다. 길거리의 대형 스크린에 무사시의 모습이 나타나자 행인들이 가던 길을 멈춘다. 막연히 시대극 배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얼마 전 무사시가 보도된 뉴스를 보고 "거기 나온 놈"이라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 중 몇 명이나 "진짜 무사시"라고 생각하는지 알 수 없다.
  • 바키도/141화 . . . . 1회 일치
          현대를 태어난 인물들도 현대라는 삶의 틀 때문에 고독해 한다. 그러나 이들에겐 가족이 있고 친구와 연인이 있다. 그러나 400년 전 전국시대에서 현대로 던져진 무사시에겐 그런 것 조차 없다. 그는 지금 얼마나 고독할 것인가?
  • 박경림(MC) . . . . 1회 일치
         박경림 이후 박경림처럼 예쁘지 않지만 매력있는 컨셉의 여자연예인들이 꽤 나오기는 했지만, 그녀의 전성기 이후 10여년이 지난 후까지도 그녀같은 스타일로 광고계까지 접수하는 여성 대스타가 전혀 나오지 않은만큼, 그녀는 그야말로 한국 연예사에서 절대적인 역사를 쓴 입지전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오히려 그녀의 시대 이후로는 국민여동생 붐으로 [[문근영]], [[김연아]], [[손연재]], [[아이유]] 등 미모가 되는 10대후반 ~ 20대초반 여자스타들만이 광고계 블루칩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은 배우, 가수, 스포츠 등 자기분야에서의 인기를 업고 올라간 것이지, 박경림처럼 순수히 예능 MC와 출연자로써만 인기를 얻어 광고계 블루칩이 된 것이 아니다.]
  • 박고은 . . . . 1회 일치
         *2014년 《[[군도:민란의시대]]》 조윤생모 역
  • 박주영 . . . . 1회 일치
         '''정상적으로 성장했다면 [[황선홍]] 이후 최고의 포스트 플레이어가 될 수 있었던 선수.'''[* 제대로 된 포스트 플레이가 가능했던 황선홍, 최용수, 김도훈이 시대가 겹쳤고 [[조재진]]은 부상으로 전성기가 짧았다. 그 이후를 이어갈 재능이었던 박주영이 2011년 아스날 이적으로 급격하며 몰락하면서 이 문제는 2010년 내내 한국의 발목을 잡혀 [[김신욱]] 같이 포스트 플레이 이해도가 전무한 선수에 계속 매달리게 만들었다. 그나마 2018년에 들어서는 [[황의조]]가 포스트 플레이어로 맹활약을 하고 있다.]
  • 박칠용 . . . . 1회 일치
         * [[1995년]] [[KBS]] 《[[개성시대]]》
  • 박하나(배우) . . . . 1회 일치
         ||<|2> 2017년 || KBS2 || [[란제리 소녀시대]] || 홍도화 || 조연 ||
  • 박홍 (신부) . . . . 1회 일치
         |제목 = 박홍 서강대이사장 "이 시대 갈등 종교간 화해로 풀어야”
  • 배영수 . . . . 1회 일치
          * 그리고 이후 배영수가 성적이 좋아지자 호세는 "이 시대의 진정한 참교육자"라는 말과 함께 그의 죽빵을 강타한 펀치는 "참교육"으로 불렸다. 타팀 팬들이 자기 팀의 못하는 선수를 보고 죽빵을 때려달라면서 "참교육 한 번만 시켜주세요"라고 말한다. 장난인 줄 알았지만 방망이까지 들고 나와서 온몸으로 거부했던 [[신승현]]이 그렇게 됨으로써 완벽한 "참교육자"가 되어 버렸다.
  • 보루토/2화 . . . . 1회 일치
          * 사스케는 나루토가 "우린 시대에 뒤처진 건지도 모르겠다"고 한탄한 걸 생각하며 "아까 전 승부, 아직 모른다"고 독백한다.
  • 북유럽 신화 . . . . 1회 일치
         일반적으로는 가장 체계적으로 남은 [[스칸디나비아 반도]] 지역의 [[에다]], [[사가]] 등의 문헌을 바탕으로 신화를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고대 로마 시대에 게르만 민족에 대한 기록에서 부분적으로 그들이 믿는 종교와 함께 언급이 등장하며, 단편적인 기록이나 유럽의 민속에서 신화의 흔적을 찾기도 한다.
  • 북한의 역사왜곡 . . . . 1회 일치
         평양지역에 살았던 구석기 시대 인류가 '조선민족'의 기원이 되었다고 주장하며, 따라서 조선민족의 고향은 [[평양]]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세계고대문명 가운데,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 문명과 함께 '대동강 문명'이 고대 문명의 발상지라고 주장한다.[[http://www.rfa.org/korean/weekly_program/korean_history/history-01262010172151.html (참조)]]
  • 분류:삼국시대 배경 창작물 . . . . 1회 일치
         [[분류:창작물 시대배경 분류]]
  • 붐(연예인) . . . . 1회 일치
          * 《[[일요일 일요일 밤에]] - 소녀시대의 힘내라 힘!》(MBC)
  • 블랙 클로버/79화 . . . . 1회 일치
          * 오히려 패배한 휘장들을 "전시대의 찌끄레기"라고 비하하며 당연한 결과인양 취급하는데.
  • 삼고 . . . . 1회 일치
         버블경제 시대에 유행했던 말. 남자친구로 바라는 남성의 조건으로서, 고학력, 고수익, 고신장을 뜻한다.
  • 서든어택 2/무기 . . . . 1회 일치
         ||1969년 오스트리아군의 제식 저격소총으로 채용되어 이후 한국의 707특임대를 포함한 세계 각국의 군경에게 널리 사용된 저격소총이다. 그러나 개발된 지 상당한 시간이 흐른 소총이고, 주력 탄종인 7.62 NATO 역시 신형 탄약이 다수 등장한 현대에 이르러서는 저격총 탄약으로는 다소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사거리와 살상력이 부족한 편이다.||
  • 서림 . . . . 1회 일치
         명종 시기의 권신 이량(李樑)이 전횡을 휘두를 때, 이량의 측근이었던 부제학 기대항(奇大恒)이 외척 심강(沈鋼), 심의겸과 협력하여 이량을 탄핵하여 몰아내고 귀양을 보내는데 앞장섯다. 야사 야사 석담일기에서는 사람들이 이 기대항을 '서림 같은 자'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를 미루어보아 명종 시대에 서림은 이미 '배신자'라는 이미지로 유명했던 것으로 보인다.
  • 선조 . . . . 1회 일치
         왜란 이후에도 그의 삽질은 계속되어, 당시 세자인 '''광해군보다 10살 가까이 어린''' 인목왕후를 들이지 않나[* 사실 이는 현대 관점에서 보면 충공깽이지만, 관례적으로 중전의 지위를 공석으로 놔둘 수 없었던 조선 시대에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크다. 중전은 궁녀들의 모임인 내명부를 통솔하는 안주인 역할을 맡고 있다. 중전은 단순히 사적인 '왕의 배우자'가 아니라, 업무를 통솔하는 직책이기도 하므로 중전이 부재하면 궁궐의 기능에 문제가 나타나는 것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중전은 정치적으로 왕권과 후계의 안정에 큰 기여를 한다. 문종 때 새 중전을 들이지 않았던 탓에 단종이 '수렴청정'을 통한 왕권 수호를 받지 못한 것이 세조의 쿠데타를 쉽게 했다는 분석도 나올 정도.--인목왕후는 오히려 불안정만 불러왔지만--], 심지어 그 사이에 낳은 아들인 [[영창대군]]을 [[유영경]]등과 영합해 나중에 영창대군이 좀더 장성할 때 왕위에 오르게 하려고 했다! 그것때문에 광해군은 비정상적으로 보일 정도로 왕위에 집착하게 되고, 영창대군의 최후와 [[인조반정]]의 원인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다.
  • 성훈(배우) . . . . 1회 일치
         || 2015 || 《[[우리동네 예체능]]》 || 수영편 고정[* 2015년 하반기에 오디션을 거쳐 우리동네 예체능의 수영반의 정식 멤버로 합류했다. 전직 수영선수의 위엄이 어디 안 갔는지, 나머지 오디션 참가자 9명을 말 그야말로 양민학살(...) 시키며 우승. ~~참가자 9명에겐 그저 묵념. 조기 축구회 입단테스트에 [[메시]]가 온 격. ~~참고로, 나머지 참가자들의 실력도 매우 우수한 편이었다. 수영강국인 [[샘 해밍턴|호주에서 온 물개]]에다, 해병대 군 복무를 한 배우 [[최필립]]에다, 프랑스 지역대회를 휩쓴 [[로빈 데이아나|로빈]] 등등 경력들이 화려했지만, 14년 경력의 수영선수 앞에선... ~~신 앞에 선 인간들~~ 정식 멤버로 합류하고 난 후 실시한 잠수 훈련을 보면, 거의 사람인지 돌고래인지 헷갈릴 정도로 매우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다 ~~심지어 자막은 바닥청소를 하는 것 같다고. 강호동은 가오리에 비유했다~~ 공식 경기 단체시합 때마다 같은 아군 멤버들은 전부 상대팀에게 전멸하고 성훈 혼자만 이기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어, 이젠 성훈이 시합에서 이겨도 별로 놀랍지 않다는 반응이 많았다(...) 거기다 항상 마지막으로 출동해 팀을 위기에서 건져서, 회를 거듭할수록 최종보스가 되었다. ~~소년가장, 우리동네를 부탁해, 수영셔틀, 위기탈출 성훈 등등으로 불린다~~ 자막으로도 '''역대 최강의 에이스''', '''갓성훈''', '''접영미 전도사''' 등등으로 표기하고 있다. 여담으로 선수 시절 성훈의 주종목이 [[접영]]이었다고 한다. 예체능에서도 접영 종목에서 출전 중. 자막대로 시청자 의견 중에는 수영이 이렇게 멋있는 종목인지 몰랐다는 소감들이 매우 많다. 심지어 예술의 경지(...)로까지 보인다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예술 수영~~ 중계진도 중계 도중 감탄과 찬사를 날리는 등 제대로 시사실 예체능 초반부 단체전은 성훈 아니었으면 출전도 못했다. [[최윤희#s-2|최윤희]] 코치조차 성훈 씨 없었으면 어쩔 뻔 했냐고 하기도. ~~사실 수영이라는 종목이 단기간에 실력이 늘기에는 힘든 종목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예체능 선수진을 좀 더 탄탄하게 재정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 예체능 팀과 상대팀들의 공식시합을 보면, 그리스VS트로이가 생각난다는 이도 있다. ~~참으로 적절한 비유다. 성훈은 헥토르인가~~ 그래서인지 8월 4일 방송에서 강호동이 상대팀 멤버를 이겼을 때, 격하게 기뻐했다. 하지만 본인은 같은 날 상대팀의 에이스에게 패배했는데, 사실 운동을 그만둔 지 10년이 다 된 점이나 나이로 볼 때, 상대적으로 어린 경쟁자와 거의 비슷한 성적을 낸 것은 매우 대단한 일. 하지만 본인은 매우 아쉬웠는지, 녹화가 끝난 후에도 자리를 뜨지 못했다. ~~중계진의 말로는 마음고생으로 잠도 못 잤다고~~ 8월 11일 방송분에서 멤버들과 탈의실에 앉아 있다가, 게스트인 [[은지원]]이 사물함 속에 숨어있다 튀어나오자 기절할 듯이 놀라거나, 경기하는 다른 멤버를 위해 입으로 열심히 휘슬을 불다 숨이 차 주저앉는 등 여러모로 허당 인증을 했다. 참고로 예체능 막내 PD를 상대로 병아리반 멤버들이 전부 패하자, 제정신이냐며 분노하기도 했다(...) ~~트로이 군을 보는 헥토르의 기분이 이랬을까~~ 거기다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만 혼자서 2명이나 무찌르기도 했고 [[유리(소녀시대)|유리]]의 요가교실에서도 발군의 유연성을 발휘해 요가 에이스로도 등극했다. ~~물에서 아예 날아다니는데, 요가를 못하는 게 더 이상하다~~ 수영반 마지막편인 수영 대축제에선, 핀수영 '''선수 출신'''이었던 정성윤을 포함한 라이벌들을 핀수영에서 압도적인 차이로 바르고 1위를 차지.~~ 50m 20초46(허리통증으로 테이핑을 한 상태, 자유형 50m면 세계신기록에 가까운 기록) 정성윤은 24초21~~캐스터와 해설위원은 성훈의 경기 내내 감탄하느라 바빴다. 카메라조차 거의 성훈만 비출 정도였으니(...) 심지어 출연한 다른 팀들의 사람들은 ~~하라는 응원은 안 하고~~ 넋을 놓기까지(...) ~~캐스터는 엉덩이가 섹시하다고~~ 전체적인 평으로는 남자의 수영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든가, 경기를 보고 감동했다는 평가까지 있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남자 인어''' 마지막 개인전에선 가장 먼저 들어왔지만, 터치 미스로 실격하고 말았다. 본인도 마지막이어서 더더욱 아쉬웠는지 눈물을 보였다.~~자세히 보면 허리통증으로 테이핑을 하고 있다. 통증투혼 이었던것.~~ 성훈의 경기를 지켜보던 다른 멤버들과 심지어 코치진도 눈물바다. 여담이지만 유난히 혼자 빵 터지거나(...) 멤버들의 출전 전이나 경기 중일 때 무척 열심히 응원하는 등 리액션이 큰 편이다. 초등학생들과의 공식시합에서는 유망주마저 홀리는 등(...) 본인과 정말 딱 맞는 예능에 출연한 듯. 실제로 예체능을 통해 성훈의 팬이 된 사람들이 많은 듯 하다. 사실상 예체능 수영 편은 보면 알겠지만 정말 성훈 한 명을 위주로 해서 굴러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다른 종목 편에서 해당 종목의 원탑 멤버가 나오면 기사에서 제 2의 성훈이라 지칭하기도 했다.] ||
  • 세이와 겐지 . . . . 1회 일치
         그러나 마사카도는 주변의 히타치(常陸), 카즈사(上総), 시모우사(下総), 무사시(武蔵), 우에노(上野)의 국부(国府)[* 헤이안 시대 지방 행정구역으로서 '국'의 행정기구.]에서 연명으로 모반의 사실이 없다는 증명서를 작성하여 이미 인연이 있던 후지와라노 타다히라에게 보냈다. 이 탓에 오히려 츠네모토가 무고죄로 투옥당하고 만다.--이런 놈이 조상이다.-- 그러나 다행히 곧 마사카도가 모반을 일으켰기 때문에 허위 밀고가 현실이 되어 풀려나게 된다.
  • 소벌도리 . . . . 1회 일치
         진주 소씨 족보의 기록에 따르면 25세손 [[최치원]]은 경주 최씨의 시조가 되었고<ref name="연합1" /><ref name="syge1">[http://www.segye.com/Articles/NEWS/CULTURE/Article.asp?aid=20071228001731&subctg1=&subctg2= [대한민국통맥풍수] <57·끝>경주 최부잣집과 자기 풍수 - 세계를 밝히는 신문 - 세계일보<!-- 봇이 붙인 제목 -->]</ref>, 24대손 [[소경 (사람)|소경]]은 진주 소씨의 선조가 되었다.<ref name="hom1">[http://www.hometer.com/search/personalcontent.asp?m_bon=%B5%BF%C1%D6%28%F5%CB%29&m_sung=%C3%D6%28%F5%CB%29 족보나라 - 대한민국 대표 족보 사이트 종친회<!-- 봇이 붙인 제목 -->]</ref> 그 외에 신라 말, 고려시대 초에 살았던 [[최준옹]](崔俊邕) 도 소벌도리의 25세손이다.<ref name="hom1"/>
  • 손담비 . . . . 1회 일치
         한편, 손담비가 무대에서 특유의 표정을 지어 '업신담비'로 불리며 인터넷상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업신 표정 화제 "니가?" … 본인도 쿨하게 인증|url=http://www.hkn24.com/news/articleView.html?idxno=57743|출판사=이슈프리즘 깜뉴스|저자=인터넷뉴스팀|날짜=2010-10-16|확인날짜=2010-12-22}}</ref> 2010년 10월부터는 MBC의 새 예능 프로그램 《여우의 집사》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저조한 시청률로 인해 방영된지 2개월만에 폐지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 = 여우의 집사 폐지…불과 2개월만, 잘나가던 뉴스후 폐지하더니|url = http://www.newsprime.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7604|출판사 = 프라임 경제|날짜 = 2010-12-17|확인날짜 = 2010-12-29|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40729055321/http://www.newsprime.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7604#|보존날짜 = 2014-07-29|깨진링크 = 예}}</ref> 한편 손담비는 대만에서 큰 인기를 얻었는데, 〈미쳤어〉와 《드림》의 인기로 '2010 [V] CHINESE TOP 연도 시상식 콘서트'에서 아시아 최고 아티스트상을 수상했다.<ref name="대만">{{뉴스 인용|제목=‘섹시 퀸’ 손담비, 대만진출 나선다|url=http://news.donga.com/3//20110117/33997010/1|출판사=donga.com|저자=김원겸 기자|날짜=2011-01-17|확인날짜=2011-01-17|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728204248/http://news.donga.com/3//20110117/33997010/1|보존날짜=2014-07-28|깨진링크=예}}</ref> EP 음반 ''The Queen''역시 대만에서 음반 차트 등 각종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ref name="대만"/> 한편, 2011년 1월에 제20회 서울가요대상에서 본상을 수상하며 3년연속 본상을 수상받았다.<ref name="20회 서가대">{{뉴스 인용|제목=손담비, '서울가요대상' 3년 연속 본상 수상|url=http://www.newsway.kr/news/articleView.html?idxno=101847|출판사=뉴스웨이|저자=최가람 기자|날짜=2011-01-21|확인날짜=2011-01-21}}</ref> 이어 아시아모델시상식에서도 BBF 인기가수상을 수상했다.<ref name="BBF">{{뉴스 인용|제목=권상우ㆍ소녀시대ㆍ옌청쉬, '아시아 스타상'|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1&aid=0004878908|출판사=네이버뉴스|저자=연합뉴스 임은진 기자|날짜=2011-01-21|확인날짜=2011-01-22}}</ref> 2011년 5월부터는 피겨스케이팅 예능 프로그램 《[[김연아의 키스 & 크라이]]》에 출연했고, TOP4에 진출했다.<ref>[http://wizard2.sbs.co.kr/w3/template/tpl_freetype.jsp?vVodId=V0000349432&vProgId=1000708&vMenuId=1014807 김연아의 키스앤크라이 출연진 및 MC 소개] 《[[SBS]]》. 2011-05-21 확인.</ref> 2011년 11월부터는 MBC의 드라마 《빛과 그림자》에서 가수 유채영 역으로 출연했고, 미디엄 템포 장르의 드라마 OST "Everything"을 불렀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빛과 그림자’ OST 참여 ‘호소력 짙은 목소리 뽐내’|url=http://artsnews.mk.co.kr/news/188777|출판사=아츠뉴스|저자=김세영|날짜=2012-01-04|확인날짜=2012-01-05}}</ref> 《빛과 그림자》는 동시간대 드라마 시청률 1위를 유지했고, 손담비는 연기력을 인정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발연기'한다던 손담비, 어느덧 '배우'가 됐다|url=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1047784.htm|출판사=[[스포츠서울]]|저자=오영경|날짜=2012-06-12|확인날짜=2012-06-18|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0616025258/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1047784.htm#|보존날짜=2012-06-16|깨진링크=예}}</ref> 2011년 12월 1일에는 [[애프터스쿨]]과 함께 해피 플레디스 2012 시리즈인 ''[[Happy Pledis 2012 'Love Letter']]''를 발매했고, 수익금 일부를 [[유니세프]]의 "아우인형" 프로젝트에 기부했다.<ref>[http://music.naver.com/album/index.nhn?albumId=304689 네이버 뮤직 - Happy Pledis 2012 `Love Letter`] 《네이버》. 2012-01-05 확인.</ref> 2012년 8월, 《빛과 그림자》가 종영되었고, 손담비는 가수로서 컴백을 준비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런던올림픽과 한판|url=http://sports.donga.com/3/all/20120612/46956635/3|출판사=[[스포츠동아]]|저자=김원겸|날짜=2012-06-13|확인날짜=2012-06-18}}</ref>
  • 손철주 (1954년) . . . . 1회 일치
         1997년 미술 교양서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를 세상에 내면서 평론가로 데뷔했다.<ref name="다음"/> 이 책은 미술교양서 최고의 스테디셀러로 평가받는다.<ref name="중부뉴스"/><ref>{{뉴스 인용|저자=정은선|제목=손철주 평론가 조선시대 미술 특강|url=http://www.leisure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339|날짜=2017-05-17|확인날짜=2017-12-15|뉴스=제주레저신문}}</ref> 유려한 문체로 전통미술 이해를 돕는다.<ref>{{웹 인용|저자=김유리|제목=미술평론가 손철주 “누구나 취향은 태생의 문화적 DNA로 기운다”|url=http://ch.yes24.com/Article/View/23662|웹사이트=채널예스|출판사=예스이십사(주)|확인날짜=2017-12-15}}</ref>
  • 솔롱고스 . . . . 1회 일치
          * [[신라]]를 뜻하는 [[여진어]]([[금나라]] 시대)의 솔고(Solgo), [[거란어]]의 솔호(Solho)가 변형된 것이다.[* 「契丹語史料中に現れる「高麗」」(『韓半島から眺めた契丹・女真』京都大学学術出版会、2011年9月, 아이신기요로 우루히춘(愛新覚羅 烏拉熙春))]
  • 식극의 소마/195화 . . . . 1회 일치
          >어찌됐건 우린 만났다. 그 시대의 낭만적인 천재성.
  • 식극의 소마/210화 . . . . 1회 일치
          잇시키가는 기원을 따져보면 무라마치 시대부터 대대로 교토에서 음식점을 해왔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그들은 [[키노쿠니 네네]]의 키노쿠니 가문과 함께 교토를 동서로 양분하고 있는 명문 중의 명문이다. 동의 키노쿠니, 서의 잇시키란 말이 있을 정도. 이 둘은 관서를 넘어 "일식계 전체에서 양대 명문"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 식극의 소마/226화 . . . . 1회 일치
          카와시마는 이 초밥 밥이야 말로 이 절묘한 맛의 바탕이라고 지목한다. 미마사카의 초밥 간에는 식초 특유의 모난 맛이 없었다. 그 부드러운 맛에 평범한 밥이 아님을 직감하는데. 미마사카는 친절하게 그 비결을 스스로 밝혔다. "붉은 식초". 일반적인 초밥용 식초는 쌀, 밀, 콩 등을 혼합 발효해 만들지만 붉은 식초는 장기 숙성한 "지개미"를 이용한다. 본래 에도 시대의 초밥에는 이 붉은 식초가 필수품이었지만, 제조에 5, 6년이나 걸리기 때문에 지금은 흔히 보기 어려운 고급품이 된 것. 그러나 희소한 만큼 그 맛은 지금 확인한 대로다. 물론 그건 사이토의 비결이기도 했다.
  • 신은정 . . . . 1회 일치
         * [[2014년]] [[KBS2]] 수목드라마 《[[감격시대: 투신의 탄생]]》 ... 김성덕 역
  • 신쥬 . . . . 1회 일치
         일본 에도시대에 유행했던 행위로, 남녀가 동반자살하는 것을 이른다.
  • 씽(마블 코믹스) . . . . 1회 일치
          * 판타스틱 4 이슈 중에서는, 리드의 아버지 너새니얼 리처즈가 리드를 데리고 먼 미래로 데려가면서 그 시대의 상황을 보여주는데, 거기서 나온 바로는 씽은 위의 언급된 능력 이외에도, [[노화]]속도가 엄청나게 느려져서 수백 년이 지나도 살아있고, 판타스틱 4의 다른 멤버가 죽은 이후에도 판타스틱 4로 프랭클린과 같이 싸워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 엄청나게 느린 노화속도[* 대략 1,000년당 보통사람이 19살 먹는 속도이다.]가 결국에는 씽을 오랜 고독 속에 버려지게 했고, 4천년 후에는 그저 노망든 노인 취급 받다가 프랭클린이 보는 앞에서 노환으로 사망하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 후 리드가 현실로 돌아와서 씽을 쳐다보자, 리드가 [[리모컨]] 뺏는 줄 알고 경계하는 모습이랑 대비가(...)
  • 아귀 . . . . 1회 일치
         프레타(Preta)는 본래 [[베다 시대]]의 [[리그 베다]] 등의 경전에서는 [[하늘]]에 거주하는 조상의 영혼으로 여겨졌다. 이는 저승의 신 [[야마]] 역시 비슷하여, 하늘에 살면서 조상의 영혼들을 다스리는 것으로 여겨졌다. 인과응보와 업보 사상이 발전하면서 이들은 업보를 받아 괴롭게 사는 죽은 자의 영혼으로 여겨져서, 불교 육도의 하나로서 지하세계에 해당하는 [[아귀도]]에 사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 아기발도 우투리 관련설 . . . . 1회 일치
         아기발도 자체는 조선시대 초기에 사대부 계층에서 매우 유명한 인물이었는데, 이는 조선의 개창자인 태조 이성계의 대적자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아기발도 이야기는 "왜군 장수 아기발도는 강했다. 하지만 장군 이성계가 물리쳤다. 따라서 이성계의 권력에 정당성이 있다."는 줄거리로서, 전형적인 '외부의 위협'(아기발도)에 대항하는 '내부의 영웅'(이성계)을 강조하여 국가의 수호자로서 왕조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정치적 바탕이 되었다.
  • 안축 (고려) . . . . 1회 일치
         <ref name="gwe">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n.d.). [[: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언어I·한국문학·논술/고려-조선의 문학/고려시대 문학/고려 후기#안축|“안축”]].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2017년 11월 26일 확인함. </ref>
  • 안효민 . . . . 1회 일치
         * 2017.09.18~2017.09.20 EBS 다큐프라임 <4차 산업혁명시대 교육대혁명> ([[EBS]])
  • 야간전투기 . . . . 1회 일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이더의 발달과 함께 등장했다. 한국전쟁 이후 레이더가 발달하여 모든 전투기에 탑재가 가능해지면서 시대를 거쳐서 자연히 사라졌다.
  • 어쌔신 크리드 III . . . . 1회 일치
         >1775년의 아메리카 식민지. 시민 불안과 사회적 파동이 아메리카 곳곳에 깔려있던 시대입니다. 땅과 사람들을 위해 싸우는 아메리카 원주민 암살자로써, 그는 어린 국가의 혁명에 불을 지필 것입니다.
  • 얼티밋 에콜로지 . . . . 1회 일치
         빛나는 우주 개발의 시대. 인류는 은하계 전역에 영역을 확장하고 있었다.
  • 연광철 . . . . 1회 일치
         가곡의 해석에도 일가견이 있어 정명훈의 반주로 <겨울여행(Winterreise)>를 소니 레이블로 출반하기도 했다. 그의 독일어에 대한 해석은 시대와 지방에 따른 뉘앙스와 억양의 차이까지도 디테일하게 전달하는 분석적인 해석으로 정평이 나있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교수를 역임했다. 2016년과 2017년 두 차례에 걸쳐 JCC아트홀에서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젊은 성악도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 연하장 . . . . 1회 일치
         조선시대에는 ‘세함(歲銜)’이라고 하여, 신년 초에 직접 찾아가 인사하지 못하면 아랫사람을 시켜서 서찰을 보내는 풍습이 있었다. 관아에 속한 장교나 병졸은 자기 이름을 적은 쪽지를 상관의 집으로 찾아가서 세합장에 넣었다.--셀프 우편배달-- 양반 집안 여인들은 바깥 출입이 어려워, 친지에게 덕담을 담은 글을 써서 여종을 시켜 배달하게 했는데, 이를 문안비(問安婢)라고 불렀다.
  • 영국 . . . . 1회 일치
         20세기 초에는 [[아돌프 히틀러]]가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 지방 달라고 빼액거리자 줬다. 우리 시대의 평화 ^^. 영국을 비롯한 연합국을 믿던 체코슬로바키아는 얼마 못가고 독일에게 완전히 잡아먹혔다.
  • 영덕군 . . . . 1회 일치
         조선시대 때만 해도 영덕은 영덕군의 남쪽 지역이었고, 북쪽은 '''영해(寧海)'''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서로 다른 지역이었다. [[일제강점기]]때인 1914년 영덕과 영해를 합쳐서 현재의 영덕군이 되었고, 지역의 중심이 영덕읍 쪽으로 옮겨가면서 상대적으로 북쪽 영해 지역의 발전이 더디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영해면이 영덕군 북부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 영주시 . . . . 1회 일치
         부석면의 봉황산 자락에는 그 유명한 [[부석사]]가 있다.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최순우 작가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배경)과 부석사 소조 아미타여래 좌상을 볼 수 있다. 무량수전과 함께 [[고려]]시대 문화재인데, 이 좌상은 향토색이 강조되고 인체비례적 아름다움에서는 약간 떨어지는 ~~저퀄~~고려 불상과는 달리 [[신라]] 불상의 양식을 계승해 균형미를 갖춘 불상으로 평가된다.
  • 오방낭 . . . . 1회 일치
         조선시대에는 왕실에서 쓰였는데, 궁중에서 가례시에 부적으로 만들어 졌으며, 만들어진 주머니는 종친이나 나인들에게 하사되었다. 특히 정월 첫날에는 볶은 콩을 한 알씩 붉은 종이에 싸넣은 오방낭을 왕실 종친에게 하사하는 풍습이 있었다.
  • 오석산 . . . . 1회 일치
         [[조위]] 말기에 유행하여 [[서진]] 시기에서 위진남북조 시대에 크게 유행한 '''[[마약]]'''.
  • 오싱 . . . . 1회 일치
         작중에서 오싱의 인생이 참으로 파란만장한데,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서 어린 나이에 일꾼으로 쌀도매상에 팔려가거나, 어른이 되어 상경한 다음 미용사가 되었다가 옷장사를 하는 남편과 만나고 상업재능을 그럭저럭 잘 살게 되었다가 관동대지진으로 쑥밭이 되서 망하거나, 그 때문에 시골로 내려나 시집살이를 하는데 학대 당한 탓에 자기 아이는 사산되고 시누이가 낳은 아이의 젖을 물리게 되거나, 2차대전으로 남편과 장남을 잃고 생선 장사를 시작하여 자기 가게를 일으켜 세우지만 성장한 아이들은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면서 반발하거나 등등.
  • 오츠보네 . . . . 1회 일치
         본래 궁중이나 에도 시대의 오오쿠(일본 쇼군을 위한 후궁)등에서 츠보(局, 개인실)이 주워진 여관(女官)을 부르는 호칭이었다. 오츠보네는 당시 후궁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지도하는 위치에 있는 상당히 지위 있는 계급이었다.
  • 우물가 회의 . . . . 1회 일치
         과거 일본에서 메이지 시대의 도시는 공동우물이라는 시설이 있어, 우물가는 여자들이 물을 길러 오거나, 세탁을 하면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잡담을 나누고 소문을 퍼트리던 장소였다.
  • 우치벤케이 . . . . 1회 일치
         우치(内)는 집 안, 벤케이(弁慶)는 [[헤이안 시대]] [[겐페이 전쟁]] 시기에 활약했다는 전설적인 장수 [[무사시보 벤케이]]를 뜻한다. 따라서 "집 안 벤케이"란, "집 안에서는 벤케이처럼 용감하지만, 집 밖에서는…."라는 의미가 된다.
  • 우현(배우) . . . . 1회 일치
          * 엄청난 마성의 매력 소유자다. 본인 말로는 "처음 볼 때는 엄청 싫어하다가, 몇 번 보고 나면 재미있고 유쾌한 매력에 점차 빠져든다"고 한다. 이 때문에 아내도 이런 매력에 다른 사람들이 좋아할까 두려워한다고 한다. 실제로도 배우 [[조민희]]나 박남정 딸 [[박시은(2001)|박시은]]도 잠시 동안에 빠졌었다. 그래서 못친소에 나온 것이 싫었다고.[* 못친소에서 밝히길 아들 준서도 처음엔 엄청 싫어했지만 5살 즈음에 좋아했다고 언급했다. 그런데 우현의 아들은 못친소 특집에 우현이 나간다고 하자, "아빠가 꼭 1등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고 우현이 왜냐고 반발하자, "아빠가 잘생긴 걸로 1등할 수 없기 때문에 그걸(못생긴거)로라도 꼭 1등했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그러나 주변인의 증언과 본인 인터뷰를 종합해보면 사실 단순히 재미있고 유쾌한 모습의 마성이라기보다, 실제로 인성이 훌륭하고 부드러우며 심지도 곧은데다가 포용력과 배려심이 깊어서, 많은 사람들이 유형을 가리지 않고 쉽게 편안함을 느끼고 좋아하게 되는, 즉 [[진국]]이라서 그런 것이다. 엄혹한 시대에 독재에 맞서 민주화 운동으로 청춘을 던진 것만 봐도 정신이 올바른 것이 보인다. 본인도 삶의 목표가 '지인들이 있는 자리에 내가 온다고 하면 기분 좋아지고 환영하고 싶어지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단지 본인의 외모와 작품에서 맡은 역할이 뭔가 표독스럽거나 독특한 성격의 느낌을 준 적이 많아, 사적으로 보면 그와 전혀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마성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못친소에서도 결국 그 대인친화적인 인성으로 우승을 했다.[* '생각해보니 진짜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노홍철]]이 1등을 했던 못친소 1과 다르게 우현이 나온 못친소 2는 '못생겼지만 매력 있는 남자' 컨셉으로 출연자들이 정말 가장 마음에 들었던 사람을 뽑았던 사실상의 인기투표였다.]
  • 운제부인 . . . . 1회 일치
         운제부인은 [[신라]]의 2대 군주 [[남해 차차웅]]의 부인으로 아루부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남해왕과의 사이에서 [[유리 이사금]]과 [[아효부인]]을 낳았다. 사후에는 신격화되어 무속 신앙의 주신 중 하나가 되었다. [[운제산]] 또는 [[선도산]]에 산다 해서 운제산성모(雲梯山聖母) 또는 선도성모(仙桃聖母)로 불리며, [[고려|고려시대]] 영일현(지금의 [[포항시]])의 서쪽에 운제산성모(雲梯山聖母)가 있는데 가뭄 때에 여기에 빌면 감응이 있다고 하였다. 운제산은 현재 [[포항시]] 남구 오천읍과 대송면 사이에 있다.
  • 울산광역시 . . . . 1회 일치
         삼한시대 울산의 소국들
  • 원피스 . . . . 1회 일치
         일찍히 최고의 보물 "원피스"를 손에 넣었던 해적 골드 로저가 죽은 후 그의 보물을 노리는 이들이 너도 나도 해적질에 뛰어들면서 '''대해적시대'''가 열린다.
  • 위키서치 . . . . 1회 일치
         [[대위키시대]]를 맞아 탄생한 여러 개의 [[위키위키]]를 한꺼번에 서치하는 시스템.
  • 유곽 . . . . 1회 일치
          * 일본에서는 [[에도 시대]] 에도 부근에 있었던 요시와라가 유명하다.
  • 유승민(배우) . . . . 1회 일치
         [[무인시대]] 2003 ~ 2004
  • 유승진 (필드하키 선수) . . . . 1회 일치
         고교 시대부터 한국 대표 선수로 활약,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우승에 공헌했다. [[1988년 하계 올림픽|1988년 하계 서울 올림픽]](10위), [[1996년 하계 올림픽|1996년 하계 애틀란다 올림픽]](5위)에서도 한국 대표로 출전했다. 1991년부터 남자하키 일본 리그 '表示灯'(현재의 나고야 프레이터(NAGOYA FRATER)) 선수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1996년에는 이 팀 감독에 취임했다.1996년에 일본 [[주쿄대학교]] 대학원 졸업을 하였고, 1996~2001년 일본 남자 하키 대표팀 코치, 2006~2007년 [[덴리 대학]] 여자 하키부 감독, 2006~2008년 일본 여자 하키 대표팀 수석코치로 활약했다. 2008년부터 여자 하키 일본 리그의 '코카콜라 웨스트' 감독을 맡았다. 2011년에는 같은해 현재 아시아 10명 밖에 없는 [[국제 하키 연맹]] 공인 코치 면허를 취득 했으며 2016년에는 [국제 하키 연맹] 공인 Coach Educator 자격과 함께 [아시아 하키연맹] 코칭 판넬에서 코치를 위한 코치 강습을 담당하고 있다. 2012년 10월 일본 여자 하키 대표팀 감독으로 임명됐다. 2016년부터 경상북도 체육회 여자하키팀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 윤민수 (가수) . . . . 1회 일치
         [[1998년]] [[R&B]] [[보컬]] 그룹 [[포맨]](1기)으로 데뷔했으며, [[포맨]] 1기 해체 이후 [[2002년]] [[류재현]], [[노블레스 (가수)|유성규]]([[노블레스 (가수)|노블레스]])와 함께 [[바이브 (음악 그룹)|바이브]]를 결성했다. 1집 〈미워도 다시 한 번〉, 〈Promise U〉([[2006년]] [[씨야]] 1집에서 리메이크) 등의 곡으로 [[바이브 (음악 그룹)|바이브]]라는 이름을 대중들에게 각인시킨 후<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3&aid=0000010498 '브라운 아이드 소울' , '바이브' 전성 시대] 《뉴시스》, 2003년 12월 5일</ref>, [[2003년]] 2집 〈오래 오래〉, 〈사진을 보다가〉에 이어 [[2006년]]에 발표한 3집 〈술이야〉와 〈그 남자 그 여자〉는 방송 활동 없이 10만 장 이상의 앨범 판매와 각종 음반 차트에서 1위 및 각종 수상을 받는 등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3집 활동을 끝내고 [[2006년]] 말 [[산업기능요원]]으로 대체 복무를 시작하여 [[2009년]]에 끝내고 잠시 공백 기간을 가졌으며, 가수 활동을 하며 경험할 수 없었던 ‘직장 생활’ 이야기를 소재로 한 곡을 만들어 복무를 끝낸 후 발표한 4집 수록곡에 싣기도 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79&aid=0002161570 바이브 "예능에서 망가질 자신 없다"] 《노컷뉴스》, 2010년 6월 16일</ref> [[2010년]] 4집 《Vibe in Praha》를 발매해 다시 한 번 많은 사랑을 받았다. 현재 [[바이브 (음악 그룹)|바이브]]의 멤버이면서 그룹 [[포맨]]([[신용재]], [[김원주 (가수)|김원주]])이 소속된 와이후엔터프라이즈의 대표이자 [[음악 프로듀서|프로듀서]], [[작곡가]]로 활동 중이다. [[2011년]] [[MBC TV|MBC]] [[우리들의 일밤]]의 코너 [[나는 가수다]]에 출연해 명예 졸업했으며, [[2013년]] 1월부터 장남 윤후와 함께 [[MBCTV|MBC]] [[우리들의 일밤]]의 코너 [[아빠! 어디가?]]에 출연했었다. 그가 출연한 [[2011년]]의 "[[나는 가수다]]" 코너가 대상을 받았고, [[2013년]]에는 "[[아빠! 어디가?]]" 코너가 대상을 받아 가수로는 드물게 방송연예대상을 2회 수상하였다.<ref>[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312300054041210 MBC연예대상 진짜 승자는 윤민수 ‘3년간 대상 2연패’] - 뉴스엔</ref>
  • 윤상현(배우) . . . . 1회 일치
         || [[놀러와]] ||<|2> 게스트[* 월요일 밤 11시대에 동시에 방영하는 두 프로그램에 윤상현이 같은 날(6월 1일) 출연하는 촌극이 빚어졌다. 방영일을 사전 협의와 다르게 바꿔버린 것은 《야심만만》 쪽이었다. 하지만 이를 모르는 시청자들은 불만을 토로했고, 욕은 윤상현이 다 먹게 된 억울한 상황이었다. 자세한 사정은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015851|여기]]를 참고할 것.] ||
  • 윤석용 . . . . 1회 일치
         * 복지르네상스를 지향하며, 윤석용의 복지인생스토리, 2020년대 사회복지정책을 위한 제헌, 그대도 곧! 지금! 다시(시집), 내가할래요(언어치료)-절판, 사계절의 울음(시집), 찾아가는 개인 맞춤형 복지시대, 캐롤라이나 교육과정(장애유아교육), 한약 목욕치료
  • 윤인조 . . . . 1회 일치
         * 《민자씨의 황금시대》 (2008년)
  • 윤휘 . . . . 1회 일치
         '''윤휘'''(尹暉, [[1571년]] - [[1644년]])는 조선시대 후기의 문신이다. [[1636년]]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조선 인조]]를 남한산성까지 호종, [[조선 인조]]를 도와 적진인 [[청나라]] 진영을 왕래, 교섭하며 설득과 화의를 추진하였고, 환도 뒤 도승지가 되어 청나라와의 외교를 전담하였다.
  • 윤흔 . . . . 1회 일치
         '''윤흔'''(尹昕, [[1564년]] - [[1638년]] [[12월 17일]])은 [[조선]]시대 후기의 무신, 정치인이다. 본관은 해평. [[윤두수]]의 둘째 아들, [[윤훤]]의 형이다. 본관은 해평(海平)으로 초명은 양(暘)이고, 자는 시회(時晦), 호는 도재(陶齋) 또는 청강(晴江), 계음(溪陰)이다. 시호는 정민(靖敏)이다. [[이괄의 난]], [[병자호란]], [[정묘호란]] 당시 [[조선 인조|인조]]를 수행하였으며, [[병자호란|병자]], [[정묘호란]] 당시 [[청나라]]와의 협상을 반대하며 [[주전론]]을 주장하였다.
  • 은혼/613화 . . . . 1회 일치
          * 모든 것을 갖췄던 형을 떠올리며 "왕이란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라 자조하는 바루카스. 하타는 그 말을 부정하며 "형님은 그 못지 않다. 단지 칭코가..."라고 아쉬워한다. 하지만 무심결에 그의 결점을 찔러버린게 돼서 사과한다. 바루카스는 너그럽게 용서하며 이 평화에 시대는 하타처럼 상냥한 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신이 여기에 있는다면 왕위를 놓고 내전이 일어날 테니, 지금의 평화조차 지킬 수 없는 인물이라 자학한다.
  • 은혼/614화 . . . . 1회 일치
          * 하타 황태자의 청을 뒤로하고, 바루카스 황태자는 길을 떠난다. 하타가 평화로운 시대의 왕으로 어울리듯 자신에게도 어울리는 자리가 있을 거라 믿으며. 그렇게 작은 칭코도 신분도 숨긴 채 전장에 몸을 던진다. 그 과정에서 만난 것이 필생의 라이벌 엔쇼우 황자. 그는 모든 것을 잊으려는 듯 전쟁에 매달렸고 전장에서 전장으로 옮겨가는 삶을 살아왔다. 그렇게해서 도달한 곳이 이곳. 그는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 은혼/632화 . . . . 1회 일치
          연주 소리를 듣고 관군들이 다가온다. 무슨 짓이냐고 추궁하자 그는 조용히 듣기나 하라며 연주를 멈추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아무렇게나 둔 칼이 발각된다. 위험한 물건을 가지고 있으면 모두 양이지사로 모는 시대. 시비가 일어난 동안 관군들도 행인들도 반사이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그러느라 정작 사형수에게 일어난 이변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누군가 소녀를 감시하던 병력들을 쓰러뜨렸고 어느 새 소녀는 어디론가 도망치고 없었던 것이다.
  • 은혼/633화 . . . . 1회 일치
          노부노부는 그 누구도 이들을 반란군이라 부르지 못하게 하겠다고, 시대에 뒤떨어진 패배자라고 부르지 못하게 할 것을 선언한다. 그리고 그들이야 말로 정부군이라 선언하기에 이른다. 거기서 가츠라가 대답한다.
  • 은혼/642화 . . . . 1회 일치
          * 무수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히노카구츠치의 충전은 순조롭게 계속되어 어느덧 충전율 85%. 완충까지 5분 남짓이 남았다. [[엔죠]] 황자는 이제 모든 것이 끝날 거라 확신했다. 그들의 전쟁도 천도중의 시대도, 그리고 지구도. 그러나 마지막까지 앉아서 기다리게 만들어주지 않았다. 에너지 공급 시스템이 누군가에게 해킹 당했다. 이제 엔죠 황자 측에서 충전을 조종할 수가 없다.
  • 의성군 . . . . 1회 일치
         [[삼한]] 시대에는 조문국이라는 소국이 있었다. [[신라]] [[경덕왕]] 때에는 문소군이라 개칭되었다.[[고려]] 초에 이르러 의로운 고장이라 하여 의성부로 승격되었다.
  • 이갑성 . . . . 1회 일치
         * [[이일웅]] - [[2003년]] ([[야인시대]]) [[SBS]] 드라마
  • 이강돈 . . . . 1회 일치
         어쨌거나 빙그레의 주축으로 매년 10개 가량의 홈런을 기대할 수 있고, 3할 근처의 타율을 기대할 수 있는 선수였다. 그 결과 이강돈은 두 차례 최다안타 1위와 1988년부터 1991년까지 4년 연속 [[KBO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 이규환 (영화감독) . . . . 1회 일치
         |제목=식민지시대 대중예술인 사전
  • 이미연 (배우) . . . . 1회 일치
         * [[1996년]] [[채널CGV|HBS 현대방송]] 《히트예감 광고시대
  • 이보림 . . . . 1회 일치
         ||<#FFF32B> {{{#202020 '''팀'''}}} || 유닛 빨강[br](지금은 청순시대) || 유닛 검정[br] || 유닛 노랑[br](10시 45분) ||
  • 이보희(배우) . . . . 1회 일치
         의외로 사극에 많이 출연하는 배우이다. '[[용의 눈물]]'에서도 [[태종(조선)|태종]] 이방원이 미모를 보고 마음에 들어 새로들인 이후 원경왕후([[최명길(배우)|최명길]] 역)와 갈등을 일으키는 후궁 선빈 안씨역을 맡기도 했다. '[[여인천하]]'에선 [[중종(조선)|중종]]의 모후 정현왕후([[자순대비]])역을 맡기도 했었다. '[[서궁]]'에선 주인공 격인 [[인목대비]] 역, KBS의 2002년작 '[[장희빈(2002년 드라마)|장희빈]]'에서는 장희빈의 어머니 윤씨 역도 맡은 바 있다. 시대극인 '[[서울 1945]]'에서도 아메 카오리 역을 맡았다.
  • 이상무(만화가) . . . . 1회 일치
         이상무는 데뷔작이 고교생이 주인공인 청춘 개그물이었고 스포츠 만화나 가족 드라마를 주로 그렸지만, 주 독자층인 어린이들이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성인 취향의 주제를 자주 다루었다. 예를 들어, 재일교포 형제를 주인공으로 그린 [[현해탄 너머]]에서 동시대 만화가들처럼 단순히 일본인들의 재일교포 차별만 넣는 대신 두 나라 사이에서 갈등하는 2세대 교포의 모습도 다루었다. 독고 탁이 투수로 나오는 한국인 시리즈가 그 극이라 할수 있다. [[비둘기 합창]]에서 소아마비 장애 때문에 남자친구에게 버림 받는 여자를 그렸는가 하면, [[달려라 꼴찌]]에서 일본의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과 한국의 흑인 혼혈인에 대한 인종 차별을 묘사하였다. 밝은 그림에 비해서는 주제가 무거운 편.
  • 이상화 (시인) . . . . 1회 일치
         [[2009년]] 초부터 [[대경대학교]] 뮤지컬학과 학생들은 이상화의 일대기를 뮤지컬로 제작하였다. 대본을 맡은 학생 허윤선은 이상화의 둘째 아들인 이충희를 수소문해 이상화 시인의 삶에 대해 묻고 극을 구성했다.<ref name="mkros">[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09&no=609348 <nowiki>[</nowiki>민족시인 이상화 일대기 창작뮤지컬로 그린다<nowiki>]</nowiki>] 매일경제 2009.11.25</ref> 이들은 지난 6개월간 시인의 삶을 기록한 책자를 참고하면서 대구시 중구 계산동 소재 이상화 고택을 수십차례 방문해 당시 분위기를 몸에 익혔다. 대경대 뮤지컬과 1학년 학생 30여명은 1920년대 식민지 시대를 살면서 저항시인으로 뜻을 굽히지 않은 이상화 시인의 삶과 비극적 역사상황을 담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만들었다.<ref name="mkros"/>
  • 이승경 (1290년) . . . . 1회 일치
         '''이승경'''(李承慶, [[1290년]] ∼ [[1360년]])은 고려시대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중선(仲善)이다. 원나라로 유학하여 문과 을과에 급제하여 태자첨사가 되었고, 요양성 참지성사로 승진하였으며 원나라 조정에서 및 그의 부 [[이천년]]과 조부 [[이장경]]에게 특별히 농서군공에 추봉하였다. 공민왕 때, 문하시량평장사가 되었고, 1359년 홍건적이 침입하자 도원수가 되어 적을 물리치고, 서경을 회복하여 충근경절협모위원공신이 되었다. [[이조년]]은 그의 숙부였고, [[이인임]], [[이인복]], [[이인민]], [[이인립]]의 5촌 당숙이다.
  • 이시형 (1934년) . . . . 1회 일치
         * 100세 시대 젊고 건강하게
  • 이억년 . . . . 1회 일치
         '''이억년'''(李億年, ? - ?)은 고려시대 후기의 문신, 유학자이다. 자는 인여(仁汝), 호는 요산재(樂山齋)이고 본관은 성주이다. [[이조년]]의 형이자 [[이승경]]의 삼촌이고, [[이인임]], [[이인복]], [[이인민]], [[이인립]]의 종조부이며 [[이숭인]]의 종고조부이다. [[경상북도]] 출신. 1285년(충렬왕11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여러 벼슬을 거쳐 개성부 유수(開城府留守)로 부임했다. 개성부 유수를 지내면서 많은 치적을 남겼는데 당시 원나라가 국정에 간섭, 관여하자 원나라의 개입을 항의하는 시 '천재홍진몽외사(千載紅塵夢外事) 청산하처독엄비(靑山何處獨掩扉)'라는 시를 남기고 치사(致仕), 경상남도 함양군 위성(渭城) 엄천리嚴川里)로 들어가 서당인 도정정사(道正精舍)를 짓고 후학을 양성하며 공맹의 도를 강론하였다. 사후 성주의 안산서원, 금릉의 상친사에 제향되었다.
  • 이열희 (1924년) . . . . 1회 일치
         그의 증조부 [[이동진]]과 할아버지 소남 [[이일우]]는 구한말~일제시대의 사업가로 [[우현서루]]를 건립하여 학생들을 가르쳤다. 고모부 윤홍열은 미군정기 때 남조선과도입법위원회 의원을 역임했으며, [[5.16 군사 정변]]에 참여한 군인 출신 사학자 [[박창암]]의 처 이겸희는 그와 6촌간이었다. 고모 이숙경의 며느리는 [[1945년]] [[8.15 광복]] 후 초대 [[대구광역시장|경북 대구시장]]을 지낸 [[허억]]의 딸이었다.
  • 이인민 . . . . 1회 일치
         '''이인민'''(李仁敏, [[1330년]] ~ [[1393년]])은 고려시대의 문신으로 호는 모은(慕隱)이며 본관은 [[성주 이씨|성주]]이다. 대제학 [[이조년]]의 손자이자 [[이인복]], [[이인임]]의 동생이며 [[이숭인]]의 당숙이다. 경상북도 출신.
  • 이장경 . . . . 1회 일치
         '''이장경'''(李長庚, ? ~ ?)은 [[고려]]시대 중기의 호족으로 [[이백년]], [[이천년]], [[이만년]], [[이억년]], [[이조년]] 5형제의 아버지이자 [[이인기]], [[이승경]]의 할아버지였다. [[이인임]]의 증조부, [[이숭인]]의 고조부였다. 아들 5형제의 출세로 거듭 증직되고 광산부원군(廣山府院君)에 추봉되었다가 손자 [[이승경]]의 출세로 [[원나라]]로부터 농서군공(隴西郡公)에 추봉되었다. 본관은 [[성주 이씨|성주]]이며 [[성주 이씨]]의 중시조로 본다. [[경상북도]] 출신.
  • 이재룡(1964) . . . . 1회 일치
         ||<|2> 2002년 || MBC || 맹가네 전성시대 || 최규식 || ||
  • 이주승(영화배우) . . . . 1회 일치
         그런데 나중에 '''셔츠를 진짜로 저렇게 입고다니는 게 일종의 패션이 되면서''' 시대를 앞서나가는 패션리더가 되었다(...).
  • 이지아(배우) . . . . 1회 일치
         이지아의 사촌동생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그냥 세금 좀 많이 내면 친일이란 거냐고 주장하며 자신의 할아버지는 나쁜 친일파가 아니었고 시대의 희생자였을 뿐이라는 글을 게재하여 또 한 번 논란이 되기도 했다.[* 세금 많이 내면 친일파는 아니다 당연히. 그렇게 따지면 당시 재력가는 모두 일고의 여지가 없는 친일파일 것이다.~~물론 대다수가 그렇지만~~ 김순흥의 경우는 자발적인 기부금이었다는 것에서 친일색을 띠고 있음이 증명되는 것이고, 더해서 반일운동에 대항하기 위한 자금도 지원했으며, 강제 징병이 실시된 이후로는 징병제를 찬성하는 성명을 내놓고, 일본 패망 직후에 [[한국민주당]]의 발기인으로 참석해 친미 성향, 혹은 친일에 대한 세탁 등을 한 인물이다. 이를 두고서 친일파가 아니라면, 참 서글픈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샤를 드 골]]과 프랑스의 처우와 비교되는 모습이다.] 팬들 중 몰상식한 일부 사람들도 이런 논리를 주장하거나 이후에 육영사업에 기여했으니 죗값을 씻은 거~~100억 원 꿀꺽하고 1억 원 기부하면 깨끗한 거냐~~라는 둥 지나친 두둔을 하여 반감을 사기도 한다.
  • 이진주 (1678년) . . . . 1회 일치
         '''이진주'''(李鎭周, [[1678년]] ~ [[1737년]] [[10월 28일]])는 [[조선]]시대 후기의 문신이다. 자는 문보(文甫), 문주(文周), 본관은 우계(羽溪)이다. 취사 [[이여빈]]의 종4대손이 된다.
  • 이철우(1955) . . . . 1회 일치
         2018년 9월 4일 한 언론사와 한 인터뷰에서 하락하는 경북 경제의 해법으로 4차 산업혁명을 제시하였다. 정부의 탈원전 기조에 맞추어 포항, 울릉, 울진, 영덕을 중심으로 동해안 에너지 클러스터를 구축하여 풍력, 수소에너지 등 신재생 에너지 산업 확장에 나서고 농어업이 4차 산업혁명시대에 맞게 스마트팜 혁신 밸리와 스마트 양식장 등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였다. [[http://www.etnews.com/20180903000231|[인터뷰]이철우 경북도지사...'동해안에너지클러스터와 4차 산업혁명 일자리 창출']]
  • 이혜숙(영화배우) . . . . 1회 일치
          * [[영웅시대]] - 천태희
  • 이효린 . . . . 1회 일치
         '''이효린'''(李孝麟, 1540년 - 1622년)은 조선시대의 유학자, 의병장이다. 본관은 우계이고, 도촌 이수형의 증손이며 참봉 이은의 넷째 아들이다. 자는 원서(源瑞),
  • 일곱개의 대죄/201화 . . . . 1회 일치
          * 디안느가 허둥지둥 따라가기 시작한다. 그런데 킹이 이곳은 3000년 전의 [[브리타니아]]인 것 같다고 말한다. 그들이 있던 시대엔 여신족이 실체를 가지는게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들은 마신족과 전쟁으로 힘을 잃어 실체를 보일 수 없다. 풍경도 그들이 아는 브리타니아와 전혀 다른데다, 무엇보다 그들의 눈동자가 십계인 지금의 눈동자와는 전혀 다른 빛이다.
  • 일곱개의 대죄/212화 . . . . 1회 일치
          쑥스러워하던 디안느는 조심스럽게 궁금한 점을 털어놓는다. 그녀는 "성전을 끝낸다"는 고서의 말이 신경 쓰였다. 정말로 그런게 가능할까? 고서는 그렇다고 자신한다. 자신의 생각이 옳다면 확실히 그렇다. 그는 디안느에게 미래 세계에도 성전이 계속되고 있냐고 묻는다. 디안느는 자신의 시간 감각으로 "3000년 전에 끝났다"고 답하는데 생각해 보니 이 성전시대가 바로 자기 시간에서 3000년 전이니, 이곳 시간으로 얼마 안 가서 끝난다는 말이 된다.
  • 일곱개의 대죄/217화 . . . . 1회 일치
          * 멜리오다스가 살아난 것은 길고 복잡한 이야기지만 당사자는 "이것저것 있어서 되살아났다"고 대충 설명한다. 디안느는 그의 생환이 그저 기뻤고 할리퀸은 "너무 대충인 설명"이라 투덜댔으나, 그는 불평할 입장이 아니었다. 곧 진지한 말투로 멜리오다스에게 "멋대로 오해해서 미안했다"고 정중히 사과한다. 그는 멜리오다스가 마신족이라 생각해서 배척했었는데 성전시대의 사건을 보고 완전히 생각이 바뀌었다.
  • 일곱개의 대죄/219화 . . . . 1회 일치
          그런데 엘레인의 질문이 디안느가 깜빡하고 잊던 것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디안느는 엘리자베스를 향해 자신이 성전시대에서 봤던, 아직 단원들에게 밝히지 않았던 사실을 털어놓는다.
  • 일곱개의 대죄/221화 . . . . 1회 일치
          멜리오다스에게 동요의 빛이 떠오른 것도 잠시. 그는 모든게 우연일 뿐이라고 얼버무린다. 엘리자베스도 그렇게 생각했다. 어제까지는. [[디안느]]와 [[할리퀸(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이 성전시대로 돌아가 자신과 똑닮은, 여신족 소녀 엘리자베스를 봤다고 말하기 전까진. 이것도 그저 우연일 뿐이냐고 묻는 엘리자베스. 이제 멜리오다스는 눈에 띄게 당황한다. 그는 너무 피곤해서 헛된 생각을 하는게 아니냐고 말하지만 말에 자신이 없다. 엘리자베스는 더욱 거세게 몰아붙인다. 같은 증언을 해준 사람이 한 사람 더 있기 때문이다. 십계의 [[데리엘]]. 그녀가 엘리자베스와 마주쳤을 때 이렇게 말했었다.
  • 일곱개의 대죄/223화 . . . . 1회 일치
          [[엘리자베스 리오네스]]는 전날 [[반(일곱 개의 대죄)|반]]에게 부탁 받은대로 [[엘레인(일곱 개의 대죄)|엘레인]]의 상태를 돌본다. 시름시름 앓던 엘레인이 엘리자베스의 힘을 쐬이자 조금 기운을 되찾는다. 여행은 계속되고, 정신을 차린 엘레인과 [[디안느]], 엘리자베스 셋이서 티타임을 가진다. 이날은 엘리자베스가 사실 윤회를 거듭하며 [[멜리오다스]]와 인연을 쌓아왔다는 이야기가 화제다. 엘레인은 참 기묘한 이야기라 말하며 디안느는 3천년 전 성전시대에서 목격했던 엘리자베스가 지금 눈 앞의 당사자였을 줄은 몰랐다고 호들갑 떤다. 정작 엘리자베스는 아직도 반신반의하는 상태. 디안느는 그래도 믿고 싶은 것 아니냐고 떠본다.
  • 일곱개의 대죄/224화 . . . . 1회 일치
          * [[엘리자베스 리오네스]]가 알 수 없는 발작을 일으키고 쓰러진 뒤, [[멜리오다스]]는 그녀가 4일 뒤면 죽을 거라고 말한다. 이제 그들에게 얽힌 3천 년의 진실이 공개된다. 이야기는 다시 성전시대로 거슬러 간다. 두 사람은 각각의 종족에서 배신자로 낙인 찍혔다. 멜리오다스는 마신족이면서 여신족과 손잡고 동족을 학살한 죄. 엘리자베스는 여신족이면서도 마신족 남성과 사랑하고 적인 십계를 구한 죄. 이 죄로 인해 둘은 어떤 벌을 받게 된다.
  • 일곱개의 대죄/230화 . . . . 1회 일치
          >"십계" 통솔자 시대, "십계" 조차 두려워한 "섬멸상태"!
  • 일곱개의 대죄/에피소드 . . . . 1회 일치
         === 성전시대의 시련 ===
  • 일본어의 청음과 탁음 . . . . 1회 일치
         か행, た행, は행이 청음으로 분류되며 그중에서 は행은 원래 그 자체가 /p/소리였으나 헤이안 시대 이후로 순음퇴화 현상을 거치면서 현재의 /h/가 되었다. 현재 /p/음가는 '반탁음'으로 분류하며 は행 위에 고리 모양의 기호를 붙여 표기한다.
  • 일장청 호삼랑 . . . . 1회 일치
         [[남송]] 시대 '일장청'이라는 별명을 가진 도적 출신의 여장군이 있어, 그녀가 호삼랑의 모델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일장청의 남편은 왕왜호(王矮虎)라는 이름으로서, 왕영의 모델이 된 것으로 보인다.
  • 임백천 . . . . 1회 일치
         지금에 와서는 나이도 있고 해서 보기 힘들어졌지만, 1980~1990년대에는 MC계의 원탑이었다. 지금 시대에서 그 인기나 인지도를 비교할 만한 대상을 꼽자면 [[유재석]] 정도다.
  • 임혁주 . . . . 1회 일치
         * 2003년 [[서울방송|SBS]] - 《[[야인시대]]》 - [[장택상]] 역
  • 임현성 . . . . 1회 일치
          * 2014년 군도: 민란의 시대
  • 임현식(배우) . . . . 1회 일치
         위에서도 언급했듯 [[주당]]이라는 점 때문에 흑역사도 있는데 '''[[음주운전]]으로 [[무려]] 7차례'''[[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1991537|나 적발되었으며,]] 그 중에 '''무면허 음주운전'''도 여러 건이 된다고 한다. 심지어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치어 중상을 입혀''' 재판을 받은지 불과 1년 만에 또 다시 무면허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적이 있다. 지금 기준에서는 언론이 발달하고 [[삼진아웃]] 제도가 있으니 턱도 없을 일이지만, 당시 시대 환경이 그랬던 만큼 이런 사실 자체가 잘 알려지지 않았기에 결과적으로 계속 활동할 수 있었다.
  • 장재훈 . . . . 1회 일치
         <ref name="sbs sports 2012-05-10">{{뉴스 인용 | url=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1185373 | 제목=프로야구, 이름 바꾼 선수들의 전성시대 | 저자=정진구 | 뉴스=SBS스포츠 | 날짜=2012-05-10 | 확인날짜=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61125061002/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1185373 | 보존날짜=2016-11-25 | 깨진링크=아니오 }}</ref>
  • 장평도정 . . . . 1회 일치
         '''장평도정'''(長平都正, ? - ?)은 [[조선]]시대 전기의 왕족이다. 조선 [[조선 태종|태종]]의 손자이자 [[양녕대군]]의 다섯 번째 서자이며, 이름은 이흔(李訢)이다. 본관은 [[전주 이씨|전주]]이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15대조로, 이승만은 그의 장남 부림령(富林令) 이순(李順)의 14대손이다. [[임진왜란]] 때에 활약한 [[이순신 (1554년)|무의공 이순신]]은 그의 6대손이다.
  • 장포크 . . . . 1회 일치
         * [[2010년]] [[3월 2일]] 장포크 《대항해시대
  • 장헌식 . . . . 1회 일치
         [[1905년]]에는 [[관립한성외국어학교]]의 교장, [[1905년]] [[10월 18일]] 귀국과 동시에 6품으로 승륙하고, [[12월 20일]] 학부참서관 주임관 4등 7급(學部參書官敍奏任官四等七級)에 임명되고, [[12월 27일]]부터는관립외국어학교장(外國語學校長)을 겸직하였다. [[1906년]] [[10월 24일]] [[학부]] 편집국 사무임시대변(學部編輯局長事務臨時代辦), [[1907년]] [[3월]] 학부 편집국장(編輯局長)을 거쳐 [[1907년]] [[5월]]부터는 관립 [[한성사범학교]](漢城師範學校) 교장을 겸임하였다.
  • 장희진 (1944년) . . . . 1회 일치
         * [[2002년]] 《[[야인시대]]》 ([[SBS]])
  • 전국 BASARA . . . . 1회 일치
         일본 전국 시대를 배경으로 재해석된 무장[* 말이 재해석이지 재창조에 가까운 수준이다. 그럴 사람은 없겠지만 이 게임을 하며 이런 인물이구나~ 하면 좀 곤란하다.]을 움직여 수많은 적을 상대하는 무쌍형 게임이다.
  • 전성군 (1488년) . . . . 1회 일치
         '''전성군'''(全城君) 이대(李對, [[1488년]] [[7월 21일]] ∼ [[1543년]] [[10월 29일]])는 [[조선]]시대 중기의 왕족으로 본관은 [[전주 이씨|전주]], 자(字)는 성중(盛仲)이다. [[효령대군]] 이보의 고손으로 아버지는 여양군(呂陽君), 조부는 율원군(栗元君), 증조부는 보성군(寶城君). [[인순왕후|인순왕후 심씨]], [[심의겸]], [[심충겸]] 등의 외할아버지가 된다. 다른 이름은 이대(李薱)이다.
  • 전여옥 . . . . 1회 일치
         1981년 [[한국방송공사]]에 입사하여 1994년까지 기자로 활동했다. 1991년 1월부터 1993년 8월까지는 도쿄특파원이었다. 특파원시대에 쓴 독설적 일본론 《[[일본은 없다]]》를 냈으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일본은 없다]]》의 표절의혹을 제기한 원작가인 [[유재순]] [[제이피뉴스]] 발행인 등 5인에 대해서 손해배상으로 5억원을 청구하였지만, 2012년 5월 18일 대법원 확정판결로 유재순씨의 레포트를 표절한 것이 인정되어 패소했다.<ref>[http://media.daum.net/politics/newsview?newsid=20120518060109739 '표절시비' 전여옥, 언론 상대 손배訴 대법서 패소] [[뉴시스]] 2012.5.18</ref><ref>[http://media.daum.net/politics/clusterview?newsId=20120518111515384&clusterId=578748 전여옥, 표절 책으로 얼마나 벌었나 했더니…] [[한국일보]] 2012.5.18</ref> 이에 대해 전여옥은 '표절이 아닌 아이디어 인용'일 뿐이라고 변명하였다.<ref>[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120518125412177&p=mediatoday 전여옥 “표절 아니라 아이디어 인용일 뿐”] [[미디어오늘]] 2012.5.18</ref>
  • 전태일 . . . . 1회 일치
         시위 직후 서울대 측은 무기한 휴업령을 내렸으나 서울대생들은 계속해서 철야 농성을 벌였다.<ref>이광일, 〈우리 시대 지식인의 초상:권력과 자본의 품에 안긴 지식인들〉, 《당대비평》 제 4호 279쪽, 1998년</ref>
  • 전효성 . . . . 1회 일치
         드라마 캐스팅으로 MC에서 하차한 [[차오루]]와 바통터치하여 [[비디오 스타]]에 합류했다. TS와의 법정 공방 중인 2018년 4월에 MC를 [[써니(소녀시대)|순규]]에게 넘겼다.
  • 절대가련 칠드런/434화 . . . . 1회 일치
          * 길리엄은 "빈곤도 폭력도 없는 검은 유령이 지배하는 시대"가 올 거라고 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40화 . . . . 1회 일치
          * 극비기관인 것은 냉전시대의 영향인데 이 관측소의 관측기가 성능이 너무 좋다 보니 국경 너머 타국의 에스퍼까지 감지해서 국제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
  • 절대가련 칠드런/454화 . . . . 1회 일치
          * 기사는 미심쩍어 하면서도 지시대로 적당한 해안가의 창고 구역에 차를 세운다.
  • 절대가련 칠드런/458화 . . . . 1회 일치
          * 아카시 카오루가 말하길 미나모토와 헤어진 이후 칠드런은 그의 지시대로 노력해 봤지만 상황은 악화일로에 있었다. 그런데 어떤 협력자를 얻어서 상황이 급변했다. 지금은 그의 작전대로 움직이고 있으며 미나모토 일행과 접촉한 것도 그 계획의 일환. 그런데 이 협력자는 효부 쿄스케가 아니며 효부는 만나지 못한지 꽤 됐다고 한다.
  • 정광조 (1883년) . . . . 1회 일치
         천도교단은 정광조와 [[김병제 (1894년)|김병제]] 등 천도교 지도자들의 친일 논란에 대해, "일제의 총체적 강압 강요" 하에서 "교단이 해체나 와해되지 않고 교단을 유지 보존시켜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 시대를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으므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ref>{{웹 인용
  • 정난정 . . . . 1회 일치
         * 선조시대에 판중추부사로 지냈던 [[정종영]]은 정윤겸의 손자이자 정난정에게는 서조카였다. 원형이 상변(上變)하여 옥사를 일으킬 적에 논의에 참여하도록 넌지시 일깨워주었으나 종영은 거짓 모르는 체하고 응하지 않았다. 난정이 참람하게 정실(正室)이 되어 부인(夫人)에 봉해져서 외명부(外命婦)의 우두머리에 있게 되자 사람들이 감히 항변하지 못하였으나 종영은 오히려 얼척(孼戚)으로 대우하였다. 이 때문에 원형이 크게 유감을 품어 매양 죄를 얽어 해치려 하였다. 난정의 어머니가 난정을 경계하기를 "너는 종손을 해치지 말라. 내가 맹세코 죽음으로써 당하겠다”하였으므로 화를 면하게 되고 예전처럼 현달(顯達)한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 정도복 (고려) . . . . 1회 일치
         '''정도복'''(鄭道復)은 [[고려]]시대 말기, [[조선]]초기의 문신이다. [[고려]] 말에 과거에 급제하여 승선, 상시 등을 지내고 [[조선]] 건국에 참여하였으며 밀직제학, 한성부우윤,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했으며 형 [[정도전]]이 암살되자 관직을 사퇴하고 성주 유학교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 뒤 인녕부사윤에 이르렀다. 본관은 [[봉화 정씨|봉화]](奉化)이고 자(字)는 내지(來之)이고 호(號)는 일봉(逸峯)이다. 형부상서(刑部尙書) [[정운경]](鄭云敬)의 아들이며, [[정도전]](鄭道傳)의 친 아우이다.
  • 정동진 (1946년) . . . . 1회 일치
         [[삼성 라이온즈]] 재임 시절에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팀 분위기를 만들었으며, [[태평양 돌핀스]] 시절에는 [[김시진]]을 투수코치로 영입, 투수 조련에 힘써 [[태평양 돌핀스]] 때부터 "투수 왕국"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1990년대 후반 태평양을 인수한 [[현대 유니콘스]] 전성 시대의 기초를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 정소담 . . . . 1회 일치
         #[http://chogabje.com/board/view.asp?C_IDX=59471&C_CC=BB <리뷰> 영화 <국제시장> '이 시대 모든 금순이를 위하여]
  • 정운용 . . . . 1회 일치
         마침내 1945년 해방을 맞아 미 군정시대가 열리면서 조흥은행 일본인 임원들이 한국을 떠났다. 정운용은 미군정에 의해 1945년 11월 해방 후 첫 한국인 조흥은행장(2대)로 선임됐다. 불과 41세의 나이에 국내 최고 민간은행의 수장이 됐다.<ref><<조흥은행 90년사>>, (조흥은행, 1987) p.412~431쪽 역대임원</ref>
  • 정인선(탤런트) . . . . 1회 일치
         ||<|2> [[2004년]] || [[MBC]] || [[영웅시대]] || 천태숙 || ||
  • 정재학 (1856년) . . . . 1회 일치
         임 대기자는 [[정재학]]에 대해 " 거리의 일개 건달에서 수만금의 재산가가 되고 군수라는 관직에 오르기도 했고 풍운아인데 [[대구은행]] 설립을 통해 일제의 대항 세력이 되어 지체를 높인 특이한 존재 "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의 대구은행 설립은 대구를 [[봉건시대]]에서 [[자본주의]]경제로의 이행으로 이끄는 혁명이자 국권회복을 위한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정재학]]이 설립했던 [[대구은행]]은 일제에 대한 커다란 저항세력으로 한국 사람들의 저항의식을 길러주는데 큰 몫을 했다"고 강조했다.<ref>매일경제 1982년 12월 8일 9면 재계산맥 대구은행 10편</ref>
  • 정정아 . . . . 1회 일치
         * 2002년 [[SBS]] <[[야인시대]]> - 순이 역
  • 정종원 . . . . 1회 일치
         정부가 조흥은행 등 시중은행의 주식을 모두 거둬들이면서 주요 은행의 지배주주는 정부가 차지하게 됐다. [[관치금융]]시대가 열린 것이다. 정부는 1960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면서 금융산업을 통제하기로 결정했다. 경제성장을 위해 자금공급은 은행 자율보다 정부의 정책적 판단에 의해 좌지우지됐다.
  • 정진욱(코미디언) . . . . 1회 일치
          * [[초인시대]]
  • 정차온 . . . . 1회 일치
         '''정차온'''(鄭次溫, [[1399년]](정종 1) ~ ?)은 [[조선]]시대 전기의 학자, 문신이다. 본관은 [[경주 정씨|경주]]이고 자(字)는 공후(孔厚)이다. [[경상북도]] 출신.
  • 정찬성 . . . . 1회 일치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는 "3년이 넘는 공백기간동안 자신에 대한 믿음을 유지할 수 있었는가?" 라는 한 기자의 질문에 "옥타곤을 오랫동안 떠나있었고, 때문에 시대의 흐름을 쫓아가지 못할 것 같았다" 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 주다영 . . . . 1회 일치
         * [[2014년]] [[KBS2]] 수목드라마 《[[감격시대: 투신의 탄생]]》 ... 어린 데쿠치 가야 역 ([[임수향]] 아역)
  • 주아브 . . . . 1회 일치
         Zouave. [[제국주의]] 시대 [[프랑스]]의 [[경보병]]들 중 한 종류. 북아프리카에 사는 [[베르베르족]]의 일부였던 Zouaoua를 영입한 병사들이다.
  • 진격의 거인/88화 . . . . 1회 일치
          * 그리샤는 그걸 "마법"이라 부르며 시조 유미로는 마녀인지 뭔지 묻는다. 마레 정권에서는 악마를 다루는 자, 엘디아 제국 시대엔 신이 내린 기적. 그리샤는 그가 보내줬던 역사서도 그저 전의고양을 위한 먹이일 뿐이냐며 "진실"이 무엇인지 묻는다.
  • 진격의 거인/97화 . . . . 1회 일치
          거인의 힘이 시대에 뒤처지고 팔라디섬에서 불온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빌리는 그 현실을 씁쓸하게 곱씹은 뒤에 예정된 "축사"에서 모든걸 밝히겠다고 선언했다. 거기에 모든 희망을 걸겠다고. 헤로스 상을 보러 온 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에게 절실한 증표였으니까.
  • 차르 . . . . 1회 일치
         [[비잔티움 제국]]에서 카이사르 칭호는 점차 위상이 하락하였다. 이는 고대세계의 가부장제에 따른 상속 계승보다, 종교적 권위가 중요하게 된 비잔티움 시대의 사회상 변화를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알렉시오스 1세가 황제의 부칭으로 세바스토크라토르(Sebastokratōr)를 제정하면서 제3위격의 칭호가 되었고, 데스포테스(Despotēs,[[전제공]])가 지정되면서 제4위격까지 떨어졌다. 황제가 보유하는 칭호의 위격순은 바실레우스->데스포테스->세바스토크라토르->카이사르 순서가 된 것이다. 이렇게 격식이 떨어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고위의 칭호로 여겨졌다.
  • 참깨를 빻다 . . . . 1회 일치
         [[에도 시대]] 발간된 『황도오수(皇都午睡,코우토고수이)』[* 오수(午睡) : 낮잠]라는 책에서, 이러한 표현이 근래 쓰이는 유행어라고 언급되어 있다.
  • 창작:Project NA . . . . 1회 일치
          * 특정 국가나 국가의 역사를 연상시키는 물건은 주의할 것. 단, 물건의 특성상 특정 시대를 지칭할 수 밖에 없다면 예외.
  • 창작:바벨 코스트 . . . . 1회 일치
         1940~1950년대, 미국 서부 해안에 위치한 가상의 도시인 바벨 코스트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는 설정이다. 시대 배경과 인구 분포는 게임 '마피아 2'의 주요 활동지인 '엠파이어 시티'에서 영감을 얻었고 대체적인 분위기는 오리건 주의 포틀랜드 시, 루이지애나 주의 뉴올리언스 시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 창작:왕국 . . . . 1회 일치
         남쪽에 있는 사발타와 친하긴 하지만 사발타는 시대를 역행한다는 소리를 들으며 외교적으로 고립되는 국가니 제외.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2-2 . . . . 1회 일치
         혹시 우리집처럼 장독을 묻어놓지 않았을까 해서 화단을 살펴봤는데 허탕이었다. 우리 아버지 같은 구시대적 인물은 별로 없나 보다.
  • 채현국 . . . . 1회 일치
         이 시대 젊은 세대들에게 가장 존경 받는 멘토 중 하나로서 강의를 통해 세상과 만나고 있다.
  • 채형석 . . . . 1회 일치
         1960년 서울에서 애경그룹 창업주 [[채몽인]](蔡夢印)과 [[장영신]]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조선]]시대 제주판관을 역임한 [[채구석]](蔡龜錫)이다.
  • 철공소 . . . . 1회 일치
         근대 이후로 대규모 공장에 밀려 사양업종이 되어가고 있으며, 수요 다변화에 의해 다품종 소량 주문생산이 늘어난 요즘 시대에도 크게 상황이 나아지진 않았다.
  • 청송군 . . . . 1회 일치
         고려 시대 청부현이었다. 그러다가 1419년(세종 1) [[소헌왕후]] 심씨의 고향이라 하여 청보군(靑寶郡)으로 승격하였다. 후에 진보와 분리되고 [[세조(조선)|세조]] 때 송생현(松生縣)과 합하여 청송군으로 개칭되었다. 이후 안덕현(安德縣)을 병합하여 청송도호부(靑松都護府)로 승격하고 9개 [[면(행정구역)|면]] 57개 [[리(행정구역)|리]]로 구분하였다. 한편 북쪽에는 진보현이 있었다.
  • 초한전쟁 . . . . 1회 일치
         대중문화에서 초한전쟁은 진시황 말기에서 시작하여, 진승 오광의 난을 프룰로그로 묘사하고, 항우의 죽음으로 일단 마무리 된다. 일단 초한전쟁 자체는 여기서 끝나지만 여기서 끝내는건 조금 짧은 느낌이이 있어, 좀 더 가기도 하는데 유방의 [[토사구팽]]을 묘사하여 공신들의 최후를 그리거나, 좀 더 나가면 [[백등산 전투]]와 흉노 정벌 좌절과 유방의 죽음으로 마무리 한다. 유방 사후 여후까지 묘사하면 [[여씨의 난]]까지 가서 마무리 되며, 좀 더 길게 끌면 초한전쟁 시대의 자식 세대들까지 마지막 활약을 하는 [[오초칠국의 난]]까지 간다.
  • 최덕희 . . . . 1회 일치
         * [[공룡시대]] ([[SBS]]) - 리틀풋
  • 최란(배우) . . . . 1회 일치
          *연애시대
  • 최성관 (1925년) . . . . 1회 일치
         * 청춘시대 (1988년)
  • 최승자 . . . . 1회 일치
         시집으로 '이 시대의 사랑' '즐거운 일기' '기억의 집' '내 무덤, 푸르고' '연인들' '쓸쓸해서 머나먼' 등을 냈고, 번역서로는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 메이 사튼의 '혼자 산다는 것' 등을 냈다.
  • 최용민(연극배우) . . . . 1회 일치
         * 2004년 SBS 《엄마의 전성시대
  • 최은석 (배우) . . . . 1회 일치
         * 《[[야인시대]]》 (2002년, SBS) - 여러 조직원, 교도소 교도관 간부 역
  • 최재웅 (배우) . . . . 1회 일치
         |[[마마 돈 크라이]]<ref>[http://newsculture.heraldcorp.com/sub_read.html?uid=81098§ion=sc169 [인터뷰] ‘마마 돈크라이’ 김재범-최재웅 “18년 지기 향한 기대감? 과감하게 만족시킬게요”]</ref><ref>[http://newsculture.heraldcorp.com/sub_read.html?uid=81274§ion=sc165 [더하기컷] 18년 동안 쌓은 믿음을 무대 위로, ‘마마 돈크라이’ 김재범-최재웅]</ref><ref>{{웹 인용|url=http://m.viva100.com/view.php?key=20160607010001677#ba|제목=[비바100] 꼭 닮았지만 또 다른 18년 지기 단짝친구, ‘마마돈크라이’ 최재웅·김재범|웹사이트=100세시대의 동반자 브릿지경제|확인날짜=2016-06-16}}</ref>
  • 최정원(남자배우) . . . . 1회 일치
         2003년 [[MBC]] "[[강호동의 천생연분]]"을 통해 '진지청년', '진지교수' 등이라는 [[별명]]들을 얻으며 [[인기]]를 많이 얻기 시작한다. [[MBC 라디오]] "최정원의 감성시대"로 많은 사랑을 받기도 하였다.
  • 최진순 . . . . 1회 일치
         [[2005년]]부터 [[중앙대학교]] 미디어공연영상대학 [[신문방송학부]] 겸임[[교수]]를 맡기 시작한 최진순은 저서 《한국 신문의 뉴 미디어 혁신》(2006)을 비롯 《온라인 신문, 경쟁과 생존》, 《신문도 TV도 죽었다》, 《뉴스의 혁명, NewsML》, 《혁신 저널리즘》 등의 책을 잇따라 펴냈다. [[2008년]]에는 방송·통신 융합 시대 [[인터넷]] 정책현황분석 및 주요 이슈 (한국인터넷진흥원) 연구보고서(공저)를 냈다.
  • 최홍만 . . . . 1회 일치
         2015년 7월 [[런닝맨]]에 특별 출연하여 [[이광수(배우)|이광수]]의 등짝을 내리치거나 [[수영(소녀시대)|수영]]의 설득에 넘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런닝맨 내에서 힘이 가장 센 [[김종국]]을 힘으로 가볍게 제압하여 이름표를 뗐다.[* 민호가 붙잡아서 제압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일대일로 붙었어도 100% 김종국이 제압당했을 것이다.] 오죽하면 김종국이 최홍만 앞에서는 초딩같이 작아 보이기까지 했다.[*참고 이때 자막에 '이름표 떼고도 이어지는 홍만 어른의 꾸중'이라 떠서 최홍만이 더 나이가 많다고 착각할 수도 있지만 김종국이 1976년생, 최홍만이 1980년생으로 김종국보다 4살 아래다.]~~생각보다 힘이 별로라고 디스하는 건 덤~~ ~~최홍만이니까 가능한 말~~ 참고로 이날 최홍만이 뜯은 멤버는 김종국 한 명 뿐이고 대부분은 [[민호]]가 다 뗐다.
  • 최희서 . . . . 1회 일치
         |<ref>[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0906181754263&sec_id=540401 '영화세상' '힘짱' 5인방 소녀시대 뜬다] 경향신문 2009년 06월 18일</ref>
  • 카네다 쇼타로 . . . . 1회 일치
         철인 28호 FX에서는 왕년의 영웅인 중년 탐정.[* 철인 28호 FX의 배경 세계는 초대 철인 28호 이후의 시대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미인 천재 과학자인 사카키 요코와 결혼했으며 부인과의 사이에서 아들인 카네다 마사토를 얻었다. 이 마사토가 시리즈 3기인 FX의 주인공. 그런 이유로 주역의 자리는 내줘야 했지만 소년 시절부터의 짬밥은 어디 가지 않는지 활약도 많다. 중반부터는 인터폴의 장관이 되며, 그에 따라 카네다 탐정 사무소 전원이 인터폴 소속이 된다.
  • 카라아게 . . . . 1회 일치
         에도 시대부터 튀김 요리에 대한 기록은 있지만, 현재와 비슷한 모습의 카라아게가 나타난 것은 1930년대로 추측된다.
  • 카리아게 . . . . 1회 일치
         [[에도 시대]]에, 다이묘 제후가 재정 궁핍을 막기 위하여, [[가신]](家臣)에게 빌려 쓰는 형식으로 감봉을 행했던 것에서 유래한다.
  • 칸닌부쿠로 . . . . 1회 일치
         [[메이지 시대]]의 극작가 마스다 타로우카쟈(益田太郎冠者 ますだ たろうかじゃ)가 저술한 동명의 [[만자이]]가 있다.
  • 코토부키 퇴사 . . . . 1회 일치
         여성이 결혼을 계기로 하여 일을 그만두는 일이 일반적이었던 시대 배경과, 여성의 행복=결혼이라는 관념에서 태어난 말이다.
  • 쿼터뷰 . . . . 1회 일치
         2D 스프라이트를 이용하여 3D를 유사하게 표현하는 기법 가운데 하나이므로, 본격적으로 3D가 사용되게 된 시대 이후로는 쿼터뷰 방식은 이용이 줄어들었다.
  • 키프 . . . . 1회 일치
         버블 시대에 나타난 용어 키프 군(キープ君)에서 유래한다. 어원은 영어의 Keep.
  • 킹덤/498화 . . . . 1회 일치
          * 창평군은 조나라와 총력전에 들어간다고 선언하며 절대 겁먹지 말고 반드시 승리하라고 연설한다. 곧이어 군을 통솔할 장군을 발표하는데, 우선 단상에 오른 것은 환의 장군이다. 환의하곤 좋은 추억이 없는 비신대로서는 드러내놓고 싫은 내색을 하는데 환의 측의 부하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그의 시대가 열린다고 외친다. 이미 정해진 바니 비신대도 떨떠름한 대로 인정하지 않을 수없다.
  • 킹덤/499화 . . . . 1회 일치
          * [[하료초]]는 남쪽에서 징집된 [[벽(킹덤)|벽]]과 재회한다. 간만에 인사를 나눈 둘은 이번 작전에 투입된 "연합군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하료초는 그 규모가 20만에 이르며 근 10년 동안 합종군을 제외하곤 최대 규모라고 말한다. 그런데 벽은 그것 보다 이질적인 세 군단이 혼성된 점에 대해 더 놀라워한다. 하료초는 육장 시대에 가끔 있었다고 얘기할 뿐 특별한 감상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수뇌부와 가까운 벽은 좀 더 심각하게 이야기한다. 그는 본영 상층부의 긴장된 분위기를 언급하며 "이 조 서부공략전은 훨씬 큰 전투가 된다"고 추측한다.
  • 킹덤/501화 . . . . 1회 일치
          * 한편 조 서부의 십화에선 [[순수수]]가 [[이목(킹덤)|이목]]의 지시대로 최대한 첩보를 끌어모으고 있다. 이미 진군의 목표는 흑양이고 금안에서 군령을 수령할 거라는 줄거리가 만들어진 상황. 순수수는 무백으로 복귀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전령들을 모아놓고 달리 더 보고할건 없냐고 점검한다. 달리 보고는 없는데 한 명이 약간 미심쩍은 이야기를 한다.
  • 킹덤/511화 . . . . 1회 일치
          * 열미로 행군하던 [[이목(킹덤)|이목]]은 열미성이 함락됐다는 급보를 받고도 태연하다. 부하들은 [[공손룡]]장군이 한 발 늦었다고 탄식하지만 그는 자신의 지시대로라며 "열미엔 내가 뿌려둔 비밀이 있다"고 한다. 이는 부하들도 몰랐던 보험이었다. 이목은 비록 열미를 뺏겼다 해도 진군이 이 비밀을 눈치채지 못한다면 자신들의 승리가 틀림없다 확신한다. 단지 그렇게 쉽게 될 것 같진 않다고 추측한다. [[왕전(킹덤)|왕전]]의 존재 때문이다. 왕전이 그 비밀을 알아챘다면 진군은 거기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라고 말한다.
  • 킹덤/515화 . . . . 1회 일치
          * 왕전의 지시대로 산단성까지 도착한 오천인장들. 이신은 일단 그의 지시를 따르고 있지만 아직도 분통이 터진다. 그는 성벽 위에서 떠나가는 백성들을 보며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대체 뭘하고 있는지 숨김없이 토로한다. 거기에 아무도 토를 달지 않는 것은, 장수들 모두가 비슷한 의문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외]]는 남들보다 조금 먼저, 왕전이 그린 그림을 눈치챈다.
  • 킹덤/517화 . . . . 1회 일치
          >가 태자마마의 시대가 왔을 때 조에 진정한 빛이 비춘다.
  • 킹덤/528화 . . . . 1회 일치
          * 견융족은 과거 주나라를 멸망시키고 춘추전국시대를 연 장본인들이자 오늘날 대륙의 북부를 어지럽히는 [[흉노]]의 선조. 산민족도 그들의 먼 후예다.
  • 타이라노 마사카도 . . . . 1회 일치
         그러나 마사카도는 주변의 히타치(常陸), 카즈사(上総), 시모우사(下総), 무사시(武蔵), 우에노(上野)의 국부(国府)[* 헤이안 시대 지방 행정구역으로서 '국'의 행정기구.]에서 연명으로 모반의 사실이 없다는 증명서를 작성하여 이미 인연이 있던 후지와라노 타다히라에게 보냈다. 이 탓에 오히려 츠네모토가 무고죄로 투옥당하고 만다.
  • 타코베야 . . . . 1회 일치
         메이지 시대에 부터 [[일본]]에서 있었던 [[강제노동]] 관행을 뜻한다. 채무 등을 이유로 감금하여 강제 노동을 시키는 시설. 현대에는 주로 불법 사채 업자들이 채무자들을 기숙사 등에 감금하여 강제노동을 시킨다.
  • 태학 . . . . 1회 일치
         태학의 규모는 점차 발전, 확대되었는데, 태학이 생겨난 당초에는 학생 50여명에 불과했으나 후한 시대에는 무려 3만명에 달하게 됐으며, 학교 건물은 240채,1850실을 갖추게 되었다. 엄청난 수의 태학 학생들은 정치와 사회에 참여하려는 의식도 높아서, 후한말기에 태학은 [[청류파]]의 거점이 되어 외척과 환관 등 부패한 중앙 정치에 저항하는 역할을 했다.
  • 토리코/372화 . . . . 1회 일치
         * 시대가 택한 것은 자신이 아니라 토리코였다고 중얼거리는 아카시아.
  • 토리코/395화 . . . . 1회 일치
          * 대망의 최후의 풀코스 "드링크" 빌리언 버드의 알. 도탄에 빠진 인간계를 구원하고 새로운 구르메 시대를 개막한 구세주 같은 식재다. 조청무 때문에 곤란을 겪었던 소년도 이 자리에 참석해 빌리언 버드야 말로 모두를 구원한 식재라며 칭송한다. 오늘 나온 빌리언 버드의 알은 멜로우 콜라가 같이 나오는데 쉐이크로 만들면 빌리언 버드 멜로우 드링크가 된다.
  • 토탈워: 쇼군 2/세력 기술 . . . . 1회 일치
         >평화의 시대에선 사람의 마음속에 먹물이 흐른다.
  • 퇴계 이황 . . . . 1회 일치
         조선시대의 관료, 유학자.
  • 트로피코 4 . . . . 1회 일치
         === 시대별 이벤트 ===
  • 특별고등경찰 . . . . 1회 일치
         일제시대의 [[정치경찰]]. 천황제에 반대하는 사회운동과 사상을 단속한 [[경찰]] 조직이다. 특고(特高)라고 약칭되며 악명을 떨쳤다.
  • 페어리 테일/489화 . . . . 1회 일치
          * 그런데 이 마법은 아크놀로기아 조차 모르는 미지의 마법. 아이린은 이것이 400년 전에도 그 이전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신시대의 마법"이라 밝힌다.
  • 페어리 테일/514화 . . . . 1회 일치
          나츠는 아직도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상태가 나빠져만 간다. [[루시 하트필리아]]와 [[해피(페어리 테일)|해피]]는 [[폴류시카]]의 지시대로 체온을 높이기 위해 살을 맞대고 있다. 그들은 나츠가 어서 눈을 뜨길 바라지만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 페어리 테일/536화 . . . . 1회 일치
          >이걸로 끝이야! 용왕의 시대는 끝났어!
  • 표현명 . . . . 1회 일치
         * [[2008년]] 서비스 디자인시대
  • 프로 스포츠 . . . . 1회 일치
         자유주의 진영에서도 이런 공산권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기도 했다. 대한민국도 한국축구사에 전설을 남긴 [[양지 축구단]]은 박정희와 중앙정보부의 강력한 푸쉬를 받아 등장한 케이스였고, 이는 북한의 1966년 월드컵 8강진출에 자극받아 탄생했다는 걸 생각하면 이런 국가의 개입에 따른 아마추어리즘이 훼손된 사례는 확실한 트렌드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런 모습은 냉전시대가 낳은 대표적인 산물임이 확실하다.
  • 핑커톤 . . . . 1회 일치
         1861년에는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에이브러햄 링컨]]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밝혀내기도 하였다. [[남북전쟁]] 이후 [[서부개척시대]]에는 [[제시 영거 갱]]이나 [[와일드 번치]]같은 갱단을 추적하거나 열차강도를 잡는 일을 했다. 이 과정에서 조사를 위해 [[신문]] 기사를 오려내 보관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범죄자 데이터베이스의 시초가 되었다. 이 외에도 [[시카고 대화재]] 직후 약탈을 방지하기 위해 고용되기도 했다.
  • 하성란 . . . . 1회 일치
         *《소설가로 산다는 것(우리 시대 작가 17인이 말하는 나의 삶 나의 글)》(문학사상,2011)
  • 하재숙 . . . . 1회 일치
          * [[SBS]] [[연애시대]](2006) - 나유리
  • 한비야 . . . . 1회 일치
         * 2011, 2012년 [[시사저널]]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NGO 분야 3위<ref>{{웹 인용|url=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10812114744228|제목=[2011한국, 누가 움직이는가 - NGO 지도자] NGO도 이제 글로벌 시대|저자=조해수|날짜=2011-08-12|출판사=시사저널|언어=ko|확인날짜=2013-09-02}}</ref><ref>{{웹 인용|url=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20821142629416|제목=[2012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NGO 떠나도 영향력 그대로
  • 한상원 . . . . 1회 일치
         | 관련활동 = 쉼, <br /> 석기시대, <br /> [[김태화]]밴드, <br /> 코리아 슈퍼세션, <br /> [[긱스 (6인조 음악 그룹)|긱스]]
  • 한현규 . . . . 1회 일치
         * 2002년 6월 28일 ~ 2004년 2월 6일<ref>[http://v.media.daum.net/v/20040206061217739 "2만불, 3만불 시대는 경기도가 만들 것" - 한현규 정무부지사 이임]</ref> 경기도 정무부지사
  • 한혜숙(배우) . . . . 1회 일치
         원래는 MBC 탤런트로 데뷔했으나, [[1971년]] KBS 주연급 탤런트 모집에 당선되어 [[하명중]]과 공동주연한 드라마 '꿈나무'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1975년에 방영된 꽃피는 [[팔도강산]]으로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이한다. 이후 TBC에는 [[정윤희]], [[유지인]], [[장미희]]로 대표되는 2세대 트로이카가, MBC에는 [[양정화(배우)|양정화]]와 [[김자옥]][* 이후 [[김영란(배우)|김영란]].]이 있었다면 [[KBS]]에는 한혜숙이 있다할 정도로 KBS 대표 탤런트로 활동하였으며, 1979년 KBS 대하 드라마 '[[토지#s-7.1|토지]]'에서 제1대 [[최서희]] 역할로 출연해 주목을 받았다. 그 후 1986년 ~ 1987년 KBS 대하 드라마 '[[노다지#s-6|노다지]]'에서 최실단과 최성희 역할을 맡아 열연했다.[* [[드라마]] 속에서 일제시대 엘리트 여대생이었으나,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비극적 인생을 살게 되는 연기를 하였다.]
  • 한희 (연출가) . . . . 1회 일치
         | align="left" | [[MBC 수목드라마|수목드라마]] 《[[영재의 전성시대]]》
  • 함신익 . . . . 1회 일치
         그는 또, 현대음악에 관심을 기울여 동시대 작곡가의 작품을 초연했으며 한국에 머무를 때면 동서울 FC의 레프트 윙으로서 활약하고 있다.
  • 헌경왕후 . . . . 1회 일치
         '''헌경왕후 홍씨'''(獻敬王后 洪氏, [[1735년]] [[8월 6일]]([[음력 6월 18일]]) ~ [[1816년]] [[1월 13일]]([[1815년]] [[음력 12월 15일]]))는 [[조선]]시대 후기의 왕세자빈, [[추존]]왕비로, [[대한제국]]의 추존황후이기도 하다. [[조선 영조|영조]]의 차남 [[조선 장조|장조]](莊祖, 사도세자)의 비이자, [[조선 정조|정조]]의 어머니이다. 원래 시호는 헌경혜빈(獻敬惠賓)이었으나,<ref>순조실록 19권, 순조 16년(1816 병자년 / 청 가경 21년) 1월 19일(기해) 1번째기사, "혜경궁 시책문"</ref> [[대한제국 고종|고종]]때 왕후로, 다시 황후로 추존되었다. [[시호]]는 '''효강자희정선휘목유정인철계성헌경왕후'''(孝康慈禧貞宣徽穆裕靖仁哲啓聖獻敬王后)로, 정조가 내린 궁호인 '''혜경궁'''(惠慶宮) 또는 '''혜경궁 홍씨'''(惠慶宮 洪氏)로도 알려져 있다.
  • 현재덕 . . . . 1회 일치
         [[일제 강점기]] 말기에 친일 잡지 《[[신시대]]》에 삽화를 기고하는 등 친일 활동을 한 기록이 남아 있어,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의 미술 부문에 포함되었다.<ref>{{뉴스 인용
  • 현정건 . . . . 1회 일치
         [[1924년]] 6월, 현정건은 독립운동을 위해 상하이로 망명해 오는 조선인 학생들의 중국 사회 적응과 그들의 상급학교 진학을 돕기 위한 [[김규식|김규식(金奎植)]]의 제안을 받아들여, 상하이에서 [[1917년]] 여운형이 세웠던 인성학교(仁成學校) 내에 개설된 조선인 학생을 위한 예비교(豫備校, 예비강습소)에서 김규식, 여운형 등과 함께 영어 과목을 맡아 가르쳤고<ref>이는 국내에도 알려져 신문에 「上海에 豫備講習」(『동아일보』 1924년 6월 6일자), 「豫備校 設立」(『시대일보』 1924년 6월 9일자) 등의 기사가 나기도 했다.</ref>, 그 뒤 상하이 고등보통학교(上海高等普通學校)로 개편된 뒤에도 여운형, 김종상(金鍾商) 등과 함께 전임교사로서 교수생활을 하였다. 9월에는 상하이교민단에서는 실시한 의사원(議事員) 총선거에서 당선되기도 했다.<ref> 재상해일본영사관경찰부(在上海日本領事館警察部) 『조선민족운동연감(朝鮮民族運動年鑑)』 1946년, 동문사서점(東文社書店)</ref> 11월에는 상하이에서 윤자영이 조직한 청년동맹회(靑年同盟會, 상하이한인청년동맹)에 가입, 집행위원이 되었고 『횃불』, 『새길』 등의 잡지를 발간하였다.
  • 형불상대부 예불하서인 . . . . 1회 일치
         형벌을 면할 수 있다는 것은 일종의 '불평등'이며, 지배 계층의 '[[명예]]'와 '위신', 어떤 의미에서는 [[인권]]을 보장해주는 수단이기도 하였다. 예기가 쓰여진 [[춘추전국시대]]의 형벌은 신체 부위를 절단하거나 훼손시키는 잔인한 형벌이 대부분이었으며, 이러한 형벌은 당연히 인간에게 커다란 치욕과 고통을 안겨다 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 홍가람 . . . . 1회 일치
         * 《[[초인시대]]》 (tvN, 2015년)
  • 홍국영 . . . . 1회 일치
         [[1772년]] 9월 정시(庭試:별시의 일종) 문과에 병과 11위<ref>15명 중에 15위였다. 출처 조선문과방목 영조48년 정시</ref> 로 급제하였다. 대과에 급제하고도 6개월간 보직을 받지 못하다가 이듬해 2월부터 가주서(假注書)로 벼슬살이를 시작한다. 계속해서 이 해 [[4월]] [[정민시]]와 함께 한림소시에 합격하여 본격적으로 [[영조]]를 보좌하는 사관으로 봉직하기 시작했다. [[한중록]]에서는 그가 사관으로 봉직할 당시 [[영조]]가 홍국영을 "내 손자"라고 부르며 총애했다고 쓰고 있다. 이듬해인 [[1774년]] 3월에는 동궁시강원 설서(說書)로 임명된다. 세간에 홍국영이 과거 급제와 동시에 설서에 임명되었다는 설이 많이 퍼져있는데<ref>박광용《영조와 정조의 나라》(푸른역사, 1998)와 이덕일《정조와 철인정치의 시대1》(고즈윈, 2008)에서는 홍국영이 과거 급제한 달에 바로 세손의 시강원에 임명되었다고 적고 있다. </ref> 이는 잘못된 내용이다. [[조선 정조|정조]]와는 동궁시강원 설서가 되면서부터 가까워진 것으로 보인다. 정조는 이 당시 궁료들이 서연에서 아뢴 말들을 모아 《현각법어》(賢閣法語) <ref>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규6836</ref> 라는 책을 펴냈는데, 실제로 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홍국영의 언행이라고 한다. 《명의록》 등은 이 시기 홍국영이 "세손의 오른날개(右翼)"라고 불렸다고 적고 있다.
  • 홍서범 . . . . 1회 일치
         * 〈나 어떡해〉는 사회적으로 암울했던 시대, 대학 가요제 대상을 수상했던 곡이었다고 한다.<ref>[http://reviewstar.hankooki.com/Article/ArticleView.php?WEB_GSNO=10039036 불후의 명곡2 홍서범, "'나 어떡해'는 당시 사회적 편견을 깬 곡"] {{웨이백|url=http://reviewstar.hankooki.com/Article/ArticleView.php?WEB_GSNO=10039036# |date=20131227041836 }}《한국일보》</ref> 홍서범은 "당시 부모님들은 공부를 안 하고 기타치고 노래하면 혼을 내서, 대학생들이 몰래 노래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학생들이 가요제 대상을 수상한 거다. 그래서 놀란 부모님들이 노래를 부르라 허락했다"고 하였다.
  • 홍성유 . . . . 1회 일치
         호방하면서도 활달한 남성적 문체와 시대 의식이 짙게 묻어나는 역사소설을 많이 쓴 작가로, 도박을 좋아한 그는 [[고스톱]]의 복잡미묘한 규칙을 처음 도입한 인물이라고 [[김종철 (시인)|김종철]] 시인은 회고하기도 했다. 학창시절 일본 학생들을 두드려 패어 감옥에 들어간 그는 감옥에서 배운 기술로 인하여 그는 도박의 달인으로 통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의 딸의 순한 눈빛 때문에 도박판에서 손을 씻었다고 한다. 또한, [[야구]]를 좋아해 한때 서울 [[잠실구장]]에는 그의 지정석까지 마련돼 있었다고 한다.
  • 홍세화 . . . . 1회 일치
         * 《21세기 첫 십년의 한국: 우리시대 희망을 찾는 7인의 발언록)》
  • 홍해성 . . . . 1회 일치
         |제목=식민지시대 대중예술인 사전
  • 황두성 . . . . 1회 일치
         [[성균관대학교|성균관대]]를 중퇴하고 [[1997년]] [[포수]]로 [[삼성 라이온즈|삼성]]에 입단했다가 시력이 좋지 않아 당시 [[장호연]] 코치의 제안으로 [[투수]]로 전향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277&article_id=0002712347 황두성, "장례식장에서 받은 방출 통보 서러웠다"] - 아시아경제</ref> 그러나 눈에 띄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1999년]] [[KIA 타이거즈|해태 타이거즈]]에 3:1 현금 트레이드([[양준혁]]·[[곽채진]]·황두성↔[[임창용]])되었다.<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812300034 황두성-이재우, '늦깎이의 성공시대' 열 것인가] 《Osen》 2008년 12월 30일</ref>
  • 황정민(남자배우) . . . . 1회 일치
         ||<:> [[최민식]][br]([[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 {{{+1 → }}} ||<:> '''황정민[br]([[신세계(영화)|신세계]])'''||<:> {{{+1 → }}} ||<:> [[송강호]][br]([[변호인(영화)|변호인]]) ||
  • 후지와라 요시후사 . . . . 1회 일치
         [[헤이안 시대]] 일본의 귀족, 정치가. 제56대 [[세이와 덴노]](清和 天皇) 시기에, 섭정(摂政)이 되어 덴노를 대신하여 정치를 하게 되었다.
  • 흥친왕 . . . . 1회 일치
         * 고종시대
  • 히토데나시 . . . . 1회 일치
          * [[에도 시대]]에는 천민이었던 비인(非人)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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